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85
신필천하(神筆天下) 85화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승천각의 무인들이 새 떼처럼 날아올라 진양을 호위했다. 갈지첨은 진양을 공격하기가 여의치 않자 멀리 떨어진 곳까지 물러났다.
그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 무리의 무인이 섞여 서로 상잔하고 있었다.
진양은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한 쪽은 천의교 신도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위사령과 흑표를 비롯한 혈사채의 무인들이었던 것이다.
“흑 형님! 위 선배님!”
진양이 얼른 몸을 날려 그들 무리 위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천의교 신도들이 일시에 진양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진양을 호위하는 승천각 무인들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기에 다시 상황은 난장 속으로 치달았다.
흑표와 위사령은 진양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무사하셨군!”
“예.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오신 겁니까?”
“양 소협이 오지 않으니 걱정이 돼서 온 것이오! 한데 천상련에 복잡한 사정이 생긴 모양이군. 이들은 천상련의 무인들이 아닌 모양인데.”
위사령이 적을 일검에 베어내며 말했다.
진양 역시 상대의 혈도를 점하며 대답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너무나 복잡해서 어디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지붕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갈지첨이 버럭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그러자 천의교 신도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길이 열리자 진양은 혈사채 무인들을 이끌고 객당 안마당까지 들어왔다. 만약 천의교 신도들이 계속해서 혈사채와 승천각 무인들을 공격했다면 싸움이 의도치 않게 커질 수 있었기에 포위를 풀도록 명한 것이다.
혈사채 무인들까지 마당으로 들어오자, 객당의 안마당은 검을 뽑아 든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갈지첨은 이를 부득 갈았다.
‘원래는 우리 위교사왕이 냉 련주를 죽인 뒤에 그 일을 화산파와 종남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건만.’
만약 그렇게만 됐다면 화산파와 종남파는 이 모든 것이 풍천익의 계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풍천익을 일부러 뇌옥에서 풀어준 것이기도 했다.
계획대로만 흘러갔다면 정사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었으리라.
한데 변수가 생겼다.
우습게도 창천당주 왕자헌이 풍천익의 편을 들지 않고 화산파와 종남파의 편을 든 것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위교사왕은 천상련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태를 주시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양이 나타나더니 모든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천의교로서는 진양이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해서 갈지첨은 진양만은 죽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혈사채까지 끼어든 것이다.
갈수록 일은 커지고 천의교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만약 이대로 천의교와 나머지 세력이 한바탕 싸움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위교사왕의 무공은 다른 이와 견줄 수 없을 만큼 고강하다. 그나마 풍천익과 송강, 그리고 양진양과 석군평이라면 적수가 될 것이다.
한데 이들 중 멀쩡한 자는 양진양밖에 없다.
이렇게 여덟 명이 싸우면 위교사왕이 이길 것이다.
하지만 머릿수에서 많이 밀린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갈지첨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마천강이 껄껄 웃었다.
“이거 사정이 복잡하게 됐군. 보아하니 오늘 천상련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듯한데,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오. 우리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소.”
“흥! 뻔뻔하기 짝이 없군! 그 유감스러운 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아니던가?”
석군평이 날카롭게 힐난하자 마천강은 그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가 몸을 돌리며 천의교 신도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그만 돌아가지.”
그러자 천의교 신도들이 길을 열었다. 위교사왕을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신도들도 더 이상 살기를 드러내지 않고 몸을 물리기 시작했다.
풍천익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거칠게 숨을 쉬었다. 진양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각주님, 우선은 좀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풍천익은 노기가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왕자헌과 곽연을 쏘아보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에는 왕 당주의 불찰이 다분하오! 왕 당주는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난…… 난…….”
왕자헌이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지만, 뭐라고 변명할 말이 없었다. 뇌옥에 갇혀 있던 풍천익조차도 적들을 막으려고 부상까지 입었는데, 왕자헌은 가만히 서서 적을 도와준 꼴이 되지 않았나? 곽연 역시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송강이 나서더니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본 련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각 당주와 부당주, 그리고 각주와 부각주는 천상궁으로 모여서 대책을 회의하는 것이 좋겠소! 또한 대주들도 모두 참여하는 것이 좋겠소!”
그러고 나서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풍천익 역시 왕자헌과 곽연을 매섭게 노려보고 나서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는 곧 수하들을 시켜 진양 일행을 손님으로서 정중히 접대하도록 일렀다.
그리고 화산파와 종남파를 장내에서 당장 쫓아내라고 일렀지만, 주위에서 말리는 바람에 객당에 머물도록 했다.
잠시 후 천상련 곳곳에서는 무인들이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4. 비참한 최후
그날 밤 천상궁 대청에는 대주 급 이상의 무인들이 모였다.
냉이천 련주가 앉아 있어야 할 상석은 쓸쓸한 모습으로 비어 있었다.
탁자에 둘러앉은 무인들은 저마다 비통한 심정으로 말을 아꼈다. 어쩌다가 입을 열어도 장탄식과 함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풍천익이 진양 일행을 데리고 대청으로 들어왔다.
