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33
신필천하(神筆天下) 133화
내전 중이라서 그런지 남경 시내에 거지들은 넘쳐 났다. 진양은 그들 중 개방의 제자들을 알아내기 위해 옷에 매듭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다가 저잣거리 한쪽 귀퉁이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를 발견하고는 몸을 숨겨 그를 주시했다. 매듭이 네 번 묶인 것을 보아서는 개방의 사결제자임이 분명했다.
길가에서 반 시진 정도 구걸하던 거지는 별 소득이 없자 자리를 옮기려는 것인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위를 한 번 휘 둘러보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양은 삿갓을 푹 눌러쓰고 그 뒤를 밟았다.
그가 비교적 한적한 거리를 지날 즈음에 돌연 돌담으로 다가가더니 벽에다가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 살배기 아기가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듯한 그림이었다.
진양은 이것이 개방의 제자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암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거지가 다시 걸음을 옮기고 나서 그곳에 다가가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거지는 다시 사람들이 많은 저잣거리로 나갔다가 다시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런 뒤 그는 다시 벽에 낙서를 남겼다.
‘도대체 무슨 낙서지?’
온갖 한자를 다 읽어내는 진양이었지만, 개방의 제자들이 남기는 그림만큼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림을 남긴 거지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진양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아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한데 거지의 모습이 골목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진양이 얼른 골목 끝까지 달려가 보니, 길 끝자락에서 빠르게 모퉁이를 돌아 달려가는 거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들킨 건가?’
진양이 얼른 그를 쫓아 달렸다. 그리고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 찰나,
쉬잇! 쉬이잇!
어느새 나타난 두 그림자가 진양의 등 뒤를 노리고 쇄도해 들어왔다.
진양이 인기척을 느끼고 얼른 몸을 뒤틀며 수호필을 휘둘렀다.
까라랑! 깡!
두 명의 적은 손에 단도를 쥐고 있었는데, 진양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그때 다시 등 뒤에서 검날이 빛을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진양은 얼른 허리를 숙여 피한 다음 전방에서 달려드는 두 명의 적을 향해 삿갓을 벗어 집어 던졌다.
공력을 머금고 날아간 삿갓은 커다란 암기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얼른 단도를 휘저으며 삿갓을 베어내고는 진양을 노려보았다.
“누구냐? 누군데 미행을 하는 것이냐?”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진양은 어쩔 수 없이 신분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두 손을 모아 잡으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신필문에서 온 양진양이오. 개방의 형제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헛소리 마라! 신필문주가 왜 여기에……!”
거지 한 명이 툭 쏘아붙이는데, 다른 한 명이 그를 제지하며 나섰다. 그는 바로 진양이 뒤쫓던 사결제자였다. 그가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수호필을 보았다.
싸우는 동안에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양이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붓이 아닌가?
그 전까지는 거지들 모두 진양이 들고 있는 것이 불진 따위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결제자 역시 완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 양 장문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양 장문을 사칭한다면 우리가 용서치 않을 것이오.”
“누군가 저를 사칭한다면 저 역시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양이 웃으며 말하자, 사결제자가 턱을 들어 수호필을 가리켰다.
“소문에 의하면 양 장문의 필체가 몹시 수려하다고 들었소. 누구라도 그분의 필체를 보면 바로 감명을 받는다고 하지. 그걸로 글자를 적어보시겠소?”
진양은 이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분명 추방산을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이처럼 온유하게 대하지 않을 터였다.
진양이 내심 안도하며 말했다.
“그럼 미천한 솜씨지만 써 보이지요.”
말을 마친 진양은 곧장 일필휘지로 글자를 적었다.
그가 수호필에 공력을 싣고 바닥에 적은 글씨는 단 한 글자였다.
友
이 벗(友)이라는 글자를 보자, 개방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척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단지 글 한 자를 적었을 뿐인데, 진양을 향한 경계심과 주의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장에라도 진양과 술을 한 잔 나누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그야말로 오랜 벗을 만난 느낌이랄까?
‘이분은 정말 신필 대협이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글자에 이처럼 뜻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뜻과 정이 담기니 글자가 살아 있는 것 같구나!’
사결제자는 마음 깊이 탄복하며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신필대협 양 장문을 알아뵙지 못해 소인들이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서로 오해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잘한 것 하나 없습니다.”
“과연 양 장문의 인격은 하늘보다 높다더니…… 소문이 사실이군요.”
“지나친 칭찬이라 듣기 거북스럽습니다. 하하.”
“한데 무슨 용무로…….”
“실은…….”
진양은 자신이 왜 개방을 찾아온 것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개방의 제자들은 곧장 진양과 함께 흑표가 있는 객점으로 갔다. 그리고 일행과 함께 개방의 분타로 향했다.
개방의 분타는 뜻밖에도 넓고 깨끗한 저택에 위치해 있었다. 마침 취룡개 추방산도 남경 분타에 와 있었는데, 그는 진양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문 밖까지 친히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그는 얼른 거지들을 시켜 흑표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간병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일행을 방으로 안내해 준 다음 대청에서 진양과 차를 마셨다.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된 진양은 추방산에게 깊이 읍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큰 신세를 졌습니다. 추 방주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허, 양 장문은 신경 쓰지 마시오. 마땅한 도리를 다했을 뿐이오.”
