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학생이라고 다 같지 않다
단오풍정(端午風情), 일명 목욕하는 여인들.
조선에서 그린 그림 중 하나. 이번 섬네일은 내가 최근 그린 그림 중 가장 이 단오풍정과 닮아 있었다.
물론 구도나 그림 스타일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남들이 보면 아예 다른 그림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내가 여기서 일부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하면,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사실 닮았다고 하는 이유는 주인공과 이를 지켜보는 시선. 그걸 비슷하게 표현한 것에 있었다.
확실한 주인공과 이를 지켜보는 시선. 이 구도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좋았다.
이번 선배님들의 섬네일처럼 말이다.
“선배님들의 영상은 인간 티오에 대한 것이었어요.”
인간 티오. 정확하게는 일정한 규칙에 의해 정해진 인간을 위한 정원.
선배들이 함께 제작한 영상은 이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로봇이 모든 일을 하는 세상.
창의적인 것까지 전부 로봇이 할 수 있는 세계. 정부는 사람들을 위해 인간 티오를 지정했다.
인간에게도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권리를 주장하면서.
‘흥미로운 주제였지. 과연 이 시대. 조선에서는 상상도 못 한 게 나온다니까.’
내용 자체는 간단하고 짧았다. 한 기업에서 오직 딱 한 명만 인간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로봇이었고. 이건 그 인간이 겪는 짧은 일을 다룬 영상이었다.
“영상 자체가 무척 좋았어요. 덕분에 전 어떻게 하면 이걸 다 보게 만들까만 고민했고요.”
알맹이 자체가 흥미로웠기에. 내가 강조해야 할 건 근원적인 면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영상대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렸죠. 모든 기계 속에서 식사를 하는 유일한 인간. 그리고 그걸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로봇들을요.”
로봇은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기술이 발전하며 그들의 충전은 짧다 못해 거의 필요성이 낮아졌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정기적이고 주기적으로 식사를 해야 했다. 내가 표현한 거는 거기에 중심축이 있었다.
“선배님들은 이 영상을 보고 싶어진 이유가 뭐였어요?”
내 질문에 선배님들은 슬쩍 서로를 바라보셨다. 그러더니 제시카 선배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으니.
“수많은 로봇이 한 사람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게 어쩐지…….”
“좀 소름이었지.”
말끝을 흐리는 제시카 선배님의 말을 데이비드 선배님이 받았다. 그는 서슴없이 남들이 망설이는 소감을 입에 담았다.
“심지어 로봇들이 다 인간처럼 표정이 있었어. 그것도 무척이나 친절하고 착한 표정으로 말이야.”
친절하고 착한 표정. 내가 단오풍정. 즉 목욕하는 여인들에게서 약간 영향을 받았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단오풍정은 스님들이 단옷날 창포물에 목욕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물론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스님들이 옆에 있었기에, 그 그림은 비로소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잡아끌었다.
이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로봇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그 장면이 있었기에 섬네일의 가운데 위치한 인간이 더 눈에 들어왔다.
과할 정도로 상냥한 표정의 로봇들과 대접을 받으면서도 불편해 보이는 인간. 이 구도는 어딘가 호기심도 더 자극했다.
“세상 착한 로봇과 불만에 찬 인간. 그게 이 영상을 궁금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친철하고 상냥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는 어딘가 약자를 배려한다는 그 묘한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선배님들의 얼굴을 보니, 내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로봇의 표정을 그려보는 거라…… 약간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상냥함 속에 깃든 묘한 우월감. 그걸 표현해야 했기에 꽤 난이도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나온 작품이 상당히 만족스러웠기에 저절로 흥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난 선배들에게 만족스러운 섬네일을 보여 줄 수 있었다. 물론 달달한 아이스초코도 덤으로 얻으면서 말이다.
* * *
내 학교생활은 순조로웠다. 특히나 최근에는 즐거운 일도 하나 추가되었다.
예로부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먹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에일대가 위치한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은 대도시라곤 할 수 없었다. 물론 다운타운이라고 불리는 데는 꽤 괜찮은 식당이 많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게 어디냐고? 바로 여기 챈들러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초상화를 위해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기로 한 우리. 챈들러 할아버지가 내 작업실과 함께 제안한 장소는 바로 본인이 뉴헤이븐에 산 저택이었다.