모여 있던 무인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풍천익과 진양 일행을 맞이했다.
제일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은 천기당주 상중명(相中明)이었다.
“련주님의 시신은 보셨소이까?”
풍천익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은 것인지 심호흡을 깊게 할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말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봤소.”
냉이천 련주의 시신은 천상궁의 침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침실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흔적을 살펴서 여러 단서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다만 련주의 시신만은 침상 위로 반듯하게 옮겨놓았다.
그럼에도 방은 비교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침상 옆에는 련주의 호신위 네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두 명은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나 있고 다른 두 명은 목에 난 자상이 사망 원인으로 보였다.
네 구의 시체를 살펴본 풍천익은 곧바로 위교사왕 중 중년의 여인이 흉수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비도술을 이용해서 네 명을 순식간에 해치웠군. 련주님의 시신이 처음 있었던 위치는 어디인가?”
풍천익의 질문에 무인 한 명이 바닥 한쪽을 가리켰다.
“이곳에 누워 계셨습니다.”
풍천익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의자 하나가 부러지고 탁자 모서리가 날카롭게 베인 것 빼고는 어떠한 물건 파손도 없었다. 싸움이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는 뜻이다.
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는데, 련주의 발 크기만큼 모양이 찍혀 있었다.
방 안의 풍경을 한참 동안 살피던 풍천익의 눈에 조금씩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의 모습이 펼쳐졌다.
냉이천 련주는 자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이때쯤 이미 그의 호신위 네 명은 침상 앞을 가로막고 방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호신위들이 저마다 검을 뽑아 들기 위해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는데, 돌연 문이 열리더니 밖의 어둠 속에서 단도 네 자루가 날아왔다.
쒜엑! 쒜에엑!
“컥!”
“억!”
두 자루의 단도는 왼쪽 두 명의 가슴에 깊이 박혔고, 다른 두 자루는 오른쪽 두 명의 목을 그어 버렸다.
네 명의 호신위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쓰러질 때, 냉이천 련주는 검을 집어 들고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타앗!
사실 호신위의 죽음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련주의 신변이 위험에 처하면 죽음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 찰나의 시간이 고수들에게는 기사회생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빛살처럼 날아간 련주는 그대로 일검을 후렸다.
이때 갈지첨이 튀어나오며 삼절곤을 휘두른다. 두 무기가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갈지첨은 기세를 몰아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련주를 비껴 나간 갈지첨의 삼절곤이 그대로 의자를 내려쳐 부숴 버린다. 의자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나뒹군다.
이때 련주가 갈지첨의 허점을 노리고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그 순간 갈지첨의 등 뒤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온다. 키가 땅딸막한 노인이 곰 발바닥처럼 단단하고 두터운 손을 내질러 온다.
퍼억!
미처 노인을 보지 못한 련주는 그대로 장력을 단전에 두드려 맞고 만다. 급히 호체신공을 발동시키지만, 단전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이에 날카롭게 뿌려냈던 검은 방향을 잃고 옆에 있던 탁자 모서리를 잘라낸다.
련주는 선지피를 한 움큼 토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선다. 쏟아져 내린 피가 발치에 고인다.
아주 잠깐의 격렬한 싸움은 소강상태로 빠져든다. 련주가 그들을 노려보고 누구냐고 물었을 수도 있다.
그때 다시 문밖의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바람처럼 날아든다.
쒜에엑!
련주는 죽음을 직감한다. 이미 내장은 모두 파열된 상태이고, 기혈도 마구 얽히고 말았다.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살아날 가망성은 없다.
하늘은 돕지 않았고, 달려온 바람은 두 자 정도 길이의 검을 련주의 가슴팍에 박아 넣는다.
푸욱!
그가 검을 단숨에 뽑아내자 대량의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며 다시 또 발치에 고인다.
련주는 두어 걸음 물러나다가 쓰러진다. 가슴을 붉게 물들인 채로.▒
풍천익은 시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뿜어져 나왔던 피가 딱딱하게 응고되어 있었다. 그는 손을 가늘게 떨며 서서히 아래로 내렸다. 냉이천 련주의 단전에는 검은색 모양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손바닥은 안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던 그 노인의 것과 크기가 닮았다. 그 노인은 분명 장력을 특기로 연마한 자였다. 손바닥이 곰 발바닥처럼 두껍고 거칠었다.
대략의 사정을 파악한 풍천익은 련주의 시신을 향해 포권을 해 보인 다음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천상궁 대청으로 향했다.
풍천익의 이야기를 들은 무인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송강이 말했다.
“나도 풍 각주와 똑같이 추리했소.”
송강은 풍천익과 함께 천상련에서 가장 강한 무인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자였다. 그가 풍천익의 추리에 동의하니 다른 무인들은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 천기당주 상중명이 탁자를 쾅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왕 당주! 도대체 이번 일을 어떻게 해명할 생각이오? 그대는 풍 각주를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의심하지 않았소?”
그의 역정에 풍천익이 차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