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40
신필천하(神筆天下) 140화
진양은 재빨리 수호필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은 신도를 베어냈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동정심을 베풀 여유는 없었다.
“죽어라!”
신도 두 명이 진양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진양은 단숨에 두 사람의 팔을 베어냈다.
“크아악!”
한 명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나뒹굴었고, 다른 한 명은 남은 팔을 휘두르며 끝까지 달려들었다. 결국 그는 진양에게 목이 베이고 나서야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명씩 물리치며 흑석곡 본당이 있는 곳으로 전진해 가는데, 다시 신호탄이 솟아올랐다.
삐이익!
이번에는 붉은색의 신호탄이었다.
붉은색 신호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나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추방산 일행이 위험에 처했다는 뜻일 터.
“물러나라!”
진양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수호필을 휘둘러 나아갔다.
몇몇은 그 자리에서 고막이 터져 나가 바닥에 주저앉았고, 공력이 심후한 자들은 끝까지 진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진양의 뒤를 바로 받치고 있는 사람은 가신풍이었다.
그가 동으로 번쩍, 서로 번쩍 움직이니 천의교 신도들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 틈에 진양은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신호탄이 솟아오른 곳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놈을 잡아라!”
건물 아래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지면서 몇몇 신도들이 지붕 위로 올라와 진양을 가로막았다.
하나 떼로 덤벼도 막을까 말까 한 진양을 겨우 두어 명의 신도들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들 모두 진양의 수호필에 속절없이 튕겨 나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질풍대가 뒷심을 발휘해 점점 거세게 몰아쳤고, 천의교 신도들은 조금씩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지붕을 타고 달리면서 생각보다 천의교 신도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신도들이 흑석곡 입구에 몰려서 질풍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은 구경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진양은 흑석곡 내에서 가장 안쪽의 커다란 건물 앞으로 내려섰다.
입구의 편액에는 ‘흑석당’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무인 두 명이 피를 토한 채 죽어 있었다.
분명 추방산 일행이 저지른 것이리라.
진양은 재빨리 문을 통해 달려 들어갔다.
“추 방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진양이 목청껏 소리쳤다.
때마침 후원에서 ‘펑!’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양이 얼른 몸을 날렸다.
그가 막 모퉁이를 돌아서자, 마침 추방산이 두 무인의 목덜미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있었다.
무인들은 서로 부딪쳤는지 이마가 박살이 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추방산이 이들의 목덜미를 쥐고 서로 부딪쳐 죽여 버린 듯했다.
“추 방주님!”
진양이 얼른 달려가는데, 추방산은 두 무인을 바닥에 던지듯 놓고는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추 방주님, 괜찮으십니까?”
이미 추방산은 복부에 깊은 검상이 새겨져 있었고, 피가 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추방산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진양은 얼른 그의 혈을 짚어 지혈했다.
“갈지첨은 어찌 됐습니까?”
추방산이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있었는데, 바로 그 곁에 시체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시체의 복부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장력에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진양은 그 시체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금곤삼왕 갈지첨이었던 것이다.
진양과는 오랫동안 악연을 쌓아왔던 그 금곤삼왕 갈지첨이 결국 죽어 버린 것이다.
“해내셨군요. 한데 척 장로님과 용 장문님은 어디에 계시는지요?”
“그것이…… 미안하오, 맹주.”
말을 하던 추방산은 갑자기 눈물을 주룩 흘렸다.
진양은 가슴이 철렁해서 다그쳐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그들은…… 죽었소.”
“예?”
“갈지첨을 죽인 것은 사실 척 장로나 다름없었소. 그가 부맥장(腐脈掌)으로 갈지첨의 배에 일격을 가했지. 그것이 컸소.”
“부맥장이라면…….”
“혈맥, 근맥 등을 빠른 시간에 썩게 만드는 장법이라고 했소. 하지만 척 장로 역시 갈지첨에게 동시에 장력을 얻어맞아 즉사하고 말았소.”
“아……!”
진양은 탄식을 흘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시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 안에 있소.”
추방산이 가리킨 곳은 건물 안이었는데 한쪽에 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아마도 추방산 일행이 대청에서 싸우던 도중 벽이 부서진 모양이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미안하오, 맹주. 내 목숨을 던져서라도 그들을 지켰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추 방주님께서도 이처럼 큰 부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먼저 몸을 다스리십시오.”
진양은 추방산을 안전하게 눕히고는 무너진 벽 안으로 들어갔다.
추방산의 말대로 한쪽에 척금송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용소파의 시신이 있었다.
용소파는 머리가 깨지고 목이 부러져 있었는데, 갈지첨의 삼절곤에 얻어맞은 듯했다.
그리고 갈지첨이 생전에 애용하던 무기인 삼절곤 역시 대청 한쪽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싸움이 치열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라 추방산은 삼절곤이 아닌 검상을 입은 것이 아니던가.
아마도 갈지첨은 최후의 최후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무기를 이용해서 저항했으리라.
진양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리며 가신풍이 들어왔다.
“맹주님, 여기 계셨군요.”
“가 대주, 상황이 어떻소?”
