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60
신필천하(神筆天下) 60화
한데 갑자기 양 씨 성을 가진 놈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대련을 하겠다고 하니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흠,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내가 저자를 확실히 제압해야겠다. 그렇게 되면 천상련의 위명을 더욱 떨치게 되는 것이고, 유 낭자도 나를 다시 보겠지.’
마음을 굳힌 곽연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좋소. 불초 곽 아무개가 양 형께 가르침을 청하겠소!”
“소생이 여러모로 부족하니 곽 부당주님은 손에 사정을 두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진양은 허리춤에서 붓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이 진양의 무기를 보고 저마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건 붓이 아닌가?”
“그러게. 한데 좀 특이하게 생겼군. 굉장히 굵고 크군.”
“저런 붓은 처음 보았는데, 무기로 사용하나 보지? 혹시 저게 무슨 붓인지 아는가?”
“나도 모르겠네. 저런 붓을 쓰는 무인이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일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와중에 유인표는 더욱 모를 표정이 됐다.
자신이 언제 진양에게 월야검법을 가르쳐 줬단 말인가? 물론 딸을 대신해서 나서준 것은 몹시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양이 어째서 월야검법을 알고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유설이 자리에 앉으며 유인표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아버지, 제가 양 소협에게 월야검법을 조금 알려준 적이 있어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제야 유인표는 대충의 상황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유설은 진양에게 월야검법을 따로 알려준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간의 사정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대충 일러둔 것이다.
유인표는 주위를 둘러보며 진양이 든 무기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설명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양의 붓이 황태손에게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내심 감탄해마지 않았다.
한편 서로를 바라보며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진양과 곽연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동안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에 숨을 죽였다.
어느 순간 곽연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진양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검을 오른쪽 아래로 내린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달려 나가면서 검을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그 순간 진양은 얼른 오른쪽으로 한 걸음 빠지면서 붓을 휘둘렀다. 서로의 붓과 검이 상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지나갔다. 진양은 그대로 몸을 비틀며 붓을 가로로 베어 들어갔다. 월광유수(月光流水)라는 초식으로, 달빛을 머금은 물결이 세차게 굽이쳐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는 유설이 좀 전에 시범으로 보인 적이 있는 검초였다. 때문에 곽연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한데 금속성 대신 ‘사르륵’ 하는 부드러운 소리만 들리고 검날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붓털이 부드럽게 검날을 스치며 지나간 것이었다.
당황한 곽연이 움찔 떨며 뒤로 물러났다. 마침 그의 배를 스쳐 지나가던 붓털은 순간적으로 꼿꼿하게 서더니 옷자락 일부를 깔끔하게 잘라냈다.
곽연은 연거푸 두어 걸음을 물러난 뒤에야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이게 대련이 아니라 실제 싸움이었다면 진양은 더욱 깊이 베어 들어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곽연은 그날로 자신의 창자를 두 눈으로 구경할 수밖에 없으리라.
“과연 신병이기입니다. 내력을 조절함에 따라 붓털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군요.”
“감사합니다.”
진양이 가볍게 대답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곽연은 이맛살을 슬며시 찌푸렸다.
생각보다 상대는 내공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내기를 조절하는 능력 또한 웬만한 고수 못지않아 보였다.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무인이라 무시했는데,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시 가겠소이다!”
곽연은 다시 한번 기합성을 터뜨리며 진양에게 쇄도했다. 진양은 수호필을 휘두르며 곽연을 상대해 나갔다.
까앙! 깡!
붓과 검이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진양의 수호필은 때때로 붓털이 가볍게 휘날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몹시 빳빳하게 곤두서서 칼날 같이 빛나기도 했다.
붓털의 변화가 신묘막측하니 곽연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양이 일장춘몽 초식을 펼치자, 쇄도해 들어오던 곽연의 검날이 거짓말처럼 풀어헤쳐졌다. 그 틈에 진양이 얼른 야아관월 초식을 펼치며 검을 빠르게 내찔렀다.
만약 몇 달 전의 진양이었다면 곽연을 상대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수차례 실전 경험을 쌓았고, 얼마 전에는 절정고수를 만나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며칠 전에는 은잠사와 현철로 만들어진 수호필을 황태손 주윤문에게 선물을 받았다. 이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취월장한 진양은 곽연을 여유있게 상대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른 것이다.
곽연이 야아관월 초식을 피해 황급히 물러나자, 진양은 그대로 그를 바짝 쫓아서 붙었다. 이어서 그는 군조비상 초식을 연환식으로 펼쳤다.
진양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붓을 올려치자, 곽연이 깜짝 놀라면서 검을 내려쳤다.
까앙!
그 순간 육중한 힘줄기가 검날을 타고 곽연의 손목까지 전해졌다.
