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48
신필천하(神筆天下) 48화
“자아, 여기 나리께 가장 어울리는 검이 있습니다! 마침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저희 점포에 이런 물건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만, 이번에 제가 특별히 구한 것이지요! 세상에 단 한 자루밖에 없는 보검이지요! 바로 용호검(龍虎劍)이라는 것입니다!”
진양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용호검을 바라보았다. 정말 화려하고 멋진 보검이었다. 척 보기에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았다.
진양이 손사래를 쳤다.
“제게 너무 과분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수수한 것 없을까요?”
“이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습지요! 나리처럼 영웅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전 나리를 딱 보는 순간 생각했습지요! 아! 용호검의 주인이 나타나셨구나!”
진양은 점포 주인이 자신을 너무 추켜세우자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검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이 보검을 가지고 다닐 자신은 없었지만, 그토록 훌륭한 검이라고 하니 한 번쯤 자세히 구경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진양은 이날까지 장사치들과 마주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포 주인의 감언이설을 어느 정도는 곧이곧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진양이 주인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이 보검을 한번 뽑아봐도 될는지요?”
진양이 관심을 보이자 주인은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만 더 부추긴다면 진양이 검을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이 짐짓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으음, 사실 워낙 귀중한 보검이라 함부로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일이 없습니다만…….”
“아, 그런가요? 그런데 이런 검은 가격이 얼마나 할까요?”
“가격이야 부르는 것이 값이지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리를 보는 순간, 용호검의 주인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거참, 이상하군. 이 사람은 날 처음 봤으면서 어떻게 이 검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주인이 연신 침을 튀어가며 떠들었다.
“원래 보검의 가치는 쉽게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진정한 주인이 나타났다면 보검의 가치는 무의미해지지요. 어제만 해도 이 보검을 눈독 들이는 무인이 있었습지요. 그 무인은 제게 은자 스무 냥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검의 가치로 말하자면 은자 이천 냥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인이 가진 돈이 그게 전부였지요. 그자는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 검을 가지고 싶었던 겁니다.”
진양은 점점 점포 주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어찌 됐습니까?”
“보시다시피 보검은 여기 있습지요. 저는 그분께 팔지 않았습니다.”
“역시 은자 스무 냥으로는 팔 수 없었나 보군요.”
“아닙니다. 그분은 이 보검의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오래 장사를 한 사람은 바로 알 수 있습지요. 사람만 보고도 ‘아! 저자가 바로 이 무기의 주인이구나!’ 하구요. 하지만 그자는 이 보검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팔지 않았던 겁니다. 만약 그자가 이 검의 주인이었다면 저는 은자 열 냥에도 넘겼을 겁니다.”
진양은 내심 이 점포 주인에게 감탄했다.
‘사람을 보기만 하고도 신병이기의 주인 될 자를 알아본다니, 그야말로 안목의 깊이가 대단하구나. 옛말에 한 가지를 통달하게 되면 만 가지 도를 깨우치는 것과 같다고 하더니 이분이야말로 그런 것이 아니겠나?’
진양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견에 영웅을 알아보시다니, 불초 양 아무개가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나리. 만약 나리께서 이 보검을 가지고 싶으시다면 제가 은자 열 냥에 드리겠습니다. 이 보검의 주인은 바로 나리입니다.”
“흐음.”
진양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점포 주인이 연신 자신을 추켜세우고 있었지만, 어쩐지 보검을 보면서도 썩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탓이다.
그가 망설이고 있자 주인이 얼른 말을 이어갔다.
“좋습니다! 제가 특별히 나리께 보검을 만질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검을 뽑아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뽑아보십시오. 원하신다면 시험을 해보셔도 좋습니다.”
“시험이라니요?”
점포 주인이 진양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점포 옆에 놓인 강철 모루를 가리켰다.
“그 칼로 저 모루를 내려쳐 보십시오. 만약 이 검이 싸구려라면 검날이 망가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진양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려쳤다.
“아! 그렇겠군요!”
점포 주인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내심 진양을 비웃었다.
‘물론 네놈이 무림 고수라면 검날이 상하겠지. 하지만 이제 갓 입문한 녀석이 검으로 모루를 내려쳐 봐야 흠집 하나 날까. 후후.’
물론 용호검은 보검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무인들이 검을 들고 모루를 내려친다고 해서 이가 상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랬다간 검끼리 부딪치면 몇 번 싸우지도 못하고 검부터 바꿔야 하지 않겠나.
용호검은 그저 화려하게 도색된 평범한 검이었다.
진양이 검을 뽑아 들자 검날을 타고 시퍼런 검광이 번쩍였다. 진양은 모루로 다가가서 잠시 망설였다.
