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6
신필천하(神筆天下) 16화
날카로운 눈초리로 마당을 한차례 휩쓸어보던 노인은 대문 입구에서 얼이 빠진 채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바로 마취삼과 방두철이었다.
“흥! 조무래기가 아직 남았군!”
노인이 바람처럼 날아가 마취삼을 낚아채려고 했다.
그 순간 마취삼이 털썩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아이고! 마두님!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이제 막 도착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저 마두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요!”
“흥! 허구한 날 악행을 저지르다가 죽을 때가 되니 사리판단이 되는 모양이구나!”
“소인, 앞으로는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요!”
그러자 곁에 서 있던 방두철도 얼른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저도 마 형과 함께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럼 어디 네놈들 낯짝이나 다시 한번 보자!”
노인이 마취삼과 방두철의 목덜미를 쥐고 번쩍 일으켰다.
그런데 순간 노인의 안색이 흠칫 떨렸다. 두 사람의 내기가 크게 뒤엉켜있었던 것이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이렇게 만들 수 없었을 텐데…… 부상을 입힌 자의 내공 수위가 몹시 두터웠으리라.’
“이제 보니 어디서 된통 얻어맞고 온 조무래기였군. 너희에게 훈계를 내린 자가 누구더냐?”
노인의 물음에 마취삼과 방두철이 우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두 사람의 시선이 문밖에 서 있는 양진양에게 향했다.
노인이 둘의 시선을 좇다가 양진양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응? 네놈은 또 뭐냐?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못된 것만 배웠구나! 네놈은 왜 내게 큰절을 하지 않는 것이냐?”
노인이 마취삼과 방두철을 뿌리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양진양은 갑자기 질책의 화살이 자기에게 돌아오자 당황한 기색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 전…… 전…….”
“흥!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이 어르신이 똑똑히 가르쳐 주지!”
노인이 다시 쏜살처럼 날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일장을 내뻗었다. 진양이 해사방의 패거리라고 오해 한 것이다.
진양은 깜짝 놀라서 물러났지만, 노인의 민첩한 손길을 미처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노인의 손바닥이 진양의 복부에 정확히 내다 꽂혔다.
펑!
그러나 그 순간 진양의 전신에 흩어져 있던 자양진기가 다시 본능적으로 운기되면서 또 한 번의 호체신공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노인이 발출한 장력은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말았다.
“헙!”
쏟아낸 진기가 되돌아오자 노인이 깜짝 놀라서 훌쩍 물러갔다.
다행히 그는 강호에서 알아주는 일류고수였다. 반탄되어 돌아온 장력을 순간적으로 풀어 부상을 면할 수가 있었다.
노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해사방에 이런 기재가 있었던가?’
아무리 봐도 나이는 약관도 지나지 않았을 소년이다. 한데 도무지 그 나이에 갖출 수 없는 내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나!
“흥! 잔재주를 부릴 줄 아는구나!”
“아, 오해입니다. 저는…….”
“시끄럽다! 네놈이 맨손으로 대적하니 노부 역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상대해 주마!”
노인이 도를 땅에 박아 버리고는 다시 몸을 번쩍 날려 왔다. 순식간에 진양의 코앞에 다다른 그가 빛살처럼 일장을 뻗어냈다.
진양은 당황한 와중에도 얼른 몸을 비틀어 피했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허방을 내찌른 노인이 다시 왼손을 뻗었다.
“잠시만 제 말을……!”
쉬이익!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는 녀석에게 들을 말은 없다!”
진양이 다시 허리를 굽혀 장풍을 피하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어르신, 저는 아무런 잘못도……!”
“흥! 뻔뻔한지고!”
“정, 정말입니다! 우선 손에 사정을 두시고 말로……!”
진양은 연신 변명을 하면서 노인의 장, 권, 각을 피했다.
노인으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뭐지?’
분명 보법이나 움직임을 보면 무공을 배우지 않은 듯한데,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모든 공격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가 혼신의 힘을 다했다면 벌써 진양은 쓰러지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공격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소년을 상대로 죽자고 덤벼들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결국 노인이 출수를 거두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가까스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진양이 무릎을 짚고 심호흡을 했다.
“헉, 헉!”
노인이 진양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결 부드러워진 어투로 물었다.
“존사(尊師)가 어떻게 되시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양은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존사라니…… 글을 가르쳐 준 사부님을 물어보시는 걸까?’
하지만 딱히 사부님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진양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말했다.
“저는 사부님이 안 계십니다.”
“흠? 돌아가셨단 말이냐?”
“아뇨. 사부님을 정식으로 모셔본 적이 없습니다.”
“뭣이?”
노인이 눈썹을 성큼 추켜올렸다.
“건방진!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해?”
진양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정말입니다.”
“흥! 그럼 네가 무공 천재라도 된단 말이냐?”
“예? 무공이라뇨?”
진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껏 글을 가르쳐 주신 사부가 누구냐고 묻는 줄만 알았지, 무공을 가르쳐 준 사부를 묻는 것이라곤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양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르신,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아요. 전 무공을 배운 적이 없거든요.”
“뭐야? 지금 노부를 앞에 두고 말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노인이 버럭 화를 내자, 진양은 답답한 마음만 더해갔다.
“정말입니다, 어르신. 왜 제가 무공을 익혔다고 생각하세요?”
