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본인 작품도 하나 걸으시겠대요
[이쯤 되면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반응해 주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그러려나요…….”
[물론 그렇다고 작가님께서는 서두르실 필요가 없죠. 처음 하시는 일인 만큼 신중하면 좋으니까요.]심사 위원. 당연히 난 처음 하는 일이었다. 그건 반드시 이번 생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조선에서의 나 또한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도화서에서 나온 뒤로는 더더욱 그럴 일도 없었고.’
만약 내가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 선생님처럼 도화서에 계속 머물렀다면. 아니면 후배를 양성이라도 했다면 그런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난 늦은 나이까지 혼자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하면 내 작품을 더 눈에 들어오게 만들지만 고민했을 뿐. 남의 작품에 대해 평가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저희 입장에서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살펴보시죠. 작가님.]“네에. 흐아암.”
대답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입에서 하품이 나왔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눈가를 비비고 싶어질 만큼,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직 시차 적응이 힘드신가 보네요.]내 하품 소리를 전화로 들었기 때문일까. 필립의 어투에 웃음기가 섞였다.
[이만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작가님. 나중에 천천히 자료는 좀 보시고요.]필립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보냈다는 자료가 궁금해졌다. 대체 뭘 보냈길래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말인가.
내가 속으로 궁금해하고 있는 사이에도 필립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 생각입니다만. 이민철 화백님께 한 번 여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할아버지요?”
[예. 그분만큼 이 한국의 순수 미술계를 잘 아시는 분이 없으시니까요.]“아하.”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한 세기에 가깝게 이 계통에 몸을 담고 계셨다. 원래 그 계통에 들어가 있으면 수많은 정보가 들려오는 법.
특히나 최근에는 미국 등의 해외에서 활동하는 나와 달리 할아버지께서는 꾸준히 한국에서 머물고 계셨으니. 더 많은 걸 알고 계시리라.
‘한번 여쭤봐야겠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난 조만간 할아버지께 찾아가 이 대화에 대해 말을 꺼내 보리라 마음먹었다.
* * *
한국의 여름은 무더울 뿐만 아니라 습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어디 가는 것보다 이렇게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제일이었으니.
와삭―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달달한 초코와 순한 우유 맛의 조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올해의 작가상이라……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분이 좋은 나와 달리 할아버지의 표정은 사뭇 심각하셨다.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것을 뽑는 국립 현대 미술관이 주최하는 행사. 내가 그에 관해 묻자 이런 반응부터 보이셨다.
“그냥 아시는 것부터 말씀해 주시면 돼요.”
“흐음.”
고민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난 내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걸 말할 필요성을 느꼈다. 딱 보아하니, 날 어리게 보셔서 말을 고르고 계신 게 분명했으니까.
“할아버지. 그 작가상이 어떤지 필립이 이미 대충은 이야기해 줬어요.”
“……그러냐?”
“예. 부정적인 의견이 가득한 칼럼 같은 것도 꽤 읽었고요.”
“…….”
“그러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냥 할아버지께서 어떤 의견이신지 궁금했거든요.”
“그래. 그럼 이야기해 주마.”
상당히 끈질긴 내 설득이 통했다. 할아버지께서 본격적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먼저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서 작가들을 추천받아 선발한단다.”
“들었어요. 그거…… 현대 미술관 측이 정한 사람들이 추천하는 거죠?”
“그래.”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부터 좀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1년에 전시회를 몇 번 했다던가. 몇 작품을 냈다던가 등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단순한 추천.
지금 하는 것처럼 기준이 명시되지 않은 추천은 문제를 만들기 딱 좋았으니까.
“2차에 걸쳐서 심사가 이루어 지고…… 한 5천만 원 정도를 지원해 준다고 들었는데요. 맞죠?”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4명 혹은 4팀의 후보를 1차에 뽑고 그에 대해 2차 심사를 진행하지.”
“그건 온전히 심사 위원만 가지고 하고요?”
