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99
신필천하(神筆天下) 99화
한편 괴멸조가 부리나케 달아나고 나자, 서요평이 혀를 끌끌 차며 몸을 돌렸다.
“쳇! 오합지졸들이로구만. 이젠 별 시시한 것들까지 다 설치고 다니는군.”
그는 연신 투덜거리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반면 성조영과 단지겸은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양이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때마침 진양이 몸을 돌려 성조영에게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
“사부님,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니다. 그보다 너의 무공이 이렇게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구나.”
평생 대별산의 학립관에서만 지낸 성조영으로서는 무인들의 싸움을 구경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 진양과 여동추의 싸움은 그야말로 동네 파락호들의 싸움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매우 거칠게 느껴진 것이다.
진양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여러 좋은 분들과 인연이 닿은 덕입니다.”
“그 인연 또한 네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쨌든 오늘은 여러 가지로 네게 신경 쓰게 만들었구나. 한데 정말로 여동추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단지겸이 발끈하며 나섰다.
“제까짓 게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진양이 그놈을 혼쭐을 내줬으니 겁을 먹고 분명히 데리고 올 것입니다.”
단지겸은 마치 자기가 여동추를 물리친 양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사실 그 역시 진양이 이처럼 놀라운 무공을 익혀 속 시원하게 이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심은 진양을 응원하면서도 혹시 크게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적어도 단지겸이 아는 한 학립관 출신 중에서 지금의 여동추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 여동추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게 만들었으니 어찌 속이 시원하지 않으랴.
진양이 단지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우선은 기다려 보세. 그리고 지겸이 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생각이 있다면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아이들에게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었다.
성조영도 그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암.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들어가세.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세.”
“예, 사부님.”
진양은 그날 밤이 깊도록 성조영과 단지겸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체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일 여동추가 아이들을 데려올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9. 관주가 되다
다음 날 여동추는 약속대로 학립관에서 데려간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왔다.
아이들은 모두 합해서 스무 명 가까이 됐는데, 몸 여기저기가 멍들어있었고, 두 눈빛은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성조영은 아이들의 겁먹은 표정을 보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여 절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그는 여동추를 대할 때 마음 한구석에 연민을 두고 있었다.
여동추 역시 한때 자신의 제자였고, 어려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성격이 삐뚤어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해서 여동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분노를 무적관의 관주인 장도식에게만 표출했을 뿐 여동추에게만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막상 아이들의 초췌한 몰골을 보니 그동안 참고 눌러왔던 노기가 한꺼번에 터지는 듯했다.
그가 여동추에게 저벅저벅 다가가더니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따귀를 철썩 올려붙였다.
성조영으로서는 손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로 힘을 실은 것이었지만, 무공을 익힌 여동추로서는 그리 아픔을 느낄 정도가 아니었다.
다만 어제 진양에게 따귀를 맞아 두 뺨이 여전히 부어오른 상태였고,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성조영에게 손찌검을 당하니 내심 분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진양이 지켜보는 앞에서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어 입술을 질끈 씹으며 성조영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성조영이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여기 이 아이들은 너의 아우들이 아니더냐? 다른 사람들이 이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더라도 너만은 나서서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을 보내면서…… 조금은…… 조금은 너를 믿었건만……!”
“흥!”
여동추가 코웃음을 치며 외면하자, 성조영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다시 소리치며 손을 휘둘렀다.
“네가 그래도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구나!”
그 순간 참고만 있던 여동추가 성조영의 손목을 ‘탁!’ 소리 나도록 낚아챘다. 이어서 그의 오른손이 성조영을 당장에라도 칠 듯 치켜 올라갔다.
옆에 서 있던 진양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동추!”
그의 목소리가 학립관 마당에 쩌렁쩌렁 울리니,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가 하면,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단지겸과 유설이 아이들을 다독이며 다른 대청으로 데려가고 나서야 안마당이 그나마 조용해질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여동추는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로 성조영을 노려보기만 했다.
성조영 역시 당장 그의 손에 맞아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쳐라! 이 망나니 같은 녀석! 이제 아이들이 모두 돌아왔으니 나를 죽이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여동추는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내기가 실렸고, 두 눈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진양이 위압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여동추, 사부님을 놓아드리게.”
여동추가 곁눈질로 진양을 힐끔 보았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그가 성조영의 손목을 뿌리쳤다.
“에잇! 니미럴!”
성조영은 휘청거리며 물러나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여동추가 성조영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일평생 나만 믿고 살아왔다! 내게는 피를 나눈 형제가 없다! 나는 당신에게서 글 몇 자를 배웠을 뿐. 그걸로 평생 사부로 모시며 따르길 바란다면 차라리 돈 몇 푼을 주고 말겠어!”
