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그림의 재미있는 부분
휘트니 비엔날레는 1932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진행된 이 행사를 통해 배출된 작가만 해도 4천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평균적으로 4월부터 9월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늦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났다. 그만큼 거의 그 해의 휘트니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대 미술의 중심지라는 뉴욕에서 열리는 이 비엔날레는 80회가 넘어가는 만큼, 그 나름의 명성을 지켜 왔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달이 차면 언젠가는 기운다고 했던가. 최근 현대 미술의 트렌드가 점점 유럽으로 옮겨 감에 따라 휘트니 또한 긴장 중이었으니.
수많은 비엔날레가 생겼지만, 그들 중 그 명성을 오래 유지하는 건 많지 않았다. 휘트니 비엔날레 또한 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기에.
이러다간 과거의 명성을 지키지 못하고 사라져 간 수많은 비엔날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휘트니 비엔날레의 총괄인 알비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휘트니 비엔날레는 좀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알죠. 그게 휘트니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최근의 비엔날레가 예전과 달리 상업적인 측면이 강해진 건 사실이었다. 한 번 전시만 하고 끝내던 과거와 달리, 수집가들을 따로 초대해 VIP들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비엔날레는 아트 페어보다 실험적이고 다학제적인 성격이 강했다. 트렌드를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장이란 뜻이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라고시안. 실제로 윤성 신 작가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나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로 그걸 꼽기도 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명성보다는 실험적인 면모를, 실험적인 면모보다는 의미를 중요시하는 휘트니. 그렇기에 종종 현대 미술가 중 스타를 배출해 내곤 했다.
“지난번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의 경우 일부러 층별 대비를 줬습니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잘 보여 주기 위함이었죠.”
“그러셨더군요. 5층이 어두운 일면을, 6층이 밝은 쪽을 하셨나 그랬죠?”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 그 중 극단적인 양극화를 표현한 것이 저번 휘트니 비엔날레였다.
5층은 벽과 조명으로 아예 어두컴컴하게 꾸민 것에 비해, 6층은 그야말로 화사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선정한 총괄 큐레이터의 의견이었죠.”
그로 인해 해당 비엔날레는 호평을 받았다. 각 층별로 대비를 시키는 점이 신선한 시도였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정한 주제에 딱 맞게 작품을 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최소 두 작품은 되어야 합니다만.”
한마디로 말해 우리 말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냐는 의미였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하겠다고 한 이상, 이런 당연한 걸 지키지 않을 리 없었다. 애초에 비엔날레 자체가 총괄 큐레이터가 정한 주제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라고시안 측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왜 하는 건가.
“어째 저희 작가님이 그걸 어려워할 거란 뜻으로 들립니다만…….”
“아뇨! 그건 오해이십니다! 저희의 걱정은 작가님의 자율성 부분이었습니다.”
라고시안 측이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렸기 때문일까. 알비오는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자유롭게 화가 본인의 온전한 의지로 그리는 전시회 작품과 달리, 비엔날레는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으시거든요.”
“……윤성 작가님께서 어디 출신이신지 잊으신 모양이시군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무려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셨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윤성 신 작가의 화려한 스타트를 끊은 상 아닌가. 그걸 모를 리 없는 알비오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전에 생긴 일이었기에.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작가님은 다르시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이름값부터 차원이 달랐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윤성 신 작가가 나올 때는 이 미국 땅에서 그 작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업계 사람은 물론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이 명백하게 알려져 있는 화가가 아닌가.
사람이란 존재는 본인의 위치가 달라지면, 그에 따른 행동도 달라지는 법. 다년간의 사회 경험으로 알비오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신 작가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협조하는 대신 본인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어찌 될 것 같은가.
결과는 끔찍할 게 분명했다. 그 정도의 작가가 제멋대로 구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으니까.
‘윤성 신 작가가 온다고 해도…… 다른 작품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안 받느니만 못한 게 사실이잖아.’
이미 휘트니 내부에선 그렇게 의견이 모이고 있었다.
사실 윤성 작가 자체는 휘트니의 취지에 잘 맞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미국식 비엔날레. 그게 휘트니의 매력이었으니까.
한국 국적임에도 마침 이번에 영주권도 얻었다고 하니, 여기에 꽤 부합하는 작가였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협조성. 그거 하나였을 뿐. 다른 조건은 차고 넘쳤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저희 작가님께서는 그 능력이 출중하십니다.”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만…….”
그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윤성 작가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는가. 그가 말한 걸 전혀 이해한 것 같지 않은 상대방에 알비오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에 대해 뭐라고 더 이야기하려던 그때, 라고시안의 대답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이보다 더 조화가 어렵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그것도 국가관도 대성공하신 작가님이시죠. 하물며 그때보다 실력은 더 발전하는 중이시고요.”
“…….”
“그때 작가님의 나이 고작 7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에일대를 다니고 계시죠. 누구보다 작가님께서 휘트니에 맞게 하실 거라고 저흰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뭐. 정 못 미더우시다면, 남들보다 먼저 작품을 보여 드리죠.”
사뭇 당당하게 입을 여는 라고시안 측. 하지만 그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그게 가능합니까?”
