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34
신필천하(神筆天下) 34화
진양은 물론 유인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치료를 하려고 왔다면서 갑자기 치료해 주기가 싫어졌다니?
유인표가 얼른 짚이는 것이 있어 물었다.
“혹시 보상금이 적어서 그렇습니까? 치료 과정이 까다로운 독이라면 충분히 감안해서 사례를 해드리지요.”
“호오, 얼마나 주실 수 있겠소?”
백파가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유인표가 차분하게 되물었다.
“얼마면 충분하실는지요?”
“글쎄…… 황금 천 냥?”
“……!”
유인표와 양진양이 순간 돌처럼 굳은 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황금 천 냥이라니!
은자로 천 냥이라고 해도 놀라 뒤집어질 판인데, 황금으로 천 냥이라니?
아무리 부유한 금룡표국이라지만 그만한 돈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인표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로…… 까다로운 독입니까?”
“훗! 세상에 그런 독이 어디 있겠소? 그럼 황금을 처바르면 낫는 독인가 보지?”
말을 마친 백파가 배꼽을 쥐고 킬킬거렸다. 그 웃음소리가 몹시 경박하고 기분 나쁘게 들렸다.
그제야 백파가 실없이 내뱉은 소리라는 것을 안 유인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탁자를 ‘탕’ 치면서 일어났다.
“도대체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말하지 않았소? 내가 치료하지 못할 독은 없지!”
“허튼소리! 그렇다면 어째서 실없는 소리나 내뱉고 있는 거요? 실력이 없으니 하는 소리겠지!”
“뭣이? 내가 치료하지 못하는 독은 없소!”
“그럼 어째서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거요?”
“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드니까!”
백파가 손가락질로 양진양을 가리켰다.
유인표와 진양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볼 뿐이었다.
유인표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양을 돌아보았다.
“양 소협, 혹시 아는 분이오?”
진양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백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더구나 진양은 지난 세월 천상련에 갇혀 지냈고, 나와서는 동굴 속에서만 지냈으니 아는 얼굴이라곤 몇 명 되지도 않았다. 기껏 해봐야 근래 한 달여 동안 돌아다니면서 스친 인연일 텐데, 잠깐 스친 사람들을 어찌 일일이 기억할까?
진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처음 뵙는 분입니다. 백 의원님, 혹시 저를 아십니까?”
“흥! 네놈이 누군지 내가 알 게 뭐냐?”
백파의 대답에 유인표와 양진양은 더욱 모를 표정이 됐다. 도대체 이 노파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쯤 되자 두 사람은 이 노파가 정말로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인지, 아니면 심보가 고약한 그저 미친 노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유인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백무량을 불러야겠다. 그가 지금 독을 치료 중이니 이 노파가 정말 독에 대해 잘 아는지 시험해 볼 수 있을 게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유인표는 얼른 시종을 불렀다.
“가서 백 표사를 불러와서 이 노파를 모시고 나가도록 해라.”
“예, 나리.”
시종은 몸을 돌려 나가면서도 내심 의아하게 생각했다. 노파를 끌어내려고 한다면 주위에 다른 표사들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아직 병이 다 낫지도 않은 백 표사를 불러오라고 하는 것일까?
반면 백파는 유인표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돌려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녀가 차갑게 일렀다.
“나는 치료할 수 없는 게 아니야. 치료하지 않겠다는 게지.”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어쨌든 그렇다면 치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흥! 내 말을 믿지 않는군.”
유인표는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 표사 백무량이 대청으로 들어왔다.
“국주님, 부르셨습니까?”
“여기 이 노파를 대문까지 모셔다 드리게나.”
유인표는 일부러 ‘의원’이라는 호칭 대신 ‘노파’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알겠습니다.”
백무량이 내심 의아해하면서도 백파를 이끌었다.
“그만 가시지요.”
백파는 백무량에게 팔이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않겠다고 버틸 수도 있겠지만 굳이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한데 백무량의 손이 몸에 닿자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흘흘, 독에 당한 지 한 달 정도 됐나 보군.”
그 말에 백무량은 물론 유인표와 양진양도 깜짝 놀라서 백파를 바라보았다. 그저 손이 닿았을 뿐인데 백파는 백무량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보았던 것이다.
백무량은 이 귀신같은 노파의 추측에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고, 유인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자가 독에 당했다고 했소?”
백파는 곧 유인표의 심중을 읽을 수 있었다.
‘흘흘. 나를 시험해보는 것이렷다?’
백파가 백무량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자는 내장을 상했군. 오령지(五靈脂), 소목(蘇木), 토구(土狗), 생용골(生龍骨), 천금자(千金子) 따위로 처방을 받았겠지?”
유인표와 백무량은 들을수록 놀라웠다.
실제로 백무량은 백파가 말한 약재들로 조제를 해서 먹는 중이었다.
백파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합분(蛤紛)과 철선초(鐵線草), 투골균(投骨菌)을 배합해서 조제한 후 매일 저녁마다 복용하면 칠 주야 후에는 완치될 것이오.”
