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96
신필천하(神筆天下) 96화
“당신! 정말 상종을 못할 인간이구만!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아? 우리 학립관은 원나라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소! 학립관의 조사께서는 원나라 시대에 높은 벼슬을 하셨으나, 몽골인의 야만성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셨소이다! 그 후 전쟁이 일어나자 조사께서는 모든 재산을 학립관을 만드는 데 쓰셨소! 그 후에 어떻게 유지되고 있냐고? 학립관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학립관으로 돈을 보내주었소! 그들에게 이 학립관은 추억이 가득한 고향집인 것이오! 자, 그럼 이제 무적관은 도대체 어디서 수익이 나는 것이기에 본 관을 그리 취급하시는지 들어봐도 되겠소?”
장도식은 대꾸할 말이 없어지자,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돌렸다.
“후후. 어쨌거나 내가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오. 무적관은 아이들이 필요하오.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을 보내주셔야겠소.”
“그럴 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이미 보내온 아이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소? 그 아이들은 모두 암살대로 조직될 것이오. 물론 암살대의 특훈도 받게 되겠지.”
“이런 쳐 죽일 놈들!”
진양이 이야기를 듣다 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곁에서 함께 듣고 있던 유설과 흑표도 화가 나는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진양이 소리쳐 물었다.
“여동추는? 여동추는 그때 뭘 하고 있었답니까? 사부님이 이런 곤경에 처했는데, 그 녀석이 나서서 무적관의 관주를 설득시켰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단지겸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 녀석이 장 관주를 설득시킨다고? 괜한 기대는 하지도 말게나.”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녀석이 무적관으로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여동추도 그럼 철혈문의 암살대로 들어갔단 말인가?”
“아닐세. 그 녀석은 무적관에 그대로 있네.”
“한데?”
성조영이 또다시 긴 한숨을 흘리며 말했다.
“내 마저 말해주마.”
그날 성조영은 장도식과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조영이 장도식을 뚫어질 듯 노려보고 있는데, 마침 밖에서 여동추가 들어왔다. 그는 성조영을 힐끔 보고는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성 관주님, 오셨습니까?”
“오냐. 너는 그동안 잘 지냈느냐?”
“예.”
그때 장도식이 성조영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추야, 학립관에서 온 아이들은 모두 집합시켰느냐?”
“예, 사부님.”
“그럼 그 아이들에게 오늘 밤부터 암살 특훈을 시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성조영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짓이오?”
“뭐하는 짓이라니요? 보다시피 우리 일을 하고 있지 않소?”
“아이들을 다시 데려가겠소!”
“후후, 성 관주. 아직도 상황을 모르겠소? 당신이 아이들을 더 이상 보내주지 않는다고 하니 지금 그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오?”
“닥치시오!”
결국 참지 못한 성조영이 와락 달려들며 장도식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여동추가 불쑥 끼어들더니 금나술법으로 성조영의 손목을 낚아챘다. 순간 성조영은 팔이 꺾이며 뼈마디가 모조리 부러질 듯 아파 비명을 터뜨렸다.
“아악!”
“성 관주님, 사부님께 무례하게 굴지 마십시오.”
여동추가 냉랭하게 말하는 소리에 성조영은 머릿속이 아찔했다.
“너, 네가 어찌 내게 그럴 수가 있느냐? 나 또한 너를 가르친 사부이거늘!”
“성 관주님, 동시에 두 부모를 섬길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저는 성 관주님의 품을 떠난 자식입니다. 이제 제 사부님은 장 관주님이십니다.”
“너, 네 이놈! 아악!”
“성 관주님, 아이들을 보내주십시오. 정말로 이대로 아이들이 암살대로 파견되길 원하십니까? 사파의 암살대로 파견되면 어린아이들은 팔 할이 채 오 년을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네놈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학립관의 아이들은 네 아우들이 아니냐?”
“아우요? 전 천애고아입니다. 제게는 부모도 형제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여동추는 그제야 성조영의 팔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가 떠민 힘이 너무 거칠어 성조영은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바닥에 꼴사납게 고꾸라지고 말았다.
성조영은 여전히 욱신거리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잡고 일어섰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을 데려올 방법도 없고, 보내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성조영이 물었다.
“하면…… 하면…… 아이들을 보내주면…… 지금 아이들을 암살대로 파견하지 않으시겠소?”
장도식이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분명히 약조하시오. 학립관에서 아이들을 보내면 절대로 그 아이들을 암살대로 파견하지 않겠다고! 또한 아이들에게 무리한 훈련을 시키지 않겠다고 말이오!”
“후후,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약조하겠소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사정은 좀 나아졌습니까?”
진양의 물음에 성조영이 고개를 저었다.
“알 수가 없네. 무적관의 모든 훈련이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도저히 알아내기가 힘들었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정말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들었네.”
여기까지 이야기한 성조영은 이맛살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한숨지었다. 진양은 이제야 성조영이 그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연로해 보이게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단지겸이 말했다.
“사부님은 그 후로 아이들을 거두지 않고 계시네. 이제 이 학립관은 더 이상 아이들을 받지 않고 있는 거야. 그 아이들이 학립관에 들어와서 오히려 고생만 하게 될까 봐 말일세.”
진양은 대청에서 서성이며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단지겸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그 무적관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한번 찾아가 보고 싶군.”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을 걸세. 요즘 들어 여동추가 아이들을 데리러 매일같이 오고 있으니 말일세.”
“혹시 여동추가 무적관의 협박을 받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협박? 하하! 자네는 사람을 너무 믿는군. 나중에 자네가 직접 그를 보면 알겠지. 협박을 받아서 하는 행동인지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인지 말이야.”
