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을 넘어
금융 도시 홍콩. 부동산이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이지만, 그만큼 부자도 많았다. 정확하게는 투자 물품을 찾는 부자도 많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아트 바젤 홍콩에 온 저우동과 지앙후아는 그런 부부 중 하나였다. 이들은 맞벌이 부부로 양쪽 다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쓰는 이들. 그랬기에 이번 아트 바젤 홍콩에 온 것도 큰맘 먹고 온 것이었다.
입구에 도착한 저우동은 지앙후아에게 팸플릿을 넘겨주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제 이런 것도 좀 보러 다니고 해야 하는 거야.”
“이런 거라…….”
“그림이나 회화 같은 미술 작품들은 자꾸 봐야 보는 눈도 생긴단 말이야.”
이런 말을 하며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부부. 그들은 예상보다 많은 인파를 보며 놀라는 중이었다.
황금과도 같은 주말에 아트 페어에 찾아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림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그들 부부의 생각보다 다양한 모양이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
“그러게. 입구부터 장난 아닌데?”
“홍콩에 있는 외국인은 다 여기 온 거 아니야? 무슨 외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누가 봐도 외국인인 사람들이었다.
홍콩이 아무리 국제도시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다양한 외국인을 평소에 보긴 어려웠다.
심지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문장들도 다 달랐다. 영어부터 시작해 어느 나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단어까지.
그들의 주변에는 안내지를 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찾아보니, 근방의 숙소가 빈 데가 없대.”
“설마…… 이거 때문에?”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거고.”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고.
이제 겨우 여유가 생겨서 그림을 보기 위해 온 지앙후이. 그녀와 달리 다른 이들은 진즉부터 미술에 흥미가 깊은 듯 보였다.
“근데 이렇게 큰 국제 행사에서 파는 그림은 비싸지 않아?”
여긴 국제적인 아트 페어 중 하나였다. 전 세계에서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갤러리가 다 참가하지 않는가.
‘어지간한 갤러리는 여기 못 들어와서 위성 아트 페어에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오죽 인기가 많으면, 메인도 아니고 위성 아트 페어까지 생길 정도겠는가.
금융계에서 조사하며 그 누구보다 자료 조사는 철저했던 그녀. 당연히 이번 아트 페어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공부를 마친 상태였으니.
그런 그녀가 알기론 어지간해서는 여기에 그림을 두지도 못했다.
자격 있는 갤러리들만이 전시할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 갤러리들도 심혈을 기울여서 여기 나올 그림을 선정할 게 뻔했다.
“무슨 기사에서 봤는데. 막 몇억에서 몇십억 하던데. 맞아?”
“그럴 거야. 나도 그렇게 봤거든.”
그녀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여기에는 그 정도 가격대의 그림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건 아니었다. 그림의 크기가 작거나, 상대적으로 신인인 작가들 작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비싼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 잘만 고르면 우리가 살 수 있는 정도도 있다는 말씀!”
“아, 그래?”
“응, 게다가 못 사더라도 이렇게 보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아.”
그런 대화를 하며 그들은 아트 바젤 홍콩에 입장했다.
구불구불하게 세워져 있는 가벽들. 그곳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자기야, 이거 어때?”
“예쁘긴 한데…….”
“아직 안 팔린 그림 같은데. 가격도 물어볼 겸 우리 설명 한번 들어 볼까?”
그들의 요청에 정장을 입은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어떤 화가의 어느 시대의 작품이며 얼마나 하는지까지.
역시 그림은 그냥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더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나 제일 마지막에 들은 숫자였으니.
‘이게 그렇게나 비싸다고?’
그녀의 생각보다 그림이 비싸게 느껴졌다. 예쁘긴 한데, 과연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기에.
“……설명 감사합니다.”
직원에게 인사를 한 그녀는 남편의 옷자락을 잡았다. 다른 곳으로 가자는 무언의 제스처였다.
남편 또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 살짝 감사를 표한 뒤 순순히 그녀의 손에 이끌려 따라왔다.
물론 여기 온 것에 대해서 이런 말도 하면서.
“매번 주식 차트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보다 가끔 이렇게 나와 주는 것도 좋지 않아?”
“그건 확실히 좋지. 오랜만에 나들이도 하는 기분이고.”
“그렇지?”
“그런데…… 그림이 확실히 비싼 느낌인데.”
“뭐, 정 살 게 없으면 안 사도 되니까.”
작게 소곤거리며 한참을 돌아다닌 그들. 그런 부부의 눈에 들어온 한 작품이 있었으니.
“오……. 여보, 나 이거 마음에 들어.”
“자기 보는 눈 좋다……. 진짜 색감이나 화려함이 예쁘네.”
해당 그림은 엄청나게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있었다. 크기도 작은 것이 그 색깔 때문일까. 눈에 확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작품명을 살펴보았다. 멋들어진 말들이 잔뜩 붙어 있는 다른 그림들과 달랐다. 이 작품은 한자로 딱 두 글자만 적혀 있었기에.
[화화(火花)―불로 만들어진 꽃]이건 불꽃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섬세한 선들을 수없이 많이 그려서 불꽃을 형상화한 그림이었으니.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세밀한 색 표현에 있었다.
사실 그녀가 익히 아는 색깔은 붉은 불꽃이었다. 그게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그림에는 다양한 색이 공존했다. 붉은색부터 시작해 주황, 노랑, 초록에 파랑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색도 섞인 것이 보였다.
그 다채롭고 화려한 색은 한 작품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분명 멈춰져 있는 그림임에도 실제로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까지 줄 정도였다.
“신기하다……. 이거 그림 맞지?”