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이 비엔날레를 열 때 가장 고생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마감이었다.
비엔날레는 다른 수십의 작가들이 더불어 개최하는 만큼 미리부터 작품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가들 대다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작품을 손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미리부터 완성된 작품을 제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오죽하면 그런 작가들이 큐레이터들 사이에서는 유니콘이라고 불릴 정도겠는가.
그런데 라고시안의 전속 화가인 신 작가는 그게 가능하다는 말이었으니. 이건 그 작가의 역량이 보통은 훌쩍 넘는다는 걸 다시 한번 알려 주고 있었다.
“가능합니다. 이 부분은 작가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거든요.”
“작가님께서…….”
심지어 작가 본인이 먼저 이 점에 대해 언급했다는 소리였다.
‘이제 겨우 20살 정도 된 작가가 그럴 수가 있다고?’
이건 실력이 좋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재능이야 어린 인간에게도 충분히 발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미리 하는 것. 그건 미술에 재능이 있는 천재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많이 하고, 경험이 풍부할수록 저절로 늘어나는 부분이었으니까.
“예. 마치 여러분의 걱정을 미리 아신 것처럼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크음. 커험.”
알비오는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이러다간 사례가 걸릴 것 같았기에, 결국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실 수밖에 없었다.
민망한 기색이 역력한 알비오를 아랑곳하지 않은 라고시안 측. 그들은 알비오가 물을 마시거나 말거나 담담하게 본인들의 의견만 제시할 뿐이었다.
“단,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지요.”
“……조건이라면 어떤?”
착각일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알비오의 질문에 상대방의 눈빛이 번쩍 빛난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안광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들보다 빨리 내는 것에 관해, 휘트니 측에서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이 뭐가 있겠습니까?”
“…….”
작품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것. 휘트니 측에서 그런 화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에 알비오의 입은 자연스럽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비용이군요.”
“역시 말이 잘 통하시는군요.”
씩 웃는 상대방을 보며 알비오는 직감했다.
오늘 상대방이 제시하는 조건들을 전부 들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 다음에야 비로소 이 회의장을 나가게 되리란 불길한 예감이었다.
* * *
교환 학생에 대해 관심을 가진 난 교수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객관적인 자료 수집도 좋지만, 주관적인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내겐 마침 이에 대해 잘 물어볼 수 있는 분이 존재했다. 입학할 때부터 나와 인연이 있으셨던 리처드 교수님. 그분은 미대의 전공 교수님들 중 한 분인 만큼 흔쾌히 내 상담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에 따라 당연히 난 교수님의 연구실로 갈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근처의 카페 정도가 다음 만남의 장소 후보지였다.
하지만 리처드 교수님께서 만나자고 한 장소는 좀 뜻밖인 곳이었다.
에일대학교 내에 위치한 전시관. 그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으니까.
“안녕하세요. 교수님.”
여기가 미국이기에 이 정도의 과한 예의는 필요 없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래 보여도 동방예의지국의 사람이 아닌가. 그렇기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한 인사를 전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시던 교수님. 이제는 익숙해지신 듯 가볍게 웃으셨다.
우린 같이 전시장을 돌기로 했다. 입구에 나란히 선 날 향해 리처드 교수님께서는 먼저 물어보셨다.
“혹시 여기에 종종 오나?”
“원래 입학하려면 많이 와 보려고 했는데…….”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진 기분이었다. 원래 내가 에일대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미술관의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입학을 한 나는 이곳에 자주 오지 못했다. 작품 활동을 하고, 다른 곳을 돌아다니느라 바빴으니까. 아예 미국에 없었으니, 여기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가능했던 학기 중의 경우 수업과 과제, 그리고 그림을 그리느라 마찬가지로 올 시간을 내지 못했다.
이런 내 민망함을 알아차리신 듯, 교수님께서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셨다.
“후후, 쉽지 않지?”
“좀 그러네요. 왜 그렇게 시간이 안 났는지,”
“그럼 내가 여길 와 보자고 하길 잘한 것 같구만.”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여기 오는 건 한참 뒤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랬기에 난 교수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덕분에 저도 1년 만에 다시 이 전시를 살펴보네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에일대학교 미술관.
최초로 생긴 대학 내 미술관인 만큼 고대 미술부터 르네상스, 인상주의까지 다양한 작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말없이 그림을 감상하던 나와 교수님. 그중 먼저 입을 여신 건 리처드 교수님 쪽이셨다.
“이 그림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들어 볼 텐가?”
교수님께서는 존 트럼블의 이란 작품 앞에 멈춰 있으신 상태셨다. 유채 물감을 이용해 그린 유화로 미국의 독립선언 당시를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요?”
“그래. 먼저 이 두 사람에 대해 알려 줘야 하겠구만.”
내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그림의 중앙에 서 있는 두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그들이 누구인지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으니.
“오른쪽이 토마스 제퍼슨이고 왼쪽이 존 애덤스라네. 이 그림의 재미있는 부분은 이 두 사람과 관련이 있지.”
둘 다 심히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미국인이 아님에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이상 한번쯤은 들어 본 이름이었기에.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일까. 난 그림을 살펴보던 눈을 자연스럽게 교수님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