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42
신필천하(神筆天下) 142화
“일리 있군요. 사실은 저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오?”
진양은 자신이 항산에 다녀온 일에 대해서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추방산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럴 수가…….”
진양은 그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흐음…….”
추방산은 한참 동안 침음을 흘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는 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소.”
“의심하고 있었다고요? 그게 누굽니까?”
“실은 그것이…….”
“말씀해 보십시오.”
“혈사채의 곡 채주라오.”
진양이 놀라서 두 눈을 부릅떴다.
“곡전풍 채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그럴 리가요.”
“하나 곡전풍 채주는 이미 천의교와 손을 잡은 적이 있지 않소? 예전 그는 천의교와 손을 잡고 금룡표국을 습격했었지. 그때 맹주께서도 연이 닿았지 않았소?”
“그랬지요. 하지만 이미 십 년이나 지난 이야기입니다.”
“한 번 배신한 자들이 두 번을 배신하지 못할까? 그것이 사마외도의 속성인 것을.”
진양은 너무나 뜻밖의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추방산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방금 맹주께서는 항산에 다녀오시지 않았소?”
“그렇습니다만 그것이 왜……?”
“혈사채의 위사령이 같은 날 항산을 찾아갔었소. 우리 개방의 정보이니 확실한 것이오.”
“그럴 수가…….”
진양은 충격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추방산이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맹주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곧바로 무림맹의 권한으로 혈사채를 조사할 수도 있소.”
“잠시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맹주, 이건 탁자에 앉아서 백날을 생각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요.”
“흐음…… 좋습니다. 대신 저도 같이 가보지요.”
“알겠소. 명에 따르겠소.”
“내일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리다.”
추방산은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양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배웅했다.
다음 날 진양은 추방산을 비롯한 무림맹의 무인들을 이끌고 혈사채로 향했다. 사실 무림맹의 무인이라고는 하지만 대개가 개방의 제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곡전풍은 갑자기 찾아든 무림맹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다짜고짜 혈사채를 들쑤시며 수색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증거물을 감출 수도 있었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무례할 만큼 거침이 없었다.
“어찌 이러시오, 맹주?”
곡전풍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물었다.
하지만 진양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추방산이 나서며 대답했다.
“곡 채주, 숨기는 것 없이 솔직히 말한다면 죄를 조금은 가볍게 여겨 드리겠소.”
“그게 무슨 말이오? 추 방주!”
“지금은 무림맹으로서 온 것이니 부맹주라고 불러야 할 것이오.”
“끄음! 대체 이게 무슨 행패란 말이오? 남의 집에 칼 든 손님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것은 실례가 아니오?”
하지만 추방산은 대답하는 대신 옆에 서 있는 위사령을 보며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보겠소. 지난날 위사령 부장은 항산에 다녀온 적이 있소? 없소?”
“있소이다! 그것이 잘못되기라도 했소?”
위사령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며 소리쳤다.
추방산은 위사령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아무 일도 없었소.”
“아무 일도 없이 왜 그곳으로 갔단 말이오?”
“종지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오.”
“종지령이라면…… 갈지첨의 제자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무슨 연락이었소?”
“항산 근처에 숨어 있는데, 투항하겠다는 내용이었소.”
“그래서?”
“가보았지만 우리는 종지령을 찾지 못했소.”
“그것참 이상하군. 종지령이 왜 무림맹으로 연락하지 않고 혈사채로 연락했단 말이오?”
“무림맹으로 연락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소이다.”
“그런데 종지령은 항산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소. 혹시나 함정이 아닐까 싶어 부원들을 모두 데리고 갔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소.”
추방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왜 무림맹에는 보고하지 않았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오. 한데 무엇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오?”
“항산에서 개방의 제자들이 떼죽음을 당했소. 당신들이 항산에 도착한 날 벌어진 일이오. 전혀 모르고 있었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정말로 몰랐소이다.”
“닥쳐라! 네놈들이 감히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추방산이 갑자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자위마저 발갛게 충혈된 채 말했다.
“그딴 허술한 거짓말을 날보고 믿으라는 소린가? 소설을 쓸 생각이라면 좀 더 그럴싸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나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오!”
“그럼 그 종지령의 서신을 보여라!”
“없소.”
“흥! 그럴 줄 알았지! 어째서 없단 말인가? 방금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언제 서신을 받았다고 했소? 연락을 받았다고 했지! 심부름꾼 하나가 찾아와서 그렇게 전했을 뿐이오.”
“웃기는군! 단지 그 말을 믿고 항산까지 갔단 말인가?”
“생각해 보시오! 어느 미친놈이 할 짓이 없어서 이 혈사채에 제 발로 들어와 거짓말을 하고 가겠소? 종지령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이거나,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오?”