“정말 이걸 내려쳐도 괜찮겠습니까? 혹시라도 검이 상하면 어쩌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검날이 상한다면 제가 나리께 한 푼도 받지 않고 그 보검을 드리겠습니다. 그 보검이 상할 리가 없지요. 아주 좋은 소리가 날 겁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진양은 검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 오른손에 내력을 집중시킨 후 강하게 내려쳤다.
슈우우욱! 까창!
그때까지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던 점포 주인의 인상이 대번에 굳어 버렸다. 검을 내려친 진양도 멍한 표정으로 검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는 절반쯤 부러져 나간 용호검이 들려 있었다.
돌처럼 굳어 있던 점포 주인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진양은 그 나름대로 주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자신이 희대의 보검을 부러뜨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자 진양은 용호검이 그저 평범한 싸구려 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이 손목에 내력을 조금 실어 내려쳤다고 이렇게 맥없이 부러질 리가 있겠나?
그러나 진양은 천성이 남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라 주인이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 역시 용호검을 희대의 보검이라고 착각해서 장만해 두었을 것이라 여겼다.
“주인장, 이걸 얼마에 들여왔습니까?”
한데 그 물음에 점포 주인은 이제 모든 것이 탄로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아이고, 나리!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높으신 분을 몰라뵙고 제가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 정도로 죽을죄라니요.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어나시지요.”
이렇게 되자 주인장은 진양의 넓은 아량에 내심 탄복해 마지않았다.
‘내가 일부러 속이려고 했는데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구나. 이분이야말로 영웅의 면모를 지닌 분이 아닌가!’
물론 진양은 주인장이 일부러 자신을 속였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진양이 말한 실수란, 단지 그가 훌륭한 보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가리킨 말이었다.
한데 점포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기 친 행각에 대해서 진양이 ‘실수’라고 표현한 것이라 여겼다.
주인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인, 앞으로 나리께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돈을 받지 않고 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주저 말고 찾아주십시오.”
진양은 다시 한번 속으로 찬탄했다.
‘내게 싸구려 검을 주려고 했던 것이 미안해서 이렇게까지 하다니. 본인도 보검이 아니라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터인데, 참으로 마음이 넓은 분이구나.’
“제가 어찌 주인장의 실수를 빌미로 그런 염치없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놀라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되자 주인장은 또 그 나름대로 진양에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리,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나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부디 다음에도 꼭 찾아주십시오. 아, 지금이라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진양은 점포 주인이 지나치게 예를 갖추며 나오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가 괜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길거리의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휙 지나갔다.
“음?”
진양이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 사이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많이 보았던 얼굴이 저쪽 길모퉁이에서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대는 바로 혈사채에서 마주쳤던 종지령이었다.
종지령은 진양과 눈빛이 마주치자 얼른 몸을 돌려 사라졌다.
‘저자가 여긴 왜 왔지?’
진양은 뭔가 수상쩍은 기색을 느끼고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점포 주인이 소리쳤다.
“나리, 어딜 가십니까?”
“아, 점포에는 다시 들르겠습니다!”
진양이 대충 인사를 건네고는 빠르게 달려가자, 주인장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나리, 몸조심하시고, 다음에도 꼭 들러주십시오!”
진양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른 모퉁이를 돌아갔다.
한데 자신을 노려보던 종지령의 모습이 어디에 갔는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진양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저쪽 길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종지령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수상하군.’
진양은 다시 그를 쫓아서 달렸다.
종지령은 곧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이윽고 인가가 드문 외곽 지역까지 달려갔다. 진양은 종지령이 북쪽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얼른 뒤를 쫓아갔다.
숲속으로 얼마나 갔을까?
이제는 제법 번화가로부터 멀어져서 주변은 온통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고, 굵고 높은 나무로 빽빽했다. 진양은 종지령이 풀숲을 헤집고 달리는 것을 끝내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진양이 풀숲을 헤집고 뛰어나가자, 숲 사이에 제법 넓고 평평한 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종지령이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고, 그의 곁에 낯선 노인이 우뚝 서 있었다.
‘누구지?’
진양이 멈칫거리고는 노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몸이 비쩍 마르고 키가 보통 사람보다는 머리 하나쯤 더 커보였는데, 두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노인이 진양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 물었다. 그 목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새되고 날카로웠다.
“저 녀석이냐?”
“예, 사부님.”
종지령이 깍듯한 자세로 대답했다.
진양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심 놀랐다.
‘종지령의 무공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닌데, 그의 사부라면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표정이나 말투로 보아서는 결코 내게 호의를 가진 것 같지가 않다. 일부러 나를 이곳으로 유인한 모양이군.’
사실 진양의 추측은 정확한 것이었다.
지난밤 종지령은 금룡표국이 혈사채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수하들을 이끌고 혈사채를 습격했다. 물론 같은 시각 수하 네 명을 객점으로 보내 진양 일행을 암살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진양 일행을 암살하러 갔던 살수들은 오히려 한 명이 죽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혈사채를 습격한 일 역시 적을 섬멸하기 직전에 진양 일행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