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61
신필천하(神筆天下) 61화
그러자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남옥의 가설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때 듣고만 있던 천상련의 왕자헌이 물었다.
“그렇다면 대장군님께선 천의교가 어디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선견지명이 없어 거기까진 모르겠소. 하지만 금룡표국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분명 유 국주와 친분이 깊은 나까지 의식했을 거요. 그 말은 나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세력이겠지.”
여기까지 말한 남옥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남옥을 비롯한 상당수의 고위 관료들은 금룡표국으로부터 많은 물적 지원을 받아왔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금룡표국은 고위 관료들과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만약 금룡표국이 정사대전에 휘말려 멸문하고 만다면 제일 먼저 남옥을 비롯한 여러 고위 관료들이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질 것이고,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려 힘을 많이 잃을 것이 분명했다.
척금송이 물었다.
“누가 감히 대장군님을 위협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남옥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를 위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요즘 들어 황제 폐하는 총기를 많이 잃으셨소. 이제는 충신들의 말보다 간신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계시니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겠소? 그들이 간사한 말 한마디로 나를 모함하고 있으니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오.”
이에 좌중은 다시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실제로 황제는 호유용 사건을 빌미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처형시켰다. 개국공신들을 비롯한 충신들이 이제는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제아무리 남옥이라고 하더라도 몸을 사리지 않으면 안 됐다.
한데 남옥 역시 다혈질 기질이 다분한지라 한번 답답한 마음을 터뜨리고 나니 불평과 불만이 자연히 이어졌다.
“이 나라가 바로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한데 간신들이 황제 폐하 곁에서 귀를 어지럽히니 가만히 두고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오!”
“그렇다면 그 간신들 중에 누군가가 천의교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디 간신들이 한둘이겠소? 숱한 자들 중에 누가 그런 짓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소이다.”
그러자 지금껏 조용히 있던 지승악이 소리쳤다.
“듣고 보니 정말 참기 힘들군요. 도대체 그 간신들이 누구누구입니까? 대장군께서 말씀해 주시면 저희 철혈문이 나서서 모조리 목을 따겠습니다!”
그 말에 척금송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아서라! 자네가 나서서 큰소리칠 자리가 아닐세!”
하지만 남옥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크하하! 척 장로께선 너무 야단치지 마시오. 젊은 혈기에 저런 소리도 할 수 없다면 오히려 멍청한 거지! 철혈문의 지승악이라고 했던가?”
지승악은 남옥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자 내심 감동해서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대장군.”
“비록 사파에 속한다고는 하나 자네의 그 패기가 아주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지승악이 칭찬을 받자 곽연이 얼른 나서서 소리쳤다.
“대장군, 우리 사파의 무인들은 무공의 성격이 다소 거칠지만 패기만큼은 정파에 뒤지지 않습니다! 간신들의 이름을 알려주시지요! 그럼 저희 천상련도 철혈문을 도울 것입니다!”
확실히 곽연은 지승악보다 간사한 면이 있었다. 그는 일부러 직접 나서서 죽이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철혈문을 돕겠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겉으로는 패기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실속을 챙긴 것이다.
왕자헌도 그 속뜻을 알았기에 내심 흐뭇한 마음으로 침묵했다.
남옥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과연 천상련이 오늘 어떻게 무림에 명성을 떨치게 됐는지 알 만하군. 오늘 이렇듯 영웅 여러분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으니 내가 힘이 나는구려!”
그때였다.
갑자기 대청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불쑥 들어왔다.
“그 힘을 잘못 쓰면 큰일 나는 수가 있소이다.”
몹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그는 키가 훤칠하고 마른 체구의 남자였는데, 금색 빛이 나는 옷을 입었고 가슴과 배에는 붉은색의 용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가자미처럼 찢어져서 몹시 매서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장 지휘사(指揮使)!”
남옥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다른 관료들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좌중의 무인들은 남옥을 비롯한 관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한편 유인표는 갑자기 나타난 상대를 알아보고 얼굴빛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장 지휘사라고 불린 사내가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걸치며 물었다.
“왜 이리 다들 놀라시오? 무슨 역모라도 꾸미던 중이었소?”
“그게 무슨 소린가!”
남옥이 소리쳐 꾸짖었다. 그렇잖아도 붉은 혈색인 그의 얼굴이 이제는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장 지휘사 뒤로는 같은 복색의 사내들이 강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들은 바로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조직인 금의위(錦衣衛)였다. 그리고 가장 앞장 선 남자는 금의위 지휘사인 장환(蔣?)이었다.
유인표는 아랫입술을 쿡 씹었다.
상대가 금의위였기에 수하들도 미리 와서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장환이 표사들에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명한 다음 밖에서 실컷 엿듣고 들어온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배짱이 두둑한 표사라도 금의위 지휘사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으리라. 그러니 장환이 대청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이리라.
장환이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남옥에게 마지막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기서 모두들 무얼 하고 계셨소?”
“보면 모르겠나? 오늘은 유 국주의 생일이라 모두 축하를 해주던 참이었네.”
“하하하! 축하라? 그런데 어찌 그리 역정을 내며 축하를 한단 말이오? 얼핏 듣기에 황제 폐하의 총기마저 거론하시던데?”
