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동서양의 조화를 잘만 활용한다면
아트 바젤 홍콩의 첫날 프리뷰를 참석한 나와 아버지. 우리는 그다음 날 난 곧바로 공항에 왔다.
아버지는 한국에 돌아가시기 위함이었으며, 난 그를 배웅해 드리길 원해서였다.
“공항에 오래 있지 말고, 얼른 들어가 봐. 피곤하겠다.”
“괜찮아요. 들어가시는 거 보고 갈 거예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배웅해 드리고 싶어요.”
비행기에 올리기 위해 짐을 먼저 부친 아버지. 그런 부친을 보며 난 이제는 익숙해진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시간이 좀 남네요. 들어가시기 전까지 저랑 차나 한잔하시죠.”
이 시대의 좋은 점은 주막과도 비슷한 카페가 곳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카페. 여긴 약간 남는 자투리 시간도 잘 활용해 여유를 즐기도록 만들어 주는 장소였다. 그것도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가 함께하는.
홍콩의 공항에도 괜찮은 카페는 많았다. 그중 하나에 들어간 난 익숙하게 영어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선택한 메뉴는 인터넷에서 홍콩의 대표 음료 하면 나오는 것. 바로 밀크티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호록―
‘현지의 향은 꽤 독특하네.’
한국에서 먹던 밀크티와 미묘하게 다른 기분이었다.
달달한 것을 추가로 더 넣어 달라고 했기 때문일까. 향과 어우러지는 단맛은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따가 숙소에 잘 들어가면 이 아빠한테도 연락해 주기다?”
“……그거 제가 해야 하는 말 아니에요? 여기서 비행기 타고 한국 가시는 건 아버지신데.”
“아니지. 너 혼자 여기 남는 거니까. 아들인 네가 해야지.”
“저야 당연히 하죠. 아시잖아요.”
“네가 연락 자주 하는 거야 잘 알지. 그거 진짜 좋은 습관이야.”
원래 부모에겐 늘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효의 기본 시작이었다.
조선에서 혼인도 하지 않았던 불효자인 나였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잘 지켰다.
그 덕분일까. 전생에서 이어져 오는 이 습관인 이번 생에서도 계속 이어서 행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시대는 연락이 편리한 시대가 아닌가.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비대면으로 안부 인사를 드릴 수 있다니. 세상 참 효도하기 좋아졌다.
‘조선에서 이런 게 있었으면, 불효자는 아무도 없었겠지.’
스마트폰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의 효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 폰에서 불이 들어오면서 움직인 것은.
드드드드드득―
“어? 윤성이 너……. 전화 오는 거 아니야?”
내 스마트폰은 늘 언제나 진동이었다. 무음을 해 두면 너무 연락을 받기 어려웠고, 벨 소리는 그림을 많이 그리는 나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으니까.
“음, 맞네요. 전화.”
진동이 끊기지 않는 것을 보니, 전화가 확실했다. 폰 위에 뜬 이름을 본 아버지께서는 이제 재촉하기에 이르셨다.
“필립? 얼른 받아 봐. 급한 일일 수도 있잖아.”
“뭐, 어제 한 이야기 때문일 것 같기는 한데요.”
전화가 온 사람은 라고시안 소속의 내 담당자인 필립이었다.
어제 잭슨 나올로의 행사를 보고 느낀 영감에 대해 한바탕 의견을 전달했으니. 아마도 그것 때문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리라.
“일단 저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한 난 슬쩍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여보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우선 축하부터 드려야 할 것 같네요.]“축하요?”
대충 뭘 축하하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지금 라고시안이 내게 할 축하는 내 아트 바젤 홍콩의 성적밖에 없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적중했다.
[역시 작가님의 작품은 인기도가 엄청나네요. 온라인 뷰잉에서 곧바로 완판되었거든요!]온라인 뷰잉. 많은 미술관이 종종 진행하는 행사였다. 꼭 아트 페어가 아닌 일반 전시에서도 말이다.
직접 전시회를 오거나 행사를 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작품을 소개하거나 판매하는 것이었으니.
