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뭔가 딱 느낌이 오는 거야?
평소에 미술관을 관람하던 것처럼 행동하려는 나. 그런 날 막은 건 클리프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5층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잠깐만 윤성. 너 어디 가는 거야?”
“어디긴? 5층 가는데?”
5층부터가 주요 전시장인 휘트니 미술관. 그럼 당연히 거길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 아래는 카페나 뭐 이런 건데?’
1층부터 4층까지는 미술관이 아니었기에. 난 당연히 5층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클리프는 그런 내 대답에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쯧쯧. 얘가 휘트니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뭘 모른다는 듯이 말문을 연 클리프. 그러더니 이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날 따라오도록. 이래 보여도 뉴저지 시민으로서 휘트니에 종종 왔었으니까.”
휘트니가 있는 뉴욕 바로 옆에 붙은 지역. 그게 뉴저지였다. 그야말로 강만 건너면 보일 정도라고 했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북과 강남 정도의 거리인 느낌이었다.
“너 뉴저지에 살았어?”
“그럼! 입학하기 전까진 그랬지.”
자신만만한 어조. 그에 나와 다이애나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그를 한번 믿어 보자는 뜻을 읽었다.
그렇기에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자가 있다면 관람은 그만큼 편해지는 법이었으니.
“그래. 오늘은 너만 따라다닐게.”
“잘 생각했어. 그럼…… 이쪽으로 가자.”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클리프. 그에 난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우리 어디 가는지는 좀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어디긴, 일단 꼭대기에 올라가야지.”
“꼭대기?”
“응. 휘트니는 옥상부터 내려오면서 보는 게 제일이거든.”
손가락으로 8층을 가리키는 그. 다른 곳과 달리 위에서부터 내려오자는 그 말에 난 약간 미심쩍은 기분으로 따라갔다.
‘보통 미술관은 저층이 메인인 경우가 많은데?’
입구에서 가까울수록 많은 사람들이 오는 법. 한국에 있는 모든 미술관들이 그에 따라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깊숙이 들어가는 것보다 입구에서 가까운 쪽에 더 발걸음을 많이 하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내 심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앞에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졌기에.
‘엄청난걸…….’
클리프는 누누이 강조했다. 8층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내려오면서 관람해야 한다고.
‘이래서였네.’
본격적인 작품 관람 시작 전, 올라가 본 8층의 꼭대기. 거기서 보는 풍경은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기 충분했다.
“와…….”
난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입을 벌렸다. 뉴욕이란 대도시에 섞인 허드슨강의 풍경. 그리고 그 강 너머에서 보이는 어렴풋한 다른 도시까지.
‘저게 뉴저지인 모양이네.’
대도시와 환경이 어우러진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미술 작품도 좋지만, 이런 기가 막힌 경치를 보는 것도 좋으리라.
“날씨가 좋으니까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시야가 더 깨끗한 것 같은데?”
클리프의 말대로 오늘은 날씨까지 완벽했다. 적당한 햇볕에 화창한 하늘.
그건 지금 보는 풍경을 더 맑은 느낌으로 감상하도록 만들었기에.
“……미술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걸 보러 오겠는데?”
“후후. 처음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그런 반응이긴 하지.”
다이애나의 말대로였다. 우리뿐 아니라 이 자리에 올라온 사람들이 전부 풍경에 빠져 이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몇몇 일행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사진까지 찍어 주는 게 보였으니까.
‘인상적인 광경이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도 여기 빠져서 한참을 허우적거리겠는걸.’
탁 트인 시야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충분히 풍경을 즐긴 난 문득 여기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멋진 장면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여기 온 목적도 달성해야 했기에.
“그럼…… 여기서부터 슬슬 내려가면 되는 건가?”
우리가 올라온 곳은 8층. 이 건물의 꼭대기였다. 위에서부터 관람을 하는 게 좋다고 했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었으니.
“후후. 휘트니는 나만 믿어. 여기 와 본 게 몇 번인데.”
자신만만하게 말한 클리프는 먼저 앞장섰다. 그러더니 팜플랫을 쥐어 주며 입을 여는 게 아닌가.
“다이애나는 알 것 같은데. 윤성은 휘트니가 처음이니 대충은 말해 주는 게 좋겠지?”
“뭘?”
“휘트니가 어찌 생겼는지 말이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공부한 것이었다.
