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98
신필천하(神筆天下) 98화
진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리춤에서 수호필을 꺼내 들었다.
“후회하지 않겠나?”
“후후! 내가 할 말일세.”
“자네 혼자 날 상대하겠나?”
여동추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네.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좋을 대로.”
여동추가 혼자 나서겠다고 한 것은 만약을 대비한 것이었다. 자신이 괴멸조를 이끌고 진양 한 명을 공격한다면 세간에 퍼질 소문도 좋지 않을 것이고, 그 천상련이라고 자칭한 무인들이 나설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동추는 진양에게 패할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여동추가 시퍼렇게 빛나는 검을 뽑아 들고 이죽거렸다.
“보아하니 자네도 어디서 무공 좀 익혔나 보군. 체격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
“알아봐 주니 고맙네. 하나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다네.”
“후후, 그럴 것 같군.”
팟!
여동추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선공을 취했다. 나이도 같으니 굳이 선공을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 또한 그는 장도식으로부터 늘 선공이 최선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쒜에엑!
여동추가 뿌린 검날은 빛살처럼 날아가 진양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순간 진양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수호필을 가로로 휙 젓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며 그의 검이 튕겨 나갔다.
그 반동으로 여동추가 휘청 물러나자, 진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짝 파고들었다. 여동추는 황급히 왼손을 뻗으며 장력을 발출했다.
순간 진양과 여동추 사이에 요란한 폭음이 터지고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졌다.
서로가 장풍을 주고받은 것이다.
여동추는 내심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 언제 이렇게 무공을 익혔지?’
사실 그는 은연중에 진양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진양의 덩치가 커지고 체격이 단단해졌다지만, 그에게는 어렸을 적 연약한 진양의 모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데 검을 섞어 보니 뜻밖에도 묵직한 힘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여동추는 검의 손잡이를 힘주어 쥐고는 조소를 머금었다.
“제법이군.”
한데 이번에는 진양이 재빠르게 여동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여동추는 진양이 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하지만 진양은 한 번 노린 먹잇감을 끝까지 쫓는 맹수처럼 끈질기게 물고 달려들었다.
쒜에엑!
진양의 수호필이 날카롭게 파공음을 일으키며 여동추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여동추는 흠칫 떨며 순간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찰나 진양의 필봉이 그대로 여동추의 왼쪽 어깨 중부혈(中府穴)을 내찔렀다.
“악!”
여동추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필봉이 내력을 온전히 머금지 못했는지 은잠사가 휘청 구부러지며 여동추의 고통도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순간 노기가 치밀어 오른 그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무섭게 검을 휘둘러 갔다.
그사이에 진양이 머리를 슬쩍 숙여 검을 피하더니 왼손을 휘둘러 여동추의 오른뺨을 철썩 때리는 것이 아닌가.
“아얏!”
졸지에 뺨을 얻어맞은 여동추는 깜짝 놀라면서도 더욱 화가 치솟았다.
“이 자식이!”
그가 다시 욕지기를 뱉어내며 검을 곧장 내찔러 갔다.
한데 이번에도 검봉이 진양의 복부를 찌르기도 전에 진양의 수호필이 먼저 여동추의 왼뺨을 후려쳤다. 은잠사가 적당한 탄력을 일으키며 뺨을 치니 손으로 때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여동추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이제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공격을 할 때마다 번번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양에게 당해 버리니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하지만 여동추는 그것이 진양이 노리는 바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만약 진양이 마음먹고 여동추를 상대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그로서는 진양에게 일초반식도 되지 못할 상대일 것이다.
하나 진양은 여동추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약이 오르게끔 힘을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동추는 곧장 검을 마구잡이로 퍼붓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요평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글렀군, 글렀어. 저딴 무공을 어디에 내세운다고? 흥!”
그리고 마치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진양의 수호필과 손바닥이 연신 여동추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쒜엑!
철썩!
쒜에엑!
철썩!
연이어 뺨을 얻어맞자 여동추는 양 볼이 시뻘겋다 못해 푸르뎅뎅하게 물들어 버렸다.
나중에는 여동추가 공격을 하는 것인지 방어를 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동추의 뒤에 도열해 있던 괴멸조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우선 진양과 함께 있는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조장이 혼자 싸우겠다고 호언장담한 상황에서 전체가 달려든다면 이기고도 강호의 비난을 피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여동추는 이제 맞서 싸울 힘도 없었지만, 진양에게 뺨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성조영과 단지겸은 그저 넋을 빼놓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을 뿐 말은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 저게…… 내가 알던 양진양이 맞는가?’
그러는 사이 연신 뺨을 두드려 맞던 여동추가 더는 못 참겠는지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걸했다.
“졌다! 내가 졌어!”
그제야 진양은 손을 거두고는 물러났다.
“그럼 사부님께 용서를 빌게.”
여동추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더니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런데 그가 막 성조영 앞에서 무릎을 꿇으려는데, 부조장 방혁이 달려와 여동추의 소매를 잡았다.
“조장님! 안 됩니다!”
그러자 진양이 수호필을 들어 올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흥! 이제 와서 더 해보겠다는 건가?”