성조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이가 오랜만에 와서 기쁜 날이건만, 괜한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구나.”
“아닙니다, 사부님. 학립관의 일이 곧 제 일이나 다름없지요. 사실 저 역시 이번에 대별산 근처에 작은 서예 학당을 하나 차릴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이런저런 조언을 들을까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학당이라…… 요즘처럼 흉흉한 시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천하가 전쟁통에 혼란스러울 땐 오히려 선인이든 악인이든 단결하여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지만, 이처럼 대외적으로 태평한 시기에는 그 속이 곪아가는 법이지. 주위에서 학당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 같구나.”
그때 마침 밖에서 호랑이 울음처럼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성 관주, 안에 계시오!”
성조영과 단지겸은 그 소리가 익숙한 듯 눈살만 슬쩍 찌푸렸다. 반면 진양은 처음 듣는 목소리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누구입니까?”
“누구긴 누구겠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바로 그 여동추지!”
그때 다시 여동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계신 것 알고 있소! 그러니 어서 이리 나오시지요!”
성조영과 단지겸은 착잡한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양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나가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숨어 있다 보면 제풀에 지쳐 돌아갈 때가 많았네.”
한데 단지겸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여동추가 다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오늘만큼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누가 이기는지 해봅시다! 성 관주는 일찌감치 나와서 서로 힘 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들으며 진양은 기가 찼다.
‘여동추 이 녀석은 정말로 위아래도 모르는구나. 그래도 사부님이 저를 거두어들여 수년간 키워주고 가르쳐 주었건만, 어찌 저리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단 말인가?’
진양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단지겸이 얼른 불렀다.
“진양 자네, 어딜 가려는가?”
“이렇게 숨어 있다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는가? 여동추를 만나 봐야겠네.”
그러자 성조영도 나서서 말렸다.
“양아, 동추를 설득시킬 생각이면 포기해라. 그 녀석은 이미 무적관의 무인이다.”
“무인이라니요? 제 아우들까지 팔아먹는 자가 어찌 무인이라는 말입니까? 여동추도 좋은 말로 타이르면 알아듣겠지요.”
말을 마친 진양이 대청 문을 활짝 열고 나갔다.
결국 성조영과 단지겸도 더 이상 대청 안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유설과 흑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진양이 막 건물 모퉁이를 돌아 마당으로 걸어가려는데, 누군가 이미 나와서 여동추를 맞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보니 바로 서요평이었다.
그는 동생 서운지와 함께 방에서 쉬고 있다가 돌연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 밖으로 나와보았던 것이다.
서요평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은 누구기에 마당까지 들어와 이리 소리치고 행패를 부리느냐?”
“음? 그러는 당신은 누구요?”
여동추는 넙데데한 얼굴이었는데,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와서 머리가 더욱 커 보였다. 거기에 덩치마저 큰 편이어서 체구가 작은 서요평에 비하면 마치 어른과 아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여동추의 등 뒤에는 십여 명의 무인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여동추의 물음에 서요평이 기가 찬 듯 말했다.
“하! 요 맹랑한 녀석 좀 보게? 어디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뭐라고? 당신? 보아하니 네놈은 무공을 좀 익힌 모양인데 사문이 어찌 되느냐?”
여동추는 상대가 갑자기 사문을 물어오자 조금 당황했다. 이 조그만 늙은이가 무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서요평은 서운지의 침상 곁에 검을 두고 나왔기에 더욱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여동추가 어정쩡한 태도로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후배가 선배님을 몰라 뵀습니다. 결례를 용서해 주시길.”
“흥! 이 몸은 한번 눈 밖에 벗어난 놈을 용서해 본 기억이 없다! 네놈은 사문이 어찌 되느냐? 내가 찾아가서 네놈 사부를 불러 너의 무례를 따져 물어야겠다.”
여동추는 상대가 자신의 사부까지 무시하며 나오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조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는 선배께서는 사문이 어찌 되시는지요?”
“사문? 우리는 그런 것 없다!”
“하면……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흥! 사상이협이라고 들어봤느냐?”
여동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사상이협이라…… 사상이협…… 사상이…… 아! 사상이……!”
머릿속을 퍼뜩 스친 생각에 여동추는 ‘괴’ 자라는 말을 목 안으로 꿀꺽 삼켰다. 사상이괴가 스스로를 소개하거나 남에게 들을 때는 ‘사상이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여동추는 사부인 장도식으로부터 사상이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젠가 장도식은 사파의 뛰어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사상이괴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는 사상이괴가 친형제를 가리키는 별호인데, 그들이 힘을 합쳐 적과 맞서 싸우면 천하에 적수가 몇 없다고 했던 것이다.
여동추가 깜짝 놀라는데, 마침 그들 곁으로 다가온 진양이 서요평을 향해 말했다.
“선배님, 여긴 제게 맡기시고 들어가 쉬십시오.”
여동추가 고개를 돌려 보니 웬 낯선 청년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서요평은 그대로 물러가긴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고분고분 물러갔다.
하지만 완전히 방으로 돌아가진 않고 먼발치에 멈춰 서서 진양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진양에 이어 성조영과 단지겸, 그리고 유설과 흑표가 마당으로 나왔다.
여동추가 이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이죽거렸다.
“성 관주, 오늘은 손님이 많은 것 같소? 혹시 무적관을 상대해 보려는 수작이오?”
여동추는 진양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반면 진양은 여동추의 말투에 다시 한번 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추, 오랜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