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79
신필천하(神筆天下) 79화
“엇!”
봉상탁이 깜짝 놀라며 검을 휘둘렀다. 두어 걸음 물러난 그가 다시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진양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드럽게 이어진 진양의 공격은 바로 칠절매화검의 신산지화라는 초식이었다. 아름답게 이어지는 검세 속에서 날카로움이 숨어 있으니, 봉상탁은 선뜻 상대하기가 두려워 다시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진양의 공세는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공격은 칠절매화검의 네 번째 초식인 매영난세였다. 진양의 수호필이 어지럽게 춤을 추듯 허공을 휘저었다.
보는 사람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정말 대단한 검법이다!”
“눈으로 보기도 힘들 지경이군!”
진양의 붓은 단지 쾌검으로 일관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붓은 수십 개로 나뉘어 어지럽게 흔들렸다. 붓대에 빛이 번쩍번쩍 반사되고 바닥의 그림자가 정신없이 움직이니, 봉상탁은 그야말로 세상 전체가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매영난세는 허초가 많은 검초다.
하지만 허초가 모두 실초와 구분하기가 힘들 만큼 예리해서 봉상탁은 보이는 대로 검을 휘둘러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진양의 붓은 매섭게 날아와 봉상탁의 요혈 앞에서 멈추곤 했다.
차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종남파의 수석장로를 창피하게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다간 종남파와의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지리라. 이왕이면 봉상탁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물러나 주길 바랐다.
하지만 봉상탁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진양의 검법이 자신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 진양은 매영난세 초식에 이어 다섯 번째 초식인 낙매여우를 펼쳤다. 그야말로 매화비가 쏟아져 내리듯 번쩍이는 검날이 붉은 강기를 머금고 마구 떨어져 내렸다.
낙매여우 초식은 검초의 특성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검이 많았다.
봉상탁은 검을 들어 올려 떨어져 내리는 모든 검을 쳐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빈틈이 생긴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누가 보더라도 상황은 봉상탁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종남파의 명성이 나로 인해 꺾이게 생겼구나.’
봉상탁은 장탄식을 하며 검을 멈췄다.
사실 진양이 펼친 무공은 모두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절세의 신공이었다. 다만 진양은 오래전 화산파의 제자들이 펼치는 무공을 본 적이 있었고, 실제로 칠절매화검을 필사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때문에 벽력섬광도나 능파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익히기가 수월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진양 역시 봉상탁이 검을 멈추는 것을 보고 손에서 힘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 순간, 화산파의 무리 중에서 누군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어엇?”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진양 역시 움찔 떨면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바로 장문인 석군평이 아닌가?
명문정파의 장문인이 다른 사람의 정당한 싸움에 갑자기 끼어드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물며 상대가 비슷한 항렬도 아닌,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때문에 그의 기습은 지켜보던 사람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순간 승천각의 각주인 송강이 불쑥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정당한 싸움에 기습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을 아시오!”
“시끄럽소!”
석군평이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더니 단숨에 송강을 쳐냈다.
송강은 천상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다. 만약 같은 조건에서 석군평과 대적했다면 그야말로 용호상박을 이루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앞서 싸움을 치르면서 기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석군평은 수적 우위에서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으니 전신에 내공이 넘쳐 났다.
깡!
석군평의 검날을 송강이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긴 했지만,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나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석군평은 곧장 진양에게 다가가 일검을 내찔렀다.
“노옴! 네가 쓰는 검법이 무엇이냐?”
진양은 미처 대답할 정신도 없어 얼른 수호필을 휘둘렀다.
쩌엉!
두 자루의 무기가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각각의 무기가 주인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진양으로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고, 석군평으로서는 상대의 내력이 이처럼 강할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던 탓이다.
석군평이 조금의 주저도 없이 양손을 내뻗어 장력을 발하자, 진양도 어쩔 수 없이 적수공권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쩌엉!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마주치면서 다시 한번 커다란 소음이 터져 나왔다.
후끈한 기운이 사방으로 불어나가자, 주변의 사람들은 살갗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봉상탁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자신이 패배를 시인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여미령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사부님!”
그녀가 달려오려고 하자 봉상탁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오지 마라!”
여미령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 봉상탁을 바라보다가 다시 석군평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봉상탁이 왜 자신을 말렸는지 알 수가 있었다.
진양과 석군평은 서로 손바닥을 마주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석군평의 얼굴은 자하신공의 영향을 받아 노을빛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빛은 더욱 붉어졌고, 손바닥과 손목도 붉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내공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자칫 건드리기라도 하면 커다란 부작용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제는 어느 한 명이 내력에서 패하거나 동시에 물러나지 않는 이상 제삼자가 끼어들기도 힘들었다.
석군평이 진양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쓴 검법이 무엇이냐?”
진양이 속으로 감탄했다.
‘내공 대결을 펼치는 중에 말을 저렇게 편안하게 건네다니, 과연 화산파의 장문인이구나!’
진양 역시 순간적으로 내기를 끌어올린 후 말을 뱉었다.