사실 원래 가진 주요 목적은 색다른 작품을 관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에 있었다.
“온라인 뷰잉이면, 다들 직접 제 작품을 보지도 않고 구매하신 거 맞죠?”
[정확하게는 사진을 보시고 구매하신 거죠!]그림의 힘은 직접 봐야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이거늘. 직접 보지 않고도 사진만으로 내 그림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니. 들을 때마다 신기했다.
역시나 조선 땅에서만 있을 때와는 달랐다. 드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히자 그만큼 구매 대상층도 달라진 게 피부에 와 닿았다.
좋은 그림만 그리면 얼마든지 팔 수 있는 세상이라니. 모든 작품이 판매가 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문득 드는 걱정이 있었다.
노파심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확인을 하기에 이르렀다.
“판매되었다고 바로 그림을 빼지는 않는 거 확실하죠?”
팔렸다고 해도 아트 바젤 홍콩이 폐막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림이 남아 있는 거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확인 차원에서 한 번 더 질문을 했다.
내 그림이 최대한 다양한 이들에게 보이고 싶었기에. 그래야 더 다수의 사람들이 내 작품을 원하게 되지 않겠는가.
[당연하죠! 완판이 되었지만, 끝까지 홍콩 컨벤션 센터에 남아 있을 테니. 다른 일반 관객들까지 모두 볼 수 있을 겁니다.]“그럼 작가와의 대담도 그대로 진행하는 것 맞나요?”
[아,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흘끔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아버지를 배웅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난 당장의 통화를 거절하기로 했다.
“지금 아버지를 배웅 중이라서요. 길게는 통화가 어렵습니다만.”
[오늘이 부친께서 돌아가시는 날이었죠? 제가 깜빡했네요.]그는 미국인 특유의 하하거리는 웃음을 멋쩍게 지은 후, 예상과 다른 의견을 전달했다.
[괜찮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오늘 저희가 작가님을 만날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하는 거라서요.]“오늘요?”
아버지가 타기로 한 비행기는 오전 비행기였다. 이걸 배웅하고 간다고 하면 오후 늦게는 가능했다.
[예. 저희가 작가님께서 전달해 주신 의견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기획안을 만들었는데. 한번 협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과연 라고시안. 어제 통화한 내용이 곧바로 종이로 된 기획안으로 나오다니. 한국인인 나와 같이 일하기 때문일까. 날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 배웅해 드리고 들어가면 거의 저녁일 것 같은데……. 정확한 시간은 제가 한번 보고 다시 말씀드려도 될까요?”
[당연히 작가님 편하신 시간으로 정해 주시면 됩니다.]그렇게 우리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전에 회의를 마친다면 기분 좋은 저녁이 되리라.
자리에 돌아온 후, 다시 밀크티를 입에 가져갔다. 그런 날 보며 아버지께서는 궁금하신 듯 살짝 물어보셨다.
“왜? 혹시 무슨 일 있대?”
“아뇨. 그냥 그림 전부 판 것에 대해 축하 인사한 거였어요.”
“맞아! 그거 대단한 일이지!”
아버지는 이제 다시 떠올리셨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내게 어제의 상황까지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어제는 오픈 런에 실패한 사람이 소동까지 피울 정도였으니까.”
“……오픈 런도 아세요?”
대학교수로서 나름대로 고급진 어휘만 쓰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오픈 런이라니.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내 떨떠름한 물음에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기색을 보이셨다.
“너…… 이 녀석. 이 아빠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아빠가 그것도 모를까 봐?”
“아뇨. 그냥 신조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무슨 신조어야. 네 엄마도 한창 연예인 따라다닐 때 새벽부터 줄 서는 거 해 봤을걸? 그게 다 오픈 런인데.”
“……어머니가요?”
왜 오늘 이렇게 부모님의 새로운 면을 많이 알게 되는 느낌이지?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즐기는 본인보고 늘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어머니. 그런 그녀에게도 재미있는 과거가 있으신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연예인 따라다닌 적도 있어요?”
