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누가 최후의 미소를 지을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 반응에 필립은 한 가지 정보를 더해 주었다.
[정확한 건 아니고 저희도 들은 소식입니디만…… 프리즈 때문에 그렇다더라고요.]저렇게 말해도 난 이 이야기가 꽤나 신빙성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가 말한 한 단어를 주목했다.
“……프리즈요? 그거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 아니었어요?”
아트 바젤의 본고장이 스위스라면 프리즈의 시작점은 영국이었다.
생긴 지는 아트 바젤과 비교하면 신생이라고 할 정도로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아트 페어인 프리즈.
하지만 영국, 뉴욕 등 곳곳에서 아트 페어를 열며 이미 그 위상은 저 하늘 꼭대기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말씀하신 그 아트 페어 중 하나 맞습니다. 이제는 3대라고 하기 어려운 2대 아트 페어 중 하나죠.]“아 2대…….”
[예. 프랑스의 피악이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3대 아트 페어라고 불리는 곳은 스위스의 아트 바젤, 영국의 프리즈, 그리고 프랑스의 피악이었다.
셋 다 세계에서 유명한 갤러리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아트 페어이자, 몇몇 작가들의 꿈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중 프랑스에서 시작된 피악은 이제 거의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년 피악이 열리기로 유명한 장소를 아트 바젤에 뺏긴 것부터 시작이었다. 야금야금 아트 바젤에게 먹히던 피악. 이제는 그 빈자리를 아트 바젤이 완전히 대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유구한 전통의 아트 바젤 스위스와 찬란한 샛별인 프리즈만 남았다고.
그 역사가 길수록, 그리고 더 좋은 작품을 가진 갤러리와 우수한 화가가 참가할수록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 아트 페어였다.
그 결과 아트 바젤 스위스는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그 뒤를 프리즈가 바짝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아트 바젤이 세계 최고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프리즈도 나쁘지 않거든요.]‘……내가 알기론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닌데.’
라고시안 정도쯤 되니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프리즈도 어지간한 한국의 갤러리들은 참여조차 하기 어려운 아트 페어였으니까.
[이 둘의 격차가 생각보다 좁혀지고 있다 보니, 까닥 잘못하면 뒤집힐 수도 있거든요.]“그렇다고 하기엔 아트 바젤 스위스가 훨씬 대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요.”
[그 대단하다는 피악도 망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절대적인 건 없다는 거죠.]필립의 말에 따르면 이걸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아트 바젤 측과 프리즈란 뜻이었다.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러니 더더욱 위기감이 심하죠. 하물며 작가님은 한국인이시니까요.]“한국인이란게 무슨…….”
[최근 프리즈가 서울에서 매출이 심상치 않거든요. 그런 만큼 당연히 작가님에게도 관심을 보일 수밖에요.]이전부터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아트 페어를 개최하기 시작한 프리즈.
처음만 해도 아시아 시장의 허브라고 불리는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 홍콩’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세월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한참은 뒤떨어질 것이라 여긴 홍콩의 아성을 위협하는 걸 넘어 이제는 능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으니.
[사실 프리즈 측에서 작가님의 한국 내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 이건 확실합니다. 이미 그 낌새라고 할까…… 저희에게 문의가 왔거든요.]이 말을 들은 난 어이가 없었다. 다들 참으로 발 빠르게 움직인다 싶었으니까.
“네? 아니 대체 언제요?”
[프리즈 뉴욕과 관련해서 업무 협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에서 물어보더라고요. 혹시 작가님 한국 오실 예정 있냐고. 혹은 언제쯤 돌아오는지…… 뭐 그런 질문이요.]미국의 마이애미에서 개최하는 아트 바젤과 달리 프리즈는 뉴욕에서 아트 페어를 진행했다.
프리즈 서울이 생기기 전, 프리즈 뉴욕은 영국 다음으로 크게 프리즈에서 하는 행사였으니까.
그런만큼 라고시안과 업무 협의를 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기이한 건 그 와중에 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었다.
“……저에 대해서 물어봤다고요?”
[예. 정확하게 작가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닌 척하면서 지나가듯이 물어봤지만…… 다 티가 났죠.]말투에서부터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 때문일까. 필립의 설명이 조금 더 친절해졌다.
[작가님께서 스위스 측에 참가를 안 하시는데,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면 그들 입장에선 지나가다 대박을 맞은 거니까요.]이건 분명 내가 한국인이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스위스 바젤에 가긴 어렵지만, 대한민국의 서울은 쉽게 머무를 수 있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스위스에 있어야 하는 아트 바젤 측에서 거기 나가지도 않는 날 만나러 오겠다고 하는 이유를.
“……제가 프리즈 측을 만날까 봐 선수 치러 온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바로 그래서 올 거라고 저희도 보고 있습니다.]“허 참.”
그리고 이런 필립의 예상은 좀 다른 쪽으로 충족되었다.
* * *
휘트니 미술관은 매주 화요일 정기적인 휴무였다. 관람객들은 그날 아무도 휘트니 미술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관람객만 들어가지 못할 뿐, 미술관 관계자들이야 휴무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인원은 생각보다 많았다. 휘트니 미술관이 거대한 만큼 관계자들은 그만큼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관계자들이 휴무일인 화요일에 미술관을 들락거리다 보면, 이런 일도 발생하는 법이었으니.
“어?”
“뭐야?”