추방산은 지난번 대별산에서 봤을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별산에서는 주야장천 술만 마시는 주당으로 보였는데, 오늘 본 그의 모습은 단정하면서도 진중한 태도였다.
다만 얼굴의 피부가 마치 멍게 껍질을 보는 것 마냥 울퉁불퉁하고 흉측한 것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개방의 거지들 중에 깔끔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특히 추방산의 얼굴 피부는 보통 사람들이 바로 보기에 힘겨울 정도였다.
‘안타깝다.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추 방주의 얼굴 피부가 이처럼 거칠지 않았더라면, 개방의 제자들이 좀 더 그를 편견없이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진양의 추측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추방산은 실제로 그 특이한 외모 때문에 구걸을 다니면서도 쌀 한 톨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어쨌거나 진양과 추방산은 마주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은 추방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흐음. 그처럼 무리하면서까지 황제를 구할 이유가 있소? 양 장문은 황궁에 원한을 품어도 모자랄 판이 아니오?”
“저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제게 섭섭한 행동을 한 자들도 많았지요. 만약 제가 그들 모두에게 원한을 가지고 멀리했다면, 지금 저는 천상련과 적이 되었을 것이고, 혈사채와도 적이 됐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화산파와 종남파도 적이 됐겠지요. 더욱이 학립관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신필문도 없으며 지금의 저도 없을 겁니다.”
“허허, 그렇다는 말은 곧 용서를 함으로써 그러한 적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오?”
진양이 고개를 저었다.
“제 주제에 용서를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마음을 비우고 순리대로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요. 적어도 원망을 쌓아놓은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가 도래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생긴 결과이지요.”
“허허허! 과연 양 장문은 이 시대의 영웅 대협이시오! 노부가 양 장문에게 깊은 깨달음을 얻었소이다.”
“부끄럽습니다, 방주님.”
추방산이 빙그레 웃었다.
“양 장문, 그 마음을 잊지 마시오. 은혜를 기억하고 원한을 지우는 그 마음 말이오.”
“예, 그러겠습니다.”
“이런, 내가 오히려 양 장문을 가르쳤구려. 허허허!”
“하하하!”
두 사람은 마주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추방산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진양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연왕이 황궁을 점령할 것이오.”
진양도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새로 입수한 정보입니까?”
“새로 입수했다고 말할 것도 없소. 이미 개방뿐만 아니라 만백성이 짐작하고 있지 않겠소?”
“하지만 개방이라면 그 정확도가 다르지요.”
“후후. 고맙소. 양 장문의 말대로 정확도는 매우 높소.”
“그 시기가 언제일까요?”
“조만간. 아마 열흘을 넘기지 않을 것이오.”
진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남경에 직접 오고 나서 전란의 분위기가 점차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황제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추방산이 진양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연왕이 황궁을 차지하게 되면, 무림맹이 곧바로 발동될 것이오. 하지만 그 전에는 우리도 양 장문을 무력으로 도와줄 수는 없소.”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보름 내에는 무림맹이 발동될 터인데, 천의교에 대해서는 좀 아셨소?”
“신필문이 아무리 캐봐야 십만 방도의 개방 정보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허허. 그건 그럴지도 모르나, 바로 얼마 전에 연왕을 만나고 왔다니 하는 말이라오.”
진양이 차를 들이켜고는 말했다.
“연왕은 위교사왕과 함께 저를 대접했습니다. 아마도 연왕은 그들을 무척 아끼는 듯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야망을 위한 것인 듯 보였습니다.”
“그럼 연왕이 양 장문을 해하려고 한 것도 자신의 야망에 걸림돌이 될까 봐 그런 것이오?”
“그렇지요. 사실 그 자리에서 글을 적어드렸지요. 왕야께서는 제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지요. 그 대답에 연왕의 행위를 나무라는 뜻이 들어있었으니 절 일찌감치 제거하려고 생각했을 겁니다.”
“흐음. 양 장문도 참. 대충 기분을 맞춰드리지 그랬소?”
진양이 빙그레 웃었다.
“말은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잊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은 세월이 지나도 남지요. 말도 무섭지만, 글은 말보다도 더 무서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니 차마 거짓 글을 적을 수는 없었습니다.”
“허허허! 양 장문은 참으로 묘한 사람이오. 부드럽고 유연하게 느껴지다가도 뜻을 펼침에 있어서는 대 쪽 같은 면이 있으니 과연 대인이시오!”
“과찬이십니다.”
“한데 그곳에서 천의교에 대한 정보는 더 얻은 것이 없었소?”
“아! 비도옥왕 여만옥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추방산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 눈치였다.
“흑 당주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소. 사실이오?”
“역시 개방은 정보가 빠르군요. 맞습니다.”
“흐음. 그리고 또 다른 정보는?”
진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