깜짝 놀란 곽연이 엉겁결에 손을 놓자, 그의 검이 밤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리며 하늘로 사라진 검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검날이 매서운 속도로 떨어지면서 후원 바닥 깊숙이 박혔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터뜨렸다. 특히 정파의 무인들은 더욱 의기양양한 태도가 되어서 진양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을 든 무인이 검을 잃었으니 이제는 더 싸워보지 않아도 빤한 결과였다. 곽연은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진양이 얼른 몇 걸음 물러나서 포권을 취했다.
“불초의 사정을 봐주신 곽 부당주님께 감사드리오. 많이 배웠소이다.”
곽연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권했다.
“귀하의 훌륭한 무공에 감탄했소.”
진양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가 유설의 옆자리에 앉자 곽연은 더욱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곽연이 후원 바닥에 꽂힌 검을 뽑아 들며 진양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단 말이야.’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이고 처음 듣는 목소리다.
한데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는 진양을 보다가 문득 자신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왕자헌을 보고는 면목이 없어 그만 자리로 돌아왔다.
술자리는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참 후, 유인표는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상석에 앉은 무인들과 관료들을 비롯해서 몇 명을 더 불러들여 조용한 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표사들에게 주위의 경계를 지키도록 하고 엿듣는 자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일러두었다.
4. 위기를 논하다
조용한 대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자 분위기는 자연히 무거워졌다. 대청에 온 사람들은 모두 무림 고수이거나 고위 관료들이었다.
진양은 이들을 한 번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아쉽다. 화산파의 제자가 한 명이라도 왔더라면 내가 무공비서를 전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연회에 화산파가 미처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유인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연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유 아무개는 생일잔치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러분과 한 가지 상의드릴 것이 있어 이런 자리를 일부러 가져보았습니다.”
그러자 남옥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나는 그럴 줄 알았지! 유 아우가 평소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 뭔가 할 말이 있으려니 했네.”
유인표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장군. 새삼 대장군님의 깊은 생각에 감탄하게 되는군요.”
“하하! 쓸데없는 말은 접어두게! 어서 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 한번 들어보세.”
유인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얼마 전에 우리 표국은 한 가지 이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는 금룡표국이 습격을 당한 일과 혈사채를 찾아갔던 일, 그리고 진양이 천의교의 한 무인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던 일까지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진양의 본명은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 있던 곽연은 끝내 진양의 이름을 양가명이라고 생각했고, 남옥 일행과 혈사채에서 온 위사령만이 유일하게 본명을 알고 있었다. 다만 무슨 사정이 있어 본명을 숨기는 것이라 짐작하고 그들도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무인들과 관료들은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워졌다. 다만 끝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천상련에서 온 왕자헌과 곽연이었다.
이때 가장 성격이 급한 척금송이 탁자를 쾅 내려치며 말했다.
“감히 그딴 간계를 꾸미다니! 도대체 그 천의교에는 어떤 작자들이 있단 말인가?”
이에 진양이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그들은 위교사왕이 당금 무림에서 제일가는 고수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교주는 그보다 더욱 뛰어난 고수라고 했지요. 불초 후배가 대적한 자는 위교사왕 중에서 금곤삼왕이라 불리는 갈지첨이라는 노인이었습니다. 무기는 금빛의 삼절곤을 사용했으며 밀교의 무공인 듯했습니다. 하지만 후배의 실력이 형편없기에 적수가 되지 못했지요. 부끄럽게도 후배는 그에게 조그만 상처도 입힐 수 없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무거운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진양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모두들 조금 전 곽연과의 대련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진양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한데 그런 진양조차도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니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남옥이 탁자를 쾅 내려쳤다.
“흥! 그 녀석들은 담이 아주 큰 모양이오! 감히 관료들마저 이간질시키려고 하다니. 내 한 가지 여러 무림 영웅들께 물어보겠소.”
모두의 시선이 남옥에게 향했다.
남옥은 무인들을 휘이 둘러본 다음 말했다.
“여러 영웅들께서는 혹시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오?”
그러자 무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척금송이 말했다.
“남옥 대장군께서는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무림과 속세는 엄연히 다른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무림인은 오랑캐에게 나라가 짓밟힐 때가 아니면 세속의 일에 깊이 개입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질문은 심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은연중에 불쾌한 기분이 드러나고 있었다.
남옥이 웃으며 답했다.
“바로 그렇소. 보통은 무림의 영웅들이 세속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나는 그 말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오. 그러니 척 장로께서는 마음 쓰지 마시구려. 한데 이 천의교라는 자들은 관료마저 이간질시키려고 했소이다. 이는 분명 황권과 관계가 깊은 다른 세력이 개입했다는 소리가 아니겠소?”
하지만 척금송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대체 무림의 단체가 고위 권력과 깊은 관계를 맺어서 얻을 게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역사상 공권력이 무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물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지. 하지만 충분히 지원을 해줄 수는 있는 일이지. 예를 들자면 막대한 자금이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