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32
신필천하(神筆天下) 132화
그날 밤 진양은 남경의 남서쪽 사당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자정을 약간 넘긴 시각.
하지만 사당에는 아직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사당 안으로 들어가 정좌를 한 채 운기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기척을 느낀 진양은 얼른 사당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사당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먼저 들어선 사내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것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지?”
“허허, 형님도. 그럼 기다리면 될 일이 아니겠소?”
“난 기다리는 게 제일 싫단 말이야!”
진양은 그들이 바로 사상이괴라는 것을 알고는 안심하며 어둠 속에서 나왔다.
“두 선배님 무사하셨군요.”
서요평은 갑자기 어둠 속에서 진양이 불쑥 나타나자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 들고 공격했다.
“웬 놈이냐?”
순간 진양이 수호필을 휘저어 그의 공격을 부드럽게 되돌리면서 얼른 달빛이 스며드는 문틈으로 다가섰다.
“접니다. 진양입니다.”
그제야 서요평은 검을 거두며 투덜거렸다.
“뭐야? 그럼 우리가 제일 처음이 아니었구먼! 쳇!”
“허허, 형님은 아까 제일 처음이라서 싫다고 하지 않으셨소?”
서운지가 웃으며 말하자, 서요평이 발끈하며 대답했다.
“내가 언제 처음이라서 싫다고 했느냐? 기다리는 것이 싫다고 했지!”
“그게 그 말 아니우?”
“절대로 다른 말이다! 처음과 기다림이 어찌 같은 말이라는 거냐?”
“알겠소, 알겠수다.”
서운지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충 대답했다.
진양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됐는지 아십니까?”
“그걸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우리도 지금 막 놈들을 따돌리고 여기로 온 것인데.”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군요.”
서운지가 나서서 부드럽게 말했다.
“양 장문, 걱정 마시오. 양 부인과 두 당주의 무공이 상당한 수준이니 무사할 것이외다.”
“흥! 말이야 바른 말로 그들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은 아니지. 상대는 수천 명의 군사다. 무사히 빠져나오기가 그리 쉽겠느냐?”
서요평이 냉랭하게 말하자, 서운지가 대꾸했다.
“우리는 빠져나오지 않았수?”
“내가 없었다면 우리도 힘들었다!”
“그럴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형님이 없어도 빠져나올 수 있을 거외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야.”
“알았소, 알았소. 양 장문, 형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분명히 무사히 올 거외다.”
“예, 저도 그리 믿고 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좀 더 기다려 보지요. 두 분 그럼 좀 쉬십시오. 제가 지붕에 올라가 번을 서겠습니다.”
서운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내일 정오까지 한 시진 간격으로 돌아가며 번을 서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서 진양은 먼저 한 시진 동안 사당 지붕에 올라가서 번을 섰다. 그는 내내 유설 일행을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번을 서는 동안에도 진양은 유설이 걱정돼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도 유설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세 사람은 다시 그날 자정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유설 일행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틈틈이 운기행공을 하며 마음을 차분히 하던 진양도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요평은 아예 유설이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반 시진이 더 지났을 때, 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제가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어딘 줄 알고 간단 말인가?”
“병사들 수천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금방 소식을 알아낼 수 있겠지요.”
“이미 죽었으면 병사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일세.”
진양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소리를 서요평은 태연하게 해댔다.
서운지가 나서서 서요평을 나무랐다.
“허참, 형님도. 어찌 그리 부정적인 생각만 하시오?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크오.”
“너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게냐?”
“그들의 무공이 높지 않수?”
“무공이 높다고 병사 수천을 이길 수 있단 말이냐?”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면야 힘들겠지만,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 않소?”
“그게 그거다!”
진양은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더 지켜보지 않고 사당을 나섰다.
“어찌 됐든 지금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한 분은 저와 함께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진양은 질문을 하면서도 서운지가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뜻밖에도 따라나서겠다고 한 사람은 서요평이었다. 서운지는 분명 유설이 무사히 돌아올 테니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결국 서운지는 혹시 길이 엇갈릴 것을 대비해서 사당에 남기로 하고, 진양과 서요평은 유설 일행을 찾아 길을 나섰다.
한데 두 사람이 사당을 나서서 일 리도 채 걷지 않았을 때였다.
진양은 남쪽 언덕 아래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한데 그 속도가 애매해서 무인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확인한 진양은 순간 얼굴이 밝아졌다.
“누이!”
달빛에 비친 얼굴은 바로 유설이었던 것이다.
한데 어째서 세 사람이 아니라 유설 혼자만 온단 말인가?
