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양쪽의 반응을 보자
글과 그림이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 시대는 영상이 즐비했다.
그중 가수의 노래를 좀 더 돋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게 바로 뮤직비디오였으니.
“영화에 들어갈 그림도 그렇게 잘 그려 주셨으니, 뮤직비디오에 들어갈 그림은 더 손쉬우시겠죠?”
내가 얼른 승낙하기를 바란다는 듯, 스테파니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나 난 오히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스테파니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으니까.
영화에 들어갈 그림을 잘 그렸다고 뮤직비디오 속의 그림도 잘할 거라고? 그렇게 단순했으면, 그림이 어렵다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리라.
“음…….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기는 어려워요.”
“왜요? 혹시 소속사가 막을까 봐 그러는 거면…….”
“소속사요? 라고시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왜 갑자기 라고시안 갤러리가 나온다는 말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 표정을 본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얼버무렸다.
“배우 쪽 소속사 중에는 작품 활동에 간섭하는 곳이 왕왕 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듯한데.”
“예. 당연히 그건 아니에요. 라고시안이야 제가 하겠다는 건 막지 않을 겁니다.”
그 어렸던 초등학교 학생일 때도 내 의견을 존중했던 라고시안이었다. 그들이 이제 와서 새삼 내 뜻에 반대할 리가 만무했다.
하물며 이런 식의 작품 활동은 라고시안에서도 반기는 것이기도 했으니.
‘라고시안이야 하겠다고만 하면 좋아하겠지. 영화도 내가 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했는데.’
본인들이 준 의뢰도 아닌 걸 하겠다고 하는 나. 그때의 필립의 표정을 내가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속으로 필립의 표정을 떠올리는 사이. 그녀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왜 고민하시는 건가요? 혹시 페이 문제면, 진짜 넉넉하게 드릴 수 있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에요. 스테파니라고 하셨죠? 당신의 뮤직비디오에 들어갈 작품을 만들기엔 내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어요.”
에드워드 감독님의 경우 내게 시놉시스라고 불린 걸 먼저 넘기셨었다. 덕분에 난 영화 내용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대본을 작성하신 것도 보여 주셨다. 꾸준히, 그리고 끊임없이.
그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겨우 완성된 작품. 그게 바로 경화수월이었으니.
이 정도의 수고가 없었다면, 영화 속의 그 그림은 탄생할 수가 없었다.
‘경화수월’이 ‘이면’의 맞춤 그림인 이유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만약 당신을 보고 이미지에 맞게 그려 달라고 하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예전부터 난 다른 화가보다 특징을 잡아 내는 건 자신 있었다. 특히나 그게 여인이라면.
실제로 조선에서 그린 그 흑역사에 가까운 미인도는 물론, 다시 태어나 어머니를 모티브로 그린 신(新)미인도까지.
주변의 모두에게 꽤나 호평을 받았다.
‘솔직히 미인을 그리는 거 하나만은 내가 겸재 선생님이나 단원보다 나았을지도 모르지.’
물론 이런 생각도 이제야 할 수 있었다. 과거 조선에서 살 때는 그들과 난 비교 대상이 아니었기에.
산수화를 그 누구보다 잘 그리셨던 겸재 정선 선생님. 그리고 풍속화를 그리며 출셋길을 달렸던 단원 김홍도.
두 사람 모두 그림에 있어선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시대까지 그 이름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람의 세세한 특징. 그것도 각기 다른 색채를 품은 여인의 섬세함을 잡아 내는 건 내가 제일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엄연히 정도가 있었다.
“그런데 방금 부탁하신 건 그냥 초상화가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작품이자, 앨범의 표지라면서요.”
“……그랬죠.”
“그럼 함부로 수락할 수 없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말지 아직 확신이 없으니까.”
320만 달러에 내 그림이 경매에서 팔렸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 밑으로 많은 의견들이 달렸었다.
일명 댓글이라 불리는 것들. 그 중 기억 남는 게 하나 있었으니.
[18세에 40억 원짜리 그림이라니. 얜 실패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겠지.]실패를 해 본 적이 없다니. 그거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내 그림이야말로 실패를 통해서 나왔기에. 전생의 수많은 실패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화서에서의 실패가 풍속화에 깊이를 더했고, 왜나라, 즉 현 일본에서의 실패가 그림에 색채를 깃들게 했다.