휘트니 미술관에서 일하는 직원은 아니지만, 명백히 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 이 두 사람은 미술관 한복판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당신 왜 여기 있어?…… 요?”
어설프게 예의를 갖춘 말투를 구사하는 장본인. 그는 남들에게 리바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평소 말투대로 툭툭 내뱉으려던 리바이. 그는 곧 상대방이 그보다 약간 더 이 업계의 선배임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어쩐 일로 여기 계신지 모르겠네요.”
그에 반해 리바이의 상대는 정중하고 매끄러운 문장을 사용했다. 칼슨은 원래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기로 유명했는데, 딱 그다운 어투였다.
다만 지금 뭐 때문인지 약간 심기가 상한 듯했다. 평소 같지 않게 정중한 말투 속에 칼날이 들어 있었으니까.
“나야 내 그림이 놓일 자리 보러 온 건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순수 미술이란 업계에서 일하는 두 사람. 한쪽은 아버지가, 다른 쪽은 스승이 유명했던 만큼 둘의 신세는 꽤나 유사했다.
그렇기에 이 둘은 조금만 성향이 비슷했다면, 쉽게 친해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은 결국 이들이 어울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물며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이 두 사람은 각자의 화풍까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칼슨이 그 성격답지 않게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면, 리바이는 현대 미술에서 가장 유행 중인 형식. 바로 추상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였으니까.
성격부터 시작해 화풍까지 완전히 다른 그들이었기에, 같은 업계에 있으면서도 그다지 친분이 없었다. 서로의 존재만 알 뿐.
그 덕분에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반응을 살펴보게 되었다.
물론 속으로는 은근히 상대방을 만난 것에 대해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휘트니 미술관이 매주 화요일마다 휴관인데…… 왜 하필 오늘로 겹친 거야?’
‘오늘 휘트니 오는 길에 설탕이라도 뿌려 놓았나…… 여기서 이렇게 마주치다니. 쩝.’
속으로는 상대방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 두 사람. 그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칼슨 쪽이었다.
그는 리바이가 서 있는 장소를 한 번 휙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여기 서 있는 걸 보니, 설마 이쪽 근처에 작품이 놓이는 겁니까?”
“그런데?”
“…….”
“뭐야. 그 표정은…… 당신 작품은 이쪽이 아닌가 보지?”
리바이는 확실히 눈치가 빨랐다. 순간적으로 침묵을 지킨 칼슨을 보며 상대방이 왜 그러는지 알아차렸으니까.
“……저야 출구 쪽입니다.”
지금 리바이가 서 있는 곳은 전시장에서 들어오는 입구 근처였다. 들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는 한복판. 바로 거기 서 있는 리바이였다.
즉, 칼슨이 말하는 출구 쪽과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소리였다.
“출구라고? 거의 끝이잖아? 바꿔 달라고 할 생각이라면…….”
“바꿀 생각 전혀 없는데요. 큐레이터가 제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줘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출구 쪽은 비인기 장소였다. 칼슨 정도 되면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충분히 좋은 위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걸 아는 리바이는 그의 태연한 반응이 어처구니없었다. 지금 칼슨의 태도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저놈이 이해 못할 짓을 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알아서 한 거겠지 뭐.’
대충 멋대로 납득한 리바이. 그는 오랜만에 칼슨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나도 윤성 작가랑 붙여 달라는 거 다 들어줬는데…… 이번 큐레이터 일 잘하는데?”
“……잠깐만요. 누구랑 붙여 달라고 했다고요?”
아무렇지 않게 말한 리바이와 달리 칼슨 측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야 당연히 윤성 신 작가랑…… 설마 당신 일부러 멀리 간 거야? 피해 달라고 요구해서?”
이쯤 되자 그들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상대방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말이다.
“…….”
“…….”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서로의 의중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거의 동시에 상대에 대한 평가가 내려졌다.
‘딱 겁쟁이다운 행동이네.’
‘제 분수를 이렇게나 모르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군.’
속으로 상대방을 비웃은 그들. 그러나 솔직히 궁금했다. 왜 자신과 정반대로 전시할 장소를 선택한 것인지.
“진짜 거기면 되는 겁니까? 출구 쪽이면…… 화제성도 약할 게 분명한데?”
“저야말로 물어보고 싶군요. 이 자리가 정말 괜찮습니까? 최선이 맞아요? 아주 적나라한 비교 샷이 될 게 명확한데요.”
“…….”
“…….”
“나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한 게 맞는데?”
“저 또한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죠.”
잠깐의 침묵 후 상대방에게 대충 대답을 한 두 사람. 하지만 유순한 대답들과 달리 그들은 본인들만 옳다고 굳게 믿는 중이었다.
‘뭐 조만간 후회할 게 뻔하지. 쯧쯧. 멍청하기는.’
‘끝날 때쯤에는 지금의 본인을 때려죽이고 싶을지도 모르겠군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들은 겉으론 태연하게 서로를 향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스스로를 과대평가는 것도 조만간 끝이지. 휘트니가 곧 시작하니까. 스승인 잭슨님이 아까운데.’
‘부모 후광으로 여기까지 온 이놈도 결국은 여기까지겠네. 휘트니에서 화제성이 1도 없을 정도면 뭐…… 디 엔드지.’
서로가 서로를 비웃는 상황. 이들 중 누가 최후의 미소를 지을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휘트니 비엔날레가 진짜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