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56
신필천하(神筆天下) 56화
쒜에엑!
느닷없이 검기가 날아들자 진양이 깜짝 놀라 몸을 눕히며 피했다. 유설의 검이 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뒤미처 유설이 날카로운 기합성을 터뜨리며 다시 야아관월 초식을 펼치며 쇄도해 들어왔다.
“허엇!”
진양은 혼비백산한 와중에 몸을 바닥에 굴려 가까스로 초식을 피했다. 몹시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유, 유 낭자! 왜 이러십니까?”
진양이 얼른 소리쳐 물었지만, 유설은 공세를 멈추지 않고 월량낙산 초식을 연환식으로 펼쳤다.
“흥! 그대는 정말 몰라서 묻나요?”
진양이 얼른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정말 저는 까닭을 모르겠군요! 내게 서운한 점이 있다면 우선 말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대는 세 치 혀로 또 나를 농락하려고 하는군요?”
“농락하다니요? 내가 어찌 유 낭자를 농락한단 말이오? 그러지 말고 내게 서운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의 약은 수작이 통할 줄 아나요?”
유설의 검세가 점차 매서워졌다. 진양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허리춤에서 수호필을 꺼내 들었다. 바로 황궁에서 주윤문에게 선물로 받았던 강철 붓이었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워낙 거세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지라 유설은 갑자기 반격을 당하자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더욱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았다.
“흥!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시는군!”
“본모습이라니요? 낭자께서 내게 이토록 모질게 대하니 어쩔 수 없지 않소?”
“변명은 필요 없어요! 내게 접근한 목적이 뭐죠? 우리 표국에 온 이유가 뭔가요?”
유설이 매섭게 몰아붙이며 다시 검을 휘둘러 왔다. 진양은 연신 붓을 휘둘러 유설의 공세를 막아내며 말했다.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이쯤 되자 유설은 상대의 뻔뻔함에 더욱 화가 났다.
‘내가 두 눈으로 물증을 확인했는데 끝까지 발뺌을 하는구나. 좋아, 당신 입으로 직접 실토하게 만들고 말겠어!’
그녀는 더욱 매서운 공세로 월야검법을 펼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설은 점점 날카롭고 위협적인 검법을 펼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의 검봉이 진양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지금껏 진양은 상대가 여자인 데다가 은인이나 다름없기에 거칠게 대할 수가 없었다. 한데 졸지에 급소를 공격당하니 저도 모르게 월야검법의 일장춘몽 초식을 전개하고 말았다. 순간 그의 붓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더니 날아드는 검을 단숨에 쳐냈다.
까앙!
유설은 반탄되는 기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방금…… 그건……?”
그제야 진양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월야검법을 펼쳤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 이건…… 내가 설명해 드리겠소. 그러니까…….”
“흥! 목적은 월야검법이었나요?”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어느 틈에 월야검법을 익힌 거죠? 당신은 정말 가증스럽군요!”
“왜 내 말을 믿지 않소?”
“당신이 줄곧 나를 속였으니까요! 그래, 월야검법은 얼마나 훔쳐 익히셨나요? 우리 표국에서 무슨 음모를 꾸밀 작정이었죠?”
유설은 다시 검을 부리며 달려들었다.
이쯤 되자 진양은 답답함을 넘어서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으니 진양은 오기까지 생겨났다.
‘유 낭자가 왜 날 의심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내 진심을 확실히 보여주리라!’
만약 진양이 차분하게 앉아서 생각을 했더라면 유설이 이렇게 노한 까닭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갑자기 생사를 걸고 검공을 막게 돼서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진양은 현란하게 휘두르던 수호필을 어느 순간 거두어 버렸다.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면 날 해하시오! 그럼 되지 않겠소?”
“그럼 어디 못할 줄 알아요?”
유설이 차갑게 소리치며 검을 내찔렀다. 그런데 진양은 두 눈을 부릅뜰 뿐 정말로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 정말 죽을 작정인가?’
당황한 유설은 검봉이 진양의 심장을 찌르기 직전에 힘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워낙 다급하게 검로를 바꾼 것이라 뻗어 나가던 검은 그대로 진양의 옆구리에 박히고 말았다.
“크웃!”
진양이 어금니를 질끈 씹으며 신음을 삼켰다. 막상 그의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내고 나니 더욱 놀란 쪽은 유설이었다. 그녀가 검을 거두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낭자께서 날 믿지 않질…… 않소?”
유설은 머릿속이 혼란해져서 순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당황한 마음으로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그런…… 그럼 당신은 정말 월야검법을 노리고 우리 표국에 접근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진양은 더 이상 유설이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런 뒤 침상에 걸터앉은 채 심호흡을 했다.
