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어쩌면 재능이란
“지금 윤성이가 쓴 건 정확하게는 캘리그래피용 붓펜이란 건데.”
“캘러…… 네?”
“하하. 그냥 윤성이는 아직 붓펜이라고만 알고 있으면 돼.”
이름에 펜이란 글자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확실히 내가 원래 사용하던 붓과는 차이가 있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이 안쪽에 보이는 안료를 다 쓰면 수명이 다할 것으로 보였다.
분명 그림을 그리는 데 제약이 붙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명필은 원래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절대 그 말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도구는 명품일수록 좋았다. 하물며 그게 섬세한 작업을 하는 그림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명필쯤 되면 붓이 별로여도 적당한 글씨는 쓸 수 있는 법.
이 정도만 되어도 일정 부분 원하는 그림을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이제 몸도 꽤 자랐겠다. 한번 해 보자.’
결심한 나는 다시 깨끗한 종이를 찾았다.
탁―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자 부모님이 사 주신 노트란 것이었다.
‘더 큰 종이로도 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
환생이란 걸 한 이상. 언젠가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그림을 그려 보고 싶었다.
내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 세상은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참으로 넘쳐 났으니까.
그러나 그건 먼 미래의 계획일 뿐. 지금 난 눈앞의 종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아이의 손은 아직 작았다. 들고 있는 붓이 성인용이기 때문일까. 더 손이 작게 느껴지고 있었다.
“윤성이한테 확실히 붓이 크네.”
“음. 어디서 맞춤형 붓이라도 알아봐야 할까?”
가영은 아들의 작은 손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붓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내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주혁은 한층 기분이 좋았다. 그는 어딘가 신이 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인터넷 검색해 봐도 잘 보이지 않더라고.”
사실이었다. 얇은 붓들이 충분히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일까. 맞춤형으로는 따로 붓이 없었다.
“장인어른이라면 그런 곳도 알고 있으실 듯한데, 한번 여쭤볼까?”
검색 결과 대부분의 붓들은 어른용이 많았다. 확실히 붓이란 게 아이가 쓸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버지.”
“응?”
분명 주혁은 아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대답은 가영이 아닌 아들은 윤성에게서 튀어나왔다.
윤성이는 단정하게 앉은 채 붓을 든 상태였다. 아이는 붓을 요리조리 돌려 보더니 그를 향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예로부터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했죠.”
요즘 들어 급격히 말을 잘하게 된 아들. 윤성이 입을 열자 두 부모는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전 곧 자랄 겁니다. 겨우 잠깐을 쓰기 위해 그런 수고스러움을 두 분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의젓하게 말하는 아이. 그런 아들을 보며 두 사람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특히나 주혁은 아들의 말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적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윤성아. 아버지라니! 왜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그야, 아버지이시니까요?”
“내가 고작 이 나이에 아버지 소리를 듣다니!”
“이 나이요? 아버지가 나이랑 상관이 있어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아들의 표정을 본 그는 좌절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아버진 아버지 아닌가요?”
“물론 상관이야 없긴 한데…….”
주혁은 어디서부터 이 기분을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에게 아빠도 아닌 아버지라니.
“갑자기 폭삭 늙은 기분이네.”
그는 그나마 이 기분을 이해해 줄 아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채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덕분에 그는 결국 다시 윤성이에게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 수밖에 없었다.
“윤성아, 그 붓 말이야.”
“네에, 이거요?”
“불편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윤성이 붓으로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그렇죠?”
“그래서 아빠가 윤성이가 더 쓰기 편한 붓을 사 주려고 하거든.”
되도록 슬쩍 아빠란 말을 강조하기. 주혁 나름대로의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이 무심한 아들내미는 아빠란 단어보다 본론이 중요한 모양이었다.
“붓도 좋아하지만, 다른 걸로도 그림은 충분히 그릴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토록이나 붓에 열광하던 아이라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붓만을 찾았잖니?”
“제게 가장 익숙한 화구가 붓이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지금은 사 주신 물건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아들이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대해 더 물어보려는 찰나. 아이는 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슬슬 다른 화구도 사용할 생각을 해야죠.”
