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20
신필천하(神筆天下) 120화
지금까지 진양의 호신강기에 기가 죽어 몸을 사리던 독충들이 갑자기 벌 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츠츠츠츳!
수천 마리의 독충이 어찌나 빠르게 달려드는지 진양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다.
매지향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있는 독충들이 너의 호신강기에 몸을 사렸지만, 이제 녀석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너에게 달려들어 몸을 물어뜯을 것이다! 방금 네가 뒤집어쓴 약은 바로 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이지! 비록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진 않지만, 이 녀석들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먹잇감이란다! 호호호!”
과연 그녀의 말대로 주위에 포진해 있던 독충은 진양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진양은 한껏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며 저항했지만, 온몸을 수천 마리의 독충이 기어다니며 물어뜯고 있으니 간지러운 그 느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호흡이 흐트러지고 기가 산만해졌다.
그 순간 발목이 따끔했다.
호신강기가 흔들리면서 뱀이 발목을 물어뜯은 것이다. 진양은 머릿속이 깜깜해지면서 한 걸음 주춤 내디뎠다.
그 순간 진양의 눈에 매지향이 보였다.
한데 그녀 역시 독충들에게 둘러싸여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지향은 애초에 자신도 함께 죽을 각오를 하고 그 약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곳까지 진양을 유인했던 것이다.
진양은 점점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며 독충을 떨어뜨려 내려고 했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제는 온 전신이 따갑고 가려웠다. 뱃속에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기운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아아악!”
매지향의 비명이 먼저 터졌다.
그녀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것을 토해냈다.
“호호호흐흑! 결국 이렇게 끝이구나! 한 많은 세상, 이렇게 끝이구나! 흐흑! 호호!”
비틀거리던 진양은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그리고 그가 막 한 걸음 내디딜 때, 문득 발밑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구덩이의 허공을 디딘 것이다.
그 순간 진양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끝없이 추락하며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한탄했다.
‘정말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유 낭자가 나를 북평에서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까?’
유설을 비롯해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겪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진양아, 양진양아! 이 바보천치야! 매 선배에게 그토록 당하고도 또 당하는구나! 만약 한 번만 더 살아날 수 있다면 달라지겠건만,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도 늦구나.’
다음 순간, 정신이 확 깰 만큼 차가운 물이 진양을 덮쳤다.
풍덩!
‘이 아래에 물이 있었구나.’
깊이 가라앉은 진양은 벽 틈으로 빠져나가는 수로로 빨려 들어갔다. 땅속의 물줄기를 따라 진양은 그렇게 빠르게 어디론가 흘러갔다.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진양은 자신의 몸이 물속에 가라앉아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의식을 잃어갔다.
8. 무학 대종사 장삼봉
열린 창으로 스며든 햇빛이 진양의 눈썹을 간질였다.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낡고 허름한 천장이었다. 방 안에는 약향이 가득했는데, 몹시 쓴 향기임에도 그리 싫지가 않았다. 어쩐지 냄새를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니 열린 창밖으로 맑은 하늘과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이런 비슷한 곳은 본 적도 없었다.
진양은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깨어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여긴 어딘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순간적으로 기억에 혼란이 왔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한 다음 기억을 되짚어 보니, 가장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그 순간 진양은 눈을 번쩍 떴다.
“아! 소오태산에서!”
저도 모르게 소리친 진양은 자신의 목소리에 오히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제야 진양은 자신의 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진양은 머릿속이 핑 돌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고개만 살짝 들었을 뿐인데, 전신의 근육을 모조리 움직인 기분이었다.
“큭!”
결국 진양은 일어나길 포기하고 다시 드러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낡은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마치 지칠 때까지 전력질주를 하고 난 느낌이었다. 하나 뱃속에 든 것이 없는 탓인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 동안 심호흡을 한 진양은 고개만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풍경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지상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먼발치에는 냇물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산들바람에 따라 풀잎이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극락세계가 따로 없구나.’
진양이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마침 냇가가 있는 먼발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걸이로 보아 분명 진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분이 나를 구해준 것일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니 도골선풍의 풍채를 지닌 노인이었다. 그는 백염이 성성하고 얼굴 가득 잡힌 주름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눈빛이 맑고 푸르며 걸음걸이가 한결같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양을 쌓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창밖에서 진양을 보더니 껄껄 웃었다.
“허허허, 오늘쯤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몸은 괜찮은가?”
노인은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을 대하듯 진양에게 말을 걸었다.