그리고 죽기 직전 그린 그림의 실패가 다시 태어나 그림을 더 필사적으로 그리는 원동력이 되었으니.
내 그림이 실패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번 생의 난 전생을 바탕으로 찬찬히 안정된 길을 걸어왔기에.
정확하게는 실패를 해 봤기에 그걸 이번 생에선 줄일 수 있었다. 이걸 남들이 모르는 이상, 난 실패 따윈 해 본 적 없는 천재이리라.
“……확신이 있으셔야만 의뢰를 맡으실 거예요?”
“예, 제가 잘하지도 못하는 걸 맡아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으니까요.”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내 의지. 그건 뭐든 나 혼자 감당할 만큼만 저지르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난 조선에서 혼인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기는 순간, 다른 이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확신을 가지실 거 같으세요?”
그녀는 초조하다는 듯 몸을 더 테이블에 바짝 붙였다. 그러면서 내 대답을 재촉했으니.
“일단 노래를 들어야 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뮤직비디오를 어떤 식으로 만들지도 알아야 하고요.”
“…….”
“당연히 영상의 시나리오는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사소한 생각이라도 좋아요.”
“왜 그렇게까지…….”
“뮤직비디오는 영화와 달리 대사가 드물죠. 바꿔 말해 그림 하나의 임팩트는 영화보다 더 커야 한다는 뜻이에요.”
내 말에 그녀는 갑자기 에드워드 감독님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역시 감독님 말씀이 맞았네요. 진짜 꼭 작가님에게 맡기고 싶어졌어요.”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제 영화에 작가님 그림의 지분이 꽤 크게 차지한다고.”
“과연. 이 정도는 되니까. 영화랑 그림을 동시에 홍보하는 게 가능하군요.”
“……두 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시는 두 분. 에드워드 감독님과 스테파니를 본 난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칭찬인 건 확실한데.’
무슨 놈의 칭찬을 이렇게 대놓고 앞에서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좋은 말을 잔뜩하면 작가님께서 제 의뢰를 더 잘 맡아 주실 테니까요. 후후.”
미소를 짓는 스테파니를 보며 나 또한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능청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것이 정말로 내가 수락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었으니.
“최대한 답은 빨리 드릴게요. 근데 오늘 확답은 어렵습니다.”
물론 미인의 윙크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수락할 나는 아니었다.
내 말에 그녀는 졌다는 듯, 양손을 들며 천천히 답을 달라고 해 줄 뿐이었다.
* * *
아트 바젤 입장에서 홍콩은 아직 블루 오션에 가까웠다.
처음 아트 바젤 홍콩을 개최한 이후 계속해서 늘고 있는 수익. 동시에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관람객의 수까지.
당연히 참가를 희망하는 갤러리들의 숫자 또한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이들의 자리를 배치하고,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게 바로 아트 바젤이 하는 일이었으니.
아트 바젤의 메인 기획자 중 하나인 짐은 앉은 자세 그대로 목만 움직였다. 그가 바라본 상대는 앞에 있는 타이잔이었다.
한참 각 갤러리의 자리를 잡아 주고 있는 이때, 타이잔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심상치 않았으니.
“자네 지금 라고시안과 즈워너를 말하는 건가?”
라고시안과 즈워너.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두 갤러리였다. 거래하고 있는 규모가 수백억을 넘는 곳.
그만큼 모든 아트 페어가 주목하고 있는 갤러리이기도 했다.
문제는 본인들이 잘난 것을 아는 이들인 만큼 어지간해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으니.
“즈워너가 라고시안을 많이 따라가긴 했지.”
그나마 말을 잘 듣던 즈위너도 요즘은 상태가 이상했다. 진짜 라고시안을 따라가는 건지도 몰랐다.
“예, 양측이 원하는 바가 같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라고시안과 즈워너, 즈워나와 라고시안이라…….”
둘 중 더 오래된 갤러리는 라고시안이었다. 라고시안의 대표가 70대인 반면, 즈워너 쪽이 50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좀 더 큰 쪽이 라고시안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갤러리의 사이가 미묘하다는 것에 있었다.