그러더니 그가 진양을 휙 돌아보며 재차 소리쳤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하지만 이번 일로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말을 마친 여동추는 괴멸조를 이끌고 학립관을 나갔다.
진양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성조영을 안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사부님?”
“괜찮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아이들을 살펴봐야겠다.”
“유 낭자와 겸이가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너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구나.”
“신세라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사부님과 아우들을 위한 일인 걸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학립관의 일은 곧 제 일과 다름없습니다.”
성조영은 진양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을 굳힌 듯 진양을 보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아, 내 너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겸이를 데리고 대학당(大學堂) 대청으로 오너라. 음, 너와 함께 온 분들도 그곳으로 모셨으면 하는구나.”
대학당은 관주를 비롯한 학립관의 사부들이 머무는 곳이자, 회의를 진행하는 대청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진양은 갑자기 성조영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까닭 모를 걱정에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마. 너는 어서 그들을 데리고 오도록 해라.”
말을 마친 성조영은 걸음을 성큼성큼 옮겨 대학당으로 갔다.
진양은 궁금증을 가슴에 품은 채 일행을 데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진양이 단지겸과 일행을 모두 데리고 대학당 대청에 도착하자, 이미 성조영은 커다란 탁자에 차를 가져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성조영이 차를 권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차 맛을 음미하는데, 아까부터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진양이 불쑥 물었다.
“사부님,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
“허허, 성격도 급하구나. 아직 차 맛도 보지 않았잖느냐?”
“예…….”
진양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찻잔을 들었다.
성조영은 그런 진양을 보고 빙그레 웃어 보인 후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은 제가 양이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입니다. 어제 들은 바로는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양이와 운명을 함께하신다니, 지금의 이야기도 모두가 함께 듣는 것이 옳을 듯했습니다.”
그러자 단지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사부님, 그럼 저는 이 자리에서 빠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너도 들어야 할 이야기다.”
그러자 단지겸은 더욱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히 더 묻지는 못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진양도 궁금한 눈빛을 보내자, 성조영이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양아, 앞으로 네가 이곳 학립관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양이 깜짝 놀라서 반문하자, 성조영이 낯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대꾸했다.
“말한 그대로다. 네가 앞으로 학립관의 관주가 되도록 해라.”
진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사부님,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거두어주십시오!”
“나는 네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탁을 하는 것이란다.”
“사부님이 이처럼 정정하신데 어찌 제가 학립관을 떠맡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 학립관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계속 머물더라도 네가 관주의 자리에서 이 학립관을 이끌어가주었으면 하는 것이란다. 너는 총명한 데다 무공도 뛰어나니 충분히 학립관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동추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아이의 부모는 동추를 낳자마자 길에 버렸고, 동추를 길에서 주운 사람은 동추가 어렸을 때부터 돈벌이로 이용만 했다. 그 후에도 동추는 학립관에 올 때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지냈다. 그것이 동추의 성격을 형성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동추를 잘 보듬지 못해서 결국 오늘날 같은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어찌 사부님의 잘못이겠습니까?”
진양이 다그쳐 물었지만 성조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양아, 그런 책임감도 없이 어찌 내가 너희의 사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제 그만 내가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구나. 다행히 너는 학당을 차리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이 학립관을 네가 물려받도록 해라. 서로 시기가 잘 맞았으니 어쩌면 이 또한 하늘의 뜻일 게다. 그리고 관주의 자리가 권력의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 또한 마냥 사양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진양은 성조영의 말에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성조영의 말대로 학립관의 관주는 강호 문파의 문주와는 다른 의미다.
그때 단지겸이 진양을 보며 말했다.
“사부님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셨네. 누군가에게 학립관을 넘겨주기로 말이야. 하지만 누구에게 양도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으셨지. 처음에는 내게 학립관을 맡아달라고 말씀하셨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어 완강히 거절했네. 결국 학립관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자도 하나둘 떠나갔네. 결국 나만 마지막까지 남았지. 사부님과 나는 학립관을 정리하기로 했다네. 지금 맡고 있는 아이들만 잘 보살펴 주기로 한 것일세.”
성조영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무적관에서 다시 학립관을 가만두지 않더구나. 그럴 즈음에 양이 네가 온 거란다. 한데 너는 글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무공까지 뛰어나니 그 누구보다 학립관을 잘 지켜낼 수 있지 않겠느냐? 게다가 넌 학립관 출신이니 더욱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보살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