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콘텐츠 괴물 회사의 공모전
어딘가에서 거대 갤러리들끼리 싸움 붙이는 사이. 이를 알 리 없는 제시카는 메일함을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이미 메일이 오면 바로 알림이 뜨도록 설정이 다 되어 있었음에도. 그녀의 신경은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다.
한순간도 메일함에 오는 소식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한 것을 보니.
덜컥―
“왔어!”
제시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창 맛있게 스파게티를 흡입 중이던 친구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후릅. 뭐야, 무슨 일인데?”
“뭐, 택배라도 도착했어?”
기다리던 물건이 오면 기쁜 법. 이를 아는 친구들은 폰을 바라보며, 왔다고 외치는 그녀를 향해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제시카는 그런 애매한 반응에도 기분이 좋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에 본인 스마트폰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는 건 덤이었으니.
“연락이 왔다고! 신 작가님. 그러니까 우리 미래 후배님에게서 왔다는 말이야.”
신 작가.
이렇게만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며칠간 제시카에게서 SNS를 확인해 볼 것을 독촉받은 당사자들이었기에.
“왔어? 윤성 신 작가?”
“뭐야, 결국 메일로 온 거야?”
“SNS 아이디 팔아먹은 건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거네?”
친구들이 묘하게 허탈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런 주변의 반응에도 제시카는 기분이 좋다는 듯 연신 미소 지었다.
“뭐라 쓰여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 나도 대충 봐서 다시 봐야 해.”
이제 아이들의 관심사는 메일의 내용으로 옮겨 갔다. 앞에 음식이 놓인 접시까지 한쪽으로 밀어 둔 제시카. 그녀는 폰을 들어 메일의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문제는 그 시간이 꽤 길어지고 있다는 것에 있었으니. 이쯤 되자 친구들은 슬슬 걱정이 들었다.
“무슨 심각한 내용이라도 있나 본데?”
“설마 거절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때 그 전시회 봤잖아?”
그들은 이미 첫날 전시회를 한번 가 본 상태였다.
무슨 명품관의 오픈 런 행사도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몰렸던 기억이 떠올렸다.
“하기사. 그렇게 바쁜 작가가 우리에게 시간을 내줄 리가 없지.”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친구들의 이야기도 점점 더 부정적인 어투로 변했다.
아예 마음의 정리까지 하는 친구들의 틈바구니에서 제시카는 입을 열었다.
“너네들 말이야.”
“응응, 우린 준비되었어.”
“그래, 마음의 준비 끝났으니 말해 봐.”
“……마음의 준비?”
뭔가를 말하려던 그녀는 멍해졌다. 이 친구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
“엉. 거절했다는 거 아니야?”
“아니, 거절이 아니라 만나 보겠다는 내용인데?”
“뭐?”
친구들은 그제야 제시카가 내미는 스마트폰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거기엔 간단한 영어로 만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니, 그럼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고민한 거야?”
“그거야 우리가 다 되는 날이 언제인지 생각하느라 그랬지.”
“그건 불가능하지. 수업 시간이 다 다른데.”
어이가 없다는 듯 나무라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제시카는 고민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되지도 않는 걸 왜 생각하는……. 잠깐만, 신 작가님이 우릴 직접 보러 여기 오신다는 거야?”
그제야 친구들도 뒷부분을 읽은 모양이었다. 놀라는 아이들에게 제시카는 어딘가 의기양양한 어조로 으스대었다.
“맞아. 에일대 쪽으로 오신다는데? 하루 정도는 빼실 수 있으시다며.”
“와우.”
“뉴욕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직접 오시겠다니!”
“이쪽에 볼일도 없지 않나? 전시회는 뉴욕의 라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리잖아.”
“없겠지! 이건 그냥 우리를 만나러 오는 거야!”
막상 하려고 하는 일이 성사되자 그들은 흥분했다.
특히나 확 타오르는 미대생들의 특성상 흥분도는 더 높았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럼 손님 맞을 준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손님 맞을 준비라니? 작업실이라도 치워 놓아야 하나?”
