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잘하면 최초로 받겠는데?
이래 보여도 전생과 이번 생을 겪으며 난 눈치가 꽤 빨라졌다.
‘분명 다른 음식 가지러 가려는 걸로 보였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녀. 다이애나는 내가 가져온 걸 한 입 먹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누군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랬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다가온 두 사람이 나와 그녀의 이름을 꺼내자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으니.
“그 윤성이랑 다이애나? 그게 무슨 내용이야?”
그러더니 긴장이 역력한 기색으로 질문을 던지는 다이애나. 그런 그녀를 아닌지 모르는지. 그들은 태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쪽은 뭐 능력이 워낙 유명해야지, 그리고 다른 쪽은 보다시피 미인이니까. 알려지는 게 당연하잖아?”
“……아, 미인.”
다이애나는 명백히 긴장이 풀린 듯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파르르 떨리던 입술도 어느새 떨림을 멈춘 상태였다.
물론 그녀의 반응과 별개로, 난 과한 칭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능력이라니, 과찬이네.”
“전혀 과하지 않은데? 네 그림이 대단한 건 에일대 신입생이면 다 알걸?”
“그러니까. 나 친구한테 네가 스마트폰 디자인한 것도 들었는데. 그건 어지간한 졸업생도 엄두도 못 내는 거잖아.”
분명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그런데 그 난 왜 그 정보를 전달한 대상이 궁금해지는 걸까.
“……혹시 그 친구가 클리프는 아니겠지.”
“어? 어떻게 알았어?”
“……아니, 뭐. 어쩐지 그냥 예감이 그래서.”
대체 이 친구의 발은 어디까지 뻗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파티의 호스트라고 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거늘.
어쩌면 여기 있는 대다수의 학생이 이미 클리프와 안면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 녀석…… 나랑 같은 시기에 들어온 거 맞지?’
분명 우린 아직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친화력이라니.
아무래도 미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헌데, 이 친구들도 친근함이 만만치는 않네.’
미국인들은 수다쟁이들이 많았다. 오죽 수다를 좋아하면 종종 파티를 열어 이렇게 사교 모임을 가지겠는가.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이 신입생 환영회 파티는 결국 사교를 위한 활동이었다. 역시나 이에 걸맞게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은 알아서 소개도 척척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름을 모르겠네. 난 제이콥 스미스. 제이콥, 제이, 콥 중에 편한 거로 불러 줘. 그리고 이쪽은.”
“캐서린 사브랑. 그냥 캐시라 불러. 나도 그게 익숙하니까.”
통성명을 한 그들의 진행 흐름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잠시라도 침묵에 휩싸이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다양한 대화 주제가 생겨났다.
간단하게는 에일대를 입학한 기쁨부터 시작해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감까지.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대화의 주제는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중이었으니.
“윤성 신, 너도 단 거 좋아하는구나!”
“갑자기?”
지금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맥락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이었기에.
“아니, 네가 가져온 것들이 묘하게 나랑 겹치는 게 보여서.”
스스로를 캐시라 불러 달라는 그녀. 캐서린의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은 확실히 내 음식들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더니 그녀는 손으로 한 음식까지 가리켰다.
“이거 맛있어. 다음번에는 이거 한번 가져다 먹어 봐.”
“그래?”
“달달한 것도 있는데, 바삭한 쿠키 식감이 괜찮거든. 딱 보니까 너라면 좋아할 거야.”
입맛이 비슷하다는 게 반가운 듯. 그녀는 쉴 틈 없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아니면, 내가 가져온 거 하나 먹어 볼래? 나 좀 많이 들고 오긴 했는데.”
그 후 신입생 환영 파티 음식에 대한 품평은 어느새 학교 근처의 음식들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학교 근처의 어느 식당이 맛있다는 것과 시내라고 할 수 있는 다운타운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던 그들.
그런 그들의 입에서 갑자기 나온 건 내가 이번 학기 들은 수업에 관한 것이었으니.
