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24
신필천하(神筆天下) 124화
그때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가는 것이 어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은 없어.”
여인이 곽연에게 다가가자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쳤다.
유설은 이제 그녀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곽연 당신, 천의교에 투신했군요.”
여인은 천상련에서 보았던 그 중년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투신? 말은 제대로 하는 것이 좋겠소. 투신이 아니라 내 힘을 천의교에 빌려주기로 했소.”
유설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상대가 천의교의 위교사왕이라면 자신이 상대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기습을 가한 뒤에 여길 빠져나가야 할 것이다.
유설이 곽연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절 찾아온 이유는?”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그대를 데리러 왔소.”
“저는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답니다.”
유설의 말에 곽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비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 애송이를 사랑하오?”
“누굴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제가 흠모하는 사람은 당신보다 훨씬 훌륭하죠.”
곽연이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자리에서 불쑥 일어났다.
그 순간 유설이 재빨리 베개를 집어 던졌다.
찰나 땅딸막한 그림자 하나가 툭 튀어나오면서 날아드는 베개를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순간 ‘펑!’ 소리가 나면서 베개가 산산조각났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 역시 천상련에서 본 적이 있는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유설이 잽싸게 방문을 향해 달려가는데, 등 뒤에서 날카롭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쒜엑! 쒜에엑!
유설이 얼른 허리를 숙이자 비도 두 자루가 그녀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아가 방문 깊이 박혔다.
탁탁!
곽연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하마터면 그녀를 죽일 뻔했잖소!”
하지만 중년 여인은 곽연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 순간 유설이 비도 두 자루를 뽑아낸 다음 곧바로 곽연을 향해 던졌다.
“흥! 이딴 것!”
곽연이 순간 검을 휘두르더니 비도 두 자루를 모두 튕겨냈다.
튕겨 날아간 한 자루는 창문을 깨부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나머지 한 자루는 탁자를 뚫으며 바닥에 박혔다.
유설이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데, 곽연이 날듯이 다가와 검으로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소용없소! 나랑 갑시다!”
“싫어요!”
“왜 이리 말을 듣지 않는 것이오?”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밤중에 왜 이리 시끄러운 게야?”
신경질을 부리며 들어선 자는 바로 사상이괴 중 서요평이었다.
유설이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다시 비도 세 자루가 번개처럼 날아갔다.
쒜엑! 쒜엑! 쒜에엑!
“어이쿠!”
서요평이 비명을 지르며 얼른 바닥을 굴렀다. 서요평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날아간 비도는 그 뒤를 따라 들어오던 서운지에게 향했다.
그 순간 서운지의 몸이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더니 날아드는 비도 두 자루를 쳐내고 마지막 한 자루는 손으로 낚아챘다.
“흘흘! 비도옥왕(飛刀玉王)의 비도를 낚아채다니 제법이군!”
하얀 머리의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구름을 밟듯이 날아갔다.
서요평이 이를 보고 번쩍 솟구쳐 그를 막았다.
“어딜!”
서요평이 얼른 검을 내리긋자, 노인이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피해냈다.
서운지가 얼른 서요평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는데, 다시 비도 두 자루가 날아들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비도를 피하며 여인을 향해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상이괴가 실력이 늘었다곤 하지만, 이들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노인과 여인이 각자 합공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던 노인이 어느 순간 서운지의 복부를 노리고 용수철처럼 튕기며 일장을 내질렀다.
순간 서운지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한데 그때 마침 점소이 한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 죄송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손님들이…….”
퍼억!
원래 서운지의 복부에 꽂혀야 할 일장이 애꿎은 점소이의 복부에 내다 꽂혔다.
점소이는 그대로 배시시 웃음을 머금은 채 뒤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배가 깊숙하게 함몰되었는데 죽은 자는 바보처럼 미소를 짓고 있으니, 어쩐지 섬뜩하게 보였다.
“잔인하군!”
서운지가 얼른 검을 찔러오며 말했다.
노인이 껄껄 웃었다.
“자네가 대신 맞았으면 좋았을 것 아닌가?”
“그보다 당신이 내 검에 죽게 된다면 더 좋지 않겠소?”
“허허허, 재미있는 친구구먼.”
“고맙소.”
노인과 서운지는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서요평이 함께하지 않는 이상 무공은 서운지가 훨씬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서요평 역시 마찬가지였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비도를 피하느라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창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보니 곽연이 유설의 혈도를 짚고 창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곧 그녀의 아혈까지 점했는지 더 이상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노인과 여인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여인이 품에서 다시 비도 두 자루를 꺼내 날렸다. 서운지는 얼른 몸을 굴려 피했고, 서요평은 쓰러진 점소이의 시체를 방패로 삼아 막아냈다.
그러는 사이 노인과 여인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이 옘병할 놈들아!”
서요평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뒤를 따랐다.
“니미럴! 도대체 양가 녀석은 뭘 하고 있는 게야?”
그의 투정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왔소?”
이야기를 듣던 진양이 얼른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유설이 마침 앞에 있던 두 사람을 가리켰다. 가신풍과 조위강이었다.
“이 두 분이 구해주셨어요.”
“아니, 어떻게 두 분을 운 좋게 만났단 말이오?”
