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67
신필천하(神筆天下) 67화
6. 혈사채에 머물다
진양 일행이 경석산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세 사람이 지친 몸을 이끌고 막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가 길게 울렸다. 진양이 고개를 들어 보니 언덕 아래에서 말 한 마리가 일행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병사인 줄 알고 얼른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한데 가만 보니 말에 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왔을 때 진양은 비로소 그 말이 바로 흡혈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양이 크게 기뻐하며 얼른 달려가서 흡혈마를 맞이하니 말은 앞다리를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유설이 얼른 다가와서 물었다.
“양 소협, 다시 말을 찾게 돼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진양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그것참 이상하긴 하군요.”
흑표가 물었다.
“이 말이 어디서 달려왔소?”
“저 아랫길에서 굽어 돌아오는 걸 봤습니다.”
“우선은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주의합시다.”
“알겠습니다.”
진양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내공을 끌어올려 한껏 감각을 곤두세운 다음 길을 따라 내려갔다. 한데 길모퉁이를 돌아섰는데도 사람은커녕 짐승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 아래에 객점 하나가 덩그러니 지어져 있었다. 아마도 행상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객점인 듯했다. 그렇다고 길가에 누군가 매복하고 있을 만한 장소도 되지 못했다.
유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없군요.”
그때 진양이 얼른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쉿!”
유설이 입을 다물고 기다리니 흑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함정은 아닌 것 같소. 한데 저 객점에 사람들이 있군.”
“싸우는 것 같군요.”
진양이 대답했다.
유설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객점이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양과 흑표를 보면서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두 사람은 내공이 정말 대단하구나.’
세 사람은 천천히 객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객점이 가까워지니 유설에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고함 소리, 비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소리만 들어보아서는 분명히 객점 안에 병사들이 몰려든 것 같았다.
진양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무래도 병사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많든 적든 부딪쳐서 좋을 것이 없겠습니다. 흡혈마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지요.”
“공감이오.”
흑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다시 걸음을 돌려 객점을 멀리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이 막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콰창!
“크악!”
객점 이층 창문이 깨지면서 사람 하나가 밖으로 튕겨 날아왔다. 바닥에 쓰러져 나뒹구는 자는 갑옷을 입은 병사였다. 진양 일행이 흠칫 몸을 떨고 숨으려는데, 다시 비명 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한 남자가 날아와 떨어졌다.
콰당!
“으윽!”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 자는 놀랍게도 세 사람이 모두 아는 인물이었다.
바로 정여립이었던 것이다.
“정 표두님!”
진양이 깜짝 놀라서 달려갔다. 흑표와 유설도 얼른 달려갔다.
진양이 막 정 표두의 상태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마침 객점 문이 열리더니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진양을 보더니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너는 웬 놈이냐?”
진양이 얼른 정 표두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덤벼라!”
그때 병사 하나가 진양을 알아보았는지 소리쳤다.
“앗! 저놈은 금룡표국에서 도망친 자다! 저기 유인표의 딸이다! 쳐라!”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진양 일행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이들이 정여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에게 달려드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마음 놓고 싸웠다.
흑표의 반수검이 여기저기서 번쩍였고, 유설의 월야검법이 우아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병사들 역시 무공을 상당 수준으로 익혔는지 이번만큼은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쯤 쓰러졌던 정여립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수호필을 휘두르던 진양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정 표두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덕분에.”
정여립이 이마를 짚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더니 검을 바로 쥐었다. 그는 곧장 기합성을 터뜨리며 진양을 향해 검을 휘둘러 왔다.
진양은 물론 흑표와 유설도 대경실색해서 경악성을 터뜨렸다.
“앗!”
진양이 얼른 지둔도법을 펼쳐 몸을 강시처럼 눕혔다. 그 바람에 정여립의 검이 진양의 왼쪽 어깨를 슬쩍 베며 지나쳤다. 만약 진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깨 대신 목이 베였을 터였다.
“흥! 쥐새끼 같은 놈!”
정여립이 다시 검을 휘두르며 진양의 가슴을 베어 들어왔다. 진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른 몸을 비스듬히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정 표두님! 정신 차리십시오! 접니다! 양진양입니다!”
“오냐! 네놈이라는 걸 누가 모른다더냐?”
정여립이 계속해서 쾌검을 구사하며 진양을 궁지로 몰아넣어 갔다. 진양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유설이 병사와 검을 부딪치는 와중에 소리쳤다.
“정 표두! 양 소협을 공격하지 마세요!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건가요?”
“오해는 무슨 오해! 그런 것 없소!”
이렇게 되니 진양은 병사들과 정여립의 검을 동시에 막아내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객점의 문이 열리더니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휙 날아왔다. 그는 곧장 발을 뻗어 정여립의 가슴을 걷어찼다.
“컥!”
정여립이 피를 울컥 토하면서 뒤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이어서 또 다른 그림자가 날아오더니 진양을 공격하는 병사들을 일 검에 둘이나 베어 버렸다.
촤악! 싸악!
“크억!”
“아악!”
두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남은 병사들이 얼른 몸을 빼냈다. 그들은 일제히 달려가 정여립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진양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객점에서 막 뛰쳐나온 두 사람은 바로 위사령과 조전이었다.
위사령이 정여립을 향해 호통 쳤다.
“이 개만도 못한 놈! 네놈 낯짝이 이리도 두껍단 말이냐?”
진양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흑표와 유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병사들은 정여립과 함께 한쪽으로 물러서 있었다.
진양이 물었다.
“위 선배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째서 정 표두님을 나무라시는 겁니까?”
