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46
신필천하(神筆天下) 146화
구화산 아랫자락에 다다르자 무이오도와 죽반승이 마차 한 대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진양을 보자마자 멈춰 서서 예를 갖췄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가 당주는 어디에 있소?”
진양의 물음에 일도귀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마차의 문을 열어보였다. 그곳에 가신풍이 누워 있었는데, 온몸의 뼈마디가 부러져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신풍은 진양을 보자마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서 인사 드려야 마땅한데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문주님.”
“가, 가 당주!”
진양은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는 곧 감정을 추스른 후 물었다.
“방금 이도귀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소. 도대체 어찌 된 것이오?”
“들으신 대로입니다. 우리가 추방산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추방산은 천의교 교주였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추방산은 무림맹을 이끌고 천의교를 쳐서 이기지 않았소?”
“아닙니다. 무림맹에서 살아남은 자는 처음부터 추방산을 추종하는 천의교 신도입니다. 개방 내에서도 그를 따르는 자들 상당수가 천의교 신도입니다. 그리고 위교이왕은 죽지 않았습니다. 봉 장로님과 구 장로님 모두 추방산과 위교이왕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그런……!”
진양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다 보니 몸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가신풍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천의교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림을 장악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왔습니다. 추방산은 벌써 십수 년 전부터 신도들과 함께 개방으로 들어가서 꾸준히 인지도를 쌓았고, 방주의 자리까지 차지한 것이지요.”
“그게 정녕 사실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는 제가 죽을 거라고 확신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말해주었으니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그는 문주님 측근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건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운태산을 총공격하기 전에 황궁에 건문제의 위치를 알려주었지요. 그리고 문주님이 건문제를 찾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갈지첨을 죽이지 않았소?”
“그 또한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가신풍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뒤로 서너 걸음만 물러나면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가신풍이 물러날 곳은 없었다.
그는 한쪽에 쓰러진 봉상탁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가 힘들었다.
그토록 믿고 함께 지냈던 추방산이 천의교 교주라니!
“추방산! 네놈이 우리를 속였구나!”
“요즘 세상에 속이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속는 것이 나쁜 것이지. 끌끌.”
추방산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좌우에는 마천강과 범릉이 서 있었다.
가신풍이 어금니를 빠득 씹으며 말했다.
“갈지첨은 어찌 된 것이지?”
“죽는 마당에 궁금한 것도 많군. 이야기해 주지. 갈지첨은 사실 우리가 흑석곡으로 찾아가기 하루 전에 맹지덕이 죽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맹지덕을 죽였지. 클클클.”
“맹 장로가……! 맹 장로는 어째서…….”
“맹지덕은 내가 개방의 방주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내 존재를 줄곧 의심했었지. 그리고 갈지첨을 추궁하면서 내가 천의교 교주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날 밤 맹지덕은 양 맹주를 만나서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지만, 결국 내게 먼저 죽은 것이다.”
“그럴 수가…… 맹 장로가…….”
“클클클. 또 궁금한 게 있는가? 죽이기 전에 아량을 베풀 용의는 있다네.”
“하면 개방의 무인들 상당수가 천의교 신도란 말인가? 언제부터 그렇게 많은 신도를 개방에 심었단 말인가?”
“이미 십수 년이나 됐다. 그리고 본교는 자금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네.”
“하면 항산에서 있었던 일도…….”
“물론. 혈사채는 내가 허위 정보를 흘린 것이다. 과거에 천의교와 손을 잡았으면서도 무림맹에 붙은 것이 괘씸하여 손을 썼지. 클클클.”
“이 죽일…… 놈.”
“질문은 끝인가?”
추방산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가신풍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단 하나, 이곳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떨까?
추방산과 위교이왕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단 살 확률이 높지 않을까?
결심을 굳힌 가신풍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순간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추방산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절벽 끝자락에 다가와서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미련한. 차라리 목숨을 구걸하면 살려주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이야기를 들은 진양은 수호필을 꽉 말아 쥐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때 맹지덕 장로가 내게 한 말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군.”
맹지덕 장로는 진양에게 ‘내가…… 죽였…… 방주…….’라고 말을 남겼다.
이는 분명 ‘내가 갈지첨을 죽였다. 방주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일 터였다.
가신풍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같은 일들의 전말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진양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럼 이번 취임식은 추방산이 파놓은 함정이로군.”
“취임식은 언제입니까?”
“내일 저녁쯤이 될 것이오.”
“막아야 합니다, 문주님!”
“하지만 이미 행사를 막기엔 너무 늦었소. 운태산으로 전서구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천의교 무리들이 먼저 보고 오히려 우리가 찾아갈 것을 방비할 가능성이 크오.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 가는 수밖에 없겠소. 쉬지 않고 달려간다면 제때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진양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선 가 당주를 안전하게 옮기시오. 그리고 일도귀는 무림맹 총단에 남아 있는 모든 무인들을 대청으로 모이게 하시오.”
“알겠습니다, 문주님.”
일도귀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양은 우선 혈맹옥에 갇힌 혈사채 무인들을 모두 석방시켜 주었다.
“제가 불초하여 애꿎은 세 분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찌 사죄를 드려야 할지…….”