“그럼. 있었지.”
어머니 이야기를 해 즐거우신 듯 보였다. 아버지께서는 내 물음에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셨다.
물론 어머니도 이 시대의 사람이니 그럴 수 있었다. 연예인 좋아하는 게 뭐 흠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진짜로 궁금한 거는 따로 있었으니.
“그걸 아버지가 어찌 아세요?”
“그건…….”
괜스레 주변을 한번 두리번거리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난 웃었다.
여기는 아직 홍콩이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다니.
무슨 소리를 하시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내가 모르고 네 엄마 앨범을 버릴 뻔하다가 한 소리를 들었거든.”
“……아하.”
“그래도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물건을 꼬옥 물어보고 버리기로 했으니까. 그런 일은 이제 없지.”
어쩐지. 매번 대청소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에게 뭘 그렇게 물어보시나 했는데. 여기에 그런 속사정이 숨어 있을 줄이야.
“가수 이동영 알아? 네 엄마가 한때 엄청 팬이었는데.”
“잘 모르겠는데요.”
미술가 이름이야 줄줄이 외울 수 있는 나였다. 하지만 최근 잘 나오지도 않는 과거의 연예인 이름이라니.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잠시만요.”
궁금할 때는 바로 찾아볼 수 있다는 점. 이 시대의 최고 장점 아니겠는가. 난 검색을 통해 그 사람이 누군지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빠가 한때 3초 이동영 소리도 들었거든.”
“…….”
“……윤성아, 그 눈은 뭔지 물어보고 싶은데.”
“아뇨, 그냥 아버지의 음료가 맛있어 보여서요.”
객관적으로 아버지의 외모가 깔끔한 건 맞았다. 하지만 내가 검색한 사진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난 엄연히 미술을 하는 입장 아닌가. 이런 심미안에 대한 물음에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를 솔직하게 입밖에 내는 불효를 저지르는 것도 원하는 바는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밀크티를 마시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 * *
뜻밖의 다과 시간으로 부모님의 정보를 얻은 난 얌전히 공항에서 기다렸다.
원래 대로면 내가 알아서 숙소에 갈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바뀌었기에.
우우웅―
“여보세요.”
손안에서 떨리는 진동에 난 스마트폰을 눌렀다. 그 뒤에 내가 현재 있는 위치를 말해 주었다.
“네, 거기 맞습니다. 아뇨, 들어오실 필요 없으세요. 제가 갈게요. 그래야 차를 빨리 타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문을 나가 들어오는 차량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시간을 잘 맞췄다. 나오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차를 탈 수 있었으니까.
“작가님, 안녕하세요.”
필립은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을 위해 나와 마찬가지로 여기 출장을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는 공항에 있는 날 위해 직접 차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와 함께 온 것처럼 택시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난, 이 덕분에 공항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급하게 요청을 드렸는데, 이렇게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또 하시네요.”
필립은 능숙하게 공항을 빠져나가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은 잘 보내 드리셨습니까?”
계속해서 날 걱정하시던 아버지. 대학생이자 화가인 나와 달리 엄연히 소속된 직장이 있으셨다.
그나마 그 직장이 대학교였고, 직업이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기에 여기까지 시간을 빼서 오시는 것도 가능하셨다.
더 이상 지체하면 그쪽에도 폐가 될 수 있으니, 시간에 맞춰 얼른 보내 드렸다.
“잘 가셨죠. 조만간 한국 도착하면 연락 오실 겁니다.”
홍콩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비행시간도 짧았으니, 금방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리라.
“저희는 얼른 가서 회의부터 하실 거죠?”
“예, 안 그래도 작가님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다들 관심이 많습니다. 동양식에도 잘 맞아서 반응도 좋을 것 같으니까요.”
여긴 홍콩이었다. 오랜 기간 영국의 땅이었다가 중국으로 편입된, 동양과 서양의 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땅이었다.
그렇기에 동서양의 조화를 잘만 활용한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더 반응 좋고 흥미를 끄는 작가와의 대담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