진양이 다시 자세히 보니 유설은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었는데,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저런!”
진양과 서요평이 얼른 달려갔다.
이때쯤 서운지도 바깥 사정을 눈치채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진양이 다가가 보니 흑표가 만신창이가 된 채 유설의 등에 업혀 있었다.
유설은 진양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그 자리에 풀썩 고꾸라졌다. 진양이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고, 서요평이 흑표를 안아 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가 당주는 어찌 됐소?”
유설이 어깨를 가늘게 떨며 말했다.
“모두 절 보호하려다가 이렇게 됐어요. 우리는 도망가던 중 적의 매복에 당했어요. 그때 묵향당주께서 저를 구하려고 무리를 하셔서…….”
“그럼 가 당주는……?”
“그분은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고…… 가 당주께서 병사들의 이목을 이끄는 동안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상처가 깊어서 어떨지…….”
유설이 안타까운 눈길로 흑표를 바라보았다.
흑표는 온몸이 칼에 난자당해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에 화살 두 대가 팔과 다리를 각각 관통한 채로 꽂혀 있었다.
유설은 그를 업고 급히 빠져나오느라 화살을 뽑아낼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서요평과 서운지가 얼른 혈을 짚어 지혈을 하고 몸에 박힌 화살을 모두 뽑아냈다.
유설이 진양을 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죠? 가 당주께서 위험에 처하면…….”
“너무 염려 마시오. 가 당주라면 다른 건 몰라도 경신법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따를 자가 없으니. 아마 무사히 달아났을 것이오.”
진양은 유설을 안아주며 다독였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걱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서요평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그놈도 시간이 지나 버린 만큼 더 이상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걸세. 게다가 흑표가 이 모양이 됐으니 얼른 대별산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해.”
진양은 잠시 이마를 짚고 고민에 잠겼다.
흑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별산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나 대별산에 다녀오는 사이 황궁에 큰일이 생기게 되면 황제를 다시는 구할 수가 없다.
연왕은 언제라도 황궁을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흑표와 함께 보내고 자신만 남아 있기도 난감하다.
혼자의 힘으로는 복잡한 전쟁 통에 황제를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까딱 잘못하다간 자신도 그 전란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서운지가 말했다.
“굳이 대별산까지 갈 필요가 있겠소?”
진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천하 어디에도 존재하는 방파가 있지 않소?”
“개방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렇소. 그들에게 부탁한다면 도와주지 않겠소?”
진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은 지난번 회의 때도 신필문에 호의적인 방파였다. 물론 아직 무림맹이 발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주와 방주의 입장에서 정중히 부탁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개방으로 가지요.”
말을 마친 진양은 흑표를 받아 안아 들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3. 추방산
진양 일행은 남경 외각의 허름한 객점에 방을 잡았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남경 내의 개방 분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시기가 민감한 만큼 개방은 현재 분타의 위치를 전혀 노출시키지 않은 채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나가서 개방의 분타를 방문하겠소.”
“찾으실 수 있겠어요?”
유설이 근심 서린 얼굴로 물었다.
진양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시오, 누이. 최대한 서둘러 찾아서 돌아오겠소.”
“현재 개방은 전임 방주가 죽고 나서 현임 방주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어요. 만약 그들과 만나게 되면 위험할지도 모르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해요.”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현재 개방의 방주는 취룡개 추방산이었는데, 사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지들 사이에서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노인이었다.
그러다가 수년 전 남옥의 역당 사건으로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그는 동분서주하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가장 많은 정보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무공 실력이 매우 심후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거지들 사이에서는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바람에 추방산은 차기 방주로서의 지지도까지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년여 전, 전임 방주가 사고를 당해 죽은 후 추방산은 신임 방주로 추대됐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곁에 두고 중용했다.
하나 개방 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철탁개(鐵鐸?)라는 별호로 불리는 맹지덕(孟池德)이라는 자가 차기 방주감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개방은 신임 방주를 지지하는 세력과 맹지덕 장로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시종 대립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얼마 전 회의에서 추방산은 아무렇지도 않게 진양을 무림맹주로 추대했으니, 맹지덕을 따르는 거지들은 저마다 추방산을 욕하고 따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지금 진양이 길거리에 나가서 자칫 맹지덕을 따르는 거지들을 만났다가는 오히려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진양이 다시 한번 유설을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 마시오. 개방의 제자들이 보이거든 그들이 어느 쪽에 속한 자들인지 확실히 알아본 후 접근하겠소.”
“꼭 조심하세요.”
진양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객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