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65
신필천하(神筆天下) 65화
진양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표국 내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소리, 비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그때 표국 안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역적 유인표는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라!”
그 소리에 진양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십삼 년 전 자신의 가문이 멸망할 때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진양은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고 얼른 말머리를 돌린 다음 표국의 담장을 따라 달렸다. 지금 정문으로 들어갔다가는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황궁의 병사들에게 사로잡힐 것이 분명해 보였다.
표국의 뒤쪽으로 돌아온 진양은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살피고 얼른 몸을 날려 담장을 넘어갔다. 그가 사뿐히 후원에 내려서자 다행히 이곳에는 병사들이 들이닥치지 않은 상태였다.
진양은 얼른 몸을 날려 건물 지붕 위로 올라섰다. 이때쯤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주위가 어둑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횃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대략의 사정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진양은 자양신공을 끌어올려 재빨리 경신법을 펼쳤다. 그는 야조처럼 건물의 지붕 사이를 날아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마침 건물 사이에서 도장옥이 검을 휘두르며 황궁의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너무 많아서 도장옥의 혼자 힘으로는 무리였다.
“도 표두님!”
진양이 소리치며 그의 곁으로 내려섰다.
그 순간 병사 하나가 진양을 향해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진양은 순식간에 수호필을 꺼내 들고 상대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커억!”
공력을 한껏 끌어올려 쳤기 때문에 붓털에 얻어맞은 병사는 그대로 목이 꺾여 날아가서 쓰러졌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양 소협! 왔소?”
도장옥이 병사 한 명을 베어 넘기며 물었다.
“도 표두님! 국주 어르신은 무사하십니까?”
“서쪽 사합원에 계시오! 그쪽으로 가서 국주 어르신을 모시고 여길 벗어나시오!”
“도 표두님도 함께 가시지요!”
“내가 함께 간다면 이들을 누가 막겠소? 나는 괜찮으니 어서 가시오!”
“도 표두님을 홀로 두고 갈 순 없습니다!”
그러자 도장옥이 다시 한 사람을 베어 넘기며 거칠게 소리쳤다.
“자네는 국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지 않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국주님과 아가씨가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어찌 이리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서 가게!”
갑자기 그가 하대를 하며 나오자 진양도 이번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언제까지 여기서 옥신각신하다가는 유인표와 유설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결국 진양이 눈물을 머금고 소리쳤다.
“몸조심하십시오, 도 표두님!”
“하하하! 걱정 마시오!”
도장옥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병사의 일검에 왼쪽 허벅지에 검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 병사마저 베어 넘겼다. 만약 신음이라도 터뜨렸다가는 진양이 또 떠나지 못하고 망설일까 봐 그런 것이다.
진양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건물을 돌아가고 나자 도장옥이 거친 목소리로 일갈했다.
“덤벼라! 애송이들아!”
“와아아! 죽어라! 역적!”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한꺼번에 그를 덮쳐 갔다. 도장옥은 신들린 듯이 검을 휘두르며 욕지기를 뱉었다.
“제미랄! 정 표두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게야?”
그가 소리치는 와중에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검이 그의 몸 곳곳을 찌르고 베어갔다.
진양은 서쪽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숱한 병사들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망설임없이 수호필을 휘둘렀다. 달려들던 병사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나갔다.
이윽고 서쪽 사합원에 다다른 진양은 수화문(垂花門)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총관 심일태가 가슴에 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출혈이 심해 혈색이 없고 동공에 초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절명한 듯했다.
진양은 그의 몸을 타넘어 서둘러 내정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내정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던 병사 몇몇이 뒤를 돌아 진양을 보고 검을 휘둘러 왔다.
“여기도 있다!”
병사 서너 명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하자 진양은 얼른 수호필을 꺼내 들고 몸을 회전시켰다.
바로 군조비상의 초식이었다.
까라라라랑!
청명한 금속성이 연속으로 울리고 나서 진양은 곧장 권각을 뻗어내어 병사들의 가슴을 밀어 쳤다. 퍽퍽 하는 소리에 이어 병사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들 모두 피를 한 움큼씩 토하고는 기절해 버렸다.
갑자기 막강한 적이 나타나자 병사들 중 상당수가 진양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자양신공을 끌어올린 뒤 훌쩍 몸을 날렸다.
타다다닷!
그가 순식간에 병사들의 어깨와 투구를 밟으며 여러 사람을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병사들 뒤편까지 날아간 것이다. 진양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대청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국주 어르신! 유 낭자!”
마침 병사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유인표가 소리쳤다.
“양 소협! 일단 대청 문을 막게!”