“칠절매화검입니다.”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어엇!’ 하며 소리쳤다. 여미령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석군평이었다.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진양이 이처럼 담담하게 대답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반응에 노기가 치밀어 오른 석군평은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고 기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호흡이 가빠지고 집중력을 잃자 진양의 무거운 힘줄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자양신공은 순식간에 석군평의 경맥을 따라 침투해서 심장까지 타격했다.
“쿨럭!”
그가 기침을 토하자 한 움큼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사부님!”
여미령이 다시 한번 달려들 듯 움찔 떨며 소리쳤다.
석군평이 가까스로 호흡을 조절한 다음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하신공을 끌어올리니, 진양으로서도 이제는 말 한마디 내뱉기 힘들 만큼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그렇게 돌처럼 굳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그저 마른침만 꿀꺽 삼키며 이들의 대결을 지켜볼 뿐이었다.
내공 싸움은 대략 반 시진이나 이어졌다.
이제 진양의 머리카락도 정전기로 인해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고, 먼저 가벼운 내상을 입었던 석군평은 정수리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송강이 나서서 말했다.
“이럴 것이 아니라 어찌 된 영문인지 서로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봉상탁이 콧방귀를 꼈다.
“흥! 대화를 하면 뭐가 달라지겠소? 저놈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소이까? 칠절매화검을 익혔다고!”
“하지만 이대로 두면 두 사람 모두 위험할 것이오. 더구나 화산파의 석 장문은 내상을 입고 시작하지 않았소?”
봉상탁의 표정이 슬쩍 어두워졌다.
송강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직접 겨뤄보았기에 진양의 내공이 얼마나 순후한지 잘 알고 있다. 아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게 되면 석군평이 무사하긴 힘들 것이다. 물론 진양 역시 내상을 입게 되겠지만 그 피해는 석군평이 더 클 것이다.
화산파의 기세가 꺾인다면 함께 온 종남파로서도 좋을 것이 하등 없었다.
속셈을 끝낸 봉상탁이 석군평을 향해 물었다.
“석 장문, 어찌 됐든 이 녀석이 솔직한 대답을 했으니 연유나 먼저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소?”
하지만 온 정신을 내공 대결에만 집중하고 있는 석군평은 입술도 벙긋할 수 없었다. 만약 입을 열면 그 순간 기가 흐트러지고 다시 또 내상을 입으리라. 이번에도 내상을 입게 되면 아까처럼 가벼운 경상으로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봉상탁이 다시 말했다.
“석 장문의 마음은 이해하오만 이놈에게도 일단은 살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소? 이대로 이놈을 죽여 버리면 이 녀석이 어찌 칠절매화검을 익혔는지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잖소. 혹시 자비를 베풀 의향이 있으시거든 눈을 한 번 깜빡이시오.”
그러자 석군평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사실 이대로 내공 대결을 이어가면 위험한 것은 석군평이었지만, 봉상탁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일부러 돌려 말한 것이다.
송강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심 비웃으면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진양을 향해 다감한 어투로 말했다.
“예전에 너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구나.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구나. 석 장문께서 네게 아량을 베푼다고 하시니 너도 그만 공력을 거두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하겠다면 눈을 한 번 깜빡이거라.”
진양이 눈을 깜빡였다.
이를 본 봉상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쳤다.
“좋소! 그럼 지금부터 셋을 세면 두 사람이 동시에 공력을 거두는 것이오. 만약 누구라도 이 자리에서 약속을 어기고 공력을 거두지 않는다면, 그 비열한 짓을 전 중원의 강호인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하나, 두울, 셋!”
그 순간 진양과 석군평이 양손을 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두 장 정도 물러난 석군평은 바닥에 착지하면서 잠시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았다.
반면 진양은 지친 기색은 보여도 다리에 힘이 풀리진 않았다.
그제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양이 먼저 포권하며 말했다.
“장문 어르신의 공력에 감탄했습니다. 후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식적인 예는 집어치워라. 그보다 어떻게 우리 화산파의 칠절매화검을 익혔는지 들어보지. 그리고 그 비급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하군.”
진양이 품에 손을 넣더니 책자 하나를 꺼냈다.
“칠절매화검입니다.”
“뭣이?”
너무나 담담한 표정과 말투에 석군평이 눈썹을 구겼다. 주위 사람들 역시 멍한 표정으로 진양의 손에 들린 책자를 바라보았다.
진양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석군평에게 책자를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받으십시오.”
석군평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지난 세월 화산파가 얼마나 되찾으려고 노력했던 무공 비서인가? 그런데 이처럼 간단하게 손에 들어오게 되자, 석군평은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무슨 수작인가?”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녕 이것이 칠절매화검의 비서란 말이더냐?”
“틀림없습니다.”
석군평의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그가 책장을 열어 안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했다.
“틀림없군. 칠절매화검이 분명하군.”
그의 말에 화산파의 제자들은 대번에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석군평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건 사본이다! 원본은 어디에 숨겼느냐?”
“원본은 없습니다.”
“어째서 없단 말이냐?”
“원본은 천상련에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허튼소리! 그 말을 날 보고 믿으란 소리냐?”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왕자헌이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저놈의 말을 믿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