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70
신필천하(神筆天下) 70화
유설이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들은 그녀의 마음은 벌써 천상련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이때쯤 곽연은 금룡표국을 감시하던 수하로부터 양가명이라는 자가 실제로는 어리다는 말을 전해 들은 후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본 것은 아니었기에 진양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진 못한 상태였다.
그는 유설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말을 덧붙였다.
“유 낭자, 이런 말씀…… 전해 드리고 싶지 않았소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소. 사실 유 국주님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소. 물론 우리 천상련이 최선을 다하는 만큼 건강은 회복하실 거라고 믿소. 하지만 만분의 하나를 생각해서라도 서둘러 함께 가보셨으면 하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낭자께서 시간을 지체하면 혹시라도…… 흠, 아니오. 그럴 일은 없겠지.”
곽연이 입을 다물어 버리자 유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곽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뭘 망설이시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누구……? 아! 양가명이라는 그분을 말씀하시는 거요?”
유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양 형은 어디에 계시오?”
“응천부에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 가셨어요.”
“그럼 조 형께서 양 형이 돌아오면 천상련으로 찾아오라 전해주시오. 그리고 낭자는 우리와 함께 한발 앞서 돌아갑시다.”
이윽고 유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함께 가도록 하죠. 조 부장님, 그가 찾아오면 천상련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조전은 유설을 잡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곽연의 말이 정말이라면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감사해요.”
그렇게 해서 유설은 곽연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조 부장님께선 어쩌다가 검상을 당하신 겁니까?”
이야기를 듣던 진양이 물었다.
조전은 잠시 호흡을 조절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들이 가고 나서 나는 혼자 남아서 고민을 해보았소. 한데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소. 그래서 그들을 쫓아가서 좀 더 자세한 것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곧장 그들을 뒤쫓아 내려갔소.”
조전이 경공을 펼쳐 앞서 출발한 천상련의 무인들을 정신없이 뒤쫓자 산 중턱을 지날 즈음에 저 아래에 내려가고 있는 그들이 보였다.
“곽 부당주! 잠시 기다려 주시오!”
조전이 소리쳐 불렀지만 곽연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기만 했다.
그때 유설이 곽연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곽연이 번개처럼 손을 내찌르더니 유설의 혈도를 짚는 것이 아닌가? 유설이 쓰러지자 수하 한 명이 그녀를 업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조전이 그 뒤를 바짝 추격했다.
“무슨 짓이냐!”
그때였다. 조전은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매복해 있던 무인은 그의 가슴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은 뒤였다.
“엇?”
조전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검날을 꽉 움켜잡았다. 가슴과 손바닥에서 진득한 피가 배어 나왔다. 상대가 검을 쑥 뽑아내자 조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조전은 쓰러진 채로 산 아래로 사라지는 천상련 무인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조전은 의식을 잃었다가 되찾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더는 참지 못하고 의식의 끈을 완전히 놓으려고 할 때, 마침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조 부장! 조 부장!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무슨 일인가?”
그 목소리는 바로 위사령이었다.
조전은 눈을 떠 그를 보려고 했지만, 몸에는 한 줄기의 힘도 남지 않았다. 위사령의 고함 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곡전풍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령아, 일단 전이를 산채로 옮겨라.”
진양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그의 주먹이 분노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지금껏 그가 이렇게 화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요.”
곡전풍이 조전의 가슴을 동여맨 하얀 천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천만다행히 급소를 비켜 찔렀소. 아니, 조 부장이 얼른 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폐가 관통해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요.”
조전이 다시 침통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양 소협,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아가씨를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진양이 고개를 저었다.
“조 부장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부담을 덜어내시고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
조전은 진양의 넓은 마음에 더욱 감격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한 가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천상련에서 왜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아가씨를 데려갔을까요?”
“아마도 이건 천상련의 뜻이 아닐 겁니다.”
“천상련의 뜻이 아니라니요? 그럼 다른 문파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분명 곽연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천상련을 대표해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사심으로 이곳을 찾아왔을 겁니다.”
모두가 진양을 돌아보았다.
진양은 대략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곽연이 오래전부터 유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과 표국에서 연회가 벌어지던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론 연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위사령이 제 허벅지를 내려쳤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군! 이 더러운 곽가 놈이 감히 유 낭자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니!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부정을 이용해서 아가씨를 납치해? 에잇, 퉤!”
실컷 성질을 부린 위사령이 진양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양 소협?”
진양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화가 나 있었다. 여러 차례 좋지 않은 일이 겹친 데다 유설까지 곽연에게 납치를 당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가 평소와 달리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곡전풍을 보았다.