백파의 말에 유인표와 백무량은 그저 멍한 표정이 됐다. 유인표는 곧 정신을 수습하고는 얼른 시종을 시켜 약을 조제한 의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만약 백파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의원 역시 깨닫는 바가 있을 터였다.
이쯤 되자 유인표는 백파가 단순히 미친 노파가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백 의원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백파는 유인표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고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글쎄, 환자가 맘에 안 든다고 하지 않았소?”
“서로 일면식도 없다면서 어찌 치료해 주기를 거부하십니까?”
“내가 싫어하는 상이라서 그렇소. 사람 싫은 데 어디 이유 있나?”
백파가 끝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니 유인표와 양진양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정이 이리되자 진양도 괜히 멋쩍은 마음이 들어 유인표를 말리고 나섰다.
“국주 어르신, 그만 보내 드리지요. 저분이 절 치료하고 싶지 않다는 데야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제 운명이라 여겨야지요.”
하지만 유인표는 이 노파를 그대로 떠나보내기가 싫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구해준 양진양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은인으로서 그를 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의 사람됨에 이끌려 절로 친분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진양이 완치되면 표국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의까지 할 생각이었다.
만약 이대로 이 노파를 보냈다가는 또 언제 용한 의원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인표가 다시 물었다.
“정녕 치료하지 않고 가시렵니까? 만약 완치만 된다면 은자 서른 냥을 더 드리지요.”
“흐음.”
백파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로서는 이대로 가자니 양진양이 짐짓 소탈하고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받아들이지.”
그녀가 선뜻 수락하자 유인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입니까?”
“그렇소. 단, 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부족함이 없어야 할 거외다.”
“물론이지요. 여봐라! 어서 백 의원님께 묵을 곳을 안내해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라!”
“예, 나리.”
시종이 다가와서 백파를 안내해 갔다.
그들이 대청을 나가고 나자 유인표가 양진양의 손을 맞잡았다.
“양 소협, 정말 잘된 일이오.”
“국주 어르신 덕분이지요.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씀을!”
유인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반면 진양은 조금 전 백파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밤 백파가 독을 치료해 주겠다며 진양의 방을 찾아왔다. 진양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어쩐지 이 노파가 썩 내키지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백파는 진양을 침상에 눕게 한 후 맥을 짚더니 곧 약방문을 지어 시종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진양에게 웃옷을 벗게 하고는 침을 꺼내 각 부위의 혈을 찔러갔다.
한데 백파가 침을 찌를 때마다 진양은 아찔한 고통이 뇌리까지 들쑤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윽고 네 번째 침을 맞았을 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저도 모르게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악!”
침을 놓던 백파가 혀를 끌끌 차며 눈을 흘겼다.
“어린것이 참을성이 없구나.”
“백 의원님, 너무 아파요. 조금 덜 아프게 할 수는 없습니까?”
“흥!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도 모르는가? 어찌 몸이 편하면서 병만 낫는 침술을 원하는고?”
백파는 날카롭게 대꾸하면서 거침없이 다섯 번째 침을 놓았다. 이번에는 등허리 부분에 위치한 간유혈(肝兪穴)이었는데, 침이 다섯 푼 깊이로 들어가자 진양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숨도 쉬기 힘들었다.
본래 간의 기운을 가장 잘 전달받는 간유혈의 경우에는 침을 놓을 때 통상 삼 푼의 깊이로 찔러야 한다. 한데 그보다 이 푼이나 더 깊이 들어갔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끄윽!”
통증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더니 잇몸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백파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침을 놓아갔다. 그녀가 침을 한 대씩 놓을 때마다 진양은 뇌리를 들쑤시는 고통에 사경을 헤맬 정도였다.
‘이러다가 침을 맞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침술이 어찌나 고약한지 정신을 잃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자 백파는 놓았던 침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침을 모두 거둔 백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퉁명스레 말을 던졌다.
“내일부터 시종이 달여주는 약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도록 해라.”
진양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대답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다 나을 수 있을까요?”
“흥! 욕심도 많구나. 오늘 처음으로 침을 맞았으면서 벌써부터 나을 생각을 하다니.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지 그러느냐?”
백파의 툭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 때문에 진양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정말 시종이 약재를 달여왔다.
한데 그 약이 어찌나 쓴지 한 모금 입에 넣었던 진양은 하마터면 모조리 토해낼 뻔했다. 코를 막고 꾸역꾸역 약을 마신 진양은 하루 종일 단 것을 입에 물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오후가 되어서 진양은 서서히 운기를 해보았다. 과연 침술과 약재가 효력을 발한 것인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운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력을 끌어올리는 양이 많아지면 어김없이 현기증이 생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백파는 매일 밤마다 찾아와서 침을 놓았다. 그럴 때마다 진양은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백파는 위로의 한마디는커녕 오히려 진양이 참을성이 없다고 나무라기만 했다.
그렇게 칠 주야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