아이의 결심이 상당히 굳건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윤성이는 신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세상에는 재미있어 보이는 화구가 많이 생겼더라고요.”
“……그러니?”
“네, 보여 주신 영상에서 본 도구들도 다 써 보고 싶어요.”
그는 윤성이 최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보는 영상도 남달랐다.
“거기서 무슨 영상을 봤는데?”
“볼펜이란 걸 이용해서 그리는 거도 봤고, 색연필로 그리는 것도 봤어요.”
윤성이는 신이 난 듯 줄줄이 본 영상들을 설명했다.
“아. 파스텔, 목탄 같은 것도 질감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아이의 입에선 각종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이 튀어나왔다. 상당히 많은 양의 영상을 자세히 본 듯. 설명에는 막힘이 없었다.
“물론 제일 재미있어 보였던 건 종류별로 다양한 물감들을 활용하는 거였지만요.”
화구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듯. 윤성이는 연신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것들 다 이 아빠, 엄마가 사 줄 수 있는데.”
“아직은 괜찮아요. 이거부터 익숙해지고 나서 사 주세요.”
똑 부러지는 말투.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의 눈은 종이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얼 그릴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으흠. 애가 이 정도로 관심이 많다니, 신기하네. 정말 유전인 건가?’
그는 지금까지 예체능에 들어서는 건 환경이 좌우한다고 믿었다.
악기도 접해야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체육도 그 종목을 해 봐야 싹을 볼 수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재능도 꽃피울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아들이 이 정도까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걸 보니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예상보다 재능이란 건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
‘이가영 씨, 어쩌면 당신이 질지도 모르겠는데?’
아내의 고집을 익히 아는 주혁이었다. 하지만 그가 볼 때 이 힘겨루기는 가영의 패배로 진행 중이었다.
* * *
호기심 가득하던 아이가 오랜만에 급격히 조용해졌다.
“엇. 윤성이 그림 그린다.”
원인은 간단했다. 아이는 주혁이 구매해 온 붓펜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으니.
며칠 동안 내내 선만 그어 대던 아들. 무작정 그림을 그리는 대신 도구에 익숙해지려 하는 듯 보였다.
그런 면을 보면 윤성이는 확실히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온전히 붓을 제 것으로 만들고 나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좋은가.”
주혁은 제 아들이 신기했다. 아이는 정말 누가 봐도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알게 된 제 외할아버지 댁에 가는 걸 그 누구보다 좋아했다.
“쉿.”
주혁이 사 온 붓펜을 본 아들. 윤성이는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만큼이나 기뻐했다.
오죽하면 곧바로 종이를 펼쳐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아들이지만, 그림 그릴 때는 진짜 애 같지가 않아.”
주혁은 요즘 들어 이런 말을 종종했다. 아이가 그림에 대해 관심 가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저러고 있을 때는, 어쩐지 말도 걸기 힘들더라고.”
“…….”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빨리 사 오는 건데.”
가영은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스윽―
생기 있는 눈동자로 그리는 그림. 그 그림에 그녀는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과감한 붓놀림이었다. 아이는 늘 붓을 쥐고 그릴 땐 망설임이 없는 것 같았다.
선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하얀색만이 보이던 공책은 어느덧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지고 있었다.
“…….”
가영에게 말을 붙이던 주혁도 침묵했다.
단번에 그려져서 형태가 나타나는 그림. 그 신비로운 형상에 깃든 힘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침묵은 아이가 고개를 드는 순간 깨졌다.
“하아.”
코를 박고 있던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는 의미.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뜻이었다.
캘리그래피용 붓으로 그렸기에 색은 딱 다섯 가지뿐. 그랬기에 오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단순하다면 단순한 형태였다.
문제는 거기서 느껴지는 뚜렷한 개성이었다.
물론 아직 서툰 부분이 있었다. 입체적이지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똑바르지도 않았다.
손에 힘이 덜 들어가서 삐뚤삐뚤한 곳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만큼 그림은 직관적인 동시에 그 특유의 기풍을 품고 있었기에.
마치 거장이 손을 다친 후에 재활을 하며 그린 것처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