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5
신필천하(神筆天下) 15화
대머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놈은 죄를 저질렀으니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진양이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마른 사내가 콧방귀를 꼈다.
“흥! 잘못한 걸 알면 벌을 받아야지! 따라오너라! 순순히 따라오면 널 때리진 않으마!”
“어딜 가는 건데요?”
“범죄자가 말이 많구나! 죄를 지었으면 얌전히 따라올 것이지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단 말이냐?”
양진양은 ‘범죄자’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먹은 음식마저 소화가 안 되는 것만 같았다.
그때 대머리사내가 픽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너 같은 범죄자들을 데려다가 개과천선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얌전히 따라와라.”
대머리사내가 진양의 목덜미를 잡고는 끌어당겼다. 진양은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 그가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관인도 아닌 것 같은데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일까? 말하는 걸 보면 객점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진양은 이상한 생각이 들자 우선 시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절 그 객점에 데려가 주세요. 객점 주인어른께 잘못을 빌고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진양이 객점을 찾아가겠다고 하자, 사내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른 사내가 돌연 언성을 높였다.
“흥! 네놈이 가서 사죄한들 맞아 죽기밖에 더 하겠냐?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맞아 죽어도 어쩔 수 없죠. 제가 잘못한 거니까 때려죽인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진양이 완강하게 나오자 사내들은 더욱 난감한 표정이 됐다.
사실 이들은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받고 파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평여 근처의 야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는데, 해사방(害死幇)이라는 이름까지 버젓이 내걸고 있었다. 근방에서는 악명 높은 인신매매 집단이었지만, 지금껏 천상련에서만 지내던 진양으로서는 이들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마른 사내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시끄럽다! 네놈에게 내릴 벌은 우리가 정할 테니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양진양이 비록 무공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원래 머리는 총명한 아이였다. 진양은 이들이 지나치게 당황한다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 고집을 부렸다.
“싫어요! 전 벌을 받으려고 가려는 게 아니에요.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만 그 전에 객점 주인어른께 정중히 사과하고 싶은 거예요!”
“닥쳐라! 사과도 우리한테 하면 돼!”
“아저씨들이 누군데 사과하란 말이에요?”
그러자 대머리사내가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우린 해사방…… 아, 아니야, 아무것도.”
진양은 이 대머리사내가 마른 사내보다 우둔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대머리사내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뭐라구요? 해사방? 해사방이 뭔데요?”
“시끄러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저씨들 누구죠? 전 아저씨들 따라가지 않을래요! 이것 놔요!”
진양이 몸부림을 치자 대머리사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놓치고 말았다.
생각보다 진양의 힘이 억셌던 것이다.
상황이 이리되자 마른 사내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흐흐흐. 우리 정체가 그렇게 궁금하냐? 나는 마취삼(馬取三)이다. 이 녀석은 방두철(龐斗喆)이지. 이제 됐냐? 우리가 이름을 밝혔으니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것이다. 네놈을 절대로 그냥 보내진 않을 거니까.”
하지만 진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대답했다.
“안 갈래요!”
마취삼과 방두철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보았다. 보통 이쯤 되면 두려움에 떨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게 정상이다.
한데 이 소년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당차게 나온단 말인가?
진양은 천천히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이미 생사를 도외시하고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경험까지 있는 진양이다. 한번 이자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자 죽으면 죽었지 끌려가고 싶진 않았다.
“쯧. 결국 귀찮게 만드는군.”
마취삼이 단도를 뽑아 들고 본색을 드러냈다. 하얀 달빛을 받은 도날이 시린 빛을 뿜었다.
진양은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하나도 겁나지 않아. 어차피 난 한 번 죽을 뻔했잖아. 이제 와서 죽는다고 해도 억울할 것 없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나자 오히려 없던 용기까지 생겼다.
한편 마취삼은 단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 곁에서는 방두철이 목뼈를 우두둑 꺾으며 걸어왔다.
마취삼이 혓바닥으로 도날을 핥았다.
“얌전히 가자니까. 거기 가면 네 또래 아이들도 많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에잇! 퉤!”
양진양이 침을 뱉었다.
마취삼이 얼른 피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침이 그대로 뺨에 묻을 뻔했다.
“이놈이!”
눈이 뒤집힌 그가 단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옆에선 방두철이 양손을 뻗어왔다.
그 순간 진양의 뇌리에 과거 천상련에서 익혔던 풍양권법의 두 초식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도와 왼팔 사이로 물꼬가 터져 흐르듯이!’
진양이 순간적으로 보법을 밟더니 마취삼의 단도와 왼팔 사이로 파고들어 주먹을 내찔렀다.
쉬이익! 뻑!
“커억!”
왼쪽 옆구리에 풍결권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마취삼은 오장육부가 뒤집힐 듯한 고통에 두 눈을 부릅떴다.
깜짝 놀란 방두철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달려들었다. 순간 진양은 다시 질풍권 초식을 떠올렸다.
‘얼음처럼 냉정하고, 바위처럼 고집스럽고, 화살처럼 빠르게!’
슈슈슉! 퍼엉!
진양의 주먹이 이번에는 방두철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그야말로 섬광 같은 움직임이요, 질풍 같은 주먹이었다.
방두철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난 뒤에야 털썩 쓰러지더니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웨엑!”
진양은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는 자신의 두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돼…… 됐다!’
실전에서 처음으로 써본 권초였는데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마취삼과 방두철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일어났다. 두 사람은 진양이 무공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너, 너 이놈! 나중에 후회하게 될 줄 알아라!”
마취삼이 버럭 소리치고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방두철도 허겁지겁 그 뒤를 쫓았다.
