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40
신필천하(神筆天下) 40화
한편 허공으로 솟아오른 진양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껏 지둔도법을 사용했으니 상대도 그 움직임에 어느 정도 적응되었을 것이다. 한데 지금 내가 빠르고 유연한 검공을 사용한다면 또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진양은 허공에서 펼치기에 딱 좋은 검공을 떠올렸다. 행동은 생각과 동시에 이어졌다.
“하앗!”
그가 기합성을 터뜨리고는 도를 휘두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광이 번뜩이며 이어지니 마치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지는 듯했다.
바로 십절류의 야공유성이었다.
이에 흑표는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진양의 도공을 피해냈다. 이어서 그가 번개처럼 검을 후려오니 진양도 방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양이 얼른 검을 돌려세우며 몸을 눕혀 피하는 강발거목 초식을 구사했다.
도검이 부딪치면서 뒤로 눕던 진양이 옆으로 두어 걸음 옮겨갔다. 이어서 그는 곧바로 십절류의 선풍유검 초식을 전개했다.
이렇듯 사뭇 둔해 보이는 지둔도법과 유연하고 화려한 십절류의 무공이 서로 뒤섞이니 진양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기기묘묘했다.
관람자들이 저마다 감탄해 마지않으며 갈채를 보냈다.
특히 남옥은 매우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유인표에게 칭찬을 했다.
“정말 자네의 사람 보는 안목은 알아줘야겠구먼! 어디서 저런 인재를 찾아냈단 말인가?”
“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양 형제가 제 딸을 구해주면서 연이 닿은 것이지요.”
“하하하! 무공도 뛰어난데 의협심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하영웅이라 할 만하겠네!”
유인표는 빙그레 미소로 답했다.
그는 여전히 날렵하게 움직이는 흑표를 물끄러미 보다가 남옥에게 되물었다.
“저자의 검법이 실로 기이하군요. 일반적인 검리에는 맞지 않으나 날렵하고 강맹하니 제가 이 자리에서 안목을 크게 넓히게 됐습니다.”
“후후, 예전에 나는 해남에서 온 무인을 한 명 알고 지냈다네. 그때 저 아이를 그 무인에게 잠시 맡겼었지.”
“해남이라면…… 혹시 저자의 존사가 해남파 무인이라는 말씀입니까?”
“하하, 역시 자네는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아는군.”
유인표는 그제야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해남파 무공의 특징은 번개처럼 빠르고 초식의 변화가 신묘막측하다는 것이다. 해남파의 대표적인 검법에는 반수검(反手劍)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왼손에 검을 쥐고 검법을 펼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해남파는 중원에서 통용되는 검리와 달리 검날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사용한다.
처음 흑표가 이런 자세를 취했을 때, 유인표는 사뭇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해남파의 무공을 전수받았다고 하니 모든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남옥을 향해 말했다.
“해남파의 검법이라면 그 검리를 깨우치기가 매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한데도 저 흑표라는 자는 검술의 경지가 대단한 듯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해남파는 검식을 한번 펼치게 되면 반드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들었는데, 자칫 흥을 돋우기 위한 대련이 정도를 넘어설까 염려되는군요.”
“하하! 그건 걱정 말게. 흑표가 해남파의 무인을 사부로 모셨었지만, 저 아이 자체는 해남의 사람이 아닐세. 융통성이 없는 규율 정도야 저 아이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문제 아니겠나?”
“그도 그렇군요.”
유인표는 부드럽게 대답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내심은 여전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로 해남파의 무인들은 검식을 펼치게 되면 상대방에게 반드시 상처를 입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는 대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그들의 검술이 지나치게 패도적이고 음독한 면이 있어서 중원에서는 한때 이들을 사마외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의협을 행하기에 결국 무림에서도 차츰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들이 사용하는 검술만큼은 여전히 매섭고 날카로웠다.
물론 흑표가 진양을 상처 입힐 생각은 없겠지만, 때론 지나치게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상대를 상처 입히기도 하는 법이다.
아마 해남파의 검식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상대를 반드시 상처 입힌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니 유인표로서는 진양을 믿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편 진양과 흑표는 관람자들의 감탄 속에서 도검을 부딪쳐 가며 수십 합을 겨루고 있었다. 내공 면에서는 단연 진양이 우세했지만, 정식으로 사부를 모시고 배운 흑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경험 면에서도 흑표가 훨씬 유리했다.
때문에 두 사람의 대련은 정말이지 숨 막힐 듯한 긴박감 속에서 진행됐다.
진양은 지둔도법과 십절류를 혼합하며 사용했고, 흑표는 줄곧 해남파의 반수검을 사용했다.
어찌 보면 진양이 반수검에 당황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이유가 남들보다 주류의 무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진양은 그저 반수검이 조금 독특하다고 느껴졌을 뿐, 유인표처럼 놀랍거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흑표가 잽싸게 검을 후리며 진양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그의 주위로 기풍이 사납게 휘몰아치면서 도포가 사정없이 펄럭였다.
바로 폭풍지해(暴風之海)라는 초식이었다.
그의 검이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치니 진양은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진양은 얼른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의 검로를 모조리 차단하는 풍우정헐 초식을 펼쳤다.
두 사람의 도검이 어지럽게 서로 어울렸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양은 조금씩 물러나면서 마당 구석으로 내몰렸다.