해당 미술관에 가기 전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고 가는 것. 그건 이번 생에 생긴 내 습관이었다.
“이미 알고 있어. 메트로폴리탄에 그림 기부하려다 거절당해서 생긴 거라며.”
이곳이 생겼다고 알려진 이유였다.
휘트니 여사란 사람이 생전에 모은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기증하려고 메트로폴리탄에 방문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새롭게 지은 미술관이 이 휘트니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거절당해서 생긴 미술관이 이렇게 컸다니. 세상일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휘트니 여사란 사람이 미국 최대 부호 가문인 벤더빌트 출신이라고 들었으니. 이런 미술관을 만들어 내는 게 가능했으리라.
내가 속으로 이 건물의 유래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클리프는 아는 자 특유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보지.”
“……뭔가 더 있다는 말이야?”
“단순히 기부하겠다는 게 아니었어. 무려 100만 달러인 돈까지 내겠다고 했었거든.”
100만 달러. 지금도 많은 돈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더 큰 돈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돈까지 거절했다는 의미였다. 메트로폴리탄이.
“그건 또 어떤 의미로 대단한데…….”
“그렇게 거절당했던 작품과 돈이 이제는 1년에 120만 명이나 찾는 미술관이 되었다는 것이 재미 포인트지.”
이제는 메트로폴리탄과 같이 뉴욕의 3대 미술관에 꼽히는 휘트니 미술관. 다른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술관에 비하면 그야말로 신생인 미술관이었다.
이 재미있는 사연은 휘트니 미술관이 남들에게 다가가는 데 더 도움을 주는 중이었다. 나부터가 휘트니 미술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
“오. 마침 기획전도 괜찮은 거 하네. 쭉 보고 내려가면 되겠다.”
‘기획전?’
휘트니의 강점 중 하나가 기획전이었다. 살아 있는 작가들을 주로 전시하겠다는 모토. 그 뜻을 따르며 주로 최근 화가들을 많이 선택해 온 휘트니였으니까.
“기획전의 화가가 누군데?”
“에드워드 하퍼.”
과연 들어 본 적이 있는 화가였다. 다만 들어 본 적이 있을 뿐, 실물로 그림을 본 적은 없는 화가였기에 내 흥미도는 높아져만 갔다.
“5층에서 하는 거야?”
“기획전이니 아무래도 그렇지.”
기존 휘트니가 보유한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게 6층에서부터 8층까지의 일이었다.
그에 반해 가장 넓은 공간인 5층은 이런 류의 기획전을 주로 하는 편이었다. 오늘 기획전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하퍼인 모양이었다.
“그럼 얼른 내려가 보자.”
제일 맛있는 부분을 마지막에 먹는 내 성격상 5층에 있는 건 나쁠 게 없었으니까.
좋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려가다 보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8층부터 차례대로 관람을 시작했다. 찬찬히 둘러보는 와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술관에 대한 감상을 말한 것은.
“……미술관이 좀 특이하네.”
솔직히 말해서 이게 내 첫 감상이었다. 그도 그럴 게 휘트니 미술관은 내가 이제껏 봐 왔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탁 트인 공간 안에 있는 그림들. 그건 대부분이 나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었다.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현대적인 색다름이 더해졌기에.
‘묘한 작품이 많네.’
그림 자체가 가진 힘이 확실히 약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주로 봐 왔던 다른 작품들이 고전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런 내 감상은 5층에 와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말았다.
‘이건…….’
늘 완성형 작품들만 주로 볼 수 있는 게 전시회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화가로서 남들에겐 최고의 작품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런 내 상식을 부정하고 있었다.
“스케치까지 가져다 두었네?”
온전하게 색이 칠해진 작품뿐만이 아니었다.
전시회에 들어가 있는 건 간단한 드로잉부터 시작해 스케치까지. 미완성으로 보이는 작품들도 많았으니까.
그 모든 걸 이렇게 볼만하게 꾸며 놓다니. 작품 자체가 가진 힘이 강한 건지, 여길 기획한 큐레이터가 능력이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휘트니가 에드워드 하퍼의 작품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그래?”
“응. 거의 3천 점 이상 들고 있을걸.”