양진양은 용기가 더욱 치솟았다.
‘그래, 어차피 내가 죽을 각오를 한 몸인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 게다가 나는 저 두 사람을 이겼잖아.’
진양은 아직 어린데다 강호 경험이 없었다.
한데 이제 막 두 초식으로 두 어른을 무찌르니 마치 무적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는 무관에 들어가서 삼 개월 정도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사실 객기에 가까운 용기였다.
진양이 얼른 몸을 날려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잠깐!”
“뭐, 뭐냐?”
“아저씨들을 따라가면 친구들이 있다고 했지?”
진양의 물음에 마취삼과 방두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보았다.
마취삼이 눈썹을 구기고 물었다.
“그런데?”
“날 거기까지 안내해요.”
“뭐?”
“해사방으로 날 안내하라고요.”
진양이 또박또박 말했다.
진양은 이들의 말을 듣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여럿 납치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이미 자신감이 붙은 진양으로선 할 수만 있다면 그들마저 풀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면 마취삼과 방두철은 뜻밖의 말에 내심 조소를 지었다.
‘흥! 네놈이 그 알량한 재주를 믿고 까부는가 본데, 우리 해사방이 네깟 녀석 하나도 어쩌지 못할 만큼 허술할 줄 아느냐? 오냐. 제 발로 걸어오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지.’
마취삼이 소리쳤다.
“따라와라!”
진양은 두 사람을 앞세우고 뒤를 따랐다.
결국 이제는 진양 스스로 그들의 뒤를 쫓게 됐다.
양진양은 두 사람을 따라 산기슭을 돌아 숲으로 들어갔다. 대략 사오 리 정도 더 들어가자 목책이 보였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 기둥이 하나 박혀 있었다. 나무기둥 윗부분에는 장승처럼 얼굴을 새겨놓았는데, 마치 귀신의 그것마냥 흉측해 보였다.
한편 마취삼과 방두철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해사방은 목책을 지나서도 이 리 정도 더 걸어가야 했지만, 보통 이곳에서 파수를 서는 사람이 보여야 정상이었다.
마취삼과 방두철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계속 걸어갔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두 사람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짙어져 갔다.
“마 형,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지 않수?”
방두철의 말에 마취삼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수상해.”
두 사람은 걸어가면서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나뭇가지나 풀잎이 마구 꺾이고 짓밟혀 있었다. 아마 한바탕 싸움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양진양은 그런 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채 내심 바짝 긴장하며 두 사람을 따라갔다. 용기백배하여 무작정 따라오긴 했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전방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런! 정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군! 침입자인가?”
마취삼의 외침에 방두철이 걸음을 빨리했다.
양진양이 보기에도 이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숲 안으로 다가갈수록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세 사람이 허겁지겁 숲길을 돌아가니 마당에 불을 환히 밝힌 낡은 사찰 하나가 나타났다. 해사방은 이 버려진 사찰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싸움은 사찰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안을 들여다보니 침입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침입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이 활처럼 굽은 꼽추노인이었다. 노인 주위로는 벌써 중상을 당해 쓰러진 자들이 수두룩했다.
해사방의 무리로 보이는 패거리들은 꼽추노인을 둘러싼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백발 마두야!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러는 게냐!”
해사방의 패거리 중 한 명이 손에 든 장창으로 노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꼽추노인이 히죽 웃었다.
“네놈들은 원한이 있는 녀석들만 잡아다가 팔았던고?”
“흥!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
“상관있고말고! 싸가지 없는 놈들을 잡아서 혼내주는 게 요즘 내 일이니까 당연히 상관있지!”
꼽추노인은 이가 빠져 우둘투둘 녹슨 도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도날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모습에 해사방의 무리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제 막 해사방에 도착한 마취삼과 방두철은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을 뿐이었다.
놀라기는 진양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진양의 처음 생각으론 마취삼과 방두철을 인질 삼아 해사방의 방주와 거래를 할 생각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해사방에 큰 변고가 생겼으니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마침 소리치던 장창의 사내가 마취삼과 방두철을 보고는 반색했다.
“마 아우! 방 아우! 어서 오게! 어서 힘을 합쳐서 저 노망난 늙은이를 치세나!”
“아, 예, 방주님.”
마취삼과 방두철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는 진양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방주의 눈에도 진양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꼽추노인이 조소를 지었다.
“흥! 조무래기 몇 마리 더 늘었다고 상황이 달라질까?”
“시끄럽다! 늙은이!”
방주가 고함을 내지르며 꼽추노인을 향해 쇄도했다. 과연 방주답게 그의 움직임은 몹시 재빠르고 민첩했다.
“가소로운!”
꼽추노인이 순간 도를 들어 올려 옆면으로 창대를 후려쳤다.
터엉-!
가볍게 툭 친 듯했는데 장창을 든 방주는 몸 전체가 휘청거리며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이어서 꼽추노인이 번개처럼 몸을 날리더니 연이어 달려드는 해사방의 패거리를 차례차례 쓰러뜨려 갔다.
“크악!”
“아아악!”
그의 도날이 번쩍번쩍 빛을 뿜을 때마다 해사방의 무리는 선지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갔다.
그나마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방주였다.
하지만 그 역시 오 초를 채 넘기지 못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몇 번의 도식을 받아냈지만, 결국에는 우둘투둘한 도날에 옆구리 살이 찢겨 나가고 말았다.
“크아악!”
그가 단말마 비명에 쓰러지고 나자 마당에는 멀쩡하게 서 있는 자가 없었다.
스무 명 남짓한 해사방의 무리를 노인은 반각도 되지 않는 시간에 휩쓸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