진양이 얼른 문빗장을 걸고 탁자와 의자, 수납장 등을 있는 대로 끌어다가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십여 명의 병사가 유인표와 유설을 포위한 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유인표는 이미 몸 여기저기 검상을 입고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진양이 얼른 기합성을 터뜨리며 그들을 덮쳐 갔다. 진양의 수호필은 그들의 몸을 격타했지만, 병사들 모두 두꺼운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목숨을 위협하진 못했다.
하지만 자양신공을 가득 끌어올린 채로 휘두른 것이었기에 한 번 쓰러진 병사들은 그대로 기절해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대청의 문은 쿵쿵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육중한 소리를 울려댔다.
대청의 병사들이 모두 쓰러지고 나자 진양이 얼른 유인표와 유설에게 다가가 물었다.
“두 분 모두 괜찮으십니까?”
“밖의 상황은 어떤가?”
유인표의 물음에 진양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좋지 않습니다. 도 표두님이 중앙에서 다수의 병사들을 상대하고 계시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걸세.”
“국주 어르신, 어서 피하시지요. 제가 뒤를 막겠습니다.”
유인표가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식구들을 모두 죽게 놔두고 내가 어찌 살아 도망친단 말인가?”
“국주 어르신,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복수? 허허! 누구에게 복수를 한단 말인가? 정말로 역모라도 꾀하려고?”
그때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입구를 막고 있던 대문이 쩍 갈라졌다. 이제 바깥에 몰려든 병사들의 사나운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있으면 문이 완전히 부서져 병사들이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국주 어르신! 어서 가십시오!”
“아닐세, 양 소협. 자네는 내게 은혜를 입었다고 했던가?”
“제가 국주 어르신께 받은 은혜야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부탁 하나 함세.”
진양은 유인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유인표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더러 여기서 혼자 적을 막아달라면 그리할 작정이었다.
“무엇이든지 이 양 아무개가 목숨을 걸고 들어드리겠습니다.”
“좋네, 좋아. 그럼 당장 내 딸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게나! 딸아이를 잘 부탁하네!”
“예?”
“아버지!”
진양과 유설이 동시에 놀라서 소리쳤다.
유인표가 검을 든 채로 몸을 돌리더니 문을 응시했다. 이미 검상을 많이 입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였지만, 진양과 유설의 눈에 그의 등은 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유인표가 검을 한차례 휙 저으며 소리쳤다.
“뭐하는가? 어서 여길 떠나게!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유설이 소리쳤다.
“아버지! 그럴 수 없어요!”
“그렇습니다! 국주 어르신! 함께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네. 나는 어차피 부상당한 몸이라 멀리 갈 수 없으니 두 사람은 반드시 살아서 달아나게나.”
그러고는 유인표가 고개를 돌리더니 툴툴 웃었다
“설아, 이 아비가 부족해서 오늘 멸문에 이르게 됐구나.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너는 양 소협과 함께 반드시 살아남도록 해라.”
“아버지!”
그 순간 콰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병사 하나가 문틈으로 몸을 헤집으며 들어왔다.
유인표가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갔다.
“네놈들이 용담호혈(龍潭虎穴)에 제 발로 들어오는구나!”
서걱!
“커억!”
유인표가 검을 휘두르자 이제 막 대청 안으로 들어서던 병사 하나가 그대로 목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무서운 기세에 대청 밖의 병사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덕분에 그들은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대신 정문을 계속해서 부숴 나갔다.
유인표가 버럭 고함질렀다.
“어서 떠나거라! 지금 가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서도 너를 원망할 것이다!”
진양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싫어도 떠나야만 했다. 만약 계속해서 남아 있다간 유인표와 함께 자신과 유설도 이 자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부지런히 문을 부숴 나가서 이제는 두 명이 동시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입구가 넓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유인표의 기세에 눌려 머뭇거리며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아마도 입구의 장애물을 모조리 걷어치운 다음 한꺼번에 들이닥칠 작정인 듯했다.
진양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불초 양 아무개, 국주 어르신의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였다.
진양은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었다.
유인표가 진양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설아를 잘 부탁하네.”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설아.”
“아버지…….”
유설은 내내 눈물을 흘리며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악몽 같기만 했다.
유인표가 진양과 유설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너희 둘은 무척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밖에서 병사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진양과 유설은 그의 말을 곱씹을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유인표가 시선을 돌려 병사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가라!”
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유설에게 다가갔다.
“떠나야 합니다, 낭자.”
유설은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왔다.
“우와아아!”
“어서!”
유인표의 외침에 진양이 얼른 유설의 허리를 안아 들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뒤 몸을 훅 날려 대들보 위에 올라섰다. 이어서 그는 수호필을 휘둘러 지붕을 박살 내고는 몸을 훌쩍 날렸다.
순식간에 지붕 위로 올라선 그가 바람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병사들의 함성 소리와 유인표의 호통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