진양이 뭐라고 대답하려고 하자 노인이 손을 휘저었다.
“조금 있다 말하세. 자네 몸으로 크게 말하려면 힘들 테니 내가 그쪽으로 감세.”
그런 뒤 노인은 곧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릇과 수저를 하나씩 들고 왔다. 그가 진양 옆에 앉더니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좋군, 좋아. 자네의 내공이 워낙 심후해서 호전이 빠르군.”
진양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기에 누워 있는 상태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제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예를 차리기가 힘들군요.”
“허허, 예라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에 진실함이 있다면 그것이 곧 예가 아니겠는가? 겉치레는 겉치레일 뿐, 신경 쓰지 말게나.”
그러더니 노인은 그릇의 약물을 한 수저 뜨더니 진양의 입에 댔다.
“자, 마시게나.”
진양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이 약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든 것일세. 이름 따위는 없네.”
“어르신께서는 의원이십니까?”
“의원이라면 의원이지. 지금은 자네를 치료하는 중이니까. 허허허.”
노인은 푸근한 미소를 그리며 껄껄 웃었다.
진양은 애매모호한 대답에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따져 묻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인의 이런 자유분방한 태도가 진양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다친 사람을 보면 연민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나는 좋은 일을 해서 기쁘고 자네는 내 도움을 받아서 기쁘니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해야 할 테지.”
진양은 내심 감동하면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시원시원하게 말을 하면서도 꾸준히 진양에게 약을 수저로 떠먹여 주었다.
‘정말로 호쾌한 어르신이구나. 내 수양이 이분에 비한다면 아직도 멀었다.’
진양이 착잡한 심정으로 생각하는데, 노인은 그런 진양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네. 세상만사가 세월에 따라 변하는 법이거늘. 나뭇잎이 물들고 싶다고 해서 이른 봄철부터 단풍이 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허허.”
진양이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과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어떻게 제가 조급해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혹시 어르신께서는 독심술도 익히셨습니까?”
물론 마지막 말은 빙그레 웃으며 던진 농담이었다.
노인이 다시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이 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노인의 대답에 진양은 알 듯 말 듯하여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노인은 그렇게 한 식경 가까이 달여온 약을 떠먹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는 천천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네. 섣불리 운기를 시도해서는 안 되고 무리하게 움직이려고 해서도 안 되네. 내일은 일어설 정도만 움직일 수 있을 것이야.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면 절로 좋아질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밖으로 나가서 요기 좀 하고 오겠네. 요즘 자네 먹일 약을 만드느라 도통 뭘 먹질 못했더니 허기가 지는군.”
진양은 노인의 말에 흠칫했다.
‘요즘’이라는 말은 자신이 꽤나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진양이 얼른 노인을 불러 물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제가 얼마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는지요?”
노인이 이맛살을 슬쩍 찌푸리며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보자…….”
그가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이내 말했다.
“대충 석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군.”
“그런……!”
진양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전신이 나른해지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드러눕고 말았다.
노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갑자기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적응하기 힘들 걸세.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은가?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게나. 살다 보면 살아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도 많은 법이네. 이것이 모두 순리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일세.”
하지만 진양의 귀에는 노인의 목소리가 절반도 들려오지 않았다.
노인도 그 사실을 아는지 그저 담담하게 미소만 짓고는 문을 나섰다.
진양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느새 석 달 보름이 흘렀단 말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구나. 유 낭자는 어찌 됐을까? 매 선배님은 그곳에서 그렇게 돌아가셨을까? 학립관에서는 내 소식을 알지 못해 답답하겠구나. 모두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는데…….’
진양은 무엇보다 북평 객점에 남겨두고 온 유설이 가장 걱정됐다. 갑자기 자신이 사라졌으니 그녀가 얼마나 걱정을 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상이괴가 함께 있으니 큰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유설은 파자공을 익힌 후에 무공이 급진했기에 이제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그녀를 위협할 수 없는 경지였다.
하나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풍경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장 움직일 수가 없으니 이 좋은 곳도 감옥처럼 갑갑하기만 했다.
그때 문득 노인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게나. 살다 보면 살아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도 많은 법이네. 이것이 모두 순리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일세.”
진양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 조급해 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지금의 고민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세상만사의 모든 문제를 나 혼자 어찌 해결하겠나?’
진양은 문득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자 마음이 다시 느긋해지고, 조금 전까지 자신을 초조하게 만들었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나자 다시 그 노인이 보고 싶어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양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돌아올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내일이면 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