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6
신필천하(神筆天下) 116화
“곡주라면 어디……?”
“음귀곡(陰鬼谷)이라고 들어는 봤을 테지?”
“음귀곡!”
송대율을 비롯한 태산삼협이 모두 놀라 비명처럼 소리쳤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객점의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이었다.
무인들 중 상당수는 여인이 음귀곡주라는 것이 밝혀지자 일찌감치 자리를 접고 일어나 버렸다. 상당수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객점은 갑자기 텅 비어 버린 느낌이었다.
음귀곡.
실제로 음귀곡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른다.
음귀곡 무인들은 대다수가 여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중원 어디에서나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음귀곡이라는 곳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음귀곡 여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음귀곡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름도 음귀곡인지도 모른다.
음귀곡주를 화나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음귀곡에 묻혀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섬뜩한 말도 나돈다. 특히 음귀곡 미녀들이 사용하는 섭혼대법(攝魂大法)에 걸려들면 멀쩡히 눈 뜨고 저승길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있다.
송대율은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신분에 할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음귀곡주가 그를 보며 다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멍하니 서 있던 송대율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쪽으로 물러났다. 섭혼대법에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여인에게서 반항할 수 없는 위엄을 느낀 것이다.
그제야 음귀곡주는 곧바로 진양 일행에게 걸어갔다.
진양 일행 역시 지금까지의 상황을 빠지지 않고 지켜봤기 때문에 내심 긴장한 채 음귀곡주를 보았다.
서요평은 이번에도 매지향의 사주일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음귀곡주가 일행 앞에 멈춰 서자, 진양이 먼저 일어나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불초 양 아무개가 음귀곡주를 뵙습니다. 혹 제게 용무가 있으신지요?”
그러자 음귀곡주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양 관주님께서는 너무 예를 차리지 마세요. 소녀가 부끄럽습니다.”
그녀의 나긋나긋한 말투에 객점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머릿속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세상에 이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또 있을까?
음귀곡주의 겉모습은 저렇듯 아름답다지만 실제로는 진양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터였다. 한데 스스로를 소녀라고 지칭하니, 그 묘한 어투에 남자들은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송대율도 그 목소리를 듣자 뭐라 형용하기 힘든 질투심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치솟았다.
‘양 관주라고 했던가? 도대체 양 관주가 누구란 말인가? 태산파는 강호에서도 당당히 인정받는 명문 정파이다. 한데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관주에게 저리도 공손하게 굴면서 우리에게 이렇듯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송대율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 음귀곡주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달콤하게 들려왔다.
“양 관주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흠모해 오고 있었답니다. 이렇게 양 관주님을 뵙게 되니 저야말로 영광이에요.”
“과찬이십니다. 저는 명성을 알릴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호호호! 듣던 대로 겸손하시네요. 소녀는…….”
음귀곡주는 말을 하다 말고 주위 사람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뒤에 선 여인들을 향해 나직이 일렀다.
“주변이 신경 쓰이는구나.”
그러자 여인 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객점의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줄 것을 부탁했다.
뜻밖에도 그녀들은 어떠한 강요도 없이 매우 정중하게 부탁했다.
한데 객점의 무인들은 모두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분고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사실 여인들이 특별히 사술을 쓴 것은 아니었지만, 두 여인의 미모가 워낙 아름다운데다 이들이 음귀곡의 무인이라는 것을 안 이상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송대율은 음귀곡의 여인들이 틀림없이 사술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객점의 모든 사람들이 나가자, 여인들은 마지막으로 태산삼협에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태산삼협도 자리를 비켜주시지 않겠어요?”
여인들의 나긋나긋한 말투에 태산삼협은 몸도 마음도 노곤하게 녹아 버리는 듯했다. 사실 무너진 자존심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나가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송대율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왜 나가야 하오? 그리고 당신들이 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는 것이오? 그딴 사술이 내게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여인들이 고운 이마를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
“만약 나가지 않겠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어요.”
“흥! 감히 태산삼협을 상대로 무력을 쓰겠다고? 어림없지!”
“마지막으로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곡주님께서 양 관주님과 대화하길 원하시니 객점을 나가주세요.”
“싫소!”
송대율이 딱 잘라 거절했다.
“말로 해선 안 되겠군요.”
순간 여인들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싸늘해졌다. 사근사근해 보이던 그녀들의 눈빛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뀌어 있었다.
이쯤 되자 송대율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흥! 어디 한번 해보자는 것인가?”
송대율을 비롯한 태산삼협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으르렁거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음귀곡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태산삼협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끝까지 무례하군!”
그녀의 냉랭한 말투에 송대율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도대체 누가 무례한 것인지 모르겠군! 당신이 객점 사람들을…….”
