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7
신필천하(神筆天下) 17화
그는 사람들이 마교(魔敎)라고도 부르는 명교(明敎) 출신이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명교는 강호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 명 태조인 홍무제가 바로 명교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당시의 위세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나 홍무제 주원장은 호유용 사건 이후로 명교도들을 대대적으로 주살해 왔다. 그 바람에 명교의 세력은 크게 쇄락해서 지금은 아예 교도들이 뿔뿔이 흩어져 총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그중에도 둔도백마 임패각은 명교가 낳은 걸출한 영웅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때 주원장을 도와 원나라 세력을 몰아냈던 그는 명나라가 세워지자마자 홀연히 명교를 떠났다. 그리고 무림에 은거하면서 악한들을 찾아서 혼뜨검을 내주곤 했던 것이다.
그는 늘 이가 우둘투둘 빠진 녹슨 도를 들고 다녔는데, 그 바람에 둔도백마라는 별호가 붙었다.
양진양은 임패각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자 젊은 피가 끓는 듯했다. 그래서 얼른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어르신!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갑작스러운 요구에 임패각이 이맛살을 잔뜩 구겼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어르신의 의협심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어르신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제발 절 제자로 거두어주세요.”
양진양이 간곡한 어조로 부탁했다.
진양은 천상련에서 지내게 되면서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을 흠모해 왔다. 그러다가 천상련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는 자신의 나약함을 더욱 한탄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의협심이 충만한 영웅을 만나게 됐으니 어떻게 해서든 무공을 꼭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임패각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일없다.”
“어르신,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할게요.”
“일없대도!”
“역시…… 제 재능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양진양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묻자, 임패각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재능이 없다니?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심후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재능이 없다니?
임패각이 코웃음을 치고는 물었다.
“도대체 누가 너한테 재능이 부족하다더냐?”
“누구랄 게 있겠어요? 절 보는 모든 사람이 그랬는걸요.”
“흥! 누군지는 몰라도 삼류무인이 분명하겠군.”
양진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풍천익과 곽연이 삼류무인 같지는 않았다. 특히 풍천익은 화산파의 제자 두 명을 가볍게 무찌르지 않았던가?
그때 진양은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활짝 웃으며 반문했다.
“어르신, 그럼 제가 재능이 있단 말인가요?”
“흥! 내가 가르쳐 보지 않았는데 어찌 안단 말이냐?”
“아…….”
“아무튼 나는 제자를 키우지 않는다. 그러니 이 얘기는 그만하자.”
임패각이 걸음을 돌리는데, 진양이 다시 그의 앞으로 쪼르르 돌아가서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제발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어허! 내 말이 말 같지 않느냐? 나는 널 제자로 받지 않겠다니까!”
사실 임패각은 과거에 다섯 명의 제자를 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항몽 전쟁 중에 두 명의 제자를 잃었고, 다른 세 명의 제자는 명나라가 세워진 이후 그릇된 길로 빠져 악한 짓을 일삼다가 결국 정도 무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임패각은 두 번 다시 제자를 두지 않았다. 힘이 있으면 군림하려고 하고, 군림하면 지배하려 들고, 지배하면 횡포를 부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서 모든 악의 근원은 주제에 맞지 않는 힘에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남은 평생 다시는 제자를 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진양이 아무리 애원해도 그의 마음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고집이 도저히 꺾이지 않을 것 같자 진양도 더는 말 못하고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임패각은 진양을 곁눈질로 흘깃 보았다.
‘한데 저 녀석의 내력이 궁금하단 말이야. 한번 천천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는 양진양이 어쩌다가 그렇게 막강한 내공을 가지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넌지시 진양을 돌아보고 물었다.
“어디 갈 곳은 있더냐?”
“아니요. 없어요.”
“잘됐다. 그럼 날 따라다니며 시중이나 드는 것은 어떻겠느냐?”
양진양은 귀가 번쩍 뜨였다. 얼른 달려가서 임패각 앞에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쯧! 넌 내 제자가 아니래도! 나는 그저 시종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네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다!”
“아…….”
진양의 표정에 실망감이 스쳤다.
하지만 진양은 곧 생각을 고쳤다. 어차피 갈 곳도 없는 바에야 이 노영웅을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임패각이 기분이 좋은 날이면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겠습니다.”
“그것참 잘됐군. 네 입으로 시종이 되겠다고 했으니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 어르신.”
그때 사찰 후원이 시끌시끌하더니 십여 명의 사람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옷가지가 너덜너덜 떨어지고 전신이 상처투성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당까지 달려나왔다가 바닥에 처참한 몰골로 쓰러진 해사방 패거리들을 보고는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한쪽 곁에 서 있는 임패각과 양진양을 보고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마침 사람들 뒤를 따라온 마취삼과 방두철이 얼른 소리쳤다.
