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38
신필천하(神筆天下) 138화
사실 주윤문이 승려가 되어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진양과 사상이괴, 그리고 가신풍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진양은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밀로 했고, 다른 이들 역시 그러했다.
단 한 명, 유설만이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장군 역시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막연한 심증만을 가지고 진양을 압송하기에는 무림맹주라는 신분이 걸렸다.
결국 장군은 주윤문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편 무림맹은 천의교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했다.
예상대로 황궁의 권력을 등에 업은 천의교는 점점 그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세력을 빠르게 넓혀 나갔다.
순식간에 세력이 커진 천의교는 이미 강호 곳곳에 분타까지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무림맹의 입장에서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그들이 강호의 도리를 어긴 것도 아니요, 악한 짓을 일삼아 무림인의 공분을 산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들의 세력을 착실히 넓혀 나가고 있을 뿐이니, 아무리 무림맹이라도 이유없이 그들을 척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무림맹은 회의를 소집했고, 그 과정에서도 의견은 계속 엇갈렸다.
“도대체 뭘 기다리는 겁니까? 이대로 천의교가 강호를 온통 장악하도록 내버려 둘 셈입니까?”
위사령이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치자, 화산에서 온 원세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나 천의교가 무림인의 공분을 살 만한 행위를 하진 않잖소?”
“그렇다고 그냥 두고만 볼 것이오? 이대로 가다간 천의교가 강호에서 가장 큰 문파로 성장하고 말 것이오. 그리되면 천의교도 본색을 드러내겠지. 하지만 그때 가서 막을 생각을 한다면 너무 늦고 말 것이오!”
“그럼 자네는 대체 어찌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척금송이 냉랭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듯 물었다.
위사령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음모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서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무림맹에서 암살대를 선별해 위교사왕, 아니, 위교삼왕을 제거한다면 복잡한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 아니겠소이까?”
“흥! 그게 그리 간단히 해결될 것 같은가? 위교삼왕은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닐세. 그들의 무공 실력은 당대에 맞설 자가 몇 없을 정도지. 한데 암살대가 과연 한 명도 아닌 세 명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끄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것입니까?”
“하지만 암살대를 보내는 건 더더욱 안 되는 일일세! 만약 실패라도 하면? 그럼 그 뒷일은 누가 책임질 텐가? 무림맹이 크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무인들이 맹에 가입된 것은 아닐세! 한데 단지 세력이 커지는 천의교가 두려워 무림맹이 비겁하게 암살대를 보내 일을 저지르려고 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땐 무림맹이 오히려 중원인들의 공분을 얻게 되겠지!”
“제기랄! 그럼 어쩌자는 거요?”
그때 혜방 선사가 나서며 자중시켰다.
“모두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만약 이대로 천의교가 아무런 음모도 꾸미지 않고 단지 세력을 확장할 뿐이라면 그도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천의교의 소행으로 보자면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니, 지금 무림맹이 할 일은 그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정보를 최대한 얻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급한 마음이 들더라도 좀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만약 어떤 확증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그때 본격적으로 나서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부맹주께서는 새로 접한 소식이 없는지요?”
그가 고개를 돌려 추방산을 보며 물었다.
정보력이 막강한 추방산은 무림맹의 부맹주였다.
하지만 추방산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놈들이 어찌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지 이렇다 할 건더기가 없더이다.”
풍천익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긴 문제구려. 천의교의 세력이 확실히 너무 커졌소. 추 방주는 최대한 빨리 천의교의 음모를 알아낼 만한 정보를 얻어야 할 것이오. 그게 아니라면 본 맹이 그들을 칠 만한 명분이라도 만들어야 할 거외다.”
사파의 지존이라고 볼 수 있는 풍천익의 말에 추방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소이다. 노력해 보겠소.”
결국 무림맹의 회의에서도 이렇다 할 방침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가는데,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일은 뜻밖에도 연왕으로부터 시작됐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연왕은 방효유를 끝까지 설득하고자 했다.
어느 날 주체가 방효유를 불러 조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주체가 황제가 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방효유는 붓을 집어 던지며 대성통곡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런 조서는 절대 쓸 수 없소!”
이에 격분한 주체가 성을 내며 말했다.
“너 하나 죽는 것이 아니라, 구족을 멸한다고 해도 상관없겠느냐?”
“구족이 아니라 십 족을 멸해도 이딴 글은 쓸 수 없소이다!”
주체는 일찍이 진양을 만난 이후로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학사들을 냉정하게 대해왔다. 비록 그날 진양은 죽일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만난 선비나 학자들을 대할 때는 가차가 없었다.
한데 방효유가 이처럼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주체는 노발대발해서 소리쳤다.
“저놈의 입을 찢어 버려라!”
결국 방효유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채 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 후 주체는 방효유의 구족을 멸하고 그의 제자와 지인들까지 모조리 죽여 없앴다.
이때 천의교의 위교삼왕이 일부 병사들을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 경청이라는 자는 주체에게 충성하는 척했다가 품에 비수를 품은 것이 들키면서 사지가 찢어져 죽고, 고향 마을까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역시 위교삼왕은 이때도 빠지지 않았다.