“맞아. 물론 공정하게 하기 위해 2년인가 계속 돌아가면서 심사 위원을 뽑는다고 하더구나.”
“으흠. 전시회 비용으로 5천을 쓸 수 있으면…… 꽤나 괜찮긴 하네요.”
나야 이번 생에선 넉넉한 가정 환경에 대형 갤러리와 전속 계약까지 맺었으니.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난 회화 작가였다. 설치 미술이나 다른 기기묘묘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었다.
그러나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화가라면, 이런 행사가 간절하리라.
역시나 할아버지께서도 이런 내 의견에 동의하셨다.
“물론 그보다 더 쓰는 작가도 많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
“제가 볼 때도 그러네요. 오히려 금액의 상한선이 딱 정해져 있어서 비교하는 맛도 있을 것 같고요.”
할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기에 난 진짜 궁금한 점을 여쭤볼 수 있었다.
“근데…… 제가 본 자료에는 거의 대부분이 비디오 아트거나 설치 미술 쪽이던데, 왜 그런 거예요?”
“글쎄다. 그쪽 화가들을 많이 추천해서 그럴 게다.”
4명 혹은 4팀 모두에게 5천만 원을 주는 행사. 기본비용이 2억 원 넘게 드는 행사였다.
이 정도면 소수의 화가가 하는 미술관 행사치곤 절대 적게 들어가는 건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에 대한 반응은 미미했다.
대부분 이런 상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뿐더러 아는 사람들도 막상 가 보면 실망하곤 하는 것.
그게 이 ‘올해의 작가상’을 뽑는 행사였으니까.
“이거 진짜 영국의 그 ‘터너상’을 본 따서 만든 거에요?”
영국의 터너상. 1984년에 생긴 윌리엄 터너의 이름에서 따온 영국 최대의 현대 미술상이었다.
현대 미술계에서 유명한 각종 세계적인 영국 화가들이 이 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이 상은 영국이 현대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큰 힘을 보태고 있었다.
좀 과하게 말해 영국의 현대 미술은 ‘터너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이 할애비는 들었다.”
“……그런데 왜 걔네랑 똑같이 안 하는 거예요?”
영국의 터너상은 절대 미술계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수상 과정을 대대적으로 생방송을 하는 것은 물론 전시 규모도 상당히 크게 연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국의 ‘터너상’. 즉 ‘올해의 작가상’은 달랐다.
“그 이유는 이 할애비도 모르겠구나. 헌데…… 갑자기 와서 왜 계속 그 상에 대해 물어보는 게야?”
“어…….”
순간적으로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게 아직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생의 나보다 그림을 수십 년은 더 먼저 그리신 할아버지.
그런 분 앞에서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심사하는 심사 위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만간 해야겠지만…… 일단 좀 더 알아보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지.’
어차피 그 일을 맡게 된다면, 제일 먼저 조언을 구해야 하는 건 우리 할아버지였다.
내가 직접 알고 있는 국내 미술 작가들 중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갑자기 좀 궁금해져서요. 아하하.”
어색하게 웃음으로 무마해 보려는 나였다. 그런 내 노력이 통했음일까. 할아버지께서는 금세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셨다.
“그런 거보다 이 할애비에게 미국 생활이나 좀 들려주려무나. 명색이 에일대 아니냐. 거기 학교 학생들은 어떻든?”
‘후, 다행히 이상하게 여기진 않으신 모양이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였다. 아무래도 오늘 할 ‘올해의 작가상’에 대한 대화는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 * *
쿵―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이 위치한 곳은 방금 큰 소리를 내면서 열린 문 쪽이었다.
“한대요!”
국립 현대 미술관의 직원이자 큐레이터 중 하나인 민혜선. 그녀는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큼 그녀의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좋았으니. 이 기쁜 소식을 동료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한다고?”
“진짜예요?”
“예! 신윤성 작가님께서 해 주신대요!”
현재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화가. 그런 사람들 중 가장 젊은 이. 그가 바로 신윤성 작가였다.