그때 흑표가 몸을 뒤로 쭉 빼내더니 용수철 튕기듯 직선으로 날아왔다. 그의 검이 진양의 도식을 파헤치듯 절묘하게 쏘아졌다.
하해유영(下海遊泳)이라는 초식이었는데, 그 검세가 매섭고 빨라서 진양은 얼른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마침 이때 시종 하나가 술상을 들고 마당 구석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진양을 스친 흑표의 검이 그만 그 시종에게 향한 것이다.
해남파의 검술은 매우 패도적이어서 이미 펼친 검공을 다시 거두어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만약 진양이 도를 들어 흑표의 검을 막아내는 쪽을 선택했더라면 시종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뒤늦게 시종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양은 얼른 손을 뻗어냈다. 도를 휘둘러 막아내기엔 너무 늦었기에 진양은 왼손 검지와 중지로 검날을 밀어내려고 한 것이다.
한편 시종은 갑자기 매서운 검기가 날아들자 깜짝 놀라며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우악!”
쨍그랑!
그가 술상을 놓치면서 술병이 깨지고 술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동시에 진양의 손가락이 흑표의 검을 밀어 쳤다.
타앗!
공력을 실어 밀어냈지만 검날이 미끄러지면서 진양의 팔뚝을 길게 그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시종은 무사했지만 진양은 장포 소매가 싹둑 잘려 나가고 팔은 피범벅이 된 것이다.
만약 검날이 곧게 뻗어왔더라면 진양은 상처를 입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남파의 검식 특성상 검날을 비스듬히 눕혔기에 진양의 지공(指功)이 완벽하게 먹혀들지 못했던 것이다.
관람자들이 저마다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흑표 역시 자신이 뿌린 검에 진양이 다치자 적지 않게 놀랐다.
유인표가 얼른 달려오며 소리쳤다.
“괜찮은가, 양 소협?”
흑표도 미안한 마음에 성큼 다가서는데, 유인표는 혹시 그가 다시 공격을 하려는가 싶어서 얼른 진양을 등지고 섰다.
그러자 흑표가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사죄했다.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유인표도 경계를 거두고 답했다.
“이런 사고야 일어날 수도 있는 법 아니겠소. 그리고 내게 사과하실 일은 아니오.”
유인표의 대답은 부드러웠으나 내심은 원망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 우려했던 대로 해남파의 검식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야 만 것이다.
흑표 역시 유인표의 원망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더는 가까이 가지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기만 했다.
진양은 얼른 팔뚝의 혈도를 짚어 지혈한 후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유인표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조금 스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인표가 보자니 상처는 조금 스친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깊은 부상도 아니었기에 여기서 너무 호들갑을 떨면 진양의 체면이 구겨질까 싶어서 얼른 몸을 물렸다.
“알겠네. 그럼 나는 일단 자리로 돌아가겠네.”
진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흑표에게 다가갔다.
“흑 형님의 검술이 실로 놀랍습니다. 저로서는 역시 감당하기가 힘들군요.”
그러자 흑표가 고개를 가로젓고 대답했다.
“나의 패배요. 무인이 검을 제어할 수 없다면 그보다 수치스러운 일도 없을 터. 양 형이 이겼소.”
두 사람이 좋은 말로 대련을 마무리 짓자 관람자들도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때 잠깐 정신을 잃고 있던 시종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깨어났다.
남옥은 이제 겨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마침 시종이 깨어나자 내심 노기가 치솟았다. 지금껏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며 대련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하찮은 시종 따위가 판을 깨버리니 여간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시종을 가리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네놈 때문에 귀한 손님이 다치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흥! 죽을죄를 지었다면 죽어야지! 여봐라! 당장 저놈을 끌어내어 목을 쳐라!”
“옛!”
순간 병졸들이 나서서 시종을 잡아서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시종은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남옥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그의 성품이 몹시 거칠고 과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인표는 조심스럽게 말리고 나섰다.
“대장군, 그래도 양 형제가 구하려던 자인데 목숨을 잃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번만은 너그러이 봐주시지요.”
하지만 남옥은 한번 정한 마음을 쉽게 돌이키지 못했다. 그는 화가 나면 황제가 임명한 관리도 제 마음대로 제명시키곤 했다. 그 때문에 여러 오해도 받고 최근 들어서는 황제의 의심도 받는 처지였다.
그런 남옥에게 유인표의 직언이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흥! 저딴 녀석 때문에 양 형제가 다쳤으니 오히려 죽여 없애는 것이 화근을 제거하는 길일세!”
이쯤 되자 진양도 말리고 나섰다.
“그럼 저를 봐서라도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야! 우리 집에 온 손님을 다치게 한 저놈을 내가 용서할 수 없어! 지은 죄가 있다면 당당히 죽으면 될 일이지!”
아무래도 남옥은 고집을 꺾지 않을 기세였다.
결국 시종은 그대로 병졸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술자리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
하지만 남옥은 이런 분위기가 된 것마저 모두 그 시종 탓이라며 끝내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그 시종의 식솔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리라고 명했지만, 유인표와 진양이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그것만은 그만두었다.
사정이 이리되자 유인표 등은 그저 남옥이 분을 삭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인표 일행은 남옥이 거나하게 취해서 기분이 어느 정도 호전되고 나서야 자리를 파하고 일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