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84
신필천하(神筆天下) 84화
“설마…… 네놈은…….”
“크크크, 이 마천강이 정말 천상련의 파멸대에 사로잡힐 정도라고 생각하셨소?”
그의 말은 이곳에 있는 무인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풍천익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네놈은…… 애초에 계획적으로…….”
“이제 바로 아신 것 같군. 조금 늦어 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마천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풍천익은 내상이 심각한 데다 장시간 싸움을 겪느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기를 다스리는 중이었는데, 마천강의 말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자 순간적으로 기혈이 뒤엉키고 말았다.
그가 격하게 기침을 토하자 피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석군평이 나서서 소리쳐 물었다.
“그럼 네놈들은 정녕 정심방의 무인이 아니었단 말이냐?”
갈지첨이 대답했다.
“정심방? 킬킬! 정심방은 우리가 조직한 것이 확실하니까 그리 성낼 것은 없소! 다만 화산파에 접근하기 위해 임시로 만든 방파일 뿐이지! 킬킬킬!”
석군평은 어이가 없었다.
‘임시로 만들어? 하나의 방파를 운영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텐데 임시로 만들다니!’
석군평은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갈지첨이 허세를 부리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천의교가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때 갈지첨의 시선이 진양에게 향했다. 그의 표정에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
“또 네놈이군. 내 일전에 너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다음에 다시 나를 만나게 되면 살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사람의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늘이 네 목숨을 그리 길게 남겨두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러자 석군평이 검을 앞세우며 한 걸음 나섰다.
“흥! 당신은 나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오!”
갈지첨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미 내상을 입은 몸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소?”
“입으로 말할 필요가 있는가? 나와서 내 검을 받으시오.”
석군평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갈지첨이 삼절곤을 꺼내 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한데 마천강이 갈지첨을 막아섰다.
“내가 나서보지.”
그러자 갈지첨이 두말하지 않고 물러났다.
검을 뽑아 들고 있던 석군평은 뜻밖에 마천강이 나서자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낌 없이 걸어 나오는 마천강의 전신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마천강이 우뚝 멈춰 서자 그 기운에 압도당한 화산파와 종남파 제자들이 저도 모르게 여린 신음을 흘렸다.
석군평은 검을 대각선으로 한 번 휙 젓더니 날카롭게 소리쳤다.
“누구라도 좋겠지!”
말을 마친 그가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여느 때라면 석군평은 절대로 선공을 취하지 않았을 터였다. 무림 대종사의 신분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석군평은 내상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상대에 대한 정보가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 자칫 선공을 양보했다간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가 내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검을 대각선으로 후려치자, 마천강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검을 흘려보낸 마천강이 오른손을 뻗어왔다.
순간적으로 뻗어오는 후끈한 기운에 석군평은 재빨리 왼손을 내뻗었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부딪치며 기가 폭발하듯 큰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사방으로 기의 파장이 훅 불어나갔다.
장력의 반동으로 훌쩍 물러나간 석군평은 숨을 훅 들이마시더니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이어서 그는 칠절매화검의 낙매여우 초식을 펼쳤다.
순식간에 마천강의 몸 위로 수십 검이 쏟아졌다. 이때쯤 해는 이미 서산으로 졌고, 하늘은 노을의 절정에 물들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석군평이 자하신공을 끌어올려 칠절매화검을 펼치고 있으니, 객당 안마당은 온통 붉은 공기로 가득 찬 듯했다. 붉은 검날이 춤을 추듯 쏟아지자, 화산파의 제자들이 박수를 터뜨리며 함성을 질렀다.
“와아!”
지켜보던 진양 역시 놀란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내가 사용할 때와는 위력이 또 다르구나. 지금 저분은 매영난세와 낙매여우 초식을 혼용하여 쓰고 있다. 하니 더욱 실과 허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각각의 초식이 지니고 있는 단점마저 보완하는구나. 과연 명불허전이다.’
하지만 마천강도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현란한 보법을 밟아가며 석군평의 검을 피하고 있었다.
진양은 마천강을 유심히 보며 다시 감탄했다.
‘저자의 회피 동작은 보법에서 팔 할 이상이 결정되는구나. 오로지 회피를 위해 만들어진…… 보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 보법의 이름이 뭘까? 저런 보법은 익혀두면 아주 유익할 텐데.’
물론 석군평이 내상을 입지 않은 몸이었다면 제아무리 마천강이라도 오로지 회피 동작만으로 쏟아지는 수십 검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상을 입은 석군평의 검세는 평상시만큼의 위력을 낼 수 없었다.
현란한 보법을 밟아가며 회피하던 마천강이 어느 순간 몸을 바짝 숙이더니 석군평의 품으로 불쑥 파고들었다.
석군평은 아까 마천강의 장력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얼른 몸을 반 장 정도 물리면서 손을 뻗어나갔다.
한데 그 순간 마천강이 허리춤에서 두 자 정도 길이의 검을 뽑아 들었다.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탄성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발검 속도라고 할 만했다.
반면 장력을 뻗어가던 석군평은 크게 놀라며 다시 한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마천강의 발검이 워낙 빨라 석군평의 왼팔 소맷자락이 길게 찢어져 나가면서 피가 흩뿌려졌다.
