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77
신필천하(神筆天下) 77화
손이 떨리기는 진양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무리 최고의 내공을 연마했다지만, 봉상탁은 오랜 세월 내공을 쌓아온 고수였다. 때문에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그들의 내공은 비슷한 수준으로 격돌한 것이다.
진양이 가늘게 떨리는 손을 맞잡아 올리며 말했다.
“양 아무개가 봉 장로님을 뵙습니다.”
진양은 몸을 돌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석군평에게도 포권의 예를 갖췄다.
“석 문주님을 뵙습니다. 평소 두 분의 명성을 듣고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상대가 정중하게 나오자 석군평도 예를 갖춰 물었다.
“그대는 누구기에 봉 장로님의 검을 받으셨소?”
진양은 어차피 이쯤 되면 천상련의 무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 거라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성이 양이고, 이름은 진양이라 합니다. 두 선배님께서는 어찌 풍 각주님을 해하려고 하시는지요?”
석군평은 미간을 찡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진양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보았는지 떠올려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고민한들 들어보았을 리가 만무했다.
그가 생각을 멈추고 말했다.
“어찌 해하려고 한다니? 그럼 그대는 어찌 봉 장로의 검을 막으셨소?”
“저와 풍 각주님 사이에 작은 인연이 있어서 불가피 나서게 됐습니다. 기분이 언짢았다면 용서하십시오.”
“음. 그럼 그대도 냉 련주를 죽이는 데 가담한 것이오?”
진양은 잠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예?”
“냉 련주를 죽일 때 그대도 함께였는지 물어보는 것이오.”
“냉 련주라니요? 그게 누구…….”
그러자 석군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지금 그 태도는 발뺌을 하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정말 연기가 서툴군.”
“후배가 아둔해서 정말 못 알아들은 것이니, 장문 어르신께서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흥! 그대가 정녕 천상련의 련주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셈인가?”
순간 진양은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 누가 죽었다고요?”
그러자 봉상탁이 짜증난다는 듯 소리쳤다.
“냉이천 련주 말이다! 천상련의 냉이천 련주가 어젯밤에 죽었다!”
“도대체 누가 그를…….”
“누구긴 누구냐? 네놈이 지키려고 하는 저자지! 바로 풍천익이 냉이천 련주를 죽였다!”
진양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 천천히 돌아섰다.
‘풍 각주님이? 도대체 왜?’
그의 뒤에는 풍천익이 어금니를 쿡 씹은 채로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1. 칠절매화검
진양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풍천익을 바라보자 풍천익이 보일 듯 말 듯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풍…… 각주님.”
“오냐, 안 본 사이 장성했구나. 훌륭하다.”
여전히 딱딱한 어조에 간결한 말투였지만, 옛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양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 마치 시간을 거슬러 이 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때의 자신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았던가.
‘그렇다. 이분은 그런 내게 살 기회를 주신 분이다. 이분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든 안 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전심전력으로 이분을 도울 뿐이다.’
생각을 굳힌 진양은 곧 포권을 취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불초 양진양이 풍 각주 어르신을 다시 뵙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클클클. 보다시피 썩 안녕하진 못하다. 하지만 네놈의 태도가 나를 기분 좋게 하는구나. 암, 그래야지. 네놈이라면 ‘그게 정말이냐?’는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
진양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풍 각주님이 저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자들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풍 각주님이 누명을 쓰고 계신 것이리라.’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봉상탁이 버럭 소리쳤다.
“네놈은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게냐? 이제 네놈도 대답해라! 네놈 역시 냉 련주를 살해하는 데 동참한 것이냐?”
진양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냉 련주께서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여기 계신 풍 각주 어르신도 거짓말을 하실 분은 아닙니다.”
“뭐야? 그럼 정말 우리가 냉 련주를 죽였단 말이냐?”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풍천익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이 두 귀로 분명히 들었다! 네놈들이 천의교와 손을 잡고 본 련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닥쳐라! 우린 천의교가 뭐하는 잡놈들인지도 모른다! 들어본 적도 없는 놈들과 어찌 손을 잡는단 말이냐? 더구나 우리 정파는 네놈이 말한 것처럼 비열한 짓을 하지 않는다!”
“흥! 하긴 확실히 비열한 짓이긴 하지. 만약 세간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화산파와 종남파는 고개도 들지 못할 테지! 하나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겨우 세 사람을 화산파와 종남파가 떼거지로 공격하고 있으니, 너희는 정파의 덕목을 내세울 자격도 없다!”
“뭣이? 그 요망한 주둥이를 찢어주겠다!”
봉상탁이 노발대발해서 소리쳤다.
그때 진양이 얼른 나서서 말했다.
“잠깐!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로 좋게 풀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는 분명히 서로 간의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네놈이 뭐라고 건방지게 나서는 것이냐? 만약 이 일에 관계가 없거든 썩 물러가고, 관계가 있다면 우리가 내릴 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진양은 이들의 태도로 볼 때 결코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양은 어쩔 수 없이 수호필을 고쳐 잡고 나섰다.
“정히 힘을 쓰셔야 한다면 저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전 이미 풍 각주 어르신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몸입니다. 풍 각주 어르신을 해하시려거든 저를 먼저 꺾으시지요.”
