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9
신필천하(神筆天下) 119화
매지향은 그런 진양을 내려다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진양은 추락하는 순간 체내에서 호체신공이 발동해 외상을 입지는 않았다.
진양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매지향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북평 외곽으로 빠져나가더니 숲길을 따라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양은 그녀를 뒤쫓으면서 객점에 남아 있을 유설이 걱정되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사상이괴가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매지향을 쫓는 데 전력을 다했다.
매지향은 가는 곳마다 독을 뿌려두었기 때문에 진양이 그녀를 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신법을 펼쳐 뒤쫓으면서도 혹시 나무 기둥에 묻은 독은 없는지, 묻어 있다면 몸에 닿거나 숨을 들이마시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추격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매지향과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서서히 등 뒤에서 해가 떠오르고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늘어졌다.
동이 튼 것이다.
어두운 밤에 정신없이 쫓을 때는 방향을 제대로 알 수 없었는데, 해가 뜨고 보니 진양은 지금 서쪽으로 줄곧 내달렸다.
날이 완전히 새고 정오쯤이 되었을 때, 매지향은 높은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북평 서쪽에 위치한 소오태산(小五台山)이었다.
매지향은 특히 산새가 험한 곳만 찾아 달렸기에 진양은 갈수록 추격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앞서 달리던 매지향도 이제는 힘이 드는지 조금씩 그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양은 더욱 힘을 내서 뒤쫓았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달리는가 하면,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외길을 따라 달리기도 했다.
이윽고 매지향이 더 이상 달릴 곳이 없어 멈춰 선 곳은 상당히 독특한 지형이었다. 사방이 우뚝 솟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터의 한 가운데에는 화산의 분화구처럼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사람이 이곳을 찾아오기란 쉽지 않은 터라 오랜 세월 자연 속에 감춰진 곳인 듯했다.
구덩이는 꽤나 널찍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진양이 이곳에 도착했을 땐, 매지향은 구덩이 반대편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매지향은 머리가 희끗희끗 세어 있었는데, 지난번 진양과 공력으로 다투느라 나타난 현상이었다. 게다가 눈가에도 주름이 두어 가닥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 본연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그녀가 진양을 차갑게 흘겨보았다.
“흥! 끝까지 쫓아오는군!”
“선배님, 그래도 소 낭자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아이는 내 가슴에서 지웠다. 네가 빼앗아갔으니 그 뒷일은 네가 할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다!”
“어찌 그리 박하게 말씀하십니까? 그래도 한때 선배님의 제자이지 않았습니까?”
“나의 제자들은 임패각에게 죽었고, 너에게 빼앗겼다. 나는 제자가 없다. 내가 가슴에 품었던 사람들은 모두 너에게 빼앗겼다.”
진양은 한숨을 내쉬고는 수호필을 꺼내 들었다.
“우선은 해독약이 급하니 후배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네깟 녀석이 내게서 해독약을 빼앗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시도는 해야지요.”
“흥!”
진양은 구덩이를 사이에 끼고 천천히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따라 매지향도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두 사람이 구덩이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던 중,
타앗!
진양이 번쩍 몸을 날리더니 한 번의 도약으로 구덩이를 가로지르며 넘어왔다.
매지향은 그가 구덩이를 뛰어넘어 덤벼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깜짝 놀라며 옆으로 피했다.
쉬이잇!
까앙!
날카롭게 뻗어나간 수호필은 부챗살에 막혀 튕겨 나갔다. 이어 매지향이 몸을 뒤채며 재빨리 암기 두 자루를 던졌다.
쒜엑! 쒜에엑!
땅!
진양이 한 자루의 암기는 피하고 나머지 한 자루는 수호필로 쳐낸 뒤에 다시 매지향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흥! 어딜!”
매지향이 코웃음을 치며 부채를 활짝 펼쳐 수호필을 막았다.
검날처럼 빳빳하게 곤두선 은잠사의 붓털이 펼쳐진 부채에 막히며 불똥이 튀었다.
까앙!
진양은 곧바로 왼손을 내찔러 매지향의 견정혈을 노려갔다.
그때 매지향이 순간적으로 독공을 운기하자, 그녀의 몸이 삽시간에 푸르게 변했다. 이를 눈치챈 진양이 멈칫하다가 손가락을 움츠리고 훌쩍 물러났다.
만약 그대로 손가락을 내찌른다면 매지향을 마비시킬 수는 있어도 자신이 독에 당하고 말 터였다.
매지향이 눈초리를 휘며 비웃었다.
“호호호! 겁나느냐?”
“소 낭자를 살리기 위해선 조심해야지요.”
“흥! 끝까지 위선을 떠는구나!”
그때였다.
사방에서 미세한 소리와 함께 미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츠츠츠츳!
진양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매지향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고 있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진양이 눈썹을 흠칫 찡그리는데, 마침 구덩이 안에서 거뭇한 무언가가 기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제일 처음에 보인 것은 몸이 엄지처럼 가느다란 검은색 뱀이었다. 검은 뱀 수십 마리가 기어오르는가 싶더니 이제는 풍뎅이처럼 작은 곤충과 거미 따위가 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났다.
곤충의 등은 점점이 붉은 반점과 녹색 반점이 섞여 있었는데, 척 보아도 그것들이 독충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츠츠츠츠!
