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9
신필천하(神筆天下) 9화
“클클, 쥐새끼 두 마리가 함부로 뛰어다니는구만.”
순간 진양과 공소부는 심장마저 얼어붙는 줄 알고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자가 말한 쥐새끼가 바로 자신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여섯 무인 중 우두머리는 그 속뜻을 눈치채지 못하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어서 걸어!”
남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양과 공소부는 얼른 몸을 숨기고는 수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진양은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형님, 아까 그 사람은 누굴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아마 천중옥(天中獄)에 잡힌 사람인 것 같은데…….”
천중옥은 천상련에 죄를 지은 자나 원수를 잡아 가두는 곳이다. 때로는 내부에서 중요한 규율을 어긴 자들이 그곳에 갇히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죄수들까지 공소부가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보각 정문에서 무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부각주님 오셨습니까?”
순간 공소부와 진양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두 사람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부각주라니? 어떻게 부각주가 이곳 천상련에 있단 말이야?’
공소부와 진양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두 사람이 얼른 고개를 내밀어 보니 정말 곽연 부각주가 문지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그, 그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공소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진양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어쩌죠? 아무래도 곽 부각주님이 이곳에 계셨나 봐요.”
공소부는 이제 오줌이라도 쌀 지경이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렸고, 다리는 후들거려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두렵기는 진양도 마찬가지였다. 진양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이제 어쩌죠? 아아, 괜히 저 때문에…….”
“아니야. 내가 잘못 알아서 벌어진 일인걸. 내가 미안해.”
“아니에요, 형님. 제가 잘못한 거예요.”
두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궁리를 거듭했다.
곽연이 이제 천보각으로 들어갔으니 진양이 방에 없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터였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혼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수레에 숨어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두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천보각에서 곽연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 고함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진양과 공소부에게도 뚜렷이 들릴 정도였다.
곽연은 정문으로 나오더니 네 명의 무인을 크게 나무랐다. 내용인 즉슨, 진양이 사라졌는데 지금껏 뭘 하고 있었냐는 질책이었다. 무인들이 우물거리자 곽연은 다짜고짜 뺨을 한차례씩 올려붙였다.
그 모습을 숨어서 보고 있자니 공소부와 양진양은 모골이 송연해지며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진양이 마음을 다잡고 공소부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요, 형님.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세요. 제가 지금이라도 나서면 곽 부각주님의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잘못 알아서 네가 이렇게 된 건데. 그럴 수는 없어.”
“아니에요. 제가 먼저 나가고 싶다고 한 걸요. 형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 어서 숙소로 가세요. 제가 지금 돌아가서 제 발로 나왔다고 말하면 형님은 괜찮을 거예요.”
진양은 말을 꺼내면서도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공소부가 피해를 입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진양이 이토록 의리를 챙기니 공소부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혼자서는 갈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설전이 자연스레 길어졌다.
진양은 계속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을 거란 생각에 말을 맺자마자 몸을 돌렸다.
“전 가볼게요. 형님, 꼭 돌아가세요.”
공소부가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진양은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진양은 그 자리에서 바위처럼 굳고 말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더냐?”
진양이 앞을 가로막고 선 사람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곽연이 바로 앞에 다가와서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양이 너무 놀라 입만 쩍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데, 곽연이 모퉁이를 힐끔 보더니 차갑게 일렀다.
“거기! 소부도 나오너라!”
결국 공소부도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모퉁이를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4. 자양진경(字陽眞經)
쾅! 콰장!
풍천익이 손바닥을 내려치자 탁자가 단숨에 부서져 나갔다.
그 앞에 서 있던 양진양과 공소부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덜덜 떨었다. 두 사람은 머릿속이 하얘서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풍천익은 두 아이를 노려보다가 문득 곽연을 돌아보더니 다짜고짜 뺨을 두 차례나 세차게 후려쳤다.
짜악! 짜악!
공력이 실린 손찌검이었기에 곽연의 뺨은 금방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게다가 입술마저 찢어져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어린것들조차 간수하지 못한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곽연이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진양과 공소부는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부각주가 자신들 때문에 피가 나도록 맞았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풍천익이 자리에 앉아 두 아이를 번갈아보았다.
“네놈들이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진양이 이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나서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각주 어르신, 전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밖에…… 밖에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소부 형님은 그냥…… 제가 너무 조르니까…… 어쩔…… 흑, 어쩔 수 없이…….”
진양은 말을 마저 잇지도 못한 채 울음을 크게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공소부도 무릎을 꿇더니 엉엉 울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나빴어요. 각주님, 절 벌해주세요.”