“모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노인도 있었고 아녀자도 있었다. 물론 진양 또래의 소년도 있었다. 그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기만 할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자 임패각이 버럭 성을 냈다.
“아, 풀어줬으면 얼른 집으로 돌아갈 것이지 뭘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거야? 전부 확 다시 잡아넣을까?”
그가 내공을 가득 실어 소리치자 사찰 지붕의 기와가 다르르 떨었다. 그제야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임패각은 곧장 마취삼과 방두철을 불렀다.
“밖에 나가서 동쪽 숲으로 가면 말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게다. 가서 끌고 오너라.”
“예, 어르신.”
마취삼과 방두철이 공손히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동쪽 숲으로 조금 들어가자 과연 비루먹은 말 한 마리가 나무 기둥에 매여 있었다. 말은 어찌나 마르고 볼품이 없는지 보는 사람의 눈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저 노인이 무공 하나는 뛰어나지만 타고 다니는 말은 정말 볼품이 없구나.’
두 사람은 차마 속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못하고 묵묵히 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이들이 줄을 풀고 고삐를 쥐자마자 말이 사납게 고개를 저으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체격이 다부진 방두철조차도 힘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어이쿠!”
방두철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일어나자, 말이 ‘푸식!’ 콧바람을 뱉었다. 그 소리가 마치 비웃는 듯하여 방두철은 못내 자존심이 상했다.
“이놈이!”
방두철이 다시 고삐를 쥐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말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방두철이 한 발 끌려가고 말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마취삼이 얼른 달려들었다. 결국 두 사람이 고삐를 쥐고 비루먹은 말 한 마리를 끌고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간,
이히히힝!
말이 앞발을 치켜 올리며 울부짖자 두 사람은 동시에 줄을 놓치면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마취삼은 보통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얼른 일어났다.
“안 되겠네, 방 아우. 내가 그 영감님한테 다녀오지.”
마취삼은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임패각이 버럭 성질을 부렸다.
“왜 혼자 오는 게냐?”
“죄송합니다, 어르신. 말이 워낙 범상치 않은 준마라 도저히 저희들로선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흥! 그깟 비루먹은 망아지가 무슨 준마라는 것이냐? 괜한 요령 부리지 말고 어서 끌고 오너라.”
“어르신, 사정 좀 봐주십시오. 정말로 저희로선 너무 힘듭니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얘야, 네가 가서 끌고 와보아라.”
“예? 제가요?”
양진양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있느냐?”
“아, 네…….”
진양이 순순히 대답하고는 걸음을 옮겼지만 내심 걱정이 가득했다.
‘저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해내지 못한 걸 내가 어떻게 끌고 올 수 있을까? 영감님이 날 혼내시려고 일부러 시킨 걸까?’
사실 두 가지 초식으로 마취삼과 방두철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단순한 힘을 겨룬다면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을 게 당연했다. 한데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못한 일을 자신보고 하라니.
그래도 이미 시종이 되겠다고 약속한 이상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진양이 마취삼을 따라가자 과연 비루먹은 말 한 마리가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그 앞에는 방두철이 큰대자로 널브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마도 마취삼이 다녀오는 동안 혼자서 말을 끌고 오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한 모양이었다.
방두철은 진양을 보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진양은 내심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비쩍 마른 말이 무슨 힘이 있다고 저럴까?’
그래도 두 사람이 진심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는 방심하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고삐를 쥐고 당겨보았다.
과연 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진양도 말이 겉보기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말이 고개를 휙 젖혔다.
그 바람에 진양이 쥐고 있던 고삐가 휙 딸려갔다. 무의식중에 강한 힘을 받게 되자 진양의 체내에서 다시 호체신공이 발동했다.
무의식중에 내기가 발출되자 저항하던 말은 오히려 그 충격에 두어 걸음 이끌려 오고 말았다.
마취삼과 방두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던 말이 드디어 두어 걸음 앞으로 내디딘 것이다.
진양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저항하려고 하기에 고삐를 조금 더 꼭 쥐고 있었던 것뿐인데, 오히려 말이 끌려오니 반갑기만 할 뿐이었다.
진양은 다시 고삐를 당겨보았다.
한데 이번에도 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양의 몸속에는 심후한 내공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적기에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저 뚝심으로만 고삐를 당기니 말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말도 끌려가기 싫었는지 앞발을 높이 추켜올리며 고개를 휘저었다.
이히히힝-!
순간 진양의 몸이 고삐를 따라 허공으로 솟았다. 그 순간 또 호체신공이 발출됐다.
진양이 얼른 바닥에 내려서면서 고삐를 잡아당기니, 이번에도 말이 두어 걸음을 따라오고 말았다.
“오오!”
마취삼과 방두철이 진심으로 놀라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 모양새가 자못 우스웠다.
그냥 끌어당기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말이 저항할 때마다 오히려 두어 걸음씩 끌려오니 영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어 번 저항을 거듭하던 말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진양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진양은 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