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49
신필천하(神筆天下) 49화
결국 종지령은 곧바로 전서를 보내 실패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고, 자신은 예정대로 응천부로 돌아와서 사부를 만난 것이다.
사부는 종지령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양진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지령이 나섰던 일마다 양진양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부는 화가 잔뜩 나서 탁자를 ‘쾅!’ 내려쳤다.
“흥! 그 어린것이 오지랖이 넓구나! 세상에 제 혼자 잘난 줄 아는 모양이군!”
“면목없습니다, 사부님.”
사부는 종지령을 한차례 못마땅한 눈초리로 살펴보다가 말했다.
“그러게 매사에 방심하고 자만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세상사 네 생각대로만 흘러가진 않잖느냐?”
“불초 제자,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들은 언제쯤 응천부에 도착할 듯싶으냐?”
“만약 그들이 바로 출발한다면 내일 아침이나 정오쯤엔 도착할 것입니다.”
“좋다. 우선 내가 그 양씨 성을 가진 녀석부터 한번 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종지령과 사부는 진양 일행이 응천부 어귀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정오쯤 진양 일행이 나타났다. 이들은 가만히 일행을 미행하며 관찰했는데, 마침 진양이 따로 떨어져 나와 저잣거리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 두 사람은 양진양이 누구인지 먼발치에서 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한데 마침 진양이 홀로 저잣거리로 들어가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었다.
사부가 종지령을 향해 말했다.
“잘됐다. 저 녀석을 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해 오너라.”
“사부님께서 직접 손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자칫 소문이라도 난다면…….”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무학의 대종사가 약관도 지나지 않은 소년에게 살수를 썼다는 소문이 퍼지면 정사(正邪)를 막론하고 고개도 들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부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그깟 소문 좀 나면 어떻겠느냐? 그리고 너만 입을 다문다면 누가 소문을 내겠느냐? 자라날 독초라면 일찌감치 뿌리부터 뽑을 일. 여러 말 말고 어서 가거라.”
“예, 사부님.”
그렇게 해서 종지령은 진양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가 그를 이곳까지 유인해 온 것이다.
진양은 심호흡을 하고는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가서 포권의 예를 갖췄다.
“두 분께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지요?”
“흥! 물어보지 않아도 보면 알 것이 아닌가?”
비쩍 마른 노인이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진양이 정중히 되물었다.
“제게 무슨 볼일이신지요?”
“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 잘난 멋에 설치고 다닌다기에 노부가 한 수 가르쳐 주기 위해 왔다. 듣자 하니 천하에서 가장 강한 척 행세를 한다더군!”
“당치도 않습니다. 보잘것없는 제 재주로 어찌 천하를 논하겠습니까? 강호에 군림하시는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 그럼 그 고수가 누구란 말이더냐?”
진양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천상련의 냉 련주님이라면 가히 무림일절이라고 할 만하겠지요.”
“그리고?”
“소림의 방장 스님인 혜원 선사(惠元禪師)라면 역시 강호에 적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흐음. 또?”
진양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사실 천상련의 련주는 자신이 사 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으니 당연히 떠오른 인물이었다. 그리고 소림의 방장 스님에 대한 명성은 천상련에서 지내는 동안 공소부에게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소부 역시 일개 시동일 뿐이었으므로 다른 무림 고수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천상련을 나온 이후로도 진양은 강호 경험이 적었으니, 과연 누가 이들과 견줄 만큼 뛰어난 무공을 가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직 강호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 아는 바가 적어서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군요. 하지만 제가 모르는 분들 중에서도 고수 분이 많이 계시겠지요.”
그러자 종지령이 발끈해서 나섰다.
“흥! 확실히 아는 게 쥐뿔도 없구나! 위교사왕(爲敎四王)을 거론하지 않고 어떻게 천하 고수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분들 위에 계시는 우리 교주님도 빼놓을 수 없지!”
종지령은 이미 진양 일행이 혈사채와 만나면서 자신들의 정체가 어느 정도 알려졌을 거라 짐작했다. 그래서 딱히 숨길 생각도 없이 소리쳤다.
한편 진양은 위교사왕이라는 별호를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그 별호는 밀교를 구성하는 직책과 같은 것이었기에 들어본 적 없는 것이 당연했다.
진양은 대충 그들이 밀교의 일원일 것이라 짐작하고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교사왕이라는 분들이 그 정도로 대단한 줄은 몰랐습니다. 언젠간 한번 뵙고 싶군요.”
그러자 노인이 킬킬 웃음을 흘렸다.
“이미 네 앞에 서 있지 않은가?”
그 말에 진양이 깜짝 놀라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진양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후배가 위교사왕 중 한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론 인사는 그렇게 하면서도 진양이 이들에게 썩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혈사채에서 밀교의 야비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였기에 마음속에서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허리춤에서 황금빛 삼절곤(三截棍)을 꺼내 들더니 차갑게 말했다.
“무기를 들어라.”
진양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짐작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풍겨지는 기운이 범상치가 않은지라 이번 싸움이 상당히 위험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을 얌전히 보내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도망가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힘들 것 같았다. 종지령만 해도 제법 실력있는 고수인데, 그의 사부가 함께 있으니 이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빠져나가기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싸우다가 기회를 엿봐야겠다.’
진양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선배님께서는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노부는 금곤삼왕(金棍三王) 갈지첨(葛知添)이다.”