두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자, 실내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곽연이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시끄럽다!”
두 아이는 겁에 잔뜩 질려 울음을 꾸역꾸역 참았다. 하지만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소리는 어쩌지 못했다.
풍천익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 아이들을 보았다. 그는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 내심 이 두 아이의 의리와 용기에 감탄하고 있었다.
하나 이대로 용서할 수는 없는 일.
풍천익은 벌떡 일어나더니 곽연의 허리춤에 매인 장검을 ‘스릉’ 뽑아냈다. 예리한 날이 등불에 비쳐 새빨갛게 빛을 뿜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받아야지.”
말을 마친 풍천익이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진양과 공소부는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풍천익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살기가 쏘아져 나왔다. 결국 무공을 전혀 익히지 못한 진양이 먼저 의식을 잃으며 쓰러졌고, 이어서 공소부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풍천익이 뿜어대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감당하지 못해 그대로 기절하고 만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두 아이는 지독한 공포를 경험했을 터이다.
풍천익이 검을 거두고는 곽연에게 건넸다.
“소부를 숙소에 데려다 주거라. 진양은 내가 알아서 하마.”
“예, 각주님.”
곽연이 공소부를 어깨에 둘러메고 집무실을 나갔다.
풍천익은 쓰러져 있는 진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서늘한 바람.
진양은 이마를 부드럽게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밤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별이 당장에라도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그때 진양은 머릿속을 퍼뜩 스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소부 형님! 소부 형님!”
진양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다음 순간 진양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몸의 중심을 잃었다.
이제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은 높은 지붕의 용마루 위가 아닌가?
진양이 막 지붕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진양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진양은 고개를 들고 상대를 확인했다.
“각주…… 어르신?”
진양의 어깨를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풍천익이었다. 그가 코웃음을 치며 냉랭하게 물었다.
“흥! 정신이 드느냐?”
진양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왜 자신이 풍천익과 함께 지붕 꼭대기에 올라와 있단 말인가?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이거…… 꿈인가요?”
“멍청한 소리는 작작 하고 정신 차려라!”
진양이 볼을 살짝 꼬집어 보니 따끔한 것이 꿈은 아니었다.
“소부 형님은…….”
다 기어들어 가는 진양의 목소리에서는 걱정이 뚝뚝 묻어났다. 괜히 자신의 욕심 때문에 착한 공소부가 해를 입을까 봐 몹시 걱정된 것이다.
“네놈이 남 걱정할 때이더냐?”
“죄송해요, 각주 어르신. 다음부턴 절대로 안 그럴게요. 그러니 소부 형님도 용서해 주시면 안 되나요?”
진양이 애처롭게 말하자, 풍천익이 눈살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그 녀석은 지금쯤 숙소에서 자고 있을 게다.”
그제야 진양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풍천익은 묵묵히 등불이 밝혀진 련 내 풍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바로 천보각의 지붕 위였다.
풍천익이 더 이상 말이 없으니 진양도 잘못한 것이 있어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는데, 풍천익이 불쑥 말을 꺼냈다.
“저 밖이 그리 가고 싶더냐?”
진양은 잠시 풍천익을 바라보다가 사실대로 대꾸했다.
“네…….”
“왜 가고 싶은 게냐?”
“여기서만 지내니 너무 답답한 걸요.”
진양의 울적한 목소리에 풍천익이 다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진양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절대 안 나갈 거예요. 정말이에요!”
“흥! 원래 한 번 울타리를 벗어난 망아지가 또 뛰쳐나가는 법이지.”
“아니에요. 정말로 이제는 이곳에서만 지낼 거예요.”
진양은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 기색을 눈치챈 풍천익은 가만히 야경을 바라보았다.
‘하긴 답답할 때가 됐지.’
벌써 일 년이다.
한낱 열두 살의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고초였을 것이다.
풍천익은 최근 진양의 글씨를 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절제해야 할 부분에서 조금씩 넘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 했다.
필자의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글씨도 비뚤게 나오는 법이다. 때문에 바른 글씨가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법이다.
진양은 일 년 동안 갇혀 지내면서 참고 참다 보니 그 욕망이 글씨에 드러나고 만 것이다. 만약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진작 글씨가 망가졌으리라.
다 큰 성인의 군부에도 탈영병이 있는데, 이 어린것은 오죽했으랴.
풍천익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진양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네?”
“여기서 밤샐 작정이냐? 손을 잡으란 말이다. 오늘 밤 네게 천상련을 구경시켜 주마.”
진양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