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29
신필천하(神筆天下) 129화
“흥! 어디 먹을 수 있으면 먹어보시지!”
말을 마친 서요평은 벌떡 일어나더니 재빨리 젓가락을 뻗어 고기를 다시 낚아챘다. 그 일련의 행동 과정이 매우 신속하고 정확했기에 여만옥은 어떠한 방어도 취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여만옥이 젓가락을 뻗어냈지만 그때마다 서요평이 교묘하게 젓가락을 놀려 그녀의 기습을 막아냈다.
결국 고기는 서요평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서요평이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으음! 맛있군! 맛있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군! 하하하!”
여만옥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 자리에 앉아 버렸다.
사실 그깟 고기야 다른 걸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서운지가 접시의 다른 고기를 집으며 말했다.
“거참, 형님도. 다른 고기도 똑같은 맛인데 뭘 굳이 그걸 먹으려고 하십니까? 허허.”
그러면서 그가 고기 한 점을 집어 가져가려는데, 이번에는 갈지첨이 그가 집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이 놀이가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나랑 한 번 즐기지 않겠소?”
갈지첨의 도발에 서운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좋소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운지의 손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갈지첨이 가져간 고기를 다시 가져온 것이 아닌가? 그의 신속한 손놀림에 갈지첨이 내심 놀랐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가 히죽 웃더니 다시 젓가락을 뻗어 서운지가 가져간 고기를 집었다.
두 사람의 젓가락이 고기 하나를 두고 양쪽에서 집어 당기니 자칫 고기가 찢어지게 생겼다. 만약 고기가 찢어지면 이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이에 갈지첨이 젓가락을 벌려 고기를 놓더니, 이내 서운지의 손목 혈도를 노리고 내찔렀다.
서운지는 고기를 계속 들고 있다가는 손목 혈도가 찔리게 생겼기에 얼른 고기를 허공으로 휙 집어 던졌다. 그리고 냉큼 젓가락을 돌려세워 갈지첨의 젓가락을 막아냈다.
두 사람의 젓가락이 매우 빠르게 서로 찌르고 막아가며 공방전을 펼쳤다.
탁! 타탁! 탁!
그 움직임이 몹시 빠르고 현란해서 지켜보는 사람들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다가 고기가 다시 탁자 위로 떨어질 때쯤 정확히 두 사람이 동시에 젓가락을 뻗어 고기를 집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씨익 웃었다.
다음 순간 서운지가 먼저 젓가락을 놓고 상대의 손목 혈을 찌르며 들어갔다. 조금 전 갈지첨이 써먹은 방법과 똑같은 것이었다.
하나 갈지첨은 이미 이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얼른 고기를 높이 집어 던진 다음 젓가락을 휘돌려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다시 서로의 젓가락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한데 이때쯤 떨어질 때다 싶어 고개를 든 서운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기가 탁자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지첨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갈지첨이 일부러 자신 쪽으로 고기를 던져놓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갈지첨은 여유있게 서운지의 공격을 막아내며 떨어지는 고기를 입으로 덥석 받아먹었다. 결국 이번에는 갈지첨이 고기를 가져간 승자가 된 것이다.
그가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 생각에 방금 먹은 고기가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소이다!”
서운지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갈 형의 재주에 실로 감탄했소이다. 맛있는 고기를 드셨다니 감축드리오.”
그러자 서요평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단 말이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내가 이미 먹었다! 그러니 방금 그대가 먹은 것은 세상에서 두 번째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고기를 먹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 아니오? 또한 당신도 내 고기를 먹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 아니겠소?”
“닥쳐라!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냐?”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지. 난 그저 내가 먹은 고기가 제일 맛있었다고 생각할 뿐이외다.”
“흥! 그렇다면 누구 고기가 더 맛있는지 확인해보자!”
“어찌 확인한단 말이오?”
“먹었던 것을 게워내서 보자! 나부터 꺼내 보이지!”
그러더니 서요평은 정말로 손가락을 입에 넣고 먹은 것을 토해내려고 했다.
마침 그 옆에 앉아 있던 가신풍이 화들짝 놀라 그를 제지했다.
“에헤이! 지금 그걸 꺼내서 뭘 어찌 확인한단 말입니까? 제가 인정할 테니 그건 그만둡시다!”
그래도 서요평은 끝까지 뱃속에 든 걸 끄집어내겠다며 떼를 썼지만, 결국 진양이 나서서 말리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이를 본 연왕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여러분의 신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실히 알았소. 그야말로 대단한 실력들이오!”
그가 박수를 치자 천의교 무인들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진양 역시 감사의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술을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 안주로 고기를 집는데, 이번에는 파천일왕 마천강이 그 고기를 또 집었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연왕 역시 흥미로운 눈길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한데 진양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기를 놓는 것이 아닌가.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처럼 고기가 드시고 싶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다른 걸 먹지요.”
그러더니 다른 접시에서 콩을 집어 먹었다.
이렇게 되자 마천강은 마치 고기를 먹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비쳐져 괜히 무안해지고 말았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먹는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주체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 장문께서는 내 술잔을 받으시오.”
“황공하옵니다, 전하.”
진양이 공손한 태도로 술잔을 받자, 연왕은 술병을 내려두며 말했다.
