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8
신필천하(神筆天下) 118화
그러자 마치 다른 사람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달려오며 인사를 건넸다. 한데 백여 명의 사람이 동시에 이름을 대며 외치자, 진양은 그들의 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무인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지 살벌한 기운을 풍겨내며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모두 사파의 무인들이었는데, 각자 개성이 넘치다 보니 서로 반목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내 앞에서 비켜라! 내가 양 관주님을 도울 것이다!”
“흥! 실력없는 것들이 더 큰소리를 치는군! 모두 물러나라! 내가 양 관주님을 도울 것이다!”
“이럴 것이 아니라, 양 관주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만 남고 모두 물러가도록 합시다!”
“양 관주님께서는 우리를 처음 보시는데 어찌 가려내시겠는가? 일단 여기서 내 무공을 꺾을 자는 없을 테니 얌전히 물러가라!”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무공을 논한단 말인가? 나를 이길 자가 있다면 앞으로 나와라!”
언덕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뒤덮여 아수라장이 됐다.
이는 진양이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결국 진양이 내공을 끌어올려 말했다.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크게 소리친 것도 아닌데 그의 목소리는 웅후한 내력을 담고 있어 모든 사람들의 귓전에 또렷이 각인됐다.
모여든 무인 모두가 진양의 심후한 내공에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순간 무인들이 침묵하니 언덕은 삽시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진양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의 뜻은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우선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말씀하십시오, 양 관주님!”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진양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여러분은 십지독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모여 있던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쳐 대답했다.
“십지독녀는 지금 북평에 있습니다!”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거면 됐습니다. 여러분 모두 저를 도와주신 겁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도움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 일일이 사례를 해야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십지독녀를 만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제 무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무리 중 누군가 소리쳤다.
“무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양 관주님은 현 무림의 영웅이십니다! 저는 양 관주님을 존경해 마지않아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양 관주님을 직접 만나본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다시 무인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진양이 다시 말했다.
“알겠습니다. 모두의 뜻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도움은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그만 길을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모여든 무인들이 수군거렸다.
혹자는 서로를 탓하며 또 으르렁거렸다.
진양이 만약을 대비해 말을 덧붙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누군가 서로 싸워 상해를 입는다면 저는 여러분께 실망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무리 중 누군가 소리쳤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몸은 여럿일지라도 한마음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절대 서로 다투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겠다는 둥, 싸우게 되면 할복을 해버리겠다는 둥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그때 무리 중 제일 앞에 서 있던 조위강이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양 관주님께서는 어찌 우리를 내치시는지요? 혹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마음에 드는 자가 한 명도 없으신 건지요?”
진양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께 도움을 받은 상황이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듯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상당히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십지독녀가 우리 존재를 빨리 눈치채고 더욱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진양의 말에 사람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많은 인파가 우르르 몰려다닌다면 관원들조차 이상하게 여기리라.
그러자 가신풍이 불쑥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 중 몇 명이라도 선별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다시 사람들이 술렁였다.
“선별한다면 누굴 고르지?”
“그건 우리끼리 무공을 겨뤄봐야 알지 않겠는가?”
“흥! 그럼 분명히 내가 되겠군!”
다시 사람들이 흥분해서 떠들어대자 진양은 한숨을 내쉬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서요평이 불쑥 나서더니 하늘이 쩌렁쩌렁하도록 소리쳤다.
“옘병할 잡놈들아! 당장 안 꺼져! 니미럴, 아무도 안 데려간다고 하잖냐!”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들 모두 귀를 막고 인상을 썼다.
혹자는 거침없이 욕설을 뱉는 서요평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상이괴의 명성을 익히 아는지라 감히 덤벼들지는 못했다.
진양도 표정을 굳히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분의 호의는 불초가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진양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길을 터주었다.
진양은 양 갈래로 갈라선 사람들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 그가 지나칠 때 누군가 물었다.
“혹시 우리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 쫓아온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진양이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인파를 헤치고 걸어갔다. 하지만 무인들은 슬금슬금 진양의 뒤를 구름 떼처럼 따라갔다.
진양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고 매섭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 쫓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더 이러면 풍 련주님을 찾아가 이번 일에 대해서 따져 묻겠소! 호의가 지나쳐도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그러자 사람들이 마구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진양으로서는 그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어찌 풍천익에게 따질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협박 아닌 협박은 제법 효력이 있었다.