그곳에서 난 주로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주로 여기선 잘 먹기 힘든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말이다.
오늘도 난 황홀한 식감을 느끼며 즐거운 식사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건 어떤가? 입에 좀 맞나?”
“엄청 맛있는데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초밥 먹는 느낌이에요.”
“오호, 그거 다행이구만. 많이 먹게나.”
내 말에 챈들러 할아버지는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으셨다. 미국에 와서 한식도 무척이나 그리웠지만, 이런 간단한 초밥이나 돈까스도 먹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식사는 내게 참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요리사가 손수 만든 싱싱한 초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사실 처음에 올 때는 알 수 없었다. 왜 본인의 집으로 초대를 하는 건지 말이다.
그러나 내게 요리사가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챈들러 할아버지를 보며 깨달았다. 이 근처에 위치한 어지간한 식당은 그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었으리라.
“근데 매번 너무 잘 먹여 주시는 것 같으신데요.”
“내 집에 오는 손님 아닌가. 잘 대접하는 게 당연한 걸세.”
그렇게 말한 챈들러 할아버지는 웃으며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를 본 것이었으니.
“그리고 화가 선생 올 때 내 손녀도 와서 이렇게 밥을 먹으니, 두 배로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다. 내 맞은편. 거기에는 이제는 꽤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다이애나 윌슨.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그녀 또한 이 식사 자리에 함께였다.
“할아버지…… 제가 와서 밥 먹는 게 아까우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안 그래도 멀리 대학 다니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하는 것도 좋지.”
“그쵸? 헤헤.”
“그러게 그냥 컬롬비아 같은 데나 갈 것이지, 뭔 에일대까지 온 건지 원.”
컬롬비아 대학교. 뉴욕에 위치한 아이비리그 중 하나였다. 에일대처럼 명문인 동시에 대도시에 있으니,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할아버지. 컬롬비아는 미대가 별로이다 못해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에요.”
“그러냐?”
“에일이 최고라니까요? 할아버지 손녀, 미대 중에 최고 대학 온 건데…….”
입을 삐죽이는 손녀가 귀여우신 듯 챈들러 할아버지가 미소 짓는 게 보였다. 서로 어색한 부분 없이 잘 이야기하는 게 사이좋은 조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으흠, 손녀를 향해서 웃는 느낌은 좀 다르네.’
식사가 맛있다고 해서 난 먹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이 자리가 만들어진 이유가 뭔가. 바로 초상화, 즉 그림 때문이 아닌가.
그런 만큼 난 챈들러 할아버지를 잘 관찰했다.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선 그 인간을 살펴보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
‘역시 다이애나가 이 자리에 함께하길 잘한 것 같은데.’
처음 다이애나가 이 식사 자리에 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다지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다이애나가 챈들러 할아버지의 손녀라고 해도 그뿐. 내게 중요한 건 초상화였으니까.
그렇기에 만약 첫 식사가 별로였다면, 난 이 자리를 거부했으리라.
하지만 막상 같이 식사를 해 보니,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다. 나와 있을 때는 보이지 않은 챈들러 할아버지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으니까.
초상화가 나도 만족하고 의뢰인도 만족하기 위해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게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식의 식사 자리는 딱 좋았다.
속으로 내가 흐뭇해하는 사이. 두 조손의 대화는 어느새 내 쪽으로 흐른 상태였다. 물론 주제만 나일 뿐, 여전히 대화의 상대는 서로였지만.
“근데 우리 화가 선생은 작업한다고 무척 바쁘던데. 같은 미대생인 우리 손녀는 왜 한가할꼬.”
“……할아버지. 윤성은 보통이랑 달라요.”
챈들러 할아버지의 놀림에 다이애나가 주먹을 불끈 쥐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까지 갈 기세로 할아버지의 말에 반박하는 게 아닌가.
“그러냐? 그래도 같이 학교 다니는 학생이거늘.”
“학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죠. 쟤는…….”