곡전풍이 껄껄 웃었다.
“허허,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 이제나마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오.”
진양은 거듭 사죄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 추방산이 강호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아 처리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위사령이 성을 냈다.
“그 추악한 영감탱이가 역시 배신자였군! 아니, 배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릴 속인 것이군!”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한 진양에게도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가 진양을 보며 툭 쏘듯이 말했다.
“어떻소? 이래도 우리를 믿지 못하겠소?”
“위 부장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 불찰을 용서하십시오. 급한 문제가 끝나면 차후에 다시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쳇! 번거롭게 무슨 용서를 또 구한단 말이오? 됐소이다. 그나저나 그 추악한 영감탱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요? 운태산으로 가면 있는 거요?”
위사령의 말투는 내내 투박했지만, 진양은 그가 이미 자신을 용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운태산에 있습니다. 내일 저녁에 식이 거행되는데, 아마 그때 일을 저지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소! 당장 갑시다!”
위사령이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 말했다.
진양은 우선 그를 진정시킨 후, 무림맹에 남은 무인들 중 발이 빠른 자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구화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의 문파나 방파를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한 후 지원 요청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런 뒤 진양은 일행을 이끌고 말을 타고 운태산으로 내달렸다.
9. 강호에 지는 별
운태산 정상에 위치한 천의교 총단.
무림맹주의 취임식이 벌어지는 이곳에 수많은 무인들이 북적였다.
이제 이곳 입구에는 정의맹(正意盟) 분타라는 편액이 커다랗게 내걸렸고, 가장 안쪽의 천의당(天意堂) 역시 정의당(正意堂)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맹주의 취임식이 총단에서 이뤄지지 않고 운태산에서 이뤄지는 것은, 이곳에서 천의교를 멸살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추방산은 정의당 대청에 홀로 앉아서 차를 들이켜고 있었다.
평소 자상해 보이던 인상과 달리 홀로 앉아 있는 그의 표정은 몹시 냉혹한 군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차디찬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찻물이 달군. 차가 달아. 클클.”
만약 누군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저도 모르게 양 팔뚝을 쓸어내렸으리라.
그만큼 지금 그의 모습은 몹시 음산하고 냉혹해 보였다.
잠시 후 대청 문이 열리더니 파천일왕 마천강이 들어왔다.
이미 죽었어야 할 그가 태연히 개방의 방주 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놀랄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추방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무슨 일인가?”
“폭뢰옹(暴雷翁)이 왔습니다, 교주님.”
“클클. 들여보내라.”
“예.”
마천강이 공손히 대답하고는 돌아갔다.
지금쯤 정의당 바깥에 모여 있는 무인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당장 입에 거품을 물며 칼을 뽑아 들었으리라.
잠시 후 키가 땅딸막한 노인이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허연 머리카락을 무릎까지 치렁치렁 기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백발의 귀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괴이했다.
노인은 개구리처럼 툭 불거져 나온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말했다.
“작, 작업이 끝, 끝났습니다. 교, 교주님. 켈켈켈.”
말을 뱉는 폭뢰옹은 마치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고, 말까지 심하게 더듬었다.
하지만 피식피식 웃음까지 흘리는 걸 보면 정말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특징인 듯했다.
“수고했네.”
“켈켈, 잔, 잔치는 언, 언제 시작 하, 하는지요?”
“연회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그때 진짜 잔치를 시작하는 거지.”
“켈켈켈! 알,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다른 자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될 것이야.”
“물, 물론입지요! 켈, 켈켈.”
“그럼 잘 숨어 있게.”
“예, 예.”
폭뢰옹은 허리를 굽실거리고는 대청을 나갔다.
홀로 남은 추방산은 다시 탁자로 걸어가서 차를 마셨다. 그가 차 한 잔을 다 마실 때쯤이 되자, 거지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역시 개방의 제자로 위장한 천의교 신도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교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클클. 슬슬 나가볼까?”
추방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의당 앞마당에는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탁자와 의자를 배치해 많은 무인들이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해 두었다.
추방산이 정의당 문을 열고 나오자, 모인 무인들이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했다.
특히 정도 문파의 무인들은 추방산을 극찬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추방산은 손을 들어 답례를 해 보이고는 단상으로 올라섰다.
그는 먼저 이번 천의교와의 전쟁으로 인해 명예롭게 죽은 무림맹의 무인들을 위해 추도식을 가졌다. 무인들 모두 숙연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는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추모가 끝난 후 추방산은 지금까지 천의교를 몰아내기 위해 얼마나 힘든 여정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언급했다. 그리고 앞으로 정의맹을 이끌어 무림의 평화를 지키겠노라 맹세했다.
그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터뜨렸다.
추방산이 손을 들어 보인 후 말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이곳에 모이신 여러 영웅 대협께서는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내려오자,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추방산은 단상을 내려오고 나서도 여러 무인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저는 잠시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추방산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정의당으로 들어갔다.
그가 돌아간 직후,
꽈앙! 꽈광! 쾅! 쾅!
정의당 앞마당에 연이은 대폭발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주변 건물에 불길이 타오르고, 연기가 자욱하게 번졌으며 사방에 피가 튀고 살점이 튀었다. 밤하늘에 비명성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