“양 관주님께 실례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누군가 소리치더니 길가의 숲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를 선두로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덩치가 큰 무인이 다가와서 진양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풍 련주님께만은 알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진양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디론가 훌쩍 달아났다. 잠시 후 깡마르고 키 작은 사내가 다가와서는 진양 앞에 또 절을 올렸다.
“풍 련주님께 저 같은 놈을 봤다는 말씀은 부디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경거망동했습니다! 어디서든 양 관주님이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더니 그 역시 진양의 대답도 듣기 전에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토록 많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기까지는 불과 큰 숨 한 번 쉴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든 무인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자 서요평이 킬킬거렸다.
“클클클! 꼴좋다! 옘병할 놈들!”
어쨌거나 겨우 사람들을 물리친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석가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진양은 다음 날 곧바로 북평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 나설 때 얼마나 먼 길을 얼마 동안 가야 할지 모르는지라 말을 타지 않았는데, 이제는 목적지가 분명히 정해졌으니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말을 세 필 구입했다.
밤낮 쉬지 않고 달린 진양 일행은 머지않아 북평에 도착했다.
당시 북평은 연왕 주체(朱?)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군사적 요충지로 황폐해졌던 북평을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해서 길거리마다 오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고, 저잣거리는 활기로 넘치고 있었다.
진양 일행은 변두리에 위치한 객점에 들어가서 묵기로 결정했다.
석가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진양을 쫓아오거나 만나려는 무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북평에 도착하니 다시 또 막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진양이 석반을 먹으며 말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가 보오. 도움을 받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또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이니…….”
유설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로 간사하다고 자책하면 세상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을 거예요.”
진양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진양 일행은 그날 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 날부터 십지독녀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소문해도 그녀의 종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흘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진양은 한밤에 객방에 드러누워서도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어서 돌아가서 소 낭자를 치료해 줘야 할 텐데…… 시간만 자꾸 흐르는구나.’
이리저리 뒤척이던 진양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쌀쌀한 밤공기가 방 안으로 훅 밀려들어 왔다.
그때였다.
쒜에엑! 쒜엑!
무언가 번쩍이며 날아들더니 날카로운 파공음이 이어졌다. 진양이 얼른 몸을 뒤채며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물체를 피했다.
탁! 타닥!
진양이 얼른 창가로 몸을 숨기며 벽을 바라보니, 소형 암기 세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스며든 달빛에 비친 암기는 벽에 박힌 부분이 거뭇했다. 필시 독을 발라놓은 것이리라.
‘역시 맨손으로 잡지 않길 잘했군!’
진양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보았다.
마침 건너편 건물 지붕 위에서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는 여인이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십지독녀!’
순간 진양은 창틀을 밟으며 순식간에 건너편 지붕으로 몸을 날렸다.
매지향은 진양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몸을 돌려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양도 더욱 속도를 높여 그녀를 뒤쫓았다.
이미 매지향은 내상을 완전히 치료한 뒤였기에 경신법이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앞서 달리던 매지향이 지붕을 타고 이동하며 다시 암기를 던졌다.
쒜에엑! 쒜엑!
그때마다 진양은 훌쩍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피했다.
“흥! 네놈이 여기까지 날 쫓아왔구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매 선배님과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 낭자를 구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소 낭자가 누구더냐?”
“매 선배님의 제자인 소 낭자 말입니다!”
“흥! 누가 내 제자란 말이더냐? 내 옛날 제자는 네놈이 빼앗아가지 않았느냐? 내 정인도 네놈이 빼앗아갔고, 이제는 내 제자도 네놈이 빼앗아갔다! 네놈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지! 그러고도 또 뭔가를 달라는구나! 뻔뻔한 놈!”
“선배님, 분노는 이성을 잃게 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시고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선배님을 그렇게 화나게 하는 겁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네가 돕는다고? 호호호! 그러고 보니 너는 내게서 젊음도 빼앗아갔지! 이제 내 얼굴에는 전에 없던 주름이 생겼다! 이게 전부 너 때문이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도울 방법? 간단하지! 네놈이 그냥 죽으면 돼!”
한참을 달아나던 매지향이 돌연 몸을 돌리더니 진양을 향해 부채를 곧장 찔러왔다.
진양은 달려가던 속도를 이기지 못해 얼른 옆으로 몸을 내던졌다. 다행히 부채는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진양은 지붕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당탕!
거친 소리와 함께 진양은 길바닥에 마구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