독충들은 순식간에 사위를 포위했다.
하지만 진양이 내뿜는 강한 호신강기 때문에 독충들이 쉽사리 범접하지는 못했다.
“독충을 불러들인 거군요.”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뭐든 불러들여야지.”
진양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시간이 길어져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가 번개처럼 날아가 수호필을 내찌르자 매지향 역시 부채를 활짝 펼치며 막아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불티가 휘날리고 요란한 쇳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진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맹 일변도로 나아갔고, 매지향은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그를 맞상대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결코 이들의 손발을 눈으로 좇지 못했을 것이다.
진양과 매지향이 격하게 서로 부딪치는 동안, 주위를 포위한 독충들은 ‘츠츠츠!’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가 모여들기를 반복했다.
기회만 포착되면 언제든 진양을 물어뜯을 속셈인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눈부신 싸움을 전개했을까?
진양의 수호필이 순간 매지향의 소매를 길게 찢어내며 지나갔다.
부우욱!
이어서 매지향의 부챗살도 진양의 복부를 내찔렀다.
이때쯤 진양은 호신강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는 터였기에 아무런 외상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반격이라 진양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외상은 피할 수 있더라도 독공에 당하면 난감한 노릇이었다.
한데 몸은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분명 매지향이 부챗살을 찌를 때 그 끝이 시퍼렇게 독기로 맺혀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매지향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어째서 독에 당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진양이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매지향이 말했다.
“네놈은 예전에 독에 당한 적이 있지. 그 뒤에 내 독으로 치유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이미 너는 독에 대한 내성을 길렀다. 하지만 지난번 대별산 정상에서 나는 너에게 전혀 다른 종류의 독을 사용했다. 물론 그것은 담화가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 역시 너는 해독약을 먹고 치유하면서 더욱 내성이 강해졌지. 그러니 내 부채를 맞고도 멀쩡한 것이야.”
진양이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은연중에 선배님의 도움을 받은 셈이군요. 감사드립니다.”
“흥! 감사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매지향이 순간 바닥을 박차며 진양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이번 일격은 몹시 위협적이었다.
자신의 몸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해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 공격이었다. 어찌 보면 동귀어진을 각오한 필살의 무공이었다.
진양이 깜짝 놀라 물러났지만, 매지향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결국 진양도 어쩔 수 없이 수호필을 내찌르며 매지향에게 반격을 가했다.
진양의 수호필이 매지향의 옆구리 깊숙이 박혀들었다.
푸욱!
동시에 매지향의 부챗살이 진양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매지향의 말대로 진양은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는지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진양이 얼른 내공을 거두며 수호필을 뽑아내자, 매지향의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매지향이 비틀 한 걸음 내딛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진양이 얼른 그녀를 부축하며 앉혔다.
“네놈이 결국 나를…….”
진양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반드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매지향은 이제 싸울 기력도 없어 보였다. 그저 굵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양은 괜히 마음이 짠해서 함부로 몸을 뒤지기가 쉽지 않았다.
진양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면 제게 약병을 건네주시지 않겠습니까?”
매지향은 한차례 진양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품에서 두 개의 약병을 꺼냈다.
그녀가 진양에게 천천히 약병을 내밀다가 돌연 구덩이 쪽으로 팔을 불쑥 내뻗었다. 만약 그녀가 손을 펼치기라도 하면 약병은 모두 까마득한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고 말 터였다.
진양이 놀라서 소리쳤다.
“선배님!”
“흥! 이 싸움에서 나는 졌다. 네가 나를 죽였어야 하건만, 내게 모욕을 주기 위해 살려놨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선배님을 모욕 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저는 단지 선배님께 해독약만 받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매지향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더니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하나만이 담화를 구할 수 있는 해독약이다. 다른 하나는 구덩이 안으로 던져 버릴 것이야.”
진양이 아연한 표정으로 약병만 바라보았다.
약병은 똑같이 생겨서 어떤 것이 해독약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마개가 붉은 천으로 감싸여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파란색 천이라는 것이다.
매지향이 독촉했다.
“어서 정해! 셋을 세는 동안 정하지 않으면 두 가지 해독약 모두 구덩이 안으로 던져 버리고 나도 뛰어내리겠다!”
진양이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말했다.
“붉은색으로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매지향이 미련없이 파란색 약병을 놓아 버렸다. 약병 하나가 까마득한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 진양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저게 진짜 해독약이면 큰일이구나.’
매지향은 약속대로 남은 약병을 진양에게 던져 주었다.
진양이 얼른 받아서 마개를 열어보았다. 만약 이 해독약이 가짜라면 어떻게든 매지향을 데리고 가서 해독약을 만들어 달라고 구슬려야만 했다.
진양은 일전에 해독약을 직접 마셔본 적이 있기 때문에 냄새를 맡는다면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진양이 향기를 맡아 보니 쓴 약향이 코끝을 찔렀다. 동시에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몸이 나른해졌다.
한데 다음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아니다!’
진양이 흠칫 놀라는 순간이었다.
매지향이 번개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부채를 집어 던졌다. 암기처럼 곧게 날아간 부채가 정확히 진양이 들고 있는 약병을 쳤고, 안에 담긴 약물은 진양의 몸을 흠뻑 적시며 흘러내렸다. 진양과 매지향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 약물은 매지향에게도 상당량 튀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