이미 밀교의 존재가 드러난 이상 갈지첨은 일부러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 자리에서 진양을 죽일 생각이었으므로 더더욱 이름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진양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병기포에서 얼떨결에 가지고 온 부러진 용호검이었다.
진양은 비록 무서운 상대를 만나긴 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최소한 당당하게 맞서고 싶었다.
“그럼 후배, 갈 선배님께 한 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갈지첨은 진양이 부러진 검을 들고 낭랑하게 소리치자, 노골적으로 경멸의 시선을 던졌다.
“흥! 과연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구나! 노부를 그딴 부러진 검으로 상대할 수 있을 성싶은가?”
“후배에게 마땅한 무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좋다, 어디 한번 부러진 검 맛이 어떤가 보지. 지령, 물러서라.”
“예, 사부님.”
종지령이 얼른 몸을 수 장 밖으로 물렸다.
갈지첨은 삼절곤의 양 끝을 잡더니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이는 파자곤(破者棍)이라는 무공의 기수식에 해당되는 자세였다.
진양은 갈지첨의 기수식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아련하게 스치는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 천상련에 있을 때 진양은 밀교에 관한 서적을 접한 적이 있었다. 물론 밀교의 무공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된 책이었다.
그 책에 의하면 천축에서 넘어온 좌도밀교(左道密敎)에서는 삼각형이 남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때 첨단의 꼭짓점은 의욕을 상징하는 것이고 좌우 변은 각각 힘과 육체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자 진양은 상대가 삼절곤으로 만든 삼각형 모양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저 무공은 어쩌면 바로 그 내용과 관계된 것이 아닐까? 천의교 역시 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으니 그럴 가능성이 크겠다.’
진양이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기며 쉽사리 공격하지 않자, 갈지첨이 먼저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어디 받아보아라!”
순간 갈지첨은 빠르게 진양을 향해 쇄도하더니 왼손을 놓고 오른손으로 삼절곤을 휘둘렀다. 그러자 삼절곤의 왼쪽 끝이 철렁 늘어지더니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진양을 향해 날아왔다.
슈우우웅!
진양은 도저히 막아낼 엄두가 나지 않아 얼른 몸을 물리며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갈지첨이 왼손으로 삼절곤을 옮겨 쥐고 바깥에서 안쪽으로 후려쳐 왔다. 진양이 얼른 보법을 밟아 반대편으로 튕기듯 물러났다. 동시에 그는 월야검법의 일장춘몽 초식을 펼쳤다.
일장춘몽 초식은 상대의 초식을 풀어 버리는 데에 적격이었다.
과연 진양이 부러진 용호검을 후려치자, 매섭게 날아들던 삼절곤이 맥없이 튕기며 날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갈지첨이 진양의 품을 파고들더니 그대로 오른손을 내질렀다. 진양은 이제 막 일장춘몽 초식으로 상대의 공격을 와해시킨 직후였기에 미처 그의 장력을 막아낼 겨를이 없었다.
“하압!”
갈지첨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진양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격타했다.
그 순간 진양의 몸에서 호체신공이 저절로 발동했다.
이때쯤 진양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호체신공을 스스로도 느끼고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기에 적의 손에 가슴 부위가 노출되면서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한데 적의 강맹한 기운이 호체신공의 반동으로 되돌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해일처럼 커다란 힘줄기가 상대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커헉!”
깜짝 놀란 진양이 얼른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상대의 공력에 내상을 입고 만 상태였다. 진양은 가슴께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갈지첨의 장력에는 두 줄기의 힘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우선 첫 번째 힘은 순수한 장력이었고, 진양의 호체신공은 그것을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삼절곤을 휘두를 때 쏟아부었던 공력이 그때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다시 옮겨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진양은 미처 두 번째 힘줄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한편 이는 갈지첨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진양의 공력이 생각보다 심후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만약 삼절곤에 쏟아부은 공력을 오른손으로 옮겨오지 않았더라면 내상을 입는 쪽은 자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갈지첨은 상대를 깔보던 마음을 싹 없애 버리고는 다시 매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는 다시 왼손으로 삼절곤을 휘둘러 왔다. 진양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러 막았다. 이어서 그는 무섭게 짓쳐드는 갈지첨의 주먹을 장풍으로 막아냈다.
갈지첨은 다시 오른손으로 삼절곤을 휘둘러 왔다. 이번에는 감히 용호검으로 맞서지도 못할 만큼 강맹한 힘이 실려 있었다.
진양이 얼른 바닥을 구르며 빠져나갔다. 그러자 묵직한 삼절곤이 진양이 서 있던 자리를 ‘쾅!’ 하고 내려쳤다.
갈지첨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갈지첨은 다시 삼절곤의 끝을 쥐더니 이번에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후려쳤다.
진양은 이제 피할 방법도 없었다. 그가 얼른 용호검을 곧추세우며 공력을 힘껏 불어넣었다.
쩌엉!
고막을 징징 울리는 굉음이 터지면서 진양은 간신히 삼절곤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지둔도법의 철우비기(鐵牛脾氣)라는 초식으로, 강맹 일변도의 공격을 막아낼 때 유용한 도식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 도법인데, 진양은 절반 부러진 검으로 펼쳤으니 검이 멀쩡하게 남아날 리가 없었다. 곧 용호검은 ‘쩌적’ 갈라지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검날이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