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47
신필천하(神筆天下) 47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소. 하지만 어딘지 라마교와는 또 다른 지파인 것 같았소.”
“흐음, 밀교라…… 그들이 왜 우리 표국을 습격했을까?”
도장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이번엔 위사령이 나서서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룡표국은 지금 강호의 여러 문파와 교분을 맺고 있으니 은원 관계를 이용하기에 적절하다고 말이지요. 또한 고위 관료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만큼 이번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더군요.”
“은원 관계를 이용한다니…… 그럼 혹시 표행을 습격한 후 다른 문파의 짓으로 꾸미려고 했단 말이오?”
도장옥이 짐짓 노기 서린 목소리로 말하자 위사령이 미안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일이 실패하여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종지령의 말에 따르면 그런 듯했습니다.”
“그런 비열한 짓거리를!”
도장옥이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려쳤다. 진양 역시 위사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불쾌한 기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도장옥이 노기를 억누르며 물었다.
“그래, 그들은 그럼 누구의 짓으로 꾸미려고 했단 거요?”
“그것 역시 확실하진 않으나…… 아마도…….”
위사령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말을 맺지 못하자 도장옥이 재촉했다.
“아마도?”
“천상련을…… 염두에 두었던 듯합니다.”
“천상련이라니!”
도장옥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곁에 있던 진양 역시 위사령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천상련이라면 진양이 사 년의 세월 동안 몸담았던 곳이 아닌가?
한편 도장옥은 가슴이 서늘했다.
천상련이 어떤 곳인가.
당대 사파의 지존이라고도 불리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아직까지 천상련과 정도 문파 사이에서는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없었다. 물론 각 문파마다 천상련에 대한 원망이 어느 정도씩은 존재했지만, 무림 전체로 확산될 만큼 큰 반목은 아직 없었다.
한데 천상련이 금룡표국을 건드린다면 어찌 될까?
그것도 국주의 외동딸인 유설을 해 한다면?
그때는 정사대전을 감안해야 하리라.
금룡표국 자체로만 보자면 그다지 강하다고 볼 수도 없다. 겨우 중소 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견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금룡표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인맥 때문이다. 그들은 강호의 여러 문파와 고루 두터운 교분을 쌓고 있고, 권문세가들과도 친분이 돈독하다. 때문에 금룡표국을 도발하는 것은 무림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요, 공권력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의 계획대로 그날 양진양이 나타나지 않고 유설을 비롯한 보표들이 모두 죽었다면 틀림없이 강호에는 한차례 피바람이 몰아쳤을 것이다. 그 참상은 아마도 필설로는 형용하기 힘들 정도가 되리라.
원래 큰 강도 사실은 술 한 잔 크기의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천의교가 노린 것은 국주의 딸이 아닌, 정사대전을 일으킬 속셈이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도장옥은 등골이 서늘하고 식은땀까지 흐르는 듯했다.
그때 흑표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위사령을 보았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소.”
“무엇이오?”
“그들은 금룡표국이 고위 관료들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그 일에 적합하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뜻이오?”
아무래도 흑표는 그들이 말한 ‘고위 관료’를 호위하는 사람이었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이 부분이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위사령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소이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말을 했으니 난 그대로 옮긴 것뿐이오.”
위사령의 대답을 끝으로 좌중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진양 일행은 이번 일의 배후에 생각보다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처음에는 그저 금룡표국에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시킨 일일 것이라고 여겼다. 한데 생전 처음 듣는 밀교가 나왔고, 그 뒤에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장옥은 이 모든 사실을 표국으로 돌아가서 국주님께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말씀 잘 들었소이다. 그럼 우리는 그만 응천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안이 가볍지 않은 만큼 서둘러야겠군요. 그 외의 은원 관계에 대한 것은 국주님과 상의한 후에 다시 찾아뵙든지 하겠소이다.”
도장옥이 자리를 정리하며 길을 서두르자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진양 일행이 혈사채를 서둘러 나오자, 곡전풍을 비롯한 혈사채 무인들이 산 아래 입구까지 내려와 배웅을 해주었다. 진양 일행이 말에 오르려고 할 때, 곡전풍이 진양에게 다가가 말했다.
“양 소협, 우리 혈사채는 그대를 은인으로 대할 것이오. 혹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말하시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위사령과 조전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양손을 맞잡았다. 이어서 혈사채의 무인들 모두가 무릎을 꿇고 포권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양 소협을 은공으로 섬기겠습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진양은 괜히 민망해져서 낯빛을 붉혔다.
반면, 정여립은 코웃음을 치고는 말에 올랐다.
진양이 적당한 말로 답례하고는 말에 오르자, 일행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진양 일행은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진양 일행은 말이 지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응천부를 향해 쉼없이 달렸다. 그들이 응천부 인근에 다다랐을 때는 동녘에서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밤이 새도록 달려왔더니, 말들은 점점 지쳐서 자연 속도가 느려졌다. 그럼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가장 앞서서 달리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진양이 타고 있는 흡혈마였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비루먹은 말인데, 시종 지치지 않고 달리는 기색으로 보아서는 매우 뛰어난 준마가 틀림없었다.