이거만 봐도 넷의 대화가 얼마나 두서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근데…… 너네 둘 다 미대생이면, 그 유명한 미술 강의도 들어?”
“유명한 강의라니?”
대화가 끊이질 않는 바람에 자리를 뜨지 못한 다이애나. 그녀는 미대생답게 미술 강의란 말에 곧바로 관심을 드러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질문에는 답을 해 주는 제이콥이었으니.
“왜 있잖아. 그 테뉴어 교수님의 강의. 무슨 AI 들어가는 거였는데.”
‘어, 그거라면…….’
현재 내가 듣고 있는 강의 중 하나로, 그야말로 내 시간표에서 유일하게 미술과 관련된 수업이었다.
난 이번 학기에는 대부분 다양한 형태의 교양 수업을 들었다. 그게 내 흥미를 자극하기도 했고, 에일대의 방침에 어긋나는 부분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에일대에 오게 된 계기가 되는 교수님. 리처드 교수님의 강의만은 듣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의 계획서가 흥미로웠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나와 인연이 있는 교수님의 수업이라고 해도 들을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의명 자체가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AI라니. 요즘 한창 화제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아직은 오리엔테이션 정도만 했다. 그렇지만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 강의가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시간표를 짤 때 가장 먼저 내 계획표에 들어간 수업. 그게 바로 리처드 교수님의 강좌였기에.
내가 아는 척을 하기 전, 다이애나가 좀 더 빨랐다. 그녀 역시 리처드 교수님의 강의에 대해 아는 모양이었다.
“아, 리처드 교수님 강의 말하는 거구나. ‘미술에 있어서 AI란’.”
“맞아, 바로 그거.”
“이번 학기에는 안 들었어. 듣자 하니, 신입생이 듣기에는 꽤 난도가 있다고 하더라고.”
다이애나의 말에 둘은 모두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렇긴 하지. 어려운 수업 피하는 애들은 안 들으려고 하는 과목 중 하나니까.”
이 자리에 있는 셋 모두 리처드 교수님의 수업을 잘 아는 분위기였다. 과연 이 학교에서도 리처드 교수님은 유명인이신 듯 보였다.
그러나 내가 순간적으로 든 감정은 약간의 당혹감이었으니.
‘……그런 소리가 있었나?’
내 주변의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교수님의 수업이 신입생이 듣기 어렵다거나, 나중에 들어야 한다는 그런 충고들을 말이다.
‘어쩐지 다들 신입생인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사실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감지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다들 풋풋한 내 나이 또래라고 하기엔 뭔가 다른 느낌이었으니.
이제 보니, 그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거의 다 선배님들이었던 듯 보였다. 이 새로운 사실을 여기 파티에 와서 배우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속으로 충격 아닌 충격에 휩싸여 있는 사이, 아이들의 대화는 어느새 강의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그 교수님은 진짜 나이도 꽤 있으신데, 참 트렌드를 잘 아신다는 말이지.”
“하긴, 요즘 AI가 한창 화제성 있지?”
조선에서 있을 때보다 지금은 각종 기술이 훨씬 더 발전된 시대였다. 그런데도 아직 발전할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니.
놀랍다 못해 신기한 일이었다.
“업계에서는 뜨거운 감자 정도라고 할까. 말이 많다고나 할까. 그 정도인데…….”
다이애나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한창 화두가 되는 와중이었기에.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하기에는 꽤 민감한 주제가 될 테니까.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AI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수업 자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강의 말이야. 꽤 재미있는 과제를 준다고 들었는데, 안 듣는다니 아쉽네.”
난 딱히 강의를 안 듣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 또한 강의를 수강하지 않는다고 여기는게 아닌가.
“고학년 되면 들어 볼 거긴 한데, 미리 알아 두면 좋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말해 봐. 재미있는 과제라니?”
제이콥은 남들이 모르는 걸 아는 사람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내게도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가.