잘려 나간 소맷자락 사이로 석군평의 팔뚝이 길게 찢어진 것이 보였다.
“사부님!”
여미령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녀는 평소 존경하던 사부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 들고 몸을 날려갔다.
“내 검부터 받아라!”
그녀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일검을 내찔렀다.
하지만 마천강은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가볍게 몸을 뒤틀며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찍었다. ‘퍽!’ 소리가 나면서 여미령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참을 굴러간 여미령은 상처를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서는 다시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를 본 석군평이 버럭 소리쳤다.
“령아! 나서지 마라! 네가 상대할 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여미령의 검은 마천강의 가슴팍을 노리며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마천강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이는 마치 날아오는 검을 향해 손목을 갖다 바치는 꼴이나 다름없었기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한데 마천강이 재빨리 보법을 밟으며 손목을 뒤틀자, 어느새 그의 손은 여미령의 손목을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챙그랑!
손목이 뒤틀리면서 여미령은 들고 있던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이것 놔라! 더러운 녀석!”
“어린년이 예절을 너무 모르는구나. 손목이 부러져 봐야 세상 넓은 줄을 알겠느냐?”
마천강은 스산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더니 손에 힘을 주었다. 여미령은 까무러칠 듯한 고통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그때 진양이 쏜살같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그만두시오!”
순식간에 마천강이 있는 곳까지 날아온 그가 재빨리 수호필을 내려쳤다.
마천강이 얼른 여미령의 손목을 놓고 물러나자 수호필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천강은 곧바로 검을 가로로 후리며 진양의 가슴을 베어갔다. 진양 역시 얼른 보법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수호필을 끌어올렸다.
까앙!
두 자루의 무기가 부딪치자 불티가 휘날리며 금속성이 사람들의 고막을 내찔렀다.
진양은 얼른 벽력섬광도의 도초를 펼쳐 나갔다. 단단하고 넓게 퍼진 붓털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토해내며 상대를 위협해 갔다. 마천강 역시 손목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요란한 금속성이 터져 나왔는데, 나중에는 마치 하나의 소리처럼 어우러질 정도로 빨랐다.
진양의 자양신공을 머금은 은잠사는 이미 강철이나 다름없었다. 붓털은 검날과 부딪칠 때마다 쇳소리를 울리며 불티마저 휘날렸다.
이때쯤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하늘을 붉히던 노을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대개의 무인들은 마천강과 진양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때 갈지첨이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이 양가 놈아! 네놈은 내가 죽인다고 했으니 내 곤부터 받아라!”
그가 삼절곤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지켜만 보던 승천각주 송강이 검을 뽑아 들고 달려나왔다.
“비겁하게 소년을 상대로 어른 둘이 덤비다니!”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중년의 여인과 종지령이 앞을 막아섰다.
“흥! 먼저 끼어든 것은 그쪽이 아니오?”
검을 뽑아 든 사람이 늘어나자, 석군평을 비롯한 화산파의 제자들도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고 싸울 태세를 갖췄다.
마침 풍천익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불을 밝혀라!”
그러자 천상련 곳곳에 곧 불이 밝혀지고 객당의 안마당은 금세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가 일부러 불을 밝히게 한 것은 천의교 무인들에게 머릿수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한데 갈지첨이 낄낄거리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천의교 신도들은 나와라!”
그러자 천의교가 나타났던 건물 모퉁이 뒤에서 경장 차림의 무인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지붕 위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어림잡아도 마흔 명은 되어 보였다.
천의교 신도들이 거짓말처럼 나타나자, 천상련의 무인들은 물론 화산파와 종남파의 제자들도 경악하고 말았다.
풍천익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제미랄! 저들이 언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가만, 그렇다면 파수를 서는 녀석들이 전부……?’
분노가 끓기 시작하자 다시 가슴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천의교 신도들이 이곳까지 들어온 걸 보면 틀림없이 천상련의 무인 상당수가 희생되었으리라.
‘어쩌다가 천상련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풍천익은 남몰래 장탄식을 토하며 이마를 짚었다.
이때쯤 진양과 마천강 등은 싸움을 멈추고 양 갈래로 나뉘어 서서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갈지첨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어쩌시겠소? 이대로 한판 벌여보겠소?”
결국 풍천익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또다시 격한 기침을 토해냈다.
“련주님을 죽인 원수를 이대로 살려 보내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쯧쯧. 그렇지 않으면?”
“이노옴! 쿨럭쿨럭!”
풍천익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비틀거리자 진양이 얼른 돌아와 그를 부축했다.
“풍 각주님, 복수는 미루고 우선은 천상련을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철기각주 동소립이 동의하며 나섰다.
“양 소협의 말이 맞소. 풍 각주, 오늘은 본 련에 큰일이 일어난 터라 모두 동요하고 있으니 원수는 다음에 갚도록 합시다. 련주님을 죽인 자들이 저들인 것을 확실히 알았으니 언제라도 복수를 할 수 있을 거요.”
“끄음.”
풍천익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였다.
객당 너머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함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풍천익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진양이 얼른 나섰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진양이 몸을 훌쩍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가니, 갈지첨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올랐다.
“네놈 모가지는 내가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러자 송강이 얼른 외쳤다.
“모두 양 소협을 엄호하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