“내 양 장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특히 도연 군사는 내게 늘 말해왔소. 남경의 학자 방효유(方孝孺)와 대별산의 양 장문만큼은 적으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오. 오늘 이렇게 그대들을 만나 보니 과연 군사의 말이 한 치도 틀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소이다.”
“보잘것없는 재주를 높이 평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대는 겸손이 지나치구려!”
주체는 기분 좋게 술잔을 들이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나라는 지금 몹시 어지럽소. 간신들이 황제 곁에서 아첨을 일삼고 시시 때때로 간언을 퍼붓고 있으니, 어찌 나라와 백성이 안녕할 수 있겠소? 이에 나는 정난의 뜻을 품고 병사들을 일으켰소. 그게 벌써 사 년째요. 그런데 나는…….”
그때였다.
시종 하나가 술병을 들고 왔는데, 마침 그 술병을 쓰러뜨리면서 술이 서요평의 옷을 적시고 말았다.
“어이쿠!”
서요평이 얼른 일어나며 물러나자, 시종이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를 본 주체는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여봐라!”
“옛!”
“귀한 손님들께 실례를 저지른 저놈의 목을 당장 쳐라!”
“옛!”
병사들이 곧 시종을 좌우에서 잡더니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시종은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주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진양이 얼른 나서서 말렸다.
“사사로운 실수일 뿐입니다.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이곳은 전장이오. 전장에서 사사로운 실수는 때로 아군의 떼죽음이 될 수도 있는 법이오.”
“하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양 장문께서는 신경 쓰지 마시오. 군율이 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본보기가 필요한 법이지.”
진양은 더 이상 말해봐야 통할 것 같지가 않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잔인하기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나. 전대의 황제 못지않게 냉혹하다. 이자가 황권을 쥐게 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인가? 참담하도다.’
주체는 진양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하하하! 내 듣기로 양 장문께서는 필력이 좋고 필체가 뛰어나다고 들었소이다.”
그러자 도연이 나서서 거들었다.
“왕야, 양 장문의 필력은 천하의 학자라 불리는 방효유와 필적할 만큼 대단합니다.”
진양이 손사래 치며 답했다.
“말도 안 됩니다. 불초한 제가 어찌 그분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방효유는 명나라 초기의 학자로 굉장히 학식이 뛰어나고 글재주가 남다른 위인이었다. 당시 명나라의 선비들은 그의 글을 필사하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다.
특히 조정의 모든 조서나 격문 등은 그의 붓으로 작성되었다.
진양은 평소 그의 명성을 듣고 흠모해 왔던지라 감히 그와 비교되길 거부했다.
하지만 무인들과 몇 학자들 사이에서는 신필문의 양진양이 이미 방효유의 재능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주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양 장문은 너무 겸손하면 그것도 실례인 것을 모르시오? 그러지 말고 그 뛰어난 재주를 내게 좀 보여주심이 어떻겠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내게 글을 적어주시는 것은 어떻소. 아주 크게 글을 적어준다면 내 그 글을 항상 막사에 붙여두고 지내겠소.”
“미천한 재주이지만 왕야께서 원하신다면 써드리겠습니다. 어떤 글을 원하십니까?”
그러자 주체는 크게 기뻐하며 사람들을 시켜 커다란 천과 묵을 가져오게 했다.
병사들은 곧 평평한 대리석을 나르더니 바닥에 이어 붙여 넓게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깃발을 만들 때 쓰는 것과 같은 크고 하얀 천을 펼쳐놓았다.
주체가 진양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적어주시면 어떻겠소? 양 장문께서는 생각이 깊으니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을 적어줄 수 있을 것 같소.”
진양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적어드리지요.”
“하하하! 고맙소!”
진양은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대충 눈대중으로 천의 크기와 글자의 크기를 가늠한 다음 수호필을 먹에 담갔다.
이윽고 그가 수호필을 휘두르며 글자를 큼직하게 새겨 나갔다.
굵고 힘찬 획이 그어지다가도 부드러운 곡선이 이어지며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붓으로 점을 찍어나갈 때는 마치 마음 한편에 있던 무언가를 뚝 떼어다가 내려놓은 듯했다.
첫 글자가 끝나고 두 번째 글자가 이어졌다.
두 번째 글자는 시종 강하고 굳건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획이었다. 마치 묵직한 바위처럼 그 자리에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을 듯한 글자였다.
그렇게 두 번째 글자를 쓰고 난 진양은 수호필을 거두었다.
그가 적은 글자는 단 두 글자였다.
忠臣
모두가 그 글자를 보고 감회에 젖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글을 본 주체 역시 묘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휘감았다.
한참 만에야 주체가 안면 가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충신이라……! 충신…… 과연 좋은 말이오.”
주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군사도 내게 늘 말했소이다. 지금은 내게 충성할 믿음직한 신하들이 필요하다고 말이오. 역시 양 장문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려. 하하하.”
그러나 진양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글은 바로 읽으셨으나, 뜻은 바로 읽지 못하셨습니다.”
“음? 그건 무슨 말이오?”
주체가 이맛살을 슬쩍 구기며 되물었다.
진양이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야를 위해 충성할 신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왕야 스스로가 충신이 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끄음…….”
주체가 침음을 흘리며 진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