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이왕 하는 거 좀 재미있게
초상화에 거짓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 원한다는 사람.
이상하게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끄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찾는다는 남자.
나중에는 본인을 챈들러 할아버지라고 부르라며 호탕하게 웃던 회장님. 확실히 그 챈들러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유익했다. 내게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머리를 환기시키는 대화. 화가에게 이보다 더 귀중한 건 없으리라.
‘비슷한 그림인데도, 누가 그렸느냐에 따라 사람을 잡아끄는 작품이라…….’
난 캔버스를 보며 가만히 얼마 전 한 대화를 떠올렸다. 사람들 잡아끄는 힘. 그건 확실히 아직은 기계가 온전히 대체하기 어려웠다.
물론 나 또한 AI가 미술계를 완전히 집어삼키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챈들러 할아버지는 아예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하고 계신 듯 보였다.
일반적인 사진에 비해 그림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엔 명백하고 고의적으로 화가의 의도가 들어가기 때문이었으니.
‘그건 아마도 사진과 달리 강조될 곳이 더 강조되었기에 가능한 거겠지.’
초상화란 건 생각보다 근원적인 부분을 강조해서 그리곤 했다. 위엄이라면 위엄을. 아름다움이라면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렇게 두드러진 부분이 많을수록 사람들의 뇌리에는 더 잘 남았다.
‘그게 시선을 잡아끄는 데 탁월하다면, 이걸 여기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가만히 흰 바탕을 노려보았다.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떠오른 점. 그걸 한번 섬네일에 녹여 보기로 했으니까.
이미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게 섬네일 아니겠는가.
‘일단은 초상화 형식을 빌려서 해 보자.’
결심한 난 펜을 들었다. 섬네일은 일반적인 순수 미술 그림과는 좀 달랐다. 이미 있는 영상을 잘 보여 주기 위해, 극한으로 강조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음, 그리고 이왕하는 거 좀 재미있게 하는 게 좋겠지?’
속으로 생각한 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걸 실현시키기 위해선 한 명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 * *
제시카는 수업이 끝난 후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친구와 사소한 잡담을 하면서. 최근 그들의 주제는 뻔했다.
“신 작가는 아직이라지?”
“응, 꽤 신중하게 그리는 것 같더라고.”
다즈니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 그 섬네일을 윤성 신 작가에게 의뢰해 놓은 이들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윤성은 그들의 섬네일을 꽤 고민하면서 그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정도로 잘 고민해서 그려 주면 우리야 좋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생각보다 작업이 길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들이 윤성에게 맡긴 건 이미 꽤 예전이었기에.
“근데 이건 엄연히 마감이 있는 대회라…….”
“역시 다른 섬네일러들에게 의뢰하는 게 나았을까?”
덕분에 친구들은 요즘 들어 이런 걱정까지 하는 중이었다. 만약 윤성 신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꽤 아찔했으니까.
‘신은 잘하겠지? 안 그래도 요즘 다즈니가 약해서 좀 걱정인데.’
심지어 그들을 걱정시키는 소식은 계속 튀어나왔다. 경쟁사인 타 회사에 비해 요즘 다즈니가 심상치 않았다. 그나마 잘나간다는 미블 시리즈는 물론 나머지들도 애매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이번 공모전에서 우승해도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 만약 공모전에서 제대로 된 상까지 타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불안하고 우울해지려는 심정. 그 마음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제시카는 괜스레 DM이나 뒤적거리고 있었다. 원래 뭐라도 하고 있으면, 걱정이 덜했으니까.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한 메시지가 있었으니.
“어? 이게 뭐지?”
“왜?”
“데이비드가 뭐 하나 DM으로 보냈는데…….”
그들도 아는 데이비드란 친구. 그로 인해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저절로 피어올랐다. 제시카의 친구인 링은 그녀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거기엔 한 화면이 링크와 함께 떠올라 있었다. 당연히 제시카는 데이비드가 보낸 만큼 얼른 눌러 봤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눌러도 영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으니. 혹시나 해서 새로 고침을 해 봐도 나오는 건 없었다. 단지 이상한 문장만 보일 뿐.
―비공개 동영상입니다.
“이거 뭐야? 왜 클릭해도 나오는 게 없지?”
“왜 뭔데 그러는데?”
“이거 좀 봐 봐.”
결국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링크와 함께 언뜻 보이는 그림이 전부였다. 섬네일만 멍하니 보니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이게…… 대체 뭔 그림이야?”
“이 영상 좀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
“비공개 영상인 모양인데?”
그 정도야 글만 읽을 수 있으면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데이비드가 왜 뜬금없이 비공개 영상을 DM으로 보냈냐에 있었다.
“얼른 데이비드에게 연락해 봐. 이런 짤을 보내고 영상이 안 보이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제시카를 포함해 데이비드에게 이상한 DM을 받은 당사자들. 원래 사람이란 게 못 보게 되면 더 궁금해지는 법. 당연히 이들은 곧바로 데이비드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통화 중인데?”
“엥? 그럼 DM이나 폰 메시지라도 얼른 보내 봐.”
다른 친구들의 말에 제시카가 대표로 문장을 작성했다. 웃긴 건 전화는 안 받으면서, 이 메시지에는 답장이 신속하게 왔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매우 특이하게.
“……이상한 답변만 왔어.”
“이상한 답변이라니?”
“여기로 오라는데?”
학생들이 팀플을 할 때 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도서관 안에 있는 일종의 작은 강의실이었다.