“채주님,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곡전풍이 빙그레 웃었다.
“이미 혈사채는 그대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노라 약속을 했소. 말씀만 하시오.”
“천상련을 찾아갈 것입니다. 실력있는 무인들이 필요합니다.”
“얼마면 되겠소?”
“서른 명이면 되겠습니다. 대신 최정예 인원으로 부탁드립니다.”
곡전풍을 비롯한 사람들 모두가 진양을 쳐다보았다. 진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한참 후 곡전풍이 껄껄 웃었다.
“내 양 소협을 알고 나서 오늘처럼 패기가 짙은 적을 본 적이 없소. 좋소이다. 우리 혈사채는 이미 한 번 멸문했다가 다시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 혈사채의 운명을 양 소협께 걸어보겠소!”
“감사합니다, 곡 채주님!”
진양이 양손을 맞잡고 고개 숙이며 사례했다.
7. 다시 천상련으로
진양과 흑표, 위사령은 천중산 아래의 마을에 도착했다. 이들은 저마다 변장을 하고, 서른 명의 혈사채 무인들은 상인의 모습으로 꾸몄다.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이들 일행은 상단으로 보였다.
그들이 마을에서 가장 큰 객점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신바람이 나서 달려왔다. 진양 일행은 우선 방을 배정받고 여정을 풀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일층으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소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헤헤, 규모가 큰 상단이네요. 나리들은 어딜 가시는 길인지요?”
“허창(許昌)으로 가는 길일세.”
위사령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점소이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럼 가급적 천중산을 멀리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요.”
“그건 왜 그런가?”
“천중산에 누가 있는지는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요?”
“천상련을 말하는 건가?”
“예, 예. 그렇습지요. 한데 오늘 오전에 무인들 한 무리가 천상련으로 올라갔습지요.”
“무인들이? 그들은 누군가?”
점소이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대꾸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화산파와 종남파라고 합디다.”
“화산파와 종남파? 그들이 왜 천상련을 찾아간단 말인가? 괜한 헛소문이 아닌가?”
“아닙니다요. 제 정보통이 나름대로 정확하거든요. 듣기로는 화산파가 천상련에 따질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 같습니다요. 기세가 아주 흉흉하더라고 하더군요.”
위사령은 진양과 흑표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화산파와 종남파는 최근 동맹을 맺었으니 함께 움직일 소지는 충분히 있었다.
진양이 나서서 물었다.
“하나 물어봅시다. 그 화산파가 천상련에 따질 것이 뭐라고 하던가요?”
“헤헤, 손님도 무림 이야기에 흥미가 많으신가 봅니다.”
점소이가 히죽 웃자 위사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그쳤다.
“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야기나 들어보세.”
“헤헤, 아무렴요. 이런 이야깃거리라도 들어야 묵어가는 맛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제가 듣기론 화산파의 무공 비급을 천상련이 가지고 있는데 그걸 놓고 서로 신경전이 벌어진 것 같더라구요.”
그제야 세 사람은 대충의 이야기를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파의 무공 비급인 칠절매화검이 천상련의 천보각에 있다는 사실은 많은 무인들이 공공연한 비밀로 여기고 있었다.
한데 그게 드디어 터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화산파는 지속적으로 칠절매화검을 되찾으려고 갖가지 방법으로 노력해 왔다. 어르고 달래도 보았고 위협하고 협박도 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직접 찾아와서 따지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천상련의 위세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한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화산파가 직접 천중산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게다가 종남파까지 이끌고 왔다면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는 말이 아닌가.
진양이 물었다.
“대충 몇 명이나 천중산으로 갔소?”
“글쎄요. 오륙십 명은 된다고 했습지요.”
세 사람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그렇다면 정말 화산파는 마음먹고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점소이는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떠들다가 물러갔다. 뜻하지 않은 정보에 진양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 생겨 버렸군.”
위사령의 말에 진양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쩌면 이 혼란을 틈타서 유 낭자를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선은 오늘 밤 제가 먼저 올라가서 정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흑표가 고개를 저었다.
“양 형 혼자서는 위험하오. 함께 갑시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한 분은 여기 남아서 다른 이들을 통솔해야지요.”
그러자 흑표가 위사령을 보았다.
“위 형이 남으시오. 혈사채 무인들이니 아무래도 나보단 위 형이 남는 것이 좋겠소.”
“알겠소.”
위사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밤 흑 형님과 제가 천중산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유 낭자를 데려오도록 해보지요.”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시오, 양 소협.”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