진양이 한숨을 내쉬고 침상을 내려다보니 베개가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그제야 진양은 유설이 왜 그런 오해를 하게 됐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진양이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보니…… 내가 자초한 일이군요.”
“뭘…… 말인가요?”
유설은 미안한 감정과 경계하는 태도가 뒤섞여 애매한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검을 들고 진양을 겨누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았다.
진양이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서신…… 때문이지요?”
그 말에 유설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진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랬군요. 일찍 말했어야 하는 건데…… 오히려 의심을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군요.”
“…….”
유설은 아무 말 없이 진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양은 혈도를 짚어 지혈을 한 뒤에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서신을 적어 보낸 사람은 내가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유설이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진양이 유설을 보다가 힘겹게 말했다.
“그 전에 검을 좀 거두어주시지 않겠소? 모든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유설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
진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벌써 여러 해 전이지요. 나는 천상련에서 지낸 적이 있소.”
진양은 자신이 어떻게 천상련으로 가게 됐는지, 또 천상련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곽연을 대신해서 서신을 써주었던 것까지 설명했다. 그 후 살인멸구를 피해서 도망친 일과 임패각을 만난 일, 그리고 금룡표국과 연이 닿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참의 이야기를 들은 유설은 진양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낙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하는데다, 이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잘 꾸며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신 그녀는 자양진경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진양은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자양진경을 보여주었다. 유설은 자양진경을 보고 나서 비로소 진양의 말을 모두 믿을 수가 있었다.
자양진경에 새겨진 글자들은 실로 오묘함과 아름다움의 깊이가 끝이 없어 그녀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필체였다.
진양이 어쩌다가 월야검법까지 익혔는지 모두 해명하자, 유설은 뒤늦게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제가…… 양 소협을 오해했군요. 어떻게 사죄를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제가 원인 제공을 한 셈이지요. 유 낭자께 진작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어야 했습니다.”
진양이 부드럽게 말하자 유설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그에게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게다가 지금껏 연서를 주고받은 상대가 진양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자 더욱 마음이 설레 진양의 두 눈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색함을 깨뜨리려는 듯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럼 그 곽연이라는 자는 양 소협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군요?”
“그렇지요. 그자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면 낭자에게 서신을 보내왔을 겁니다.”
유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양의 말대로 그동안 몇 번의 서신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줄곧 진양의 필체로 서신을 주고받았던 유설은 그것이 가짜 서신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누군가 상대를 사칭하고 있다고만 여겼다.
“맞아요. 몇 번의 서신을 받은 적이 있죠. 하지만 저는 그게 가짜라고만 생각했어요.”
“사실대로 따지면 그게 진짜 서신이지요.”
진양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유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물었다.
“그렇다면 곽연이라는 자가 살아 있으니 양 소협을 만나면 안 되겠군요?”
“만나서 좋을 것이 없겠지요. 그들은 아마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반드시 죽여서 화근을 없애려고 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양 소협이 곽연을 죽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만약 양 소협이 그를 죽였다면 천상련에서는 오히려 양 소협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더욱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않아요?”
“생각해 보니 그도 그렇군요.”
“하지만 그자가 살았으니 반대로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양 소협은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할지도 모르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진양의 물음에 유설이 근심 서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얼핏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이번 연회에 천상련에도 초대장을 보낼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럼 연회 자리에서 양 소협이 그들과 마주치게 되면…….”
“천상련에 초대장을 보낸다고요? 하지만 제가 쓴 초청장에는 천상련이 없었는데…….”
“초청장 일부는 지금 도 표두님이 쓰고 계시니 아마 그쪽 명부에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흐음.”
진양이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부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연회에서 천상련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유설의 말대로 자신이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때 유설이 말했다.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알수록 좋지 않을 테니 더 이상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마세요. 저 역시 양 소협의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죄송할 뿐인 걸요. 참! 제가 정신이 없군요. 지금 약을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설은 진양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얼른 문을 열고 나섰다. 사실 진양은 아까부터 상처 입은 옆구리가 불에 덴 듯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이제 모든 오해를 풀고 일이 잘 해결되고 나니 기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했다. 조금 있자니 유설이 금창약을 비롯한 몇 가지 약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는 남자의 맨살에 손을 댈 수가 없는 노릇이라 약재만을 놓고 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더 이상 한 방에 있어봐야 딱히 나눌 말도 없었고,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지라 유설은 그날 더 이상 진양의 방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진양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완치됐다. 도장옥 등이 진양의 상처를 알아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지만, 진양은 그저 자신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고 자세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유설과 진양은 간간이 마주치긴 했지만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하진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사정이 밝혀지고 나자 어쩐지 마주하기가 낯부끄러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