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그 사진이 누군지나 잘 봐
김호민은 그 어렵다는 언론 고시를 뚫고 당당하게 입사했다. 그가 있는 언론사 정도면 기자로서 나쁘지 않은 스타트였다.
역시나 괜찮은 기업답게 해외 취재도 턱턱 가게 해 주지 않는가. 이제 입사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신입임에도 말이다.
겨우 신규 딱지를 뗀 그는 처음으로 해외 취재를 나와 들뜬 기분이 역력했다.
이 기분이 유지되기 위해선 좋은 기삿거리를 찾아야 했다. 호민이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한다면 앞날은 뻔했다.
1차적으론 사수이자 선배인 이수련 기자에게 호되게 까일 것이요, 2차적으론 보도국 국장님에게 가루가 되도록 털릴 것이 분명했다.
결국 기자란 기사로 말을 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이 아트 바젤 홍콩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으으, 선배가 유명인 찾아보라고는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주 맨땅에 헤딩을 하는 건 아니었다. 사수인 수련 선배가 그에게 작은 힌트를 줬기에.
그렇다고 해도 쉬운 건 아니었다. 여긴 한국이 아닌 홍콩이었기에.
‘내가 세상의 유명인들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고…….’
그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한국의 유명인도 아니고 홍콩의 유명인이나, 다른 유명인들까지 잘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두리번거리기보단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유명인이 근처에 있다면, 그가 알아보지 못해도 다른 관객들이 알아볼 수도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이 VVIP만 입장이 가능한 날이기 때문일까. 다들 주변 사람들보다는 작품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뚫어져라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 옆의 사람과 그림을 보며 무언가 속삭이는 이들.
마지막으로 직원이자 큐레이터들에게 작품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들까지.
그들의 관심은 주변이 아닌 그림, 그 자체였다.
‘이 중에 유명인을 뭔 수로 찾아…….’
둘러보면 볼수록 절망감만 느낄 것 같았다. 그렇기에 호민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 갔다.
‘차라리 인터뷰를 좀 따 볼까.’
최고의 방법이 안 된다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했다. 여기 온 사람들의 인터뷰. 잘만 따 가면 선배의 눈총은 피할 수 있으리라.
‘영어를 잘해 보이는 사람부터 찾자.’
여기는 홍콩이었다. 당연히 주변에서 들리는 언어의 대부분은 중국어였다.
선배인 이수련 기자와 달리 그의 중국어 실력은 ‘여행 중국어’ 수준이었다. 초보 딱지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주어진 방법은 영어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가 결심하는 사이. 귀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으니.
“뭔가 애매한 느낌 아니야?”
“뭐가 애매해요?”
“이거 우리 아들이 그린 그림보다 느낌이 별로야.”
“……무슨 그런 팔불출 같은 발언을.”
“아니, 이건 이 아빠의 눈이 정확한 거지!”
“…….”
“그런 의미에서 이거 사 가면, 네 할아버지가 싫어할 것 같지 않아?”
한국어!
분명 호민의 귀에 들리는 문장들은 한국어였다. 해외에서 익숙한 한국말을 들으면 더 반가워지는 법.
지금 호민의 기분이 딱 그 상태였다. 하물며 그에겐 지금 인터뷰할 사람이 간절한 상황이었으니.
‘한국 사람인가? 심 봤다!’
이런 국제적인 행사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다. 그렇기에 그는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가가면 놀랄 수도 있어. 안 그래도 사람들이 인터뷰 잘 안 해 주는데.’
사람들의 경계심이 날로 오르고 있었다. 명함을 쥐여 주며 수상하지 않은 사람임을 어필해도 인터뷰 따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었으니.
‘선배님이 그러셨지. 나비처럼 다가가 벌처럼 쏴서 잡으라고.’
그렇기에 그는 일반 관람객인 척하며 그들을 멀찍이서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덕분일까.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인걸 알 수 있었다.
“이건 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래?”
“예, 색을 상당히 잘 쓰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화가 본인이 따뜻한 계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호.”
“미묘하게 현대 미술보다는 고전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니까.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앳된 얼굴의 남자아이.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일 법한 얼굴로 아이는 아버지에게 꽤 설명을 잘해 주고 있었다.
‘해설 좋네.’
귀에 쏙쏙 박히는 아주 쉬운 설명이었다. 덕분에 그도 꽤 재미있게 듣는 중이었다.
물론 그는 그 와중에도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섹션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그 찰나, 그 잠깐의 시간을 포착해 말을 걸 수 있었다.
