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39
신필천하(神筆天下) 139화
진양은 혹시나 해서 그의 몸을 뒤져 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슴에 난 검상 역시 특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기에 어떤 자에게 당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자의 무공은 상당히 높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태양혈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을 보면 내공 역시 고강했으리라.
한데 이런 자를 단 일검에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상대 역시 무척 강한 자이리라. 정당한 대결이었든 암살이든 이만한 무인을 일수에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양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막연히 한숨을 쉬고 있는데, 마침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차! 이자의 죽음으로 정신을 빼놓고 있었구나. 누군가 다가온 것도 모르다니!’
진양은 얼른 옆에 떨어진 수호필을 쥐고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진양이 수호필을 대각선으로 휘두르며 사당의 문짝을 잘라내버렸다.
“누구냐!”
졸지에 사당 문이 절반으로 동강나며 부서져 나갔다.
“이크!”
문 뒤에 있던 사내가 황급히 물러나며 비명을 터뜨렸다.
진양은 상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몰아붙여 나갔다.
상대는 진양이 정신없이 수호필을 휘둘러 오자, 본능적으로 피하다가 무기를 들어 막았다.
까앙!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무기를 맞댄 채 눈살을 찌푸렸다.
“맹, 맹주?”
상대의 부름에 진양은 깜짝 놀라 다시 그를 보았다.
어스름한 달빛에 비친 그는 다름 아닌 개방의 방주 추방산이 아닌가?
“추 방주님?”
그제야 추방산이 얼른 타구봉을 거둬들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맹주께서 여기에 무슨 일로……?”
진양도 뒤늦게 수호필을 거두어들이며 포권했다.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아, 나야말로 경솔했소. 한데 여긴…….”
“아, 실은…….”
진양이 막 입을 열려는데,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와 잘려 나간 문짝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추방산의 눈길이 자연히 그곳으로 향하는데, 시체 한 구가 달빛을 받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음? 누구…….”
놀란 추방산이 휘적휘적 걸어가다가 문 앞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아, 아니……!”
“개방의 제자입니까?”
진양의 물음에 추방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소. 도대체 왜…… 맹 장로! 맹 장로!”
추방산이 얼른 달려들어 가 죽은 자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가 대답할 리는 없었다.
추방산이 눈물까지 흘리며 오열했다.
“맹 장로!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시오! 도대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것이오? 맹 장로!”
진양은 그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여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추방산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일어나 물었다.
“맹주,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후원을 거닐고 있는데, 화살 한 대가 날아들었지요. 그 화살대 안에 서신이 적혀 있어서 와보았습니다만…… 이분은 누구인지요?”
“맹지덕 장로요.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오.”
“아…….”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지덕이라면 개방 내에서 추방산과 대립을 이루는 장로가 아닌가?
추방산이 진양의 생각을 의식했는지 이어서 말했다.
“비록 맹 장로는 나와 뜻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만인이 인정한 영웅호협이었소. 한데 이렇게 죽어 버리다니…….”
“한데 방주님께서는 어떻게 여기에…….”
“나 역시 맹 장로의 은밀한 부름을 받았소. 이곳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 하여 와본 것인데, 그가 맹주까지 부른 줄은 몰랐구려.”
진양은 씁쓸한 표정으로 맹지덕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추방산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소. 도대체 알 수가 없구려. 맹주께서 만났을 때,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오?”
“아닙니다. 하지만 죽어가고 있었지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개방의 제자이지만 봉법보다도 특히 검법이 뛰어난 자였소. 한데 이처럼 검에 당해 죽을 줄이야. 아, 혹시 그가 무슨 말을 하진 않았소?”
“흐음…… 아주 짧게 몇 마디 말을 했습니다.”
“뭐라고 했소?”
“‘내가…… 죽였…… 그리고 방주…….’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짚이는 바가 있는지요?”
추방산은 턱을 괴고는 이맛살을 한껏 구겼다.
그는 연방 한숨을 내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군. 한데…… 설마…… 에이, 아닐 것이외다. 그럴 리가…….”
추방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진양은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짚이는 바가 있습니까?”
“사실…… 한 가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있소만, 아니, 아닐 것이오.”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흐음. 그럼 이 노부의 지나친 망상이라 여기고 듣기만 하시오. 나 역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오만…….”
“알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말씀하십시오.”
“우리 개방의 전대 방주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것은 알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다가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 한데 그 사고가 사실 여러모로 의문이 많다오. 우리끼리는 쉬쉬하고 있소만, 석연찮은 부분이 많소.”
“어떤 부분인지요?”
“방주님은 자맥질하는 솜씨가 아주 좋소. 그런 방주님이 물에 빠져 숨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겠소?”
“하나 제가 듣기로는 그날 방주님은 술을 많이 드셔서 취기가 있었다고…….”
“물론 그렇소이다. 하지만 우리 방주님은 어지간해서는 술에 취하시지 않소. 또 여차하면 내기를 운용해 취기를 방출하면 그만이 아니겠소?”
“그럼…… 전대 방주님이 살해당했다는 말씀인지요?”
“사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보았소이다.”
“한데 그것이 맹 장로님과 무슨…….”
진양은 이야기를 내뱉다가 입을 딱 벌렸다.