폭력은 불길과 같은 속성이 있다.
시작은 소소하더라도 그 폭력의 광분에 한번 휩싸이게 되면 어떻게 번져 나갈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황궁의 권세를 등에 업은 천의교가 이러한 역할을 맞다 보니 그 과정에서 오만해진 신도들이 관련없는 선량한 백성들마저 함부로 학살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그렇잖아도 무림맹은 천의교를 칠 만한 명분에 굶주려 있던 차였다.
한데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이보다 좋은 명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때쯤엔 이미 무림인들 사이에서 천의교를 욕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명분이 생기자마자 무림맹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제일 먼저 갈지첨이 파견되어 있는 강서 지역의 남창(南昌)으로 향했다.
갈지첨은 주윤문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그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는데, 그의 괄괄한 성격 탓인지 남창에 있는 천의교 분타는 특히 무림인이나 일반인들에 대한 행포가 심했던 것이다.
진양과 추방산은 직접 남창으로 향했는데, 천의교를 상대하기 위해 꾸려진 특별 타격대인 질풍대(疾風隊)를 대동했다.
그들은 남창에 위치한 개방 분타에서 머물렀다.
개방의 분타이기는 하지만 특수한 임무가 있을 시에는 무림맹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진양은 분타에 머무는 동안 무림맹의 질풍대주 자리를 맡고 있는 가신풍을 시켜 천의교 분타의 동태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대략의 정보를 입수한 진양은 다음 날 자정, 천의교 남창 분타를 치기로 결정했다.
하루만 지나면 이제 천의교와 무림맹 간의 전쟁이 시작될 순간인 것이다.
그날 저녁 척금송과 공동파(空同派)의 장문인인 용소파(龍召播)가 찾아왔다. 만약을 대비해서 부맹주인 추방산이 이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진양 역시 아군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데 그날 밤 마당을 거닐고 있던 진양은 어둠 속에서 날아든 화살 한 대를 재빨리 낚아챘다.
화살이 날아든 속도나 위력으로 보아서는 진양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진양이 화살대를 가만히 살펴보니 맨 끝에 가느다란 금이 그어져 있었다. 진양이 그 화살대 끝을 잡고 당기자, 아주 작은 공간에 꼬깃꼬깃 집어넣은 종이가 나타났다.
그 안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일반인이라면 그 글씨를 읽기도 힘들 정도였다.
진양은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그 종이에 적힌 글씨를 읽어보았다.
내용인 즉슨, 남창 외각 지역의 남서쪽에 위치한 사당으로 오늘 밤 자정까지 와달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군. 누가 보낸 것일까?’
진양은 깨알처럼 작은 글씨를 찬찬히 살피며, 혹시 아는 사람의 글씨체는 아닌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가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진양은 호기심을 안은 채 자정이 되어갈 무렵 숙소에서 나섰다.
글씨체로 보아서는 굉장히 신중하면서도 급박한 용무가 있는 듯 보였다. 또한 적의는 없어 보였기에 굳이 다른 사람을 대동하지도 않았다.
시내 외각 지역으로 나간 진양은 곧 야트막한 언덕 위에 차려진 허름한 사당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계시오?”
사당 밖에 멈춰 선 진양이 안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사당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진양은 왠지 한밤중에 사당 밖에서 이렇게 부르는 것도 이상하겠다 싶어 천천히 다가가 문을 밀어보았다.
낡을 대로 낡은 문짝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열렸다.
한데 사당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당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공간은 제법 넓은 편이어서 만약 누군가 기척을 죽이고 숨어 있는 것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진양은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쳐 불렀다.
“활을 쏘신 분은 여기 안 계시오?”
그러나 역시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진양은 아직 상대가 도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리에 털썩 앉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좌를 한 채 앉아 있던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누군가 오는군!’
멀찍한 곳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것이다.
한데 그 속도가 빠르면서도 호흡은 굉장히 불안정했다.
그 순간 진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쳤군!’
그와 동시에 사당 문이 벌컥 열리며 낯선 그림자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진양을 보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진양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껴안으며 부축했다.
순간 사내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훅 올라와 진양의 코를 찔렀다. 뒤이어 피비린내까지 더해지니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정신 차리시오!”
진양이 상대를 잡고 바닥에 바로 눕히려고 했다.
한데 그는 누우려고 하지 않고 진양의 소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쓰러지면서 잠깐 잃었던 의식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가 부들부들 떨며 온 힘을 쥐어짜듯 말했다.
“내, 내가…… 죽였…… 그리고 방, 방주……!”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진양이 흠칫 떨고는 그의 몸을 흔들었다.
“이보시오!”
진양은 얼른 맥을 짚어보았지만, 사내는 이미 숨을 거둔 직후였다.
진양은 갑자기 일어난 상황 때문에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진양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선 상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스며드는 달빛에 비춰 보니, 죽은 자의 행색이 몹시 초라하고 제대로 씻지도 않은 듯했다.
진양은 그가 다름 아닌 개방의 제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당한 것일까? 이 사람이 내게 활을 쏜 자가 맞을까? 무엇을 내게 전하려고 하다가 숨진 것일까? 온통 의문투성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