“알고 보니 이 두 분은 석가장에서 돌아가지 않고 줄곧 우리를 따라왔다고 하더군요.”
진양이 깜짝 놀라서 가신풍과 조위강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가신풍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예, 관주님. 저희는 관주님을 뵙고 나서 더욱 관주님을 흠모하게 됐습니다. 몇 마디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저는 사람의 눈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지요. 하하하! 그래서 관주님께서 모두 돌아가라고 하셨을 때 저는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남몰래 관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거지요.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요. 제가 그처럼 모질게 대했는데도…….”
진양은 유설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런데 낭자께서는 곽연에게 어찌 잡혔던 것이오?”
“곽연은 천상무운신공을 익힌 게 확실해요. 그가 갑자기 그처럼 강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제가 상대하기가 힘들 정도로 강했어요. 물론 제게는 무기가 아무것도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죠.”
“하긴…… 사상이협 선배님들도 무공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위교사왕에 비하면 역시 조금은 모자랄 것이오.”
그러자 서요평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무슨 개가 잠자다가 콧구멍 파는 소리냐? 우리가 모자라다니? 우리는 그놈들을 모두 잡아 죽일 수 있었다! 단지 네놈이 안 보여서 신경이 쓰여서 그랬던 것이야!”
“하하,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흥! 알긴 뭘 아느냐? 분명히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겠지!”
진양은 서요평을 더 상대하지 않고 유설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뒤로 어찌 됐소?”
“저는 곽연에게 마혈과 아혈을 짚여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어요. 곽연은 곧장 저를 안아 든 채로 어디론가 빠르게 달렸죠.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 한 대가 빠르게 날아오지 않겠어요? 화살이 지붕을 타고 달리던 곽연의 발치에 날아와 박히면서 기왓장이 사방으로 튀었죠.”
곽연은 느닷없는 공격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누구냐?”
그가 사방을 둘러보며 매섭게 소리쳤다.
그때 건물 아래에서 백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명이 선장을 들고 훌쩍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화살은 지붕 위에 박혔는데, 사람이 지붕 아래에서 올라오니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가 선장을 ‘붕붕!’ 소리 나게 휘두르며 말했다.
“그분을 내려놓으시게.”
“누구요?”
“악선일세.”
곽연은 잠시 상대가 누군지 생각하는 듯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혹시 백염악선 선배입니까?”
“그렇다네.”
“한데 어째서 저 같은 놈을 찾아오셨는지?”
“천상련이 자네를 찾는다는 것은 강호의 사파인이 모두 자네를 찾는다는 말과 동일하지.”
“후후! 선배께서도 풍 련주의 졸개 노릇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흥! 닥쳐라! 풍 련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때문이 아닐세. 자네는 우연히 걸려든 것이지.”
“그럼 이 여자 때문이오?”
“길게 말할 것 없네. 그분을 내려놓겠나, 말겠나?”
“고분고분 들을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러지도 않았겠지!”
곽연이 말을 끝내자마자 돌연 유설을 조위강에게 집어 던졌다.
깜짝 놀란 조위강이 얼른 몸을 날려 유설을 받아냈다. 그 찰나, 곽연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일검을 내질렀다.
조위강이 유설을 보호하기 위해 얼른 몸을 뒤채자, 곽연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피츗!
피가 튀어 오르고, 조위강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품에 안겨 있던 유설이 깜짝 놀란 눈동자로 조위강을 바라보았다.
“쳇!”
곽연은 회심의 일격이 가벼운 부상만 입히자, 혀를 차며 재차 공격에 들어갔다. 그가 재빨리 삼검을 내찌르자 조위강이 얼른 물러나며 선장을 휘둘렀다.
땅! 따당!
마찰음이 연이어 터지면서 조위강이 뒤로 주룩 물러났다. 그는 곽연의 무공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
곽연은 이미 승세가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조소를 지었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물러난다면 선배를 대하는 예우로 더 곤란하게 하지 않겠소.”
“흥!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없지!”
곽연이 다시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쒜에엑!
어둠을 가르며 화살 한 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콰창!
화살은 기왓장을 박살 내며 지붕에 박혔다.
이번에도 곽연의 발치였다.
곽연이 깜짝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그러자 조위강이 껄껄 웃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천상련이 너를 쫓는다는 것은 중원의 모든 사파인이 너를 쫓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그 말에 곽연이 흠칫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천상련이 온 것인가?’
그때 다시 북동쪽에서 화살 한 대가 날아들었다.
쒜에엑!
콰창!
곽연이 깜짝 놀라서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그가 얼른 고개를 돌리고 북동쪽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
쒜에엑!
이번에는 곽연의 심장을 노리고 화살이 날아들었다.
곽연이 얼른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따앙!
화살은 북서쪽에서 날아들었다.
이처럼 연이어 화살이 날아드는 것을 보면 분명 한 사람이 아니리라.
곽연은 자신이 포위됐을 것이라 짐작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겠어!’
속셈을 끝낸 곽연이 얼른 몸을 날려 조위강에게 쇄도했다. 조위강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유설을 다시 데려와 달아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설이 조위강의 선장을 가로채더니 곽연을 향해 마주 쳐오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