그 말에 남옥의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장환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곱지 않게 보는 자였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오늘 걸려도 제대로 걸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황제 폐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으니 이 장환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남옥이 ‘음’ 하는 소리만 내면서 말을 잇지 못하자, 지승악이 불쑥 한 걸음 나섰다. 그는 지금 남옥에게 칭찬을 듣고 몹시 의기양양해진 상태였다.
사실 지승악은 지금껏 한 번도 금의위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장환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런 차에 상대가 감히 대장군 남옥에게 함부로 말하자 부아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황제 폐하가 아니면 누가 감히 대장군께 이리도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너무 무례하군.’
정치에 어두운 지승악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어째서 대장군께 예를 차리지 않고 막말을 하시는 거요?”
모두들 그 순간 뜨악한 기색으로 지승악을 바라보았다.
장환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보다가 물었다.
“그러는 댁은 누구신지?”
“나, 철혈문에서 온 지승악이외다! 이제 그쪽도 신분을 밝히시지?”
“훗, 듣도 보도 못한 문파의 제자인 모양이군.”
장환이 차갑게 비웃자 지승악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히 함부로 지껄이다니! 본 때를 보여줘야겠구나!”
지승악이 검을 뽑아 들었다.
사실 검을 뽑긴 했지만 겁만 주다가 말 생각이었다. 상대가 관료일지도 모르니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남옥이 적절한 시점에 자신을 말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데 남옥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금의위 중 한 명이 바람처럼 달려 나오더니 검을 올려쳤다.
쉬이잇-! 서걱!
“엇?”
지승악은 순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오른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뒤늦게 고통이 밀려들면서 지승악이 비명을 내질렀다. 잘려 나간 그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보다 못한 위사령이 얼른 달려가서 지승악의 혈도를 점해 출혈을 막았다.
이 당시의 금의위는 그야말로 공포 조직이나 다름없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상당히 많은 권한을 부여했기에 아무리 남옥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한데 고작 중소 문파의 지승악이 멋모르고 검을 뽑아 들었으니 팔이 아니라 목이 베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제자 하나 때문에 문파의 사활을 걸고 역모를 꾀할 바보는 없을 테니까.
금의위 무인은 위사령을 보고는 다시 검을 내려쳤다. 그 순간 진양이 얼른 나서서 수호필을 휘둘렀다.
깡!
청명한 금속성이 일어나면서 금의위 무사가 뒤로 휘청 물러났다. 그가 순간 몸을 회전시키면서 다시 검을 가로로 베어왔다. 진양은 얼른 보법을 밟아 그 뒤로 바짝 붙으면서 상대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결국 금의위 무사는 허공을 베어내며 진양과 함께 밀려 두어 걸음 옮겨갔다. 진양은 얼른 몸을 빼내며 물러서서 포권을 취했다.
“위 선배님은 단지 지혈을 하신 것뿐입니다. 사정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진양과 금의위를 번갈아볼 뿐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장환이 입을 열 때까지가 수 시간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장환은 진양을 한차례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픽 웃었다. 그러더니 남옥을 한차례 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이 모임에서는 제가 미움을 받는 모양입니다, 대장군.”
남옥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의 이성이 머릿속에서 장환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남옥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움직이는 자였다.
결국 그가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네놈이 내게 어찌 이리도 무례하단 말이냐? 그는 단지 나를 생각해서 몇 마디 하려고 했을 뿐이다. 꼭 그의 팔을 잘랐어야 했는가?”
“금의위 앞에서 검을 뽑았으니 죽어 마땅한 것을 살려준 것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제야 무인들 중 몇 명은 장환이 금의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남옥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럼 자네 부하가 내 앞에서 검을 뽑은 건 어찌 봐야 하느냐? 자네 부하는 내 앞에서 날 위해 나선 자의 팔을 베어냈다!”
“대장군, 공과 사를 분명히 하십시오. 대장군께서는 예전부터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해 황제 폐하께서 근심이 많으십니다.”
“뭣이? 네놈이 감히!”
남옥이 순간 허리춤에서 장검을 스릉 뽑아 들었다. 그의 흉흉한 기세를 보자니 제아무리 장환이라도 조금은 겁이 났다. 더구나 이곳에는 무림의 고수가 대거 운집해 있지 않은가? 만약 남옥이 한순간 미쳐서 자신을 비롯한 금의위를 모조리 죽이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남옥이 성큼 나서며 소리쳤다.
“자! 나도 금의위 앞에서 칼을 뽑았다! 어쩔 테냐? 나도 저렇듯 팔을 베어낼 것인가?”
“고정하시지요, 대장군.”
남옥은 장환의 싸늘한 말투에 더욱 노기가 치솟았다.
금방이라도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보다 못한 진양이 얼른 남옥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대장군, 노여움을 푸십시오. 서로 간에 오해가 커진 듯합니다.”
남옥은 진양의 목소리를 들으니 차츰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가 ‘음’ 하는 소리만 흘리며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장환이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읍을 하며 물러났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대장군. 모쪼록 몸조심하십시오.”
남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장환은 마지막으로 대청에 모인 관료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관료들은 장환의 시선과 마주칠 때마다 마치 얼음이 살에 와 닿는 듯 소름이 오싹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