“그렇다면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했어야지!”
“무림맹은 지금 중원 곳곳에서 천의교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찌 지원요청을 한단 말이오? 다른 곳의 싸움도 밀리고 있는 판국이 아니오?”
“흥! 핑계만은 그럴싸하구나!”
“이익! 말조심하시오! 추 방주!”
위사령이 성질을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들려고 했다.
곡전풍이 얼른 손을 들어 말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게!”
“하지만 채주님!”
“가만!”
곡전풍은 들어 올린 손을 쿡 말아 쥐었다.
그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맹주…… 정녕 우리를 못 믿는단 말이오?”
진양은 천성이 남을 의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런 자리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추방산의 말대로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문제였다.
진양이 차분히 대답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냥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색이 끝나면 정식으로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좋소. 특히 부맹주께서는 더욱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할 것이외다.”
곡전풍이 추방산을 뚫어질 듯 노려보며 말했다.
추방산은 냉랭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거야 어느 쪽이 미안해야 할지 두고 보면 알 테지.”
그 말을 끝으로 무인들 사이에서는 싸늘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청으로 무인 한 명이 찾아왔다.
“맹주님! 찾았습니다!”
진양은 물론 곡전풍과 위사령도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찾았다니, 뭘 찾았단 말인가?”
“여기…….”
무인이 내민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한데 그 종이를 펼쳐 보자 중원의 지도가 나오고 천의교의 요충지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또한 언제 어느 때 무림맹이 천의교를 공격할 것인지 상세히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아무리 보아도 아군을 위한 작전 지도가 아니었다.
위사령이 그 지도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대체 어디에 있었단 말이냐?”
“혈사전에서 발견됐소.”
무인이 위사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위사령이 대로하여 소리쳤다.
“닥쳐라! 감히 네놈이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한단 말이냐?”
스르릉!
위사령이 다시 칼을 뽑아 들고 당장에라도 무인을 쳐 죽일 듯하자, 추방산이 타구봉을 들고 얼른 나섰다.
“무기를 내려놔라!”
그때였다.
콰장!
탁자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혈사채주 곡전풍이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주먹은 강맹한 기운이 뭉쳐 붉은빛깔을 은은히 풍기고 있었다.
그는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진양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쩔 것이오, 맹주?”
진양 역시 증거가 나온 이상 마냥 곡전풍을 믿어줄 수만은 없었다.
그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증거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군요. 채주님과 두 부장께서는 맹의 총단으로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혈사채는 무림맹에서 관할하게 될 것입니다.”
“맹주!”
위사령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가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자, 뒤에 서 있던 가신풍이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성큼 나섰다.
위사령이 더는 어쩌지 못하고 으르렁거리고만 있는데, 곡전풍이 그를 제지하며 한 걸음 나섰다.
곡전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진양을 보았다.
“오해가 빨리 풀리길 바라겠소.”
“오해가 풀리게 될지, 깊어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추방산이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명했다. 그러자 무림맹의 무인들이 다가와 곡전풍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7. 남은 자취란 오직 높은 누대뿐
곡전풍과 위사령, 그리고 조전은 무림맹 총단의 혈맹옥(血盟獄)에 갇히고 말았다.
한데 그 이후로 수개월 동안 거의 모든 싸움에서 무림맹이 승전을 이어나갔다.
무림맹이 점령한 천의교의 분타들은 맹에 가입된 각 문파의 장로 격 무인들이 배치됐다. 순순히 항복하는 수많은 신도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었기에 각 문파의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그들을 통솔해 무림맹의 산하 기관으로 다스리기로 한 것이다.
새어나가는 정보가 없으니 무림맹의 작전은 곧잘 통했고, 천의교는 연일 패하면서 투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급기야 천의교는 운태산의 총단만을 남겨두고 거의 모든 분타가 무림맹에 점령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반면 연일 승전을 이어온 무림맹의 분위기는 한층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운태산 아래에 운집해서 마지막 총 공격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곳에 참여한 무인은 진양과 추방산, 그리고 종남파의 장로 봉상탁과 철혈문의 구계악이었다.
다른 무인들은 천의교 분타를 관리하거나 자신들의 문파 사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의교 역시 많은 분타를 잃고 위교사왕 중에 파천일왕과 마소장왕만이 남아 있었으므로 딱히 불리한 싸움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더구나 무림맹은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오지 않았던가.
구계악이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말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오게 됐군요.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천의교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맹주님의 뛰어난 역량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진양은 정중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모두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천의교 분타를 거의 제압하긴 했습니다만, 각 분타에는 무림맹의 무인들보다 기존의 신도들이 더 많습니다. 혹시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오랜 시간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하면 무림맹은 천의교를 모두 처리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유지돼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