3천 점. 한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미술관이 그 정도로 들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그림 가격이 싼 화가의 작품은 3천 점이나 모으기 어려웠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간단하게는 일단 작가가 그만큼 그릴지가 의문이었다. 3천 점의 완성형 작품이 나오려면 어지간히 많은 작품을 그려야 했기에.
그림의 가격이 비싸지 않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화가. 그런 작가가 그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많이 그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싸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모으는 건 더 어려웠다. 그런 화가의 작품은 3천 점쯤 모으려면 미술관 기둥뿌리를 뽑아야 했다. 어지간한 미술관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건 진즉부터 화가를 알아보고 모으지 않은 이상 쉽지 않은 일이지.’
한 미술관이 대작가의 작품을 여러 개 보유하는 법. 그건 그 작가의 힘을 진즉부터 알아보고 그림을 모으는 방법뿐이었다.
어느 쪽 방면으로 보든 3천 점이나 한 화가의 작품을 하나의 미술관이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둘러보던 중 내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으니.
‘이건…….’
도시의 일상적인 면을 묘사한 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내 눈길을 끈 건 그의 섬세한 표현에 있었다.
난 우선 작품명을 살폈다. 이름에는 힘이 있는 법. 작가가 직접 붙였다면 그 기이한 힘은 더 강력해지곤 했다.
영어로 적인 작품의 명은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서 번역되었다.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라…….’
밖의 어둠과 대비되는 가게 안의 불빛. 이건 이 시대의 일면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더욱이 이 그림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안에 들어가 있는 한 남자였다.
얼굴도 아니고 뒷모습만 보이는 그. 그럼에도 가장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림의 가운데가 아닌 약간 치우친 곳에 위치한 것도 분명 작가의 의도이리라.
그 의도가 잘 보이는 작품을 보며 난 나도 모르게 턱을 쓰다듬었다. 속으로는 감탄하면서.
‘흥미로운 표현 방식인데?’
주변을 그리는 풍경화와 풍속화.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 아닌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속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미국에서도 이런 화가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태어나서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닌가. 세상에는 재미있는 이런 작품들도 다 볼 수 있고 말이다.
“역시……유명 작품 앞에는 사람이 많네.”
“……이게 제일 유명 작품이야?”
멈춰선 이곳이 마침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 앞이었던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각자 흩어져서 관람을 하던 친구들까지 모이게 만든 것을 보면.
각자의 속도에 맞게 관람 중이던 우리 셋. 클리프와 다이애나는 나와 함께 그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밤샘하는 사람들. 아무래도 에드워드 하퍼의 작품 중에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지.”
“그래?”
“이 작품의 모티브가 뉴욕의 심야 식당이었으니까.”
“……진짜 풍속화였네.”
늦은 밤 시내의 식당에 있는 사람들을 대형 유리창을 통해 묘사한 모습. 이건 이 시대의 사람들의 한 특징을 잡아 그리는 풍속화였다.
“윤성 너…… 이게 유명한지 모르고 여기 서 있었단 말이야?”
“……유명할 거란 생각은 했어.”
난 슬쩍 눈을 피하며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알고는 있었다. 이 작품이 보통이 아니란 것 정도는.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두 사람에게 부정적인 확신만 더한 모양이었으니.
“몰랐다는 거네.”
“윤성이 너…… 가끔 보면 생각보다 상식은 부족하다니까?”
“크흠.”
헛기침을 하며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물론 속으로는 약간 억울해하면서.
‘에드워드 하퍼 같은 현대 미술가는 아직 공부가 약하단 말이지.’
꽤 열심히 이 시대를 배워 나갔다. 그러나 작품 활동을 하며 온전한 배움을 다 얻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으니.
하지만 친구들은 내 상식을 지적하기 위해 이 말을 꺼낸 게 아닌 모양이었다. 금세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근데 신기하다. 역시 윤성이쯤 되면 뭔가 다른 게 보이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게 보이다니?”
“봐 봐.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에드워드 하퍼의 대표작이 이건 줄 알고 여기에 서 있었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네? 너 어찌 알았냐? 뭔가 딱 느낌 같은 게 오는 거야?”
“……나 알고 있었다니까?”
“거짓부렁 치지 말고. 어차피 여긴 우리밖에 없는데 솔직해져 보라고 친구.”
어깨동무하며 속삭이는 클리프. 거기에 마찬가지로 눈을 빛내는 다이애나까지.
난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전혀 믿을 얼굴들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