“저기요.”
“예?”
“네?”
호민이 말을 건 두 사람이 놀라는 게 보였다. 그는 품 안에서 준비해 둔 명함을 꺼낸 후, 그들에게 내밀었다.
“아시아문화의 김호민 기자입니다. 한국 분들이시죠?”
“기자요?”
“헙.”
‘뭐지?’
뭔가 두 사람의 반응이 특이했다. 기자라고 밝히며 다가갔을 때 보통 보이는 반응들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거나, 호기심을 드러내는 쪽이었다.
하지만 방금 이들의 반응을 뜻밖이었다.
‘이건…… 언젠가 찾아올 사람이 갑자기 왔을 때의 반응인데?’
이전에 딱 한 번, 시보 때였다. 연예부 선배님과 함께 모 배우를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만났던 배우가 정확하게 이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호민과 그 선배가 좀 일찍 가긴 했었으니까.
이미 올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 올지는 몰랐다는 반응.
왜 일반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그 배우의 느낌을 받는 걸까. 호민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아버지로 보이는 쪽이 먼저 나섰다.
“아. 기자님이셨군요.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서 한국인들을 뵙게 되어 참 반가워서요. 괜찮으시면 인터뷰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요…….”
‘또 이러네. 이 이상한 반응은 대체 뭐지?’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 쪽. 그러더니 금세 아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아이 콘택트를 하는 게 아닌가.
호민의 의혹이 깊어지는 와중이었다. 아들 쪽의 입이 열린 것은.
“아버지가 인터뷰를 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좋았어. 긍정적이다.’
제일 어려운 게 첫 반응을 좋게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첫 반응이 부정적인 인터뷰 대상자들은 결국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좋은 대답에 아버지까지 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
“예. 나중에 어머니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시면 재미있어하실 것 같거든요.”
“그럴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설마하니 아버지가 인터뷰에 나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일리가 있었다. 보통은 이런 인터뷰 기회가 잘 찾아오는 건 아니었으니. 아버지를 보며 긍정적인 대답을 한 아들 쪽은 슬쩍 내게 질문까지 던졌다.
“혹시 영상 같은 건 안 나오나요?”
영상! 이건 서면 인터뷰보다 더 따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공중파나 종편이 아니었으니까.
꽤 큰 곳이라 구독자가 많은 너트뷰가 있지만, 그뿐. 공중파나 종편만큼의 파괴력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영상 인터뷰는 따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그는 재빠르게 기자 정신을 발휘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저희 회사 너트뷰에 올라갈 영상도 같이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너트뷰요?”
“예, 인터뷰하시고 나면 그 영상을 찾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영상을 잘만 찍어 가면 분명 너트뷰에 올라갈 수 있었다.
위에서 그걸 컷할 리가 없었기에. 안 그래도 요즘 내보낼 영상 없다고 죽는소리하는 보도국이 아니겠는가.
“너트뷰라……. 오히려 그게 좋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지? 아무래도 TV에 직접 나오는 건 좀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고.”
“지금 시기에 갑자기 나오는 건 좀 그렇죠. 근데 이 정도면 오히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민은 좋았다. 인터뷰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저 구석에 갈까요? 여기보단 저기가 나아 보여서요.”
빙그레 미소를 짓는 상대방을 보며 호민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그의 해외 운은 좋다고 생각하면서.
* * *
인터뷰는 꽤 간단하게 끝났다. 몇 번이나 인터뷰를 해 본 듯 익숙한 상대방 덕분일까. 호민은 크게 할 일도 없었다.
굳이 한 일은 한 가지 정도였다. 찍은 영상을 한번 보여 주는 것.
이를 다 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그를 향해 아들 쪽이 질문을 던져 왔다.
“진짜 이거로 끝이에요?”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
메인 인터뷰 대상자는 아들이 아닌 아버지 쪽이었다. 그랬기에 신상 정보도 아버지 쪽만 얻었다.
개인 정보가 중요해진 요즘. 필요도 없는 정보까지 수집했다간 낭패를 보기 딱 좋았으니까.
선배들의 말을 유념한 그는 정말로 최소한의 핵심 자료만을 챙겼다. 그로 인해 상대측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질문이 짧긴 하네요.”
“아하하. 이 정도 해 주신 것만으로도 엄청 많이 해 주신 거죠.”
그는 잘해 준 상대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반응하면 상대방이 좋아한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나 어딘가 그의 기대와는 벗어난 반응이었다. 심지어 아들 쪽의 얼굴은 뭔가 애매했다.