에일대 학생들인 만큼 그들은 각기 개인 작업실이 존재했다. 학교에서 지원을 해 주었기에.
문제는 그 장소가 평소에 누굴 부르기엔 애매하다는 것에 있었다. 어질러져 있는 게 어딘가의 거지 소굴 저리 가라 할 정도였으니까.
청소할 생각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친구들. 그런 그들을 향해 제시카는 한 손가락을 들어 부정을 표했다.
“노노. 그것보다는 우리 팀으로 잘 오실 수 있도록 해야지.”
그녀의 설명은 간단했다. 여기까지 오는 만큼 윤성 신 작가가 확실히 그들의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그들이 할 일이었으니.
“오. 맞네, 맞아. 그거 해야겠다.”
“그럼 우리 포트폴리오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래야지. 이번 공모전에 윤성 신 작가님. 아니, 우리 후배님이 잘 합류하실 수 있도록 해 보자.”
대충 의견이 통합된 그들은 눈앞의 식사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시선만 돌아갔을 뿐, 아직 정신은 이야기하던 주제에 박혀 있었다.
“우리 이거 먹고 바로 도서관 갈래? 나 노트북 가방에 있어.”
“그거 좋지. 이렇게 같이 모였을 때 만들면 더 직빵이니까.”
의욕적인 친구들의 반응에 힘입은 제시카. 그녀는 가방에 든 노트북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챙겨 나오고 싶더라니.’
바쁜 아침 시간에 유난히 무거운 노트북을 가지고 가고 싶은 날. 바로 그게 오늘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본능은 이걸 예견한지도 몰랐다.
* * *
오랜만에 도착한 에일대. 여기서 내가 제일 먼저 본 이는 이미 보기로 약속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기 때문일까.
난 눈앞에 있는 2명의 에일대 선배님들이 꽤 친근했다.
“근데 두 분만 오셨네요? 더 여러 명이 오시는 줄 알았는데요.”
분명 메일에서는 더 많은 숫자가 한 팀이라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내 눈앞에 온 사람은 단둘뿐이었으니.
데이빗과 제시카라고 자기들을 소개한 두 사람.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애매한 얼굴로 웃었다.
“이 시간대에 공강이 저희뿐이라…….”
“죄송합니다. 더 시간들을 냈어야 하는데.”
“아뇨, 그건 아니죠.”
두 사람만 만나도 충분했다. 솔직히 한 번에 너무 많은 이들을 보는 것도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이런 내 속내를 눈치채신 듯. 두 선배님들은 한결 편한 표정으로 웃으셨다.
“아하하, 그죠? 역시 첫 만남에 너무 우르르 몰려 만나는 것도 좋지 않겠죠.”
내가 고개를 젓자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는 두 사람이었다.
‘음. 묘하게 긴장된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긍정해 줄 분위기. 그 안에 깃든 건 꽤 강한 긴장감이었다.
이에 난 내가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쪽에서 시작하면, 그나마 긴장이 좀 덜하지 않겠는가.
“저를 보자고 한 이유요. 제가 한번 추측해 봐도 되나요?”
잠시 멍하니 있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난 일부러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제가 짐작해 보자면…… 공모전 때문인 거로 예상했는데, 맞나요?”
“헙.”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대충 짐작이 맞았다는 걸 확인한 난 여기에 의견을 덧붙였다.
“보통 1학년은 잘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래서 이렇게 먼저 만나려고 하신 건가 해서요.”
1학년은 이런 류의 공모전에 참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솔직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바쁠 텐데, 무슨 공모전이라는 말인가.
그랬기에 이들은 날 먼저 만나려고 하는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난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짐작이 맞나 보죠?”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예비 후배님은 보통이 아니시잖아요.”
역시나 다시 내게 좋은 말을 이어 할 기미가 보였다. 그에 난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그래서 대체 노리시는 게 뭔데요?”
서로 열심히 눈짓을 하던 두 사람. 그 중 먼저 움직인 것은 본인을 제시카라고 소개한 그녀였다.
그녀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 뒤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을 쳤다.
그러더니 이내 화면을 돌려 내 쪽으로 뭔가를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이겁니다.”