“흑석곡의 천의교 신도들은 완전히 정리됐습니다. 다만 사로잡힌 신도들이 모두 자결을 하는 바람에…….”
“흐음. 참으로 지독하군.”
진양은 미간을 좁혔다.
한편 가신풍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다름 아닌 척금송과 용소파라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이, 이분들은…….”
“이번 싸움에서 무림맹은 피해가 컸소. 이분들의 시신을 잘 보존해서 옮겨야겠소.”
“알겠습니다, 맹주님.”
가신풍이 깍듯이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진양은 풍비박산이 난 대청을 둘러보고는 한차례 장탄식을 흘렸다.
6. 배신자
남창에서의 싸움으로 천의교의 위교삼왕 중 갈지첨은 죽었으나 무림맹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흑석곡에 남은 천의교 신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보자면, 무림 고수를 두 명이나 잃은 무림맹 쪽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진양은 무림맹 총단에서 척금송과 용소파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지 하루 동안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두 영웅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강호인들은 더욱 천의교를 미워하게 됐다.
이때쯤 천의교는 황궁에서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와 남경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운태산(雲台山)에 총단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종종 황궁의 심부름꾼 역할을 해주었고, 그에 대한 대가로막강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마교가 멸망한 이후 가장 큰 세력의 탄생인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너도나도 무림맹의 뜻에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다.
강호는 순식간에 무림맹과 천의교 세력으로 양분됐다.
마치 과거의 정마대전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하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교는 세외 지역에 총단이 있었던 반면, 천의교는 중원에 당당히 들어서 있다는 점이었고, 황궁의 자금 지원까지 받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은 더욱 치열해져 갔다.
황궁의 전쟁이 끝나고, 무림인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정사의 무인들이 천의교의 무인들과 만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피가 튀었다.
무림맹 역시 중원 곳곳에 퍼져 있는 천의교의 분타를 급습하며 공격했지만,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쉽게 판도가 뒤집히지는 않았다.
천의교는 오래전부터 강호 평정을 준비해 왔기에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양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상자만 늘어나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없는 전쟁만이 지속될 것 같았다.
그는 고심 끝에 신필문에 남아 있던 전학수를 맹의 총단으로 불러들였다.
전학수는 성격이 꼼꼼하여 매사에 신중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비상한 편이어서 지략을 세우는 데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권문세가와의 인맥도 넓은 편이어서 그가 도움을 준다면 이 난관을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전학수가 총단에 도착하자, 진양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그간 잘 지내셨소?”
전학수도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문주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마음이 적적했습니다. 이리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모님께서 문주님을 많이 그리워하십니다.”
전학수를 비롯한 신필문의 무인들은 모두 유설을 ‘사모’라고 불렀다.
그들이 진양을 사부로 섬기지는 않았지만, 유설에게만큼은 그 호칭을 고집했던 것이다.
진양은 부드럽게 웃어넘기고는 가신풍을 불렀다.
오랜만에 신필문의 사람들만 모아놓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이야기는 곧 천의교와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가신풍이 씁쓰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의교는 잡초와 같습니다. 아무리 짓밟고 뿌리째 뽑으려고 해도 어느 틈에 다시 자라나더군요.”
진양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내가 오늘 전 당주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라오. 천의교와 싸움이 길어지고 있는데도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소. 물론 하루아침에 끝날 문제는 아니겠지만, 나는 결코 이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는 않소. 뭔가 방법이 없겠소?”
전학수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천의교가 그처럼 끈질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막강한 자금력이 아니겠소?”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금줄을 끊는 것이 급선무이겠지요.”
“하나 자금력은 황궁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어찌 끊을 수가 있겠소? 황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지 않소?”
“물론 황궁을 상대로 반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황궁을 무림맹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요.”
“황궁을 무림맹을 끌어들인다라…….”
진양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진양은 주체와 다시 엮이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주윤문을 쫓아내고 황위를 찬탈한 주체에게 막연한 적개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학수가 말을 보탰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먹는 법입니다. 지금 연왕의 사냥은 이미 끝이 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그동안 열심히 뛰던 사냥개가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지금쯤 사냥꾼은 개를 삶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럼 어떤 방법이 있겠소?”
“주체의 측근 중에 정화(鄭和)라는 환관이 있습니다. 이번에 정난지변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만약 그자를 은밀하게 만나 설득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자를 만날 방법이 있겠소?”
“제 지인에게 부탁을 한다면 만남을 한번 주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를 한 번 만나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번 일은 우리 셋만 아는 비밀로 합시다.”
전학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이에 가신풍이 알 만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무림맹에서 회의를 한 번 하면 이 사람, 저 사람 말만 많지요. 논쟁 끝에 결국 탁상공론으로 끝이 나 버리거든요.”
전학수도 그제야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황궁과 손을 잡자는 계획에는 정파의 무인들이라면 반발이 거셀 수 있었다. 역사상 무림인이 황궁과 엮인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의견만 분분해질 바에는 진양이 아무도 모르게 이번 일을 추진할 생각인 것이다.
전학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곧장 남경으로 가보겠습니다. 일이 진행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해 주시오.”
“예. 그럼.”
전학수는 그 길로 곧장 남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