그곳으로 오라는 데이비드의 짧은 답장. 이에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점점 더 큰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갑자기? 영상 제대로 보여 달라니까. 뭔 이런…….”
“데이비드 이 자식은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러게. 또 무슨 기상천외한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그녀를 포함한 2명의 친구들은 하나씩 데이비드를 타박하는 말을 던졌다. 그만큼 지금 친구의 답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의미였다.
물론 데이비드는 원래도 특이한 놈이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이 정도 반응에서 끝난 것이었다.
다들 그러는 사이. 이 상황을 정리한 건 결국 제시카였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한번 시간을 본 뒤 입을 열었다.
“마침…… 지금이 우리 다 수업 끝나고 나서긴 하니까. 한번 가 봐야 할 듯.”
“그러자. 오랜만에 가겠네.”
도서관 안에 있는 작은 프로젝트 룸. 여기는 일종의 팀플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돌려 보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은가. 거기다 어차피 대부분의 팀플은 발표와 함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노트북과 연결해 작게나마 발표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공간은 중요한 곳이었다.
일정 시간을 학생증을 통해 대여하는 이곳은 제시카 일행이 종종 사용하는 장소였다. 학교 내에서 주는 과제를 모여서 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다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벅―
에일대는 넓은 만큼 도서관도 꽤 규모가 있었다. 대학원 도서관부터 시작해 각종 전공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 많은 도서관 중 그들이 온 곳은 학부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중앙 도서관이었다. 시험 기간이 아님에도 학생들은 상당히 많았다.
조용한 분위기에 아이들은 말없이 걸음만 옮겨 프로젝트 룸으로 향했다.
“여긴가?”
“기다려 봐. 한번 확인해 보자.”
데이비드가 보낸 메시지를 열며 장소를 확인한 그들.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소형 강의실 형식으로 된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 짐은 있는데?”
“기다려 보지, 뭐.”
가방과 노트북. 그게 놓여 있었기에 그들은 마찬가지로 짐을 내려놓으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앉고 나자, 그런 그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화면이 있었으니.
“어라? 이거였어!”
한 친구의 말에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노트북 쪽이었다.
“이거라니?”
“내가 아까 봤다고 한 그 영상. 이거라고. 얼른 틀어 보자.”
얼른 노트북에 손을 대려는 친구. 그런 친구를 말린 건 제시카였다.
“……데이비드는 아직 없는데?”
“……어차피 이거 궁금해서 온 거잖아. 잠깐 보고 있으면 안 될까?”
“안 되지. 남의 노트북인데.”
그렇게 그들은 노트북 쪽으로 시선만 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그런 상황은 길지 않았다.
달칵―
“어? 다들 미리 와 있었네?”
“데이비드!”
“데이빗!”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이비드. 그런 그의 이름을 부른 친구들은 다짜고짜 얼른 영상부터 보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야, 이거 뭔데?”
“아, 그거…….”
그런데 어째 데이비드의 반응이 애매했다. 물론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봐도 되지?”
“아니, 그…… 애들아. 그거 별로 안 궁금하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잖아?”
필사적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데이비드. 그러면서도 이상한 건 정작 제대로 된 문장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들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뭔 소리야? 나 이런 그림 본 적 없는데?”
“그러니까. 너도 왔으니까 우리 튼다?”
“뭘 물어. 그냥 틀면 되는 걸.”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질 수는 없지만 이쯤 되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그들의 손은 자연히 영상을 트는 쪽으로 움직였다.
“…….”
그리고 흘러나오는 영상. 그들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저기 애들아. 이거 우리 영상인 모양인데.”
그들이 침묵에 휩싸인 이유. 그건 흘러나오는 영상의 모든 게 퍽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제야 다시 영상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더 궁금해지고 익숙해 보였던 이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비드가 부른 게 우리뿐이구나.”
“아니, 우리 영상 보려고 지금 여기 와 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는 사이. 한 친구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섬네일!”
“뭐?”
“우리가 여기 와 있는 이유가 뭐야! 그 짤 보고 와 있는 거잖아!”
그 짤. 그게 알고 보니까 섬네일이었던 모양이었으니. 친구들의 눈초리는 자연스럽게 데이비드에게 쏠렸다.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 설명 좀 하라는 기색이었으니. 그에 데이비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들은 왜 그렇게 성격들이 급하냐? 좀만 기다리면 내가 이겼는데.”
“이겼다고? 뭘?”
그들의 물음에 대한 답은 데이비드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문이 다시 열리며 들어오는 다른 사람에게서 튀어나왔으니까.
“그냥 간단한 음료수 내기요. 오늘 여기서 간단히 섬네일 소개할 때 누가 음료 쏠지 내기했거든요.”
윤성 신 작가. 그들의 후배님이자, 섬네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단 채로 나타난 윤성은 데이비드를 보며 한층 더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배님, 전 아이스초코요. 물론 휘핑 많이 해서요.”
“……내기?”
내기라니. 그들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이. 윤성은 제시카를 포함한 친구들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예. 선배님들이 저 영상을 곧바로 보려고 할지, 말지 내기했거든요.”
“……그리고 네가 이겼겠네.”
“정답입니다. 그리고 방금 제가 그린 섬네일들 다 보신 것 같으니, 바로 소개해도 문제없겠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었으니, 윤성 신이 만든 섬네일이라도 좀 구경해야 했다. 그래야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 여기까지 온 수지가 맞지 않겠는가.
“그럼 데이빗 선배만 음료 얼른 사 오시고요. 다들 앉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