진양은 원래 순박하고 신중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세 가지의 신공을 익히게 되면서 그는 상당한 자신감을 얻게 됐다. 게다가 생명의 은인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봉상탁이 코웃음을 쳤다.
“흥! 네놈이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물론 선배님들이 한꺼번에 달려드신다면 힘들겠지요. 하지만 명문정파의 두 선배님이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든 제게 가르침을 내리시겠다면 저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 배우겠습니다.”
이쯤 되자 석군평과 봉상탁은 어이가 없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대결을 하겠다니.
일대일의 정당한 대결에서는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린가?
석군평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의 기개가 아주 대단합니다. 봉 장로님, 저자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흥! 그럼 이 봉상탁이 한 수 가르침을 내리마!”
성질 급한 그가 성큼 한 걸음 내딛는데, 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봉 장로님, 제게 맡겨주십시오!”
무리에서 걸어나온 자는 몸집이 곰처럼 크고 혈색이 붉은 중년의 사내였다. 그는 전신이 철갑을 두른 것처럼 단단한 근육질이었는데, 목소리가 동굴에서 울리는 것처럼 쩌렁쩌렁했다.
그의 허리춤엔 얇고 예리한 검이 매어 있었는데, 몸집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
그의 말에 봉상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웅아, 저놈에게 확실히 한 수 가르쳐 주고 오너라!”
“예!”
사내는 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진양에게 다가가 멈춰 섰다.
한편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이 싸움의 끝이 불을 보듯 빤하다고 생각했다.
엄대웅(嚴大熊), 그는 종남파의 이대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몸집은 곰처럼 거대하지만 몸놀림은 범처럼 날렵하다고 해서 혈웅비호(血熊飛虎)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름도 듣지 못한 애송이에게 패할 리가 있겠는가?
엄대웅이 양손을 모아 잡으며 예를 갖췄다.
“엄 아무개가 한 수 가르침을 받겠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인 예를 갖춘 후 엄대웅은 검을 뽑아 들고 서서히 기수식을 취했다.
하지만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다. 무림의 선배로서 진양에게 선공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진양은 수호필을 고쳐 쥐고는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수호필을 휘둘러 갔다. 진양이 노린 곳은 가슴팍의 영태혈(靈台穴)이었다. 살랑거리던 붓털이 일시에 곤두서며 빳빳한 날을 만들었다.
엄대웅은 붓털이 이렇게 칼날처럼 곤두설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진양은 그 틈에 몸을 반 바퀴 돌며 수호필을 가로로 후려 갔다. 그 순간 ‘쩡!’ 하는 굉음이 울리며 두 사람의 몸이 두 장여 튕겨 나갔다.
상대를 내심 가볍게 여기고 있던 엄대웅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었군!’
손아귀에 잡힌 검은 아직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진양의 수호필과 마주친 순간 그는 매우 단단한 바윗덩어리를 후려친 느낌이었다.
아마도 내공이 두터운 자이리라.
“양 형의 무공은 놀랍구려!”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엄대웅이 범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검이 은빛 광채를 쏘아내며 무섭게 쇄도해 들어갔다. 진양은 얼른 바닥을 차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은빛 광채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어가더니 진양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야말로 먹이를 놓치지 않는 한 마리 범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움직임이 몹시 빨랐기에 진양은 거듭 회피 동작만 취할 뿐 감히 반격할 수도 없었다.
종남파의 사람들이 갈채를 터뜨리며 환호했다.
하지만 그들 중 유일하게 웃지 않는 사람은 바로 봉상탁이었다. 그는 눈살을 슬며시 찌푸린 채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엄대웅의 날렵한 움직임은 시종 진양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지만 진양은 마치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듯, 물줄기가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듯 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진양은 시종일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결코 엄대웅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엄대웅은 지금 필살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면서 힘을 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분명히 저 양 씨 녀석이 역공을 취할 것이다.’
모든 승패는 거기에 달려 있으리라.
허점은 상대가 공격을 해올 때 잘 드러나는 법이다. 만약 엄대웅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잘 공략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대웅의 검공은 힘이 실리고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만큼 반격의 기회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하앗!”
엄대웅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다시 일검을 쏘아냈다. 진양은 몸을 비틀어 검을 옆으로 흘려냈다. 그 순간 다시 엄대웅이 이검을 찔러왔다.
그런데 진양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수호필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이 모습을 놓치지 않은 봉상탁이 버럭 소리쳤다.
“조심해라!”
하지만 그가 소리칠 때는 이미 진양의 역공이 진행된 후였다.
쒜엑! 까앙!
수호필이 엄대웅의 검날을 쳐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호필과 검날이 부딪치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수호필이 엄대웅의 쾌검보다도 빠르게 휘둘러진 것이다.
엄대웅이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나며 중심을 잡으려는데, 순간 진양이 그의 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진양은 엄대웅의 가슴 아래에 웅크리고 수호필을 끌어당겼다.
“앗!”
사람들이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이대로 진양이 붓을 내찌르기만 하면 날카롭게 곤두선 붓털은 십중팔구 엄대웅의 목을 꿰뚫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