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터뷰와 공모전 모두 중요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지금 내가 할 일 중 우선은 바로 학교에 적응하는 것 아니겠는가.
대학생의 본분은 수업을 열심히 듣고 그에 따른 과제를 하는 점이었다.
‘원래 배움은 끝이 없는 법이지.’
영어는 내게 모국어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배웠음에도 아직 완벽하게 익숙한 언어는 아니있으니.
그렇기에 난 강의 하나를 듣기 위해서도 최고로 집중을 해야만 했다.
물론 최대한 앞자리인 좋은 곳에 앉아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오늘의 주제는 저거인 모양인데.’
젊은 교수님이 앞에 적는 글씨. 그걸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교수님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셨다.
“이 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가장 강한 욕구가 뭔지 아나?”
“자본주의니까 경제력 아닐까요.”
내가 에일대에 와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점 중 하나. 그건 바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였다.
수업 시간에 딱히 시키지 않는 이상 말을 잘 꺼내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
반면에 여기는 자연스럽게 던진 교수님의 질문에도 누군가는 꼭 대답을 했다. 무척이나 기이하게도.
‘문화마다 예의가 이리도 다르다니.’
나중에야 난 그 또한 예의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문화가 다르다 보니, 처음 여기 왔을 때 대표적으로 신기했던 일 중 하나가 있었다.
감히 스승님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우리에 비해 여기는 눈을 보지 않으면 무례한 점이었다.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하는 게 오히려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니.
확실히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니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가 싶었다.
내가 속으로 이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돈이라……. 그럼 우리 학생은 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딘가 말투에 그렇지 않다는 감정이 녹아 있었기에. 당연히 이를 들은 학생들의 대답도 좀 달라졌다.
“돈은 아닌가 보네요.”
“재력이 아니면 그거겠죠. 사랑. 사랑에 대한 욕구는 다들 엄청나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의 대답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놀랍게도 전부 다 아닐세. 많이들 생각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나로선 신기하군.”
그렇게 말한 교수님께서는 주제가 쓰여져 있는 칠판 옆에 다른 단어를 적으셨다.
[수면욕]그건 바로 잠을 자고 싶다는 욕망에 관한 단이었으니.
“지금 자네들에게도 있는 그 욕구. 바로 수면욕이지.”
그분의 시선은 흘끔 어떤 학생을 향해 있었다. 책상에 반쯤 기댄 채 있던 상대는 멋쩍은 듯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이렇게 30년쯤 살다 보면 의외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네.”
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진정한 주제가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예를 들면 세상사는 정말 단 하나도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지.”
“전 계획대로 잘하는 것 같은데요. 교수님.”
“맞아요. 계획에 맞춰 잘하니까 여기 에일대에 와 있죠.”
이 수업은 나와 같은 에일대 신입생들이 듣는 교양 수업이었다.
그런 만큼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기쁨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웃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후후, 나와 같은 에일대 동문들이 어느새 학교 졸업 후 30년쯤 되었다네.”
30년이라.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의 나이를 잘 짐작하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교수님의 연세는 꽤 들어 보이셨으니.
“그런데 그 친구들 중 계획대로 인생을 산 친구가 있을 것 같은가?”
“…….”
가만히 침묵이 흐르는 교실을 둘러본 교수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
“신기할 정도로 정말 단 하나도 없다네.”
“단 한 명도요?”
“그래. 그 어떠한 친구도.”
누군가의 추임새에 교수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더니 손을 꼽아 들며 하나하나 예시를 말씀하셨으니.
“성실한 아이도, 계획적인 아이도 불가능했어. 학교 다닐 때 누구보다 꼼꼼하고 계획적이라 틀에 박힌 인생을 산다고 한 친구조차도 그건 하지 못했지.”
“그런…….”
“하지만 계획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어.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대부분 더 많았으니까.”
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시작된 강의. 그 내용은 이제 막 신입생으로 들어온 학생들 모두를 흥미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게 사실이긴 하지.’
전생의 내가 감히 상상조차 했을까. 이 다음번의 생이 있다는 것을.
특히나 그다음 생이 조선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미래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번 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작품조차도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지금 이 생의 삶이야말로 내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
분명 계획에 없었음에도 교수님의 말처럼 좋은 일이 더 많았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색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전생보다 더 많은 걸 슬기롭게 배우며, 다른 작품 세계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
계획에 있던 대로 실행되지 않았기에 더 좋은 것. 내가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흠, 이걸 연관시켜 호를 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시 태어나서 사용할 필명이자 호. 강의를 듣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원래 호란 것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만큼 신중해야 했으니 말이다.
* * *
에일대 1학년생이 받는 수업은 확실히 교양 수업이 대다수였다.
아직 세부 전공도 정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는 만큼 대부분의 수업 커리큘럼은 교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드르륵―
수업을 마친 이상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슬슬 작업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공모전부터 시작해 인터뷰까지. 수업에서 숙제가 없다고 내 개인적인 할 일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기에.
“윤성 신!”
매일같이 ‘신’이라고만 부르던 아이들 사이에서 들려온 전체 이름. 당연히 내 고개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엔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
얼마 전 내게 오대전자에서 나온 아트 콜라보 폰을 보고 싶다고 졸랐던 친구, 클리프였으니까.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다더니. 강의 끝나자마자 일어나는 거야?”
“작업실 정리도 할 겸. 먼저 가려고 했지. 그러는 넌…… 폰 샀어?”