그러자 위사령이 진양을 돌아보고 말했다.
“양 소협, 무사해서 다행이오. 저 정 표두는 배신자요!”
“배신자라니요?”
“저자가 금룡표국을 장환 지휘사에게 고발했소.”
유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게…… 그게…… 정말이에요?”
“이 마당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소?”
“그럴 수가!”
진양과 유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여립을 돌아보았다. 정여립은 혀를 차고는 냉랭한 표정으로 위사령을 노려보았다.
유설이 물었다.
“정 표두님, 뭔가 오해가 있는 거죠? 그렇죠?”
“후후, 배신자라는 말은 오해가 있는 게 맞소.”
“역시 그렇죠? 그럼 어떻게 된 거죠?”
“배신자는 바로 유 국주요.”
“뭐라고요?”
“유 국주는 황제 폐하를 배신하고 남옥과 함께 역모를 꾀하려고 했소! 그러니 진정한 배신자는 내가 아니라 유인표지! 하하하!”
순간 유설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진양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는 사이 흑표가 나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정여립을 노려보았다.
“닥쳐라! 대장군께서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으시다!”
“후후! 남옥은 당신도 믿지 못했던 모양인가 보군. 그러니 당신도 모르게 일을 진행시켰겠지.”
“뭣이?”
흑표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 순간 유설이 번개처럼 몸을 날리더니 정여립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워낙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기에 서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수 장을 날아간 그녀가 곧장 야아관월 초식을 펼쳤다. 정여립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쉬이잇! 푹!
유설의 검이 정여립의 왼쪽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이어서 유설이 검을 휘두르려는데 병사 세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야압!”
까앙! 깡!
유설의 검과 그들의 검이 맞부딪치며 청명한 금속성이 울렸다. 유설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양이 얼른 달려들어 수호필을 휘둘렀다.
“물러서라!”
그가 호통을 치며 수호필을 내찌르자 꼿꼿하게 선 은잠사의 붓털이 그대로 병사의 팔꿈치를 꿰뚫었다.
“악!”
병사가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이를 신호로 흑표와 위사령, 그리고 조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병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병사들은 있는 힘을 다해 이들과 맞섰다.
한편 정여립은 가만히 물러나서 살펴보니 아무래도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는 적당히 어울리다가 조금씩 몸을 뺐다. 그리고 틈을 보다가 잽싸게 몸을 돌려 말을 타고 달아났다.
“배신자가 달아난다!”
위사령이 노해서 소리쳤지만, 진양 일행 모두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당장 쫓아갈 수가 없었다.
반면 병사들은 정여립이 달아나 버리자 더욱 사기를 잃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저마다 무기를 버리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진양 일행은 검을 거두었지만 위사령과 조전은 남은 병사들을 모조리 일검일도에 베어 죽였다. 그걸 본 진양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습니까?”
“흥! 저놈들을 살려줘 봤자 나중에 더 큰 화근이 될 뿐이오. 지금 우리가 살려준다고 한들 그 고마움은 하루도 가지 않을게 분명하오.”
하지만 진양은 위사령과 조전의 잔인함에 마음이 영 편치 못했다.
‘과연 이들이 왜 사파의 무인으로 분류되는지 알 것도 같다. 용서란 일체 없구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자들을 죽이는 것은 정말 잔인하지 않은가?’
한편 위사령은 진양의 표정을 보고는 웃었다.
“하하하! 양 소협은 괜한 것에 신경 쓰지 마시오. 저런 버러지 같은 놈들은 잊어버리고 어서 갑시다! 마침 우리는 양 소협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 하늘이 우리 인연을 보살피시는구려!”
그제야 진양은 잊고 있었던 게 기억난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이곳에서 혈전을 벌이고 계셨습니까?”
“말하지 않았소? 우리는 양 소협을 찾는 참이었소.”
“저를요?”
“물론이오. 우리는 소협을 은공으로 섬기고 있소.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그저 감당하지 못할 뿐입니다.”
“하하하! 소협은 너무 겸사하지 마시오. 우리 채주님께서는 남옥의 역모 소식을 전해 듣고 곧장 우리를 응천부로 보내셨소. 양 소협을 도와주기 위해서였소.”
그러자 흑표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입을 조심하시오. 대장군께서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소.”
그제야 위사령도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고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아무튼 우리는 채주님의 명을 받고 곧장 응천부로 달려갔소.”
혈사채 채주 곡전풍은 비록 사파의 무인이지만 누구보다도 은원 관계를 분명히 할 줄 알고 대장부의 의리와 약속을 중시하는 자였다.
그는 며칠 전에 남옥의 역모 소식을 수하로부터 전해 듣고 말했다.
“남옥이 역모를 꾀했다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황제는 두 번째로 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주살할 것이다. 또한 평소 친분이 있던 자들 모두 멸문당할 확률이 크다. 그러니 금룡표국은 그 첫 번째 대상이 될 것이다. 황궁이 무림인들까지 건드리진 않겠지만, 표국과 친분이 있던 관료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거의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럼 양 소협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사령의 말에 곡전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현재 금룡표국에 몸담고 있으니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우리가 나서서 도와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좌검부장과 우도부장은 당장 응천부로 가서 양 소협을 돕도록 하라.”
그렇게 해서 위사령과 조전은 응천부로 향했다. 한데 두 사람이 금룡표국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주인을 잃은 흡혈마만이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흡혈마를 이끌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마침 정여립과 마주치고 만 것이다. 정여립은 병사들을 이끌고 두 사람을 추격했고, 결국 이 객점에서 혈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