“다즈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익숙한 영문명과 마크였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층을 보유한 저작권계의 최강자. 동시에 넷프리스의 후발 주자로 OTT 사업에 뛰어들며 영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회사.
바로 그 다즈니였으니. 최근에 OTT 사업에 뛰어든 이들이 그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예, 그 다즈니에서 올해 공모전을 하나 열었거든요.”
“오호.”
“그리고 소식통에 따르면 내년에도 확실히 연다고 합니다.”
“그래요?”
“예. 규모도 크고, 상금도 엄청나서요. 대학생들 사이에선 다음번에 나가길 벼르고 있는 학생들이 많을 거에요.”
대학생들을 상대로는 이번에 처음으로 열었다는 공모전. 제시카는 이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넷프릭스 따라잡으려고 콘텐츠 확보에 혈안이라서요. 이런 류의 숏 영상에 대해서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예상은 가능한 일이었다. 난 그녀가 보여 준 자료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요즘 나한테 이쪽 일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많네.’
에드워드 감독님이 시작이었기 때문일까. 배우인 스테파니부터 시작해 이쪽 관련으로 내게 의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후…… 일단 영상에 들어갈 그림을 제작해 달라는 거면요.”
한두 번은 좋았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내가 이쪽 일만 한다는 인상을 주기 쉬웠기에. 난 적당한 말로 거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의 말이 좀 더 빨랐으니.
“그런 게 아닙니다. 작가님.”
작품 내 그림을 그려 달라는 의뢰가 아니라니. 그럼 뭐라는 말인가.
내 의문 어린 눈빛을 본 제시카는 입술을 짓씹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희가 만들 작품. 그걸 실사화 느낌으로 그려 주세요.”
실사화 느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여러 그림들을 보여 주었다.
그림을 보니 어떤 걸 원하는 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림들을 보고 나자 더 의문은 커지기만 했다.
“근데 이 정도는…….”
난 순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이 말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러나 내 속내를 짐작한 듯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냥 실사화 정도야 저희도 충분히 그릴 수 있죠. 나름 미대생인걸요.”
내가 이미 할 말을 알아서 해 주는 그녀. 그랬기에 난 좀 더 쉽게 하려던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속 편하게, 탁 까놓고서 말이다.
“예.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실사화 그림이야, 굳이 저를 이렇게까지 찾아오지 않으셔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꽤 날카로운 내 질문에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론도 없이 인정하는 것을 보니 의문만 더 깊어졌으니.
“그럼 왜…….”
“작가님의 이번 전시회를 보고 가서 알았습니다. 그림에 힘을 담는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요.”
더더욱 영문 모를 소리였다. 저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시카와 데이빗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에 깃들어 있는 의지가 손에 잡힐 듯 뚜렷했다.
“저희의 공모전 제출 영상 섬네일. 그걸 작가님 작품으로 쓰게 해 주세요.”
섬네일.
다행히도 이건 내가 아는 단어였다. 영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화한 것.
너트뷰에서 클릭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나 또한 뭔지 이미 알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학생이라 후배님, 아니 작가님에게 많은 페이를 드릴 수가 없어요.”
“아하, 그래서 공동으로 공모전을 출품하자고 하시는 거였군요.”
비록 호칭은 왔다 갔다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뭘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제안한 협업 방식. 그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기에.
“예, 지금 저희와 같은 팀원이 되셔서 작업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의뢰자가 아닌, 같은 팀으로서 일을 하자는 것이었으니.
즉, 일을 하는 대가로 적은 돈을 주는 대신, 작품의 일정 부분 지분을 분배하겠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이런 식의 협업은 처음이긴 하네.’
일종의 비율을 나눠 가지자는 의미. 이건 에드워드 감독님이나 다른 이들이 맡긴 일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림을 온전히 돈을 받고 파는 것. 그게 지금까지 내가 한 행위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돈을 극히 적게 받는 대신 아예 작품에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었기에.
‘으음, 재미있을 수도 있겠는데?’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 온 목적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면, 확실히 성공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콘텐츠 괴물 다즈니사. 그곳에서 주최한다는 그 대형 공모전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