‘씁. 서로가 서로한테 너무 관심이 많아. 양쪽 다.’
라고시안과 즈워너는 서로의 전속이 누구인지, 어떤 그림에 투자를 하는지. 전부 다 속속들이 아는 상태였다.
아마 본인들보다 상대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서로가 이번 아트 페어에 신경 쓰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으리라.
“지금 하필 두 갤러리 자리가 딱 붙어 있지?”
“예, 이번 아트 페어에서 제일 좋은 자리가 아무래도 이쪽 B섹션과 D섹션 쪽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느 행사장 이든 모든 자리의 가치가 똑같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제일 좋은 위치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보통 가장 힘이 있는 갤러리들에게 돌아가는 법이었으니.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의 경우, 그게 라고시안과 즈워너였다.
“아마 이번 아트 바젤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그 두 갤러리가 되겠지.”
“예, 본인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요.”
“절대 서로 양보하려고 안 할 거야. 그치?”
“당연히 그렇겠죠. 오랜만에 대규모로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아닙니까.”
홍콩은 아시아의 부호들이 죄다 몰리는 곳이었다. 가깝게는 홍콩의 부자들부터 시작해 중국의 거물, 그리고 다른 아시아의 돈 있는 수집가들까지.
그들이 이번 아트 페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만큼 각 갤러리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내고, 이름값도 올리려고 할 겁니다.”
“만약 우리 쪽에서 섭섭하게 해 주었다간…….”
“다음에 어찌 나올지 모르죠.”
“씁.”
혀를 찬 그는 한참을 고민에 들어갔다. 둘다 매년 달러를 갈퀴로 긁어모으는 갤러리들인 만큼 신중해야 했다.
“문제는 C섹션인거지?”
“그렇습니다. B를 받은 라고시안과 D를 받은 즈워너의 중간이 거기니까요.”
“각자 있는 곳에서나 잘할 것이지, 갑자기 왜 자리를 더 내어 달라고 하는 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짐은 장기간의 숙고에 들어갔다. 앞에 놓은 종이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입이 열린 건 몇 분의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
“좋아. 저쪽이 요구한 걸 100% 들어줄 수는 없다면 타협을 해야겠지.”
“타협이요?”
“C섹션을 절반으로 잘라. 그래서 반반 나눠 주자고.”
언뜻 보면 그건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문제였으면, 이렇게 고민할 거리가 왜 있겠는가.
그렇기에 상대는 당연히 생기는 문제를 입에 담았다.
“헌데, 그렇게 하면, 양측 다 불만족스러워할 겁니다.”
“왜. 서로 비교하기가 너무 명확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당장 생각하는 문제만 해도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씩 예상 문제를 뽑아내었다. 깊게 고려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그거만 말해도 문제점은 수북했으니까.
“아예 하나의 섹션이면 서로 조화도 시켜야 하고, 동선도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각 갤러리의 작품이 더 명확하게 비교가 된다는 거겠지. 잘못하면 한쪽이 밀릴 테니까.”
사실 제일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하나의 섹션을 한 갤러리가 맡으면 문제 될 여지가 없었다. 본인들 작품 간의 관계를 고려해 동선을 짤 수 있었을 테니.
거기가 작품들의 분위기에 맞춰 약간의 인테리어까지 가미할 수 있었으니. 전혀 문제 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섹션 안에 두 개의 갤러리가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문제는 라고시안이나 즈워너가 이를 반길 리 없다는 것에 있었다. 둘 다 콧대 높은 갤러리들 아닌가.
“그들이 라고시안과 즈워너라면 우리는 아트 바젤이야. 주최하는 게 우리니까 저쪽도 우리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그거야…….”
“그러니까 밀어붙여. 뭐 정말 불만이면, 한쪽이 안 한다고 하겠지. 그럼 다른 쪽에 온전히 주면 되는 거잖아?”
“그럴 리가 없겠죠. 그럼 상대방만 이득을 주는 거니까요.”
“그래. 바로 그거야, 허니. 얼른 그렇게들 통지하라고. 양쪽 반응 좀 보게.”
이미 여러 번 이런 류의 아트 바젤을 개최해 본 그. 그렇기에 자신만만하게 양 갤러리에게 통보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