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이 사람 우리가 찾자
클리프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익숙한 기업명이었다.
미국에서 콘텐츠 쪽으론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곳.
그러나 내게는 공모전으로 더 익숙한 곳이었다.
“다즈니라니? 갑자기 그건 왜?”
내 질문에 그는 뚫어져라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표정에서 숨기는 것이 있다면 낱낱이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걸 보니 구독 안 하는 모양인데.”
“난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하는 거 많지 않아. 특히나 요즘은 더 바빴거든.”
이제는 익숙해진 스트리밍 서비스. 물건을 온전히 구매하는 게 아니라 그걸 일정 기간 감상할 권리만 파는 제도.
이 시대의 특이한 다른 제도와 달리 이 형태는 내게 익숙했다.
그림의 전시회가 이런 방식이었으니까.
그림을 구매하지 못해도 일정 비용만 주면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대. 그게 이 시대의 장점 아니겠는가.
‘아트 바젤 홍콩 준비하느라 충분히 바빴으니, 구독도 안 한 지 오래되었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다양한 영상을 보는 건 분명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건 휴식기에 해야 할 일이었다.
지난 학기부터 한창 바빴던 난, 다른 것보다 훨씬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표정을 통해 뭘 읽은 모양인지, 클리프는 혀를 찼다. 명백히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흐음. 구독을 안 한다니 모르겠네. 그럼 아닐 수도 있는 건데…….”
“뭐가 아닌데?”
갑자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클리프. 그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단 이거부터 말해야겠네. 사실 요즘 다즈니가 아주 뜨거운 게 하나 있거든.”
“뜨거운 거?”
“그게 뭔지 궁금하지?”
“……뭔진 몰라도 너 순순히 말해 줄 생각은 없나 본데.”
“정답! 늦게 학교에 온 만큼 빨리 적응하라고 주는 힌트니까. 한 번 찾아봐.”
그러면서 내게 기회를 준다는 듯 스마트 폰을 흔들어 댔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자연스럽게 드는 호기심. 그에 난 폰을 들어 검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검색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일까. 난 딱히 이상한 걸 찾을 수 없었다.
‘다즈니로 검색해도 특이한 건 없는데.’
기사는 꽤 보였다. 주가가 얼마 올랐다느니, 가입자 수가 얼마라느니 등등. 그러나 그뿐. 클리프가 말하는 정보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후……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다시 태어나도 모르는 건 수도 없이 많았다. 뭐 이 정도 무지쯤이야.
“잘 모르겠는데.”
“크크. 너도 궁금하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안 궁금하면 그게 사람이냐.”
어이없다는 내 어조에 그는 씩 미소를 지었다.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그 특유의 우월감. 클리프는 그 뚜렷한 감정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네 라이벌이 생겼다고 했지? 짜잔!”
다즈니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정보. 그걸 1분기라는 말 하나를 덧붙이자 보이는 게 있었다.
“이 영상은…….”
“이거 우리 에일대 선배들이 만든 거래.”
알고 있었다. 클리프가 보여 준 영상은 이미 내가 아는 거였으니까.
심지어 영상의 재생 전 보여 주는 화면은 알다 못해 익숙한 장면이었다. 만든 장본인이 나였기에.
“……이 영상이 화제였어?”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은 했다. 아직 영상 쪽에 보는 눈이 없어서 확신하지 못했을 뿐. 적절한 미학과 흥미도가 잘 결합된 작품은 꽤 훌륭했으니.
역시나 사람의 눈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잘 만들어졌다고 느낀 걸 다른 사람들도 화제로 삼는 걸 보면.
“이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질문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팽팽 돌아갔다. 요즘 시대는 다양한 혜택이 많은 만큼 각종 규제도 많았다.
저작권을 포함해 각종 법적 문제들. 만약 만천하에 공개되어있는 이 작품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참으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긴장한 나와 달리 클리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날 보며 혀를 차는 게 아닌가.
“쯧쯧. 윤성. 너…… 내 말을 반만 들었구나. 이게 네 라이벌이라니까?”
“라이벌?”
일명 대적자. 라이벌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고 있었다. 덕분에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품이 어떻게 내 대적자가 된다는 건가.
“이게 무슨 라이벌이야?”
“이 영상, 에일대 선배님들이 만들었다고 말했지? 즉,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우리 학교 재학생이란 소리거든.”
당연한 소리였다. 이건 내가 선배들과 함께 만든 것이었다.
“영상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섬네일 퀄리티 봐. 어지간한 사람은 따라 하라고 등 떠밀어도 못할걸?”
그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섬네일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간단하게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난 내 장기를 최대한 활용했다. 직접 붓을 쥐고 하나하나 내 속에 들어 있는 작품을 표현했다.
일명 작품깎이. 그걸 난 공모전 섬네일 작품에서도 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그림에 감탄을 하거나, 궁금해서라도 눌러 볼 수 있도록.
“여기 제작자 이름들이 다 있어서 누가 누군지 다 아는데…… 딱 하나만 아직 정체를 몰라.”
그가 스마트 폰 위에 손가락을 톡 대었다. 그러면서 한 이름을 가리켰다.
“한국인지, 중국인지, 아님 일본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명백히 동양인 이름이잖아?”