그런 만큼 처음에는 많은 직원들이 말했다. 그가 이번 ‘올해의 작가상’의 후보로 되게 하자고.
그만 참여해 준다면 매번 대중이 하는지 안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이 ‘올해의 작가상’도 색다른 주목을 받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의견은 금세 힘을 잃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는 이 신윤성 작가님 측에서 도무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그래도 이들은 끈질겼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역시 참가하는 화가보단 심사 위원인가?”
“솔직히 신윤성 작가가 여기 나오기엔 좀…… 이미 이름값이 너무 높지.”
한국에서 가장 권위적인 미술상이라고 불리는 ‘올해의 작가상’이지만, 그 위치는 세계적으로 볼 때 미미했다.
수상을 위한 후보가 되는 작가들도 원로보다는 신진 작가가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그 이름값이 ‘터너상’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었다.
“근데 그 나이에 심사 위원이면…… 역대 최연소 맞죠?”
“맞지. 그것도 그냥 최연소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갱신한 수준일걸.”
“하긴. 애초에 보통 사람이 그 나이에 이런 심사 위원을 맡을 수가 없으니까요.”
먼저 자격 자체가 충족하기 쉽지 않았다.
국립 현대 미술관이 선정하는 심사 위원의 경우 이름있는 큐레이터거나 대학교수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나마 종종 선정되는 화가들이나 작가들도 대부분 수많은 전시회를 한 원로 화가인 경우가 많았으니.
그 자격을 갖추는 일 자체가 보통은 아니었다.
“와…… 그 작가님 진짜 용기 있네.”
“그러게. 최연소 심사 위원이라…… 하기 쉬운 결정은 아닌데.”
“여차하면 자격 논란부터 시작해, 온갖 구설수 오르기 딱 좋죠.”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직원들이었다. 이 보수적인 국립 현대 미술관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기에.
이런 상황 속에서 심사 위원을 하겠다고 하다니. 그 신윤성 작가는 정말 대중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근데요. 조건을 걸긴 하셨어요.”
“조건? 무슨 조건?”
“형식을 좀 바꾸고 싶으시대요. 이거 허락하지 않으면…….”
“않으면?”
“설마…….”
“예. 그 설마가 맞을걸요. 그냥 안 하시겠다고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들은 직원들 중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큼 신윤성 화가의 말은 패기가 넘쳐흘렀으니까.
“와우. 브라보.”
“국립 현대 미술관 정도는 무섭지도 않으시다는 거네.”
차라리 그냥 정중하게 일을 거절했다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야 비일비재했기에.
그러나 신윤성 작가 측은 딜을 걸었다.
만약 본인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아예 안 하겠다니. 이건 진심으로 국립 현대 미술관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나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대체 그 조건이 정확하게 뭔데?”
“그러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야?”
“현장 투표 도입해 달라고 하셨어요.”
“현장 투표?”
“예. 전시회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았던 작품 투표하게 하고 그중 일부를 추첨해 선물 주자고 하시더라고요.”
“흐음. 뭐 그 정도야…….”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어렵게 납득하고 있었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현장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상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에 나온 말이었으니.
“그리고 본인 작품도 하나 걸으시겠대요.”
“뭐?”
“그게 무슨…….”
“대신 지원금은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아니. 지원금이 문제가 아니잖아. 신윤성 작가 정도면 여기 안 나오고 싶어 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그들이 심사 위원으로라도 부르기 위해 노력한 거 아닌가. 직접 참가할지 어떤지 의견을 찔러볼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더니.
이제 와서 이런 반응은 또 뭐라는 말인가.
“그러게. 대체 이게 뭔 뜻이야?”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 중 당장 그 작가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이거 아무래도 얼른 인사를 드려야겠는데요.”
“그러게. 빨리 만나 뵈어야겠다.”
무슨 생각인지 알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대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립 현대 미술관 측은 마침 한국에 있다는 신윤성 작가 측을 최대한 빨리 만나기로 마음먹었다.