내기를 운용할 수 없는 도장옥은 누구보다도 빨리 지쳤다.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져서 말을 몰던 그는 언뜻 눈이 부시는 아침 햇살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마침 가장 앞서가는 진양의 뒷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바람을 맞으며 말을 모는 진양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아침 햇살이 진양을 정면에서 비추고 있으니 그 뒷모습이 더욱 의젓하고 멋있어 보였다.
도장옥은 문득 품에 손을 넣고 진양이 자신에게 건네준 약병을 만져 보았다. 그는 혈사채에서 진양이 상대를 내공으로 쓰러뜨리던 모습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젊은 나이에 내공이 심후하고 의협심까지 갖추었으니 정말로 영웅의 면모를 가지고 있구나. 어쩌면 우리 아가씨와 잘 어울릴지도…….’
도장옥은 이런 생각을 하며 괜히 흐뭇한 마음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얼른 말을 몰아 진양의 곁으로 다가갔다.
“양 소협, 아무래도 그 말이 뛰어난 준마인가 보오. 시종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군요.”
“성질이 좀 난폭하긴 하지만 괜찮은 녀석이지요.”
진양이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대꾸하자, 말이 마치 그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푸르릉’ 하고 콧김을 뿜었다.
도장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한데 양 소협께서는 어째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소?”
“제가 아직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땅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도장옥은 그저 진양이 겸손하게 말을 하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하하, 양 소협은 참으로 겸손하구려. 하지만 늘 싸울 때마다 맨손으로 임할 수는 없을 테니 적당한 무기를 하나 장만하시는 것이 어떻소?”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진양도 응천부로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흑표와 대련할 때도 적수공권으로 싸우다가 위기를 맞이했고, 이번에도 무기가 없어 위사령의 도를 빌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무기를 사용하면 좋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깊이 익힌 무공은 지둔도법이지만, 그 외에도 진양은 십절류의 검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월야검법도 익히지 않았던가? 물론 이 검법들은 다른 문파의 무공이니 아무데서나 함부로 쓸 수는 없겠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언제든 사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진양은 도와 검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진양이 도장옥에게 말했다.
“저는 아직 무학이 깊지 않아 도무지 어떤 무기를 골라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도 선배님이라면 제게 어떤 무기를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하하, 지나친 겸손은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법이 아니겠소? 양 소협은 정말 겸손이 지나치구려. 그러지 말고 응천부에 도착하거든 병기포(兵器鋪)라도 가서 찬찬히 살펴보시구려. 당장 쓸 만한 것을 구해서 사용하다 보면 언젠간 양 소협에게 맞는 무기가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소.”
진양이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병기포에 들러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잘 생각하셨소.”
도장옥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말을 몰아갔다.
정오 무렵 그들은 응천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진양은 도장옥 등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도장옥과 정여립, 그리고 흑표는 진양보다 한발 앞서 표국으로 돌아갔다.
밤새 달려오느라 허기가 진 진양은 먼저 객점에 들러 간단히 조반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저잣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진양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병기포를 찾아내고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
콧수염이 팔(八) 자로 자란 병기포 주인이 방실방실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재빠른 눈치로 진양의 용모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때쯤 진양은 경석산에서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왔기에 그리 깔끔한 모습이 아니었다. 옷에는 먼지도 군데군데 묻어 있었고 피가 튄 흔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진양이 입고 있는 옷만큼은 꽤 고가의 비단으로 지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게다가 진양의 외모를 보니 아직 약관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지 않은가.
주인이 두 손을 맞대고 삭삭 비비며 말했다.
“헤헤, 나리. 찾는 물건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뇨. 딱히 정해놓은 건 없습니다.”
‘옳거니!’
병기포 주인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보통 무학이 깊은 자들은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번에 이야기한다. 어떤 경우에는 병기포 주인보다도 무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데 이렇듯 찾는 무기가 애매한 경우에는 병기포에서 가장 환영하는 손님이다. 아직 무학이 깊지 않은 입문자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젊은이들은 겉멋이 잔뜩 들어서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물건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게 마련이다.
병기포 주인은 두 손을 ‘짝!’ 마주치더니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과연 모든 무기를 두루 다룰 줄 아시는 모양이군요! 그럼 도를 먼저 보시겠습니까, 검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흐음, 어떤 거라도 상관없겠지요.”
진양의 대답에 병기포 주인은 입이 귀밑까지 벌어졌다.
세상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무기를 찾는 사람도 있다니,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주인은 곧장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 황금빛으로 도금된 휘황찬란한 검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손잡이는 용의 머리가 양각되어 있었고 검집은 온통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