추방산이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소. 나는 맹 장로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오. ‘내가 죽였소. 방주를…….’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라오.”
진양은 약간의 충격을 받았지만 곧 냉정하게 돌이켜 보았다.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점이 많군요.”
“어떤 것이 말이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맹 장로님을 공격한 것일까요? 그리고 본인이 전대 방주를 죽였다는 사실을 굳이 제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개방의 제자도 아닌데요.”
“그것도 그렇구려. 사실 나도 맹 장로가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다만 마지막 남긴 몇 마디 말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지. 흐음.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추방산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떠한 단서도 얻지 못한 채 사당을 나서야만 했다.
그들은 맹지덕의 시체를 땅에 묻어준 후, 다시 남창의 분타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예상 밖의 일이 터졌다.
천의교의 남창 분타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추방산이 개방의 제자들을 풀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천의교에서 무림맹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미리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었다.
이에 추방산은 아침부터 팔방으로 조사를 하러 다녔고, 저녁쯤이 되어서야 천의교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천의교는 남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야산의 골짜기로 들어갔는데, 바로 흑석곡(黑石谷)이라는 곳이었다.
“흑석곡은 지형이 험해서 질풍대가 단번에 치기 힘든 것이 문제요. 오히려 암살대를 투입하는 게 낫다면 나을 테지.”
추방산의 말에 진양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그들이 어떻게 이쪽 움직임을 알아냈을까요?”
“천의교가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것 같소. 뿐만 아니라 세력도 많이 확장돼서 어지간한 정보는 빠르게 입수되는 듯하구려. 어쩌시겠소, 맹주?”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진양이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시간을 더 끌어서 좋을 것은 없을 듯싶습니다.”
“사실 나도 그리 생각했소. 맹주께서 결단을 내리셨다니 나 그대로 진행하겠소이다. 질풍대가 제대로 싸우기에는 힘든 지형이지만, 척 장로와 용 장문께서 같이 가니 승산은 클 것이오.”
결국 진양은 그날 밤 질풍대가 만약을 대비해 뒤를 받치도록 하고, 추방산, 척금송, 그리고 용소파가 주축이 되어 흑석곡에 잠입하기로 했다.
비가 쏟아져 내렸다.
진양은 질풍대를 이끌고 흑석곡으로 향했다. 물론 거기에는 추방산과 척금송, 용소파도 가세했다.
빗줄기는 밤이 깊어질수록 심해졌다.
오히려 이런 날은 잠입하기에는 더 좋은 날이었다.
흑석곡이 다 와갈 때쯤이었다.
쒜에엑!
어둠을 가르며 화살 한 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화살이 노리는 자는 바로 진양이었다.
진양은 재빨리 몸을 뒤틀어 화살을 피했다.
공력을 머금은 화살이 그대로 진양의 목을 스치며 날아가 나무 기둥에 박혔다.
어찌나 빠르게 날아들었는지 나무 기둥에 박힌 화살은 한참이나 부르르 떨었다.
“이런! 발각된 건가?”
척금송이 무릎을 탁 치며 탄식했다.
만약 잠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번 싸움은 무림맹에게 몹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진양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그 뒤에 대고 추방산이 나직이 소리쳤다.
“우리는 먼저 흑석곡으로 가보겠소!”
“그러십시오.”
추방산 일행도 움직임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진양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다행히 무인은 흑석곡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이상하군. 왜 흑석곡으로 가지 않는 거지?’
비가 오는데다 지형이 익숙하지 않은 진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와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중에는 화살을 쏜 무인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게 됐다.
진양이 돌아보니 대략 십 리는 달려온 것 같았다. 계속해서 쫓아가다가는 흑석곡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상대를 쫓기를 포기하고 걸음을 돌렸다.
그가 흑석곡 근처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있던 질풍대원이 다가와 말했다.
“부맹주님께서는 먼저 흑석곡으로 가셨습니다.”
“가지.”
진양이 흑석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다다르자 마침 가신풍이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놈은 어찌 됐는지요?”
“놓쳤소. 그보다 부맹주님과 다른 분들은?”
“흑석곡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벌써 말이오?”
“예, 맹주님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기다리면 늦을지도 모른다면서 세 분께서 먼저 들어가셨지요.”
“얼마나 지났소?”
“지금 반 시진 정도 지났습니다. 신호가 나타나면 질풍대 전원을 투입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렇군.”
진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 신호는 갈지첨이 죽었을 때 나타날 것이었다.
질풍대원은 숲속 곳곳에 몸을 웅크린 채 은신하고 있었는데, 검은 바위틈마다 꾸물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거미 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삐익-
매의 울음소리와 함께 노란색 폭죽 하나가 쏟아지는 비를 뚫으며 허공으로 솟았다.
그 순간 질풍대원들이 저마다 몸을 일으키며 흑석곡을 향해 달려내려 갔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은 바닷물이 골짜기로 마구 쏟아져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진양도 그들 틈에 섞여 흑석곡으로 내려갔다.
노란색 신호탄은 갈지첨을 죽이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갈지첨을 죽인 후에는 녹색 신호탄이 솟아올랐어야 했다.
역시 흑석곡 안으로 들어서자, 천의교 신도들이 횃불을 들고 어지럽게 움직이며 질풍대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