그렇게 호민은 그들을 보내 주었다. 언제까지 아트 바젤 홍콩을 관람할 시간을 뺏을 수는 없었으니까.
* * *
호민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대로 돌아서 선배에게 훌륭한 인터뷰 영상을 보여 줄 생각에 들뜬 상태였으니.
‘이 정도면 수련 선배도 더 이상 날 무시하진 못할 거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룰루.”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는 수련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조금 전 사건에 대해 순식간에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이수련.
미친 듯이 타이핑하는 선배의 옆에 그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왔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녀는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가는 얼굴. 역시나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기사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배. 제가 여기서 무려 한국인한테! 인터뷰를 따 왔어요!”
“그래? 찾기 어려웠을 텐데.”
“제가 또 누굽니까. 바로 딱! 이렇게 딱! 찾아서 인터뷰했죠.”
누가 봐도 칭찬해 달라는 말투.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꽤 바빴다. 서면 인터뷰 정도로 후배의 기를 세워 줄 정신은 없을 만큼.
“기사 바로 쓸 거야? 그럼 얼른 써. 내 거 하고 봐줄 테니.”
“그보다 제가 영상도 찍었거든요. 저희 너트뷰 올라갈.”
“뭐야. 영상까지 했어? 너 제법인데?”
화면에 코를 박을 듯이 가까이 있던 그녀의 얼굴이 들렸다. 그만큼 이번 신입 기자의 행동은 보통이 아니었기에.
일개 서면 인터뷰와 영상은 달랐다. 여차하면 그 영상에서 괜찮은 사진도 건질 수 있었으니. 이건 정말 칭찬할 만한 업무 처리였다.
“헤헤. 한번 보시죠.”
그 때문일까. 자랑스럽게 보여 줄 만했다. 그랬기에 그녀도 대충 보고 칭찬을 해 줄 작정이었다. 좀 못 찍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갈수록 굳어 갔다. 그러더니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제 모자란 후배를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너…… 너!”
“왜 그래요?”
“너……. 어쩌면 이렇게나 모자라니?”
“예?”
“언론 고시를 발로 통과하지도 않았을 놈이…… 이렇게나 눈치가 없을 줄이야.”
여전히 그녀의 말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 못난 후배님.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1년 안 된 기자는 혼자 뭘 하게 두는 게 아니었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속으로 탄식한 그녀는 ‘참을 인’ 자를 머리에 새기며 말문을 열었다.
“이 아트 바젤 홍콩 올 때. 기본적인 조사도 안 한 거야?”
기본적인 조사. 당연히 했다. 오히려 그는 꽤 구체적으로 공부까지 하고 왔다. 그랬기에 수련의 말을 들으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선배. 제가 이번에 첫 해외 출장이라고 얼마나 공부했는지 아시면서.”
“그래! 네가 시간은 꽤 들인 거 알고 있지. 알고 있는데!”
그녀는 들을수록 기가 막혔다. 비행기 속에서도 자료를 들여다보던 후배를 그녀도 봤다. 봤기에 더 어이가 없었을 뿐.
“이따위 답답한 결과를 가져오니 내가 속이 안 터지겠냐?”
답답한 결과라니. 당연히 그는 이런 선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의 인터뷰는 완벽했다. 언론사 인터뷰답게 어그로도 확실했으며, 질문 또한 완벽했으니까.
심지어 국적이 나와 있는 주소와 이름까지 잘 조사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선배는 이런 반응이라는 말인가.
“여기 이 남자애! 누군지 진짜 모르겠어?”
“……제 메인 인터뷰 대상자의 아들인데요.”
“그러니까! 이게 누군지 모르겠냐고.”
“……아들까지 이름을 물어보진 않아서.”
“아오!”
화딱지가 난다는 듯 수련은 자신의 폰을 찾았다. 그러더니 미친 듯이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자. 이거 좀 봐 봐.”
작은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간 사진. 화질이 깨져 있었지만, 그 얼굴을 알아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선배가 왜 그 애 사진을 가지고 있어요? 아는 사람이에요?”
멍한 기색으로 물어보는 그. 그런 후배를 본 수련은 내가 너 때문에 탈모가 온다는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그 사진이 누군지나 잘 봐.”
그는 그녀의 말에 다시 사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엔 명확한 정보가 하나 들어 있었다.
[라고시안 갤러리 전속―신윤성 작가.]그랬다. 이런 라고시안에서 신윤성 작가의 사진이라고 하여 작게 올려 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