그때였다.
더는 참지 못한 방혁이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더니 진양의 옆구리를 향해 베어 들어갔다. 몹시 가까운 거리였고, 방혁은 쾌속한 발검이 특기였기에 충분히 벨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진양이 간발의 차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어서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그림자 하나가 바람처럼 스며들더니 ‘휙!’ 소리와 함께 푸른빛줄기가 방혁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방혁의 오른팔이 검을 쥔 채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
방혁은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더니 곧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부조장님!”
괴멸조 원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방혁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검을 뽑아 들지는 못했다.
진양 앞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흑표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뱀처럼 섬뜩한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만약 양 소협이 너희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을 것이다. 한데도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니, 과연 삼류 문파의 제자답구나!”
그의 서슬 퍼런 소리에 괴멸조 원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여동추였다.
아무리 자신이 깔보던 상대더라도 어느 순간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변해 있다면 그건 시기나 질투를 넘어서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그는 진양을 보는 순간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야 진양의 무공이 자신은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한참 윗길이라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성조영을 향해 넙죽 엎드리더니 부르짖듯이 소리쳤다.
“사부님! 제자의 무례를 부디 용서하십시오! 제자 여동추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편 성조영은 갑자기 일어난 이 일에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진양이 건강하게 자랐다고는 여겼지만, 이토록 강해졌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터였다.
성조영이 얼떨떨한 태도로 답했다.
“괜, 괜찮네. 그만 일어나게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여동추는 다시 한번 꾸벅 절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비틀거렸다.
진양이 여동추를 바라보다가 다른 괴멸조를 둘러보며 말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내일 정오까지 학립관에서 데려간 모든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괴멸조 원 중 누군가 대답했다.
“알, 알겠소이다!”
그러더니 그들은 망연자실해 있는 여동추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방혁을 데리고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학립관을 벗어난 그들은 학립관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도 쉬지 않고 내달리던 여동추가 도중에 우뚝 멈춰 섰다.
뒤따라 달리던 괴멸조 원이 황급히 멈춰 서며 그를 불렀다.
“조장님?”
“…….”
“조장님, 어서 가시지요.”
하지만 여동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표정에 뒤늦은 분노와 수치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괴멸조 원도 여동추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눈치채고는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여동추는 한옆으로 걸어가더니 숲길 한쪽에 심어진 애꿎은 나무를 주먹으로 ‘쾅!’ 후려쳤다.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제미랄!”
여동추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토록 약골이었던 진양이 어디서 무슨 기연을 얻었기에 그처럼 강해졌단 말인가?
그가 몸을 돌리더니 조 원 한 명을 가리키며 불렀다.
“너.”
“옛!”
“학립관에서 아이들을 모두 돌려달라고 한다.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목당한 조 원은 머뭇거리다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제, 제 생각에는 관주님께 먼저 보고를 올리는 것이…….”
짝!
여동추의 손이 거침없이 조 원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라! 관주님은 지금 천상련에 조문을 가시고 없는데 내일 정오까지 어떻게 보고를 올리고 의견을 들을 수 있겠나?”
“죄, 죄송합니다.”
조 원이 머리를 숙이며 쩔쩔매자 여동추는 콧방귀를 뀌더니 다른 자를 가리켰다.
“너.”
“예? 옛!”
“어떻게 생각하나?”
“그보다 먼저…… 부조장님을 데리고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
짝!
이번에도 거침없이 여동추의 손바닥이 조 원의 뺨을 후려쳤다. 조 원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해 휘청거리며 두어 걸음이나 물러갔다.
“닥쳐라! 팔 하나 잃는다고 목숨엔 지장이 없다! 호들갑 떨지 마라!”
“옛!”
원래 여동추는 조직을 이끌 만한 인성이 되지 못했다. 다만 사부인 장도식의 비위를 잘 맞추며 비열한 짓을 곧잘 했기에 일찌감치 그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수하의 부상에 눈 하나 깜짝할 리가 없었다.
그가 다시 다른 자를 지목했다.
“네가 말해봐!”
“그게…… 놈들에게 이대로 굴복한다면 무적관의 수치입니다. 무슨 수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돌아가서 그 아이들을 모조리 철혈문으로 보내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럼 철혈문에서도 본 관을 위해 힘을 보태지 않겠습니까?”
여동추가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학립관에서는 아이들을 내일 정오까지 돌려보내라고 했다. 한데 그때까지 우리는 철혈문과 연락이 닿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 정말로 양진양 그놈이 천상련과 연이 닿아 있다면 우리는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한 조 원이 나서서 말했다.
“그럼 우선 그들의 말대로 아이들을 돌려보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후에 철혈문에 이 사실을 알려 그들의 힘을 빌린 후 다시 압박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여동추가 조 원을 돌아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겠군.”
그가 인정하자 조 원은 용기를 내어 말을 보탰다.
“조만간 관주님도 돌아오시고 무적관의 주요 세력이 모이게 되면 학립관에서도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여동추는 지금까지 들은 대답 중에서 그의 대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게 좋겠어.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예, 조장님!”
괴멸조원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여동추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