그가 가리킨 이름. 혜원. 그건 내가 이 시대에 내 새롭게 지은 나의 ‘호’였다. 물론 시대에 맞는 단어로는 필명이 되겠지만.
“썸네일러 혜원. 정체를 모른다는 미스터리함이 더해지면 네 아성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라이벌이 그런 의미였다니.
어디 모자란 걸 보는 듯한 내 눈초리 때문일까. 클리프의 설명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봐봐. 너도 에일대 다니고, 이 사람도 에일대 재학생이래. 심지어 우리 학교에서 꽤 드문 동양인이지.”
미국의 명문인 에일대에는 생각보다 동양인이 많지 않았다. 당연히 혜원이라는 이름의 주인이 될만한 아이도 많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 난 혜원을 영어로 썼어. 딱히 한자를 드러내지도 않았고.’
새로운 호는 지금의 내 윤성이란 이름과 분리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기본적인 걸 잊지 않는 나. 당연히 알파벳으로만 이름을 써서 냈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도 혜원이란 걸 쓸 수 있는걸. 교포도 있고.’
잘만하면 시치미를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이 그렇다고 다 동양인이라는 건…….”
하지만 난 금세 다시 말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클리프의 말에 뭐라 반박하려는 사이. 그는 본인의 말에 심취한 듯 연속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중이었기에.
“원래 정체를 모르면 더 알고 싶어지는 법이지. 사람들이 괜히 복면 가수에게 열광하는 게 아니야.”
“…….”
“죄다 알려져 있는 너보다 이렇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 더 신선한 게 현실이지.”
결국 난 뭐라 하지 않고 가만히 클리프의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내가 반박 없이 침묵을 지키자 그는 더 신이 난 듯이 보였다.
아마도 내가 그의 뜻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너 말이야. 얼른 학교에 적응하고 이 사람 정체 우리가 찾자.”
“……엉?”
대체 대화의 맥락이 왜 이따위로 튄다는 말인가. 요즘 애들의 정신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원래 이거 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거든? 근데 넌 윤성이잖아. 혜원이 아니라.”
“…….”
“지금껏 죄다 본명으로 낸 네가 갑자기 공모전만 가명으로 낸다는 것도 이상하니까. 일단 넌 제외.”
“…….”
굉장히 찔렸다. 바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장본인이 나였으니까.
“근데 생각해 보니, 너 정도면 그림 보는 눈도 탁월하잖아! 작품 잘 보면 누가 그렸는지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어?”
내가 학교에 오지 않은 몇 주 사이. 그는 뭐 이상한 거라도 본 듯 눈을 빛내며 흥분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를 때 먼저 찾아내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겠냐?”
결국 난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클리프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를.
“너…… 내 눈을 빌려달라는 거구나.”
“오오.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맞아. 다들 궁금해한다고. 어때? 같이 해 볼래?”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클리프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요즘 추리물을 봤는데, 거기서 이렇게 친구끼리 의기투합한 게 가장 추리 능력이 탁월하더라고!”
역시나 정말로 뭔 이상한 거라도 본 모양이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난 수업이나 간다.”
“어? 야. 이거 진짜 진지한 거야. 학교 애들이 다들 궁금해한다니까? 잠깐만. 기다려! 같이 가!”
* * *
남들은 다 퇴근했을 저녁 시간. 한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불이 켜진 상태였다.
쾅-
그곳에 있던 한 남자. 그는 손으로 책상을 치며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 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이게 끝날 문제인가?”
그 앞에 있는 젊은 남자는 작게 사죄의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상대의 분노는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본인의 컴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최근 다즈니의 주가를 올리는 데 꽤 공헌을 한 한 작품이 들어 있었으니.
“이대로면 이 듣도 보도 못한 데의 작품에게 대상을 줘야 하게 생겼는데!”
“듣도 보도 못한 곳이라기엔 에일대는 충분한 명문대라…….”
“지금 내 말에 말대꾸를 하는 건가?”
“…….”
그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그의 상사는 자신의 말에 말대답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건방지다고 듣기 싫어했으니까.
“영상 쪽으로 명문인 데가 어디 한둘인가? 그중에 에일이 들어가긴 하고?”
“에일의 미대는…….”
“됐고.”
“어찌하면 좋을지나 말해 보게.”
“…….”
“왜 갑자기 머저리 흉내를 내는 거지?”
대답하면 건방지다고 뭐라 하고, 침묵하면 머저리 흉내라며 뭐라 하는 상사. 참 비위 맞추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랬기에 그는 한층 더 꼿꼿하게 선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태도 덕분일까. 방금까지 흥분해 물건을 부숴 버릴 기세가 줄어들었다.
“……좋아. 해 보도록.”
“판세가 너무 기울었습니다. 이걸 한 번 봐 주시죠.”
딸깍―
그가 컴퓨터 화면에 띄운 건 각종 수치들을 분석한 자료였다.
“조회 수, 기사 수, SNS 언급 등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죠. 그리고 이건 아마 갈수록 더할 겁니다.”
“후…….”
“이런 상황에서 원래 계획대로 하시면, 역풍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무섭거든요.”
“무섭지. 그러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최종심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입니다.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큰 소리를 내던 그의 목소리가 명백히 사그라들었다. 상대가 이성을 찾았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 또한 한층 더 안정된 음성으로 말을 전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객관적인 수치대로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객관적인 수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