무려 경쟁률이 100 대 1이라며 한탄했던 친구였기에. 이를 기억한 난 우선 스마트폰의 존재 여부부터 물었다.
“흐흐흐, 짜잔!”
그야말로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는 얼른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오오!”
“뭐야, 해낸 거냐!”
“대단한데?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다니!”
클리프가 폰을 보여 준 건 분명 나였는데. 어쩐지 주변의 반응이 더 뜨거운 것 같았다.
‘진짜로 이게 인기이긴 했나 보네.’
친구가 꺼내 든 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모여지는 게 느껴졌다. 다들 이 스마트폰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럴 리가 없었다.
“봤냐. 무려 100 대 1을 이겨 낸 나의 저력을.”
무슨 대단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 마냥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번쩍 드는 클리프나 거기에 호응하는 친구들이나 다들 똑같아 보였다.
같이 있다간 나까지 멍청해지는 기분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슬쩍 한 발자국 클리프로부터 떨어지고 말았다.
“근데 진짜 실물이 더 예쁜데?”
“와, 씨. 내가 이걸 떨어지다니. 나도 구할 수 있었는데!”
거리를 좀 벌리자마자 다른 아이들이 더 다가왔다.
그럼 얌전히 폰 자랑만 하면 될 것을. 클리프는 다시 날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이거 혹시 추가로 할 계획 없대?”
“응? 추가 계획?”
“막상 관심 없던 애들도 내 폰을 보고 나니, 관심들이 생기는 모양이더라고.”
그는 자신의 폰이 사랑스럽다는 듯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막 자기들도 사고 싶다고 하던데? 그래서 추가 계획 여부가 궁금해졌거든.”
클리프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물어보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아예 이런 말까지 하는 게 아닌가.
“근데 그걸 왜 얘한테 물어?”
다들 궁금해하는 걸 물었다는 듯 클리프의 얼굴에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본의 아니게 주목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리프는 자신의 폰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야 윤성이가 이 폰의 메인 디자이너니까 그렇지.”
“뭐? 메인 디자이너?”
“이 스마트폰의? 그거 진짜야?”
아이들의 동요가 사방에서 퍼졌다. 이 수업은 에일대 1학년생들이 많이 듣는 교양이었다.
그 결과, 클리프의 말은 손쉽게 다른 학생들 틈으로 퍼져 나갔으니.
“……뭐야. 몰랐어?”
그제야 클리프는 본인이 한 말의 영향력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는 것을 보니.
하지만 원래 깨달음은 늘 늦는 법 아니겠는가.
“이름만 비슷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
“아니, 그것보다 신윤성이면, 윤성 신이랑 다른 사람인 거 아니야?”
익숙한 미국식 이름과 달리 낯선 한국식 이름.
거기다 설마하니 그 디자이너가 본인들과 같은 신입생일 줄은 몰랐던 다른 과의 학생들.
그중 여전히 믿기 어려워하는 몇몇은 아예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에 클리프는 본인이 아는 바를 말하며 반론을 제기할 뿐.
“한국은 라스트 네임이 앞에 붙더라고. 그거 그대로 홍보 때린 듯.”
“와, 미친.”
주변의 술렁거림을 느끼며 난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미대생이 모여 있던 우리 과와 달리 아직 다른 과의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내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거…… 호를 빨리 정해야 할 이유가 늘었는데.’
전생과는 다른 의미에서 사용될 것이 분명한 호. 정확하게는 필명. 난 서둘러 그걸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애들이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거짓말인 것이 분명해.’
그 누가 서양 애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 얼굴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바라보는 건 다 죄다 미국 애들인 게 분명한데.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여기 계속 있다간 내 얼굴 가죽이 뚫릴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민망함에 쥐구멍을 찾거나.
그러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자리를 피하기 말이다.
“난 먼저 갈게.”
이 사달을 만든 클리프에게 곧바로 내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자 본인도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바로 따라오는 게 아닌가.
“자, 잠깐만! 같이 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좀 멀어지고 나서야 클리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제 좀 살겠네.”
“그러게. 거기서 왜 그런 소리는 하고 그래?”
“난 별생각 없었지. 당연히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여기기도 했고…….”
말끝을 흐리며 변명하던 그는 얼른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대로 말해 봤자 스스로만 불리하다는 걸 알아차린 듯 보였다.
“그것보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우리는 모르겠고. 난 작업실 가는데?”
“작업실?”
“응. 정리할 것도 있고, 볼 것도 좀 있어서.”
선배님들이 주신 영상부터 시작해 라고시안에서 넘겨준 인터뷰 요청서들까지. 내가 봐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와우. 누가 윤성 신 아니랄까 봐, 이 좋은 강의를 듣고도 워크홀릭이라니.”
“워크홀릭이라니. 그게 무슨…….”
“너 맨날 엄청 바쁘잖아. 신입생 중에서 너만큼 바쁜 애는 없을 거다.”
“그거야…….”
내 입은 저절로 다물릴 수밖에. 내가 판단하기에도 현 에일대 신입생 중 나만큼 바쁜 학생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지 말고 오늘은 좀 놀자. 이따 하는 신입생 환영 파티도 준비하고.”
“신입생 환영 파티? 그게 뭔데?”
나도 모르는 내 일정을 알고 있다는 양 클리프는 자연스럽게 저녁 시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