뭐라고 이야기하려던 그녀의 눈이 나랑 마주쳤다. 얼굴이 슬쩍 붉어진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할아버지를 타박하는 데만 집중했다.
“아니, 그걸 제일 잘 아시는 게 할아버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에일대까지 쳐들어오셨으면서.”
말하다 보니 분하다는 듯. 그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게 귀에 들려왔다.
“우리 화가 선생이 대단한 거야 내 잘 알지. 그런데 네가 화가 선생보다 덜 하는 것도 맞지 않니.”
“그건…….”
핵심이 찔렸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소리가 작아졌다. 말끝을 흐리다 못해 입을 다무는 손녀를 향해서 챈들러 할아버지는 인자한 얼굴로 되물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건 손녀를 향한 할아버지의 걱정이었으니.
“왜 또 뭐에 막힌 게야?”
“…….”
“매번 그림 그리다 막히면. 그림 도구들 다 버려 두고 다른 거나 하곤 했는데. 또 그런 건가 해서 말이다.”
챈들러 할아버지의 말에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는 게 보였다.
그런 손녀를 본 챈들러 할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내게 물어보는 게 아닌가.
“화가 선생, 미안하네만 내 손녀 그림 좀 봐 주겠나?”
“할아버지!”
언제 침묵했냐는 듯 그녀가 챈들러 할아버지를 큰소리로 불렀다. 손녀의 무시무시한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본인의 할 말만 나에게 할 뿐이었다.
“원래 막혔을 때는 남의 눈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부끄러워도 자꾸 남에게 보여야지. 그래야 네 그림도 발전할 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난 대충 어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흔한 일이지. 요즘 말로는 슬럼프라고 하던가.’
예술을 하는 이가 걸리기 쉬운 병. 남과의 비교가 너무나도 명확히 되는 시대이기에. 슬럼프는 까딱하면 찾아오기 쉬웠다.
“슬럼프인 거야?”
내 질문에 그녀는 우물쭈물했다. 그러더니 겨우겨우 사연을 털어놓고 시작했다.
“분명 에일대 입학할 때만 해도 괜찮았거든? 실기 작품 내는 것도 다 좋은 걸로 잘 냈고…….”
“근데?”
“그런데 막상 여기 입학하고 나서는 제대로 그려지는 게 없는 거야. 솔직히, 그래서 네가 듣는 리처드 교수님 수업도 피했고.”
이건 색다른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난 그녀가 이 수업을 나중에 들으려고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피했다고? 다음에 듣기로 해서 피한 거 아니었어?”
“그런 것도 있지만…… 워낙 그림이 안 그려지니까. 미술 관련 수업은 이번 학기에는 안 듣고 싶었거든.”
과연 그렇게 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그다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기간부터가 짧았다. 에일대 입학 전에 잘 그렸다는 건. 바꿔 말하면 못 그린 지 고작해야 몇 개월 정도만 지났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림은…… 그 작가의 내면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법이지.’
최대한 내면을 배제한 채 그리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묻어 나오는 작가의 색채. 에일대 미대생쯤 되면 그런 게 당연히 있었다.
그렇기에 그림을 보면 알아낼 수 있으리라. 그녀가 지금 가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역시나 전대 회장님. 손녀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린 게 분명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정확한 것 같은데?”
“응?”
“아무래도 네 그림. 내가 한번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멍해지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시간 괜찮아? 엄청 바쁘지 않아?”
“잠깐 보는 거 정도야 문제없지.”
시간 내서 전시회도 가는 나였다. 남의 그림 잠깐 보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하물며 챈들러 할아버지에게 지는 신세가 늘어나는 것도 좀 신경 쓰였다.
영어로는 기브 앤 테이크라 하던가. 난 주고받는 것이 확실한 게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좀 과하게 받고 있었다.
‘맛있는 식사에 매번 작업실에 올 때마다 주는 선물값. 그거 이거로 한다고 생각하지 뭐.’
마침 이 기회를 빌어 내 마음의 부채를 더는 게 좋으리라. 결심을 한 나는 다이애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그림들이 주로 있는 곳이 어디야?”
어차피 보기로 했다면, 한 번에 몰아서 쭉 보는 게 뭔가를 파악하기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