음귀곡주를 돌아보며 화를 내던 송대율은 돌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 순간 갑자기 치솟아오르는 살심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동시에 호승심도 치솟았다.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이 여자가 무공이 나보다 앞서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습밖에 없다. 객점에 와서 횡포를 부린데다 모든 정도 문파에서 적대시하는 음귀곡주가 아닌가? 내가 기습했다 하여 누가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순식간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송대율은 갑자기 검을 돌려 쥐더니 음귀곡주를 향해 일검을 내뻗었다.
“앗!”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기에 모두 깜짝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단번에 날아간 그의 검봉은 음귀곡주의 목젖까지 순식간에 닿았다.
그런데 그 순간,
따앙!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송대율의 검이 튕겨 날아갔다.
“크웃!”
송대율이 손목을 쥐며 비틀거렸다.
다른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진양이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송대율의 검이 음귀곡주의 목을 찌르기 직전, 진양이 던진 젓가락이 검신을 쳐낸 것이다.
이처럼 민첩하고 정확한 솜씨에 음귀곡의 여인들이 감탄한 눈빛으로 진양을 보았다.
송대율은 물론 태산삼협 모두 진양이 이처럼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저마다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송대율은 뒤늦게 두려움이 몰려오는지 뒷걸음질을 치다가 자신이 놓쳤던 검을 주워 들었다.
“내 오늘은 물러가지만 다음에 태산파를 만나거든 음귀곡은 긴장해야 할 것이오!”
음귀곡주는 그저 생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송대율은 입술을 쿡 씹고는 몸을 홱 돌리며 소리쳤다.
“가자!”
마지막까지 버티던 태산삼협마저 객점을 나가고 나자, 이제 실내에는 진양 일행과 음귀곡의 무인들밖에 남지 않았다.
졸지에 손님들이 모두 나가 버리자 객점의 점소이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주방 근처에서 서성였다. 있던 손님들을 모두 내쫓고 더 이상 손님을 받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오늘 장사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음귀곡주와 진양이 무서워 함부로 말은 못하고 그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이를 눈치챈 청년 무인이 싱긋 웃더니 품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내 점소이에게 던졌다.
“받으시오. 사례요.”
점소이가 얼결에 꾸러미를 받아 보니 제법 묵직한 것이 꽤나 많은 돈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얼른 꾸러미를 풀어본 점소이는 곧 입이 귀밑까지 벌어지더니 주방으로 달려들어 갔다.
잠시 후, 객점 주인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직접 나오더니 손을 삭삭 비비며 말했다.
“무슨 음식을 대령할까요?”
하지만 음귀곡주는 귀찮은 듯 손을 한 번 휙 저을 뿐이었다.
눈치 빠른 주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예, 예, 그럼 대화 나누십시오.”
그가 돌아가고 나자 음귀곡주가 다시 진양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귀곡주 소봉옥(韶鳳玉)이라고 해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러자 진양이 전에 없이 무뚝뚝한 태도로 대꾸했다.
“어찌 그러셨소?”
“무슨 말씀인지요?”
“소 곡주께서는 방금 기묘한 방법으로 태산파의 송 일협을 홀린 것이 아니오? 그가 곡주를 공격하게 한 다음 일부러 검을 피하지도 않았지. 왜 그런 것이오?”
소봉옥의 눈빛에 감탄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곧 부드럽게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
“호호, 역시 양 관주님은 대단한 안목이시군요.”
“송 일협이 곡주를 공격하기 전, 곡주의 전신에서 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소.”
“역시 대단하세요. 사실 저는 한 가지 시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시험이라면?”
“양 관주님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답니다. 현재 강호의 무인이라면 양 관주님을 모를 수가 없을 거예요. 특히 그분이 그처럼 칭찬을 하셨다니 소녀는 몹시 궁금했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렇게 기회가 되어 만나게 된 거지요.”
여기까지 들은 진양은 이번에도 짚이는 바가 있어 물었다.
“그분이라면 풍 련주님을 말하는 것이오?”
“그건 자세히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제가 너무 나서는 것을 그분이 싫어하실지도 모르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그녀의 눈빛은 진양의 짐작이 맞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소봉옥이 말을 이었다.
“소녀는 정말 소문처럼이나 훌륭한 분인지 직접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까와 같은 방법을 썼답니다.”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소 곡주는 그 자리에서 목이 뚫려 죽었을 거요.”
“이처럼 귀한 인연을 얻고 좋은 친구를 얻는다면 목숨을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저는 제 안목을 믿었답니다.”
소봉옥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서요평과 서운지는 그저 입만 척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서요평이 이런저런 불만을 투덜거렸겠지만, 그녀가 입을 연 이후로 서요평은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미모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편 진양은 그녀의 대담한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소봉옥이 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양 관주님께서는 십지독녀를 쫓고 계시지요?”
“그렇소.”
“십지독녀는 강호에서 적수가 몇 없을 정도로 대단한 고수일 텐데…… 왜 그녀를 찾으시나요? 혹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례될 것까지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분을 반드시 만나야 되기 때문이오. 혹시 그분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시오?”
“물론이죠.”
“어디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십지독녀는 석가장(石家莊)으로 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