“그러게. 무슨 홀로그램 같네.”
종이 위에 그려지는 2D가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색을 얼마나 잘 사용하면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든다는 말인가. 가느다란 선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과연. 그림은 역시나 아무나 그리는 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계속 보게 만드는 작품이네.’
그림 자체는 선만 가득했다. 그 선들이 이리저리 이지러지고 모여서 불꽃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기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전에 유행하던 ‘불멍’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거 집에 하나 있으면 눈에 확 들어겠다.”
“그러게. 근데 아쉽게도 이미 팔린 모양이야.”
작품명 옆에 작게 붙어 있는 붉은 스티커. 그건 이 그림이 이미 다른 주인을 찾았음을 알려 주었다.
원래 이미 팔린 그림에 대해선 잘 물어보지 않았던 그녀. 하지만 이건 좀 궁금했다.
여기 들어와서 조각이나 물체가 아닌 그림이 이 정도로 신기한 기분이 들게 만든 건 처음이었기에.
‘이렇게 확 들어오는 작품은 얼마려나.’
심지어 이 작품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A4 정도의 크기였기에. 그림은 보통 그 크기가 클수록 비쌌다.
이 정도의 크기면 그렇게 커다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림 자체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작은 그림에 뭔가가 잔뜩 응축된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림의 가격이 더 궁금해졌다.
“저기요.”
“예.”
그녀의 부름에 근처에 있던 직원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단정한 복장을 한 직원을 보며 그녀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 작품에 대해 좀 궁금한데요. 물론 가격도 포함해서요.”
그 순간 그들은 묘한 눈초리를 받았다. 이미 팔린 그림에 대해 가격이 왜 궁금하냐는 눈빛 같았다.
그러나 이는 잠깐이었다. 정장을 입은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기에.
“이 작품의 경우 윤성 신 작가님께서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불꽃을 모티브로 해 그린 작품입니다.”
윤성 신. 잘 들어 보지 못한 작가였다. 다빈치, 피카소 등등 그녀는 유명한 작가들은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 화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유명세 말고도 이름으로 알 수 있는 점도 있었으니. 화가의 국적이었다.
‘작가가 동양인인 모양이네.’
서양의 유명 작가에 비해 동양의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그림 가격이 쌌다. 어쩌면 정말로 그녀의 예상보다 저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원의 말 마지막 부분에 들린 숫자의 나열. 그건 그녀의 예측치를 한참이나 웃돌았다.
“이번에 라고시안에서 해당 작품을 150만 달러에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온라인 뷰잉에서 가장 먼저 팔린 작품이었죠.”
“……네?”
“이 작품은 온라인 뷰잉에서 가장 먼저 판매된 작품입니다.”
“아니…… 그 전에요. 가격이요. 얼마라고요?”
“150만 달러입니다. 역시 놀라셨군요.”
그녀는 상대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금세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게 아닌가.
“다들 생각보다 저렴하게 내놓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죠.”
“…….”
150만 달러라니. 어지간한 슈퍼 카 가격이었다. 그런데 그게 저렴해서 다들 깜짝 놀라는 가격이란다.
‘어쩐지 그림이 좋더라니. 엄청 유명한 작가였나 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괜히 아는 척을 하지 않기를 잘했다.
동시에 이것도 깨달았다. 사람의 보는 눈은 역시나 비슷했다. 그녀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작품은 이미 진즉부터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띈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런 무지막지한 가격이 붙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A4 한장 크기가 홍콩 달러로 150만이란다.
“자기야. 150만 달러래…….”
“근데 불꽃이 진짜 예쁘긴 하다. 색 좀 봐.”
“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색을 잘 쓰지? 이런 건 따라 그리려고 해도 힘들겠다.”
남편에게 그렇게 답하며 그녀는 다시 작품을 바라보았다. 다시 보아도 느낌이 묘했다. 작은 그림 안에 이렇게나 시선을 잡아 두다니.
그녀가 멍하니 그림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옆에서 남편은 더 신기한 걸 본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우,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는데?”
“엉?”
“여기.”
그가 가리키는 곳은 그녀가 보던 불꽃 그림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윌슨 회장? 맞지?”
“맞아. 와……. 눈빛 봐.”
그림의 주인공은 미국 최대 기업의 회장님이었다.
‘아니, 이제는 전대 회장인가.’
얼마 전 승계를 했으니 현 회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금융계에 종사하는 그들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그가 미국의 유통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대했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다만 그 작품이 눈에 들어온 건 그들이 윌슨 회장을 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거도 장난 아니다. 뭔 그림에서 위엄이 흐르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이상하게 당당하고 강렬한 기분인데.”
붓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표현한 게 보였다. 그냥 보기에도 수천 번은 거뜬하게 그려 낸 게 분명했다. 그 덕분일까. 이상할 정도로 화폭 전체에 긴장감이 흘렀다.
분명 그들이 이미 사진을 통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낯선 기분까지 느끼게 만들었으니. 윌슨 회장이 이런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이거…… 아무래도 의심스러운데.”
“의심이라니? 뭘?”
“이 작품. 어쩐지 윌슨 회장이 그려 달라고 했을 것 같지 않아?”
“뭐?”
“아니, 아무리 봐도 이건 단순히 사진만 보고 그런게 아닌 것 같아서. 직접 사람을 보지 않고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온다는 게 말이나 되나?”
“…….”
“화가가 직접 관찰하지 않고 이렇게나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 리가…… 뭐야? 왜 대답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말한 남편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본인의 말에 반응을 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새가 없었다. 눈앞에 엄청난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었으니.
“와…….”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을 넘어 압도하는 작품. 그게 바로 코앞에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