“네놈이 정말 이 노부를 무시하는구나! 네놈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던들 노부의 권각을 그리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면 노부의 실력이 그만큼 형편없다는 뜻이렷다?”
“그럴 리가요.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전 정말 무공을 배운 적이 없어요. 모시는 사부님도 없구요.”
노인이 물끄러미 진양을 바라보았다.
말투나 표정을 보아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지 않고 지금과 같은 몸놀림을 보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아니지. 이 녀석이 움직일 때는 정말 무공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녀석 같았단 말이지. 보법도 엉망이었으니까.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
결국 노인은 화제를 돌렸다.
“그럼 무공도 할 줄 모르는 어린 녀석이 해사방에는 왜 들어온 것이냐?”
“전 해사방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
그제야 진양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얘기해 주었다. 물론 천상련에서 도망쳐 나온 이야기는 생략했고, 마취삼과 방두철을 만난 순간부터만 전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어 정처없이 떠돌이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가왔다.
“흠. 그런 사연이었군. 내 잠시 너를 오해했구나.”
“괜찮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왜 제가 무공을 익혔다고 생각하셨나요?”
“다시 한번 묻겠다. 정말 네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단 말이지?”
“네. 예전에 간단한 초식 두 가지를 배운 적이 있지만, 그게 전부예요.”
“그럴 수가…….”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진양에게 다가와 손목을 낚아챘다. 그가 가만히 맥을 짚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진양의 몸에서는 내공이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이 일장을 내쳤을 때 진양이 반탄을 일으켰던 순간이 기억났다. 그것만은 내공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참 이상하군. 양손바닥을 내밀어보겠느냐?”
“이렇게요?”
“그래. 그대로 있어라.”
“네.”
순간 노인이 기마자세를 취하더니 돌발적으로 양손을 내뻗었다.
“합!”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의 두 손이 정확히 진양의 양손바닥에 마주쳤다.
퍼엉!
그 순간 다시 진양의 몸에서 호체신공이 발동했다. 그 바람에 아까와 마찬가지로 노인의 손바닥을 통해서 쏟아부어진 장력이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말았다.
노인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터라 그 장력을 가볍게 튕겨내며 뒤로 훅 날아올라서 물러갔다. 그러고 나서도 그는 서너 걸음을 더 물러간 후에야 가까스로 멈춰 설 수 있었다.
이쯤 되자 진양 역시 자신의 몸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라기는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맥을 짚을 때만 해도 아무런 내기가 감지되지 않았는데, 공격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호체신공이 발동된 것이다.
“별 희한한 경우를 다 보겠군.”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진양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가만히 서 있는 진양을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아가며 구경하니, 진양은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때였다.
“끼야악!”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사찰 안에서 들렸다.
“응?”
노인은 그제야 해사방 패거리와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그는 얼른 몸을 날려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진양도 그 뒤를 따라가 보니 해사방 패거리 중 한 명이 어디선가 여인을 끌고 나와 인질로 잡고 있었다.
“둔도백마(鈍刀白魔)! 우리를 가만히 두고 물러가라! 열 셀 동안 가지 않으면 이 여자를 죽여 버리겠다!”
그러자 둔도백마라고 불린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내가 간다고 한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냐? 괜한 헛수고하기는.”
노인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바닥에 꽂힌 도를 뽑아 들었다.
해사방의 사내는 노인이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자 더욱 초조해졌다. 그가 여인의 목에 칼을 바짝 들이밀고는 다시 위협했다.
“그, 그 칼 내려놔! 내려놓고 물러가란 말이야!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안 그러면? 그 여자 죽일 게냐? 죽이려면 죽여라. 노부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자를 죽여왔는지 아느냐? 거기에 저 계집 하나 더 죽는다고 눈썹이나 까딱할까?”
“이익!”
그때였다.
쒜에에엑!
어느새 노인의 손을 떠난 둔도(鈍刀)가 바람을 가르며 빛살처럼 날아갔다.
푹!
“……끄억!”
여인을 인질로 잡고 소리치던 사내는 순식간에 이마에 도가 박힌 채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사로잡혀 있던 여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노인은 쓰러진 사내에게 터벅터벅 걸어가며 달아나는 여인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사람이 저렇게 이기적이라니까. 같이 갇혀 있던 사람들도 풀어주고 가면 좀 좋아?”
노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사내의 이마에 박힌 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를 들고는 마취삼과 방두철을 가리켰다.
“너희 둘.”
“예, 예!”
마취삼과 방두철이 오들오들 떨며 대답했다.
“가서 여기 납치되어 있던 자들을 풀어주어라.”
“알, 알겠습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두 사람이 허겁지겁 건물을 돌아갔다.
양진양은 해사방의 소굴에 들어왔다가 뜻밖에도 의협심이 투철한 노인을 만나게 되자 절로 경외감이 우러나왔다.
“어르신은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이 나이에 어린놈한테 칭찬을 다 들어보는군.”
그러면서도 노인은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입꼬리를 올렸다.
양진양은 더욱 공손한 자세로 다가가서 물었다.
“어르신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노부는 임패각(林覇覺)이다. 다른 사람들은 둔도백마라고도 부르지.”
둔도백마 임패각.
만약 양진양이 강호의 인물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더라면 입을 딱 벌리고 말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