“뭐야. 미대생이 이걸 모르다니. 이럴 수가! 혹시 윤성. 너도 몰라?”
일부러 더 과도하게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이콥. 그런 그를 보며 난 적당히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진짜 수업을 듣지 않는 제이콥보다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을 게 분명함에도.
“뭔데?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얘도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다이애나를 바라보며 내가 같이 호기심을 드러내자 제이콥은 금방 답을 전달했다.
“바로바로! ‘사람으로서 AI의 약점 찾기!’ 빠밤.”
역시나 이미 알고 있는 과제였다. 내가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가장 흥미를 느낀 숙제였으니.
‘진짜 사람은 생각보다 비슷한 면이 많다는 말이지.’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도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이런 감정이 절로 들었다. 인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리라.
예상한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는 달리 다이애나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눈치 없는 이가 보이게도 그녀가 충격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AI의 약점이라니…….”
“놀랍지?”
“……그걸 교양 과목의 과제로 낸다는 말이야?”
“그렇다니까.”
“머리 빠질 학생들은 뭔 죄야…….”
“크크크.”
멍하니 튀어나온 그녀의 웃긴 중얼거림에 제이콥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왜 이 과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인지 전하기 시작했다.
“요즘 다들 걱정이 많잖아. AI 때문에 불안해하는 애들도 있고.”
“그거야…….”
“그래서 그런 수업을 기획하신 건지도 모르지.”
일리가 있었다. AI 문제는 비단 화가나 작가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었으니.
그리고 이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깨달았다. 그 수업이 메인인 전공 과목이 아닌 보조인 교양인 이유를.
‘보통 사람으로서 찾는 AI의 약점이겠지. 작가로서 찾는 게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교양 수업임에도 비전공자도 재미있어할 만한 과제였다.
봐라. 이렇게 실제로 그 효과가 보이고 있지 않은가.
미대 전공이 아닌 신입생들까지도 리처드 교수님의 강의에 대해 말하는 것도 모자라, 과제에 대한 소감까지 이야기하고 있으니.
“약점이라. 재미는 있겠다.”
심지어 수업이 어렵다고 들어서 이번에 수강 신청조차 하지 않은 다이애나. 그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이거만으로도 리처드 교수님은 보통은 아니신 분이셨다.
“윤성, 너도 혹시 그 수업 들을 거야?”
이 질문에 난 진실을 고백할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모르쇠로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에는 솔직한 게 제일이었으니까.
“이미 이번 주에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상태야.”
“뭐? 잠깐만……. 그럼 너 강의 듣는 거야?”
“응.”
간단한 내 대답에 아이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이쪽으로 쏠렸다. 방금 이야기를 꺼낸 제이콥부터 이런 저런 질문을 해 대었다. 그것도 꽤 구체적이고 세밀한 형태로.
“수업 난도는 어떨 것 같아?”
“아직 모르겠는데. 이제 시작이라……. 막 오리엔테이션을 했다니까?”
“같이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선배들이 많지?”
“잘 몰랐는데, 네가 한 말 듣고 깨달았어. 아마 그런 것 같아.”
“입학하자마자 그 수업을 신청한 이유가 혹시 있어?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일단 난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없기도 하고. 들었다고 해도…… 재미있어 보였으니, 수강 신청은 했을 것 같아.”
“와우. 그 패기! 멋있다! 역시 윤성 신.”
“능력자는 괜히 능력자가 아니지.”
꼬박꼬박 나온 내 대답을 듣더니 두 사람은 묘한 감탄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내 흥미에 불을 당기는 일까지 해 주는 게 아닌가.
“윤성 정도의 능력자면…… 잘하면 최초로 A 받겠는데?”
최초 A라니. 최초란 말은 함부로 붙는 단어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를 들은 난 역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그게 무슨 소